글쓰기에 있어서 언제나 첫 문장(文章)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나는 계속 글을 써야 하므로 다음 문장도 어려울 것 같고 마지막 문장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글쓰기에서 봉착(逢着)하는 어려운 난제에 대해 이전엔 아주 드물게 자기 견해(見解)를 발표했습니다. 왜냐면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는 위축감(萎縮感)에 억눌리어 감히 운운할 주제가 못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따라서 내 글은 별로 길지 않고 또 글 내용도 별로 완전(完全)하지 못합니다. 항상 이러한 고민(苦悶) 때문에 글쓰기가 더욱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긴 글에는 문격(文格)이 있고 글 쓰는 사람에게는 자격(資格)이 있습니다. 글쓰기에서 이 양자는 밀접한 관계로서 상호작용(相互作用)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글 짓는 격식(格式)을 잘 모르면 글의 품격(品格)이 떨어지고 글쓰기에서 필요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문장 내용이 요구 조건을 충족(充)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글에 대해 회의적(懷疑的)이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저는 자신의 글을 남에게 알리기를 몹시 꺼려합니다. 치열한 경쟁시대에서 자기의 단점(短點)을 효과적으로 극복해 나가지 못한다면 평생가도 남에게 인정(認定)받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체면(體面)의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자신감(自信感)을 스스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잠재해 있는 장점(長點)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상실(喪失)하게 됩니다.
간혹 저를 무엇 하는 사람인가고 물으면 블로그에 ‘정보를 전달’한다거나 ‘소일거리’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답이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불신(不信)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블로그를 남보다 뛰어나게 운영(運營)할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변명(辨明)을 둘러막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이 어쩐지 처량(凄涼)하게 들리지만 글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블로그 판세를 확 바꿀 담보(擔保)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블로그는 전문적인 분야나 정규적인 서지학(書誌學)으로 풍부해진 이론과 엄격한 격식을 갖춘 ‘학위(學位)’가 필요한 문화공간입니다. 그리고 블로그 ‘거장(巨匠)’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훌륭한 글을 창작(創作)하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높은 질을 요구하는 현시점의 블로그는 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次元)의 체계적인 정보교실로 각광(脚光)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명한 블로거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전문성(專門性)’을 바탕으로 방문자들의 인정받는 블로거로 천거(薦擧)받을 수 있는 합격된 ‘인증서’를 가지고 있어야 꽤 유망한 "블로거"가 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민족문화의 블로거가 되었다는 무한한 희열(喜悅)과 긍지(矜持)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를 만든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이 블로거라고 떠벌이기를 좋아했고 아무런 내적 여과도 없이 이 단어를 내뱉었다는 것이 지금 와서 참 후회(後悔)됩니다. 또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이 말 속에서 경험했던 '잔인한 창피'를 새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강한 자존심을 내건 블로그에서 내 글이 노출(露出)되고 잘 읽혀지고 쉽게 이해되기를 갈망(渴望)합니다. 매일매일 다른 블로그와 구별되기 위해서 열심히 정보를 찾아 수집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독창적’인 의상(意想)이나 ‘독자적’인 개성을 보임으로써 남다른 충격(衝激)주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방문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눈감고 야옹하는 격이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그 어떤 상상과 야할 정도로 노골화(露骨化)된 어떤 욕망을 내뿜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블로그에서 자기 자신의 명성(名聲)을 만천하에 날릴 ‘출세(出世)’의 기회를 기대해 왔습니다.
사실 이런 야망(野望) 때문에 특징지어 지는 자극적이고 엽기적(獵奇的)인 스토리가 대량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야심적인 글’이란 남의 유명한 작품이나 정보를 절취(竊取)하여 자기의 성과물인양 극구 ‘홍보(弘報)‘하는 것입니다. 한때 저는 이런 불미(不美)스러운 글을 써서 어느 정도 ‘성과(成果)’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방문자들이 ‘찬사(讚辭)‘를 한 몸에 받아 안았습니다.
진짜 저와 같은 블로거가 저품질입니다. 남의 창작물을 자기 성과물(成果物)인양 블로그에 대대적으로 선양(宣揚)하고 보급(普及)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방문자가 바투 질문을 하면 두루뭉술하고 애매(曖昧)한 답변을 줍니다. 이는 결코 선행의 내적인 충동(衝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라면 스스로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알려줄 수 없는 내심의 자책(自責)이 그 원인이 됩니다.
나는 가끔 지적인 질문 받았을 때는 멀리 에돌며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식으로 대답합니다. 글은 결코 모방자나 표절자의 ’특권(特權)‘이 아닙니다. 글은 잘 쓰던 못 쓰던, 좋든 나쁘든 자기 글로 써야합니다. 다시 말해서 글이란 자기 얼굴인 만큼 못 났던 잘 났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러니 티끌만한 허점(虛點)이 있어도 용납(容納)되지 않습니다.
창의적(創意的)인 글의 동기가 되는 생각이나 자극을 불러오는 영감(靈感)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택하고 좋아하고 상상(想像)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찾아옵니다. 그리고 수백 종의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매번 새로운 도전에 시도한다면 그들은 불꽃 튀는 영감(靈感)을 받을 겁니다. 어려움과 실패(失敗)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나 열중하는 사람은 호기심(好奇心)이 식지 않습니다. 호기심은 이미 풀어낸 문제에서 다시 새로운 물음을 연발(連發)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또 영감은 ’나는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겸손(謙遜)한 사람에서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블로그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생활비(生活費)‘를 벌기 위해 아무 글이나 되는대로 씁니다. 그래야 대충 ’얻어먹고 살기‘ 때문에 말입니다.
한때는 자기 자신의 정열(情熱)만으로 블로그를 한 것이 아니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 블로그를 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일, 대충하는 일, 따라 하기식의 형태(形態)로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블로그가 높이 평가(評價)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블로거로부터 영감에 대한 ’독점권(獨占權)‘을 빼앗아 간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감이란 쉽게 아무하고나 사귀어지지 않은바 성실(誠實)하고 진심인 사람들에게만 잘 접근(接近)합니다.
텅 빈 내용의 정보수집가, 맹목적인 정보를 믿는 광신자(狂信者),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열광자(熱狂者), 진실 여부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선동가(煽動家)들은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盜用)하여 제 것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박학다재(博學多才)인양 늘 입에 "압니다"를 즐겨 달고 다닙니다. 그런데 한번만 아는 것으로 충분한데 자꾸만 ’안다‘고 자랑합니다. 결코 이것은 허튼소리로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압니다‘가 경쟁(競爭)의 힘을 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서 새로운 질문들을 전개(展開)하지 않는 모든 지식은 생존에 알맞은 온도(溫度)를 잃고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합니다. 가장 극적인 상황(狀況)인 옛날과 지금에서 알 수 있듯이 블로그에 치명적인 위험(危險)으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높이 외쳐야 합니다. "나는 모르겠어!" 이 말은 짧고 간단하지만 견고한 날개가 돋쳐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공간과 ’우리‘를 포함하는 공간에서 시야를 넓혀주는 말 한마디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많은 유익한 정보가 우리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진짜 정보를 숨기기 위해 가짜 정보를 대량 유포하여 옳은 것과 그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뒤섞어 혼동하게 만듭니다.
만약 내가 자기에게 "나는 알겠어"라고 외치면 아마 블로그세계에서 쫓겨 날 겁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정보가 나의 옆을 스쳐지나 멀리 달아날 겁니다. 그리고 계속 고집하여 "나는 알겠어"를 되풀이한다면 이 단어가 저를 두 번이나 평온(平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고 있어‘라고 보답하는 거짓말쟁이로 지목(指目)될 겁니다.
가끔 나는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을 소망(所望)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뻔뻔스러움 속에서 감명(感銘)을 주는 모든 사람들과의 가짜 대화를 통해 허위(虛僞)한테 아주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어야할 겁니다, 왜냐하면 최소한 가짜 진면목이 드러나는 사람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한사코 가면(假面)과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에 새로운 것을 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이렇게 썼을 겁니다. 하지만 저 역시 블로그에 새로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로 구차하게 지냅니다. 제가 쓴 한 편의 글은 역시 블로그에서 생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아무도 그것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블로그에 새롭게 나타나는 것은 저의 방문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전에 사귀었던 방문자들은 진짜 글을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늘방석에 앉아 있었던 블로그는 역시 세상의 시작부터 여기서 자라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의 것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똑같지 않은 블로그가 다른 블로거에게 시작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문자는 저에게 물어보고 싶어 합니다. 블로그에 새로운 무엇을 지금 쓰려고 하는지요? 저의 생각을 채울 무엇인가 아니면 그 중 몇 가지에 대해 부인(否認)하려는 유혹이 있나요? 이전의 글에서 기쁨을 발견 했나요? 어느덧 지나가버린 것들로부터 블로그에 새로운 글은 그것에 대한 어떤 의미가 될 건가요?
첫 스케치일 때 "메모를 이미 했나요?"라고 이렇게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것을 다 썼다. 더 보탤 것은 없다". 세상의 어느 블로거도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저처럼 ’위대‘한 블로거는 이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난 정말 몰라요!‘라는 말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이든지 거대함에 연유한 공포(恐怖)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무력감(無力感)과 고통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에 대해 쓰라림과 함께 생각할 때 방문자들, 정보들, 아마 지식들의 것일지도 학문은 고통에서 자유롭다는 확신(確信)이 없습니다. 무엇에 대해서든지 별들의 빛으로 꿰매지는 공간(空間)에 대해 생각할 때, 그의 둘레에서 어떤 정보의 행성(行星)들을 발견하기 시작한 이미 죽은 것과 아직은 죽지 않은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이 거대한 정보시대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입장권(入場券)이 있지만 두 개의 날짜로 한정된 유효기일(有效期日)은 우스울 정도로 짧습니다. 무엇이든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세계는 놀랍습니다. 하지만 "놀라게 하는 속”에는 어떤 논리적인 덫이 숨어 있습니다. 저한테 알려지고 일방적으로 제가 익숙해져 있는 인정된 표준(標準)의 당연성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놀랍니다. 하지만 그런 당연(當然)한 세상은 없습니다. 저의 놀라움은 현존(現存)하는 것이고 그 어떤 것과의 비유(比喩)에서 나온 결과가 아닙니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지 않는 일상적인 말에선, 모두 이런 표현을 씁니다. ’평범한 세상‘ ’평범한 인생‘ ’평범한 정보“들의 계열(系列)에 대해 마구 씁니다.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재는 문어(文語)에서는 어느 것도 보통이고 정상적(正常的)이지 않습니다. 어느 바위도 그 위의 어느 구름도 어느 하늘도 그리고 그 다음의 어느 밤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의 어떤 누구의 존재(存在)도 말입니다.
글 쓸 줄 모르는 나는 속이 텅 비었기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말 많은 집에 장이 쓰다고 말함에 있어서 항상 조심하고 삼가 해야 합니다. 말로 인하여 실수(失手)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얍삽한 입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뻔히 알면서도 반복해서 다시 오류(誤謬)를 범하는 것이 나입니다. 그래서 경솔(輕率)한 말만 하는 나는 글쓰기가 어렵고, 더욱이 첫 문장 쓰기가 더 어렵고 헷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