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희생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제가 정신적으로 너무 나약한 건가요?
국내 생물학 연구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을 신경과학 박사과정생이라고 밝힌 이용자가 올린 글이다. 댓글에서는 "동료 중에서 이 문제로 다른 실험실로 옮긴 사람도 있다"는 등 게시글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동물 보호의 관점에서 동물실험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와 실험동물관리사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병연구소 모효정 교수의 논문 '동물실험 연구자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관한 예비 연구'를 보면 연구자는 동물실험 과정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사람에게 의약품이나 치료법을 시험하는 '임상시험' 전에 시행하는 '전임상 시험'에서는 동물을 대상으로 의약품의 독성 등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실험동물을 보살피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모순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연구자는 건강한 동물에 인위적으로 질병을 유도한 후 치료약을 투여하거나 수술을 한다. 연구가 끝나면 대부분의 실험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때 연구자는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이 고통에 처한 것을 눈앞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실험동물들의 고통 등급은 가장 약한 A등급에서 D등급으로 나뉘는데, 2018년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실험에 참여한 372만마리의 동물 중 '중증도 이상의 고통 억압'을 의미하는 D그룹(35.5%)과 '극심한 고통·억압이나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하는 E그룹(36.4%)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연구자는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동물과 유사한 종의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거나 안락사시키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서울 소재 약학대학 학부생 A(23)씨는 "실험 토끼를 안았을 때 키우던 강아지와 느낌이 비슷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실험이 장기간 진행되는 경우 실험동물과 강한 애착이 형성되며, 특히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 실험에서는 안정적인 사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동물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동물을 다루면서 정신적 고통을 느낀 사람은 대부분 이를 해소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조처를 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35.5%에 불과했다. 동물실험으로 연구실 생활이 힘들다고 답한 연구자들의 스트레스 정도는 5점 척도에 3.26점이었다.
모효정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동물실험 연구자들의 심리를 치료하고 상담하기 위한 공식적인 통로가 거의 없다"면서 "동물실험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겪으면서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연구자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