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이성(天異星) 적발귀(赤髮鬼) 유당(劉唐)의 별호는 적발귀(赤髮鬼)이고 얼굴에 털 난 큰 붉은 점이 특징인 험상궂은 얼굴을 가져 얻은 별호(別號)이다.
떠도는 건달로 생신강(生辰綱) 선물 호송 소식을 듣고 그 탈취(奪取)를 제안하기 위해 조개(晁蓋)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와중에 술에 취에 사당(祠堂)에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순찰 중 이를 본 뇌횡(雷橫)이 순찰 실적을 쌓기 위해 딱 봐도 도적놈같이 생긴 유당(劉唐)을 포박한다.
유당(劉唐)이 잡혀있는 것을 본 조개(晁蓋)가 유당이 자신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을 짐작(斟酌)하여 자신의 조카인 양 연기를 해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이때 조개가 감사의 뜻으로 뇌횡(雷橫)에게 돈을 줬는데 결과적으로 죄 없는 사람 누명 씌워서 돈을 갈취(喝取)한 꼴이라 이것이 마음에 안 든 유당은 그 돈을 빼앗아 조개에게 돌려줄 요량으로 뇌횡을 찾아간다.
뇌횡(雷橫)과 박도(朴刀)로 대차게 붙는 도중 오용(吳用)이 구리사슬로 그들을 갈라놓았고 뇌횡도 싸움을 그만하자고 유당에게 말했지만 유당은 오용, 뇌횡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싸우다가 조개(晁蓋)에게 저지당한다. 이후 조개에게 생신강(生辰綱) 탈취를 건의하고 그 길로 조개 이하 일곱 사내들은 도적이 되었다.
나중에 송강(宋江)에게 보답하기 위해 조개(晁蓋)가 유당에게 금과 편지를 전하게 하는데 이게 일이 꼬여서 어제까지 모범시민이었던 송강은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지목되어 악화(惡化)된 상황을 맞게 된다. 이렇게 보면 수호지(水滸志) 주역들이 양산박(梁山泊)으로 들어가는 계기를 제공하는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인물이다. 뒤집어 말하면 만악(萬惡)의 근원이지만 공손승(公孫勝)도 양중서의 뇌물운반의 정보를 알고 있는지라 유당(劉唐)이 아니라도 양중서(梁中書)의 뇌물을 훔쳐갈 수도 있다.
이후 양산박의 보병두령(步兵頭領)으로 활동하나 심부름꾼으로 두어 번 눈에 띌 뿐 군사적 활약(活躍)은 거의 없다. 동창부(東昌府)편에서 뛰어가서 장청(張淸)이 타고 있던 말의 목을 베어서 낙마한 장청을 공격(攻擊)하려고 하는데 목이 짤린 말이 사후경직이 일어나서 말의 다리에 얼굴이 맞다가 돌 맞고 잡혀 포로(捕虜)가 되는 등 대우가 좋지 않다. 그래도 유일하게 장청을 거의 이긴 묘사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다른 판본이나 김성탄(金聖歎) 판본에서 생략이 되거나 과정이 생략되고 "유당(劉唐)이 포로로 잡혔다고" 언급으로 처리된다.
최후 역시 심히 안습(眼濕)하다. 방납(方臘) 토벌전 때 항주성(杭州城) 성문으로 돌파(突破)하다가 문에 깔려 죽는다. 그의 죽음을 들은 송강(宋江)은 "그 친구 고생만 했지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죽었구나"라며 슬퍼했다. 이것은 다 후에 있은 일이다.
유당(劉唐)은 노주(潞州) 출신으로 고아로 자랐으며 전국 각지를 떠돌았다. 얼굴에 붉은 사마귀가 있고 그곳에 붉은 털이 자라나 적발귀(赤髮鬼)라 불린다. 나이는 젊고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얼굴이 험상궂으며 박도(朴刀)를 잘 쓴다.
북경(北京)의 양세걸(梁世傑)이 장인인 채경(蔡京)에게 생신강(生辰綱)을 보낼 것과 그것이 사실 10만관의 뇌물(賂物)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에 분노한 유당(劉唐)은 강탈을 계획하였으나 혼자서는 불가능 했기에 의협심(義俠心)이 강하고 인망이 높은 제주(濟州) 동계촌(東溪村) 촌장인 탁탑천왕(托塔天王) 조개(晁蓋)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동계촌(東溪村)에 도착한 유당(劉唐)은 한밤중이라 근처 사당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주변 순찰(巡察)을 돌던 뇌횡(雷橫)에게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아 결박(結縛)당하고 말았다. 유당은 뇌횡에게 자신은 조개(晁蓋)의 조카라고 말하고 날이 어두워 근처에서 잠을 청하던 중이라 설명한다. 뇌횡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유당을 데리고 조개의 집을 찾아간다. 유당을 본 조개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채고 뇌횡에게 10냥을 주고 유당을 석방(釋放)시킨다. 결박에서 풀린 유당은 뇌횡을 쫓아가 10냥을 다시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내며 칼을 겨누었다. 뇌횡과 유당은 한바탕 결투가 벌어졌으나 때마침 지나가던 오용(吳用)의 사슬추에 싸움은 끝이 났다.
유당(劉唐)은 조개(晁蓋)에게 돌아가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 한 후 도움을 요청했다. 조개는 같이 온 오용(吳用)과 상의한 후 완소이(阮小二), 완소오(阮小五), 완소칠(阮小七) 삼형제를 끌어들이고 뒤늦게 도착한 공손승(公孫勝)과 함께 의형제를 맺어 계략을 꾸민다. 결국 양지(楊志)가 호위하던 생신강(生辰綱)을 황니강(黄泥岗) 고개에서 강탈한 후 양산박에 들어갔다.
이후 유당(劉唐)은 조개(晁蓋)의 부탁으로 관군으로부터 도주(逃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송강(宋江)에게 사례금(謝禮金)과 금으로 쓴 편지를 전달하였으나 이로 인해 송강이 관군(官軍)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송강이 자수하여 강주(江州)에 유배 된 후 죽을 위기에 처하자 양산박 호걸들과 함께 송강을 구출(救出)한다. 조개가 사망한 후 양산박군의 선봉(先鋒)으로 활약하였다.
양산박 보병군 두령 중 한명으로 관군과의 계속된 전투(戰鬪)에서 활약하였다. 조정 귀순(朝廷歸順)에 반대했던 사람 중 한명으로 요(遼)나라, 전호(田虎), 왕경(王慶) 토벌을 종군했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중 공적을 노리고 가장 먼저 성내로 진입(進入)하다가 적군의 함정에 걸려 성문에 깔려 사망했다.
적발귀(赤髮鬼) 유당(劉唐)은 제주(濟州) 운성현(鄆城縣) 동계촌(東溪村)의 영관묘 안에서 잠을 자다가 도두 뇌횡(雷橫)에게 잡혔으나 지역 유지인 조개(晁蓋)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유당은 곧바로 조개에게 채태사(蔡太師) 생신선물(生辰膳物)을 강탈하자고 제의하여 인원을 모아 실행에 옮겼으나 일이 탄로 나자 다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간다. 양산박 도적단의 일원으로써 모착천(摸着天) 두천(杜遷)과 함께 자신들을 잡으러 온 관군 백승장(百勝將) 한도(韓滔)를 사로잡았다.
양산박(梁山泊) 입성이후의 일은 주로 관군과의 대치나 전쟁관련의 일로 대부분 밝혀져 있는 내용이고 그는 요군(遼軍)과의 대치상황에서 동관산하의 척살대(刺殺隊)를 이끄는 암살집단(暗殺集團)의 수장으로서 수십 명의 요인을 암살하고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양산박에 입성하기 이전엔 살아가는 살수집단(殺手集團)의 단주(團主)로써 주로 암살전문의 살수로서 활약한다. 검의 명문인 청성파(青城派)의 전통검법을 익혔으며 궁중의 무사집단인 동창(東昌)에서 약 6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일반적인 궁중무사(宮中武士)인 호위사들과는 다르게 동창의 무예는 실전위주의 살인무술(殺人武術)이다. 청성파의 고유검술(固有劍術)과 동창의 실전무술(實戰武術)을 겸비하게 된 유당(劉唐)은 동창의 관직을 뿌리치고 강호로 뛰어들게 된다.
조정에 귀순한 뒤엔 반란을 일으킨 방납(方臘)의 군대를 토벌하러 나서서 적장 심택을 살해하는 등의 공을 세웠다. 하지만 얼마 후 방납군이 장악한 항주성(杭州城) 후조문을 들이치다가 성문에 깔리는 바람에 압사(壓死)하고 말았다. 유당(劉唐) 역시 초반에 조개(晁蓋)가 양산박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실을 만들어주는 결과를 낸 후 그 존재감(存在感)이 미약해졌다.
유당(劉唐)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108성 중 21위이자 천강성(天罡星)의 천이성(天異星)에 해당한다. 얼굴에 붉은 사마귀가 있고 그곳에서 붉은 머리카락이 자란다 하여 적발귀(赤髮鬼)라는 별호로 불린다. 박도(朴刀)의 명수로 양산박(梁山泊) 제일의 실력(實力)을 자랑한다.
노주(潞州) 출신으로 고아로 자랐으며 협객(俠客)으로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이후 북경(北京)의 유수사(留守使)인 양세걸(梁世傑)이 자신의 장인인 채경(蔡京)의 생일 선물로 생신강(生辰綱)을 보내려고 하며 사실은 그것이 10만 관의 뇌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당(劉唐)은 이에 분노하여 이를 강탈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기에 의협심(義俠心)이 강하고 인망이 높기로 유명한 제주(濟州) 동계촌(東溪村)의 촌장(村長)인 조개(晁蓋)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 뒤 유당(劉唐)은 곧바로 동계촌(東溪村)으로 가 한밤중에 도착했으며 그곳에 있던 사당(祠堂)에 들어가 잠을 첨했다. 그러나 유당이 험상궂은 외관을 하고 있었던 탓에 순찰(巡察)을 돌고 돌아가는 길이었던 뇌횡(雷橫)에게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결박당한다. 이에 유당은 순간적으로 꾀를 내어 자신을 조개(晁蓋)의 조카라고 거짓말을 했으며 이에 뇌횡(雷橫)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유당을 조개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조개는 유당과는 초면(初面)이었지만 유당을 구해주기로 마음먹었으며 뇌횡에게 10냥을 주고 유당을 석방(釋放)시켰다. 이후 유당은 풀려나자마자 조개에게서 10냥을 받아간 뇌횡을 찾아가 10냥을 다시 가져가려고 뇌횡과 싸웠으며 싸우던 도중 우연히 지나가던 오용(吳用)에 의해 두 사람 모두 저지(沮止)당한 뒤 유당은 자신을 뒤쫓아 온 조개에게 꾸짖음을 받았다.
이후 유당(劉唐)은 조개(晁蓋)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 뒤 조개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조개는 오용(吳用)과 상의한 뒤 유당의 제의를 수락해 자신들 이외에 공손승(公孫勝), 완소이(阮小二), 완소오(阮小五), 완소칠(阮小七)과 함께 계략을 꾸며 생신강(生辰綱)을 탈취했다. 그 뒤 관군의 추격을 피하 양산박(梁山泊)에 몸을 의지하려는 조개를 따하 함께 양산박으로 갔으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양산박의 두령인 왕륜(王倫)이 자신의 지위 보전(保全)을 위해 조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임충(林冲)이 왕륜을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임충이 왕륜을 살해한 뒤 조개를 새로운 두령으로 삼자 유당 또한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그 뒤 유당(劉唐)은 조개(晁蓋)의 부탁으로 자신들이 관군으로부터 도주(逃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송강(宋江)에게 사례금 100냥과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조개가 송강에게 보낸 편지로 인해 송강은 관군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송강이 관에 자수해 강주(江州)로 유배된 뒤 처형될 위기(危機)에 처하자 유당은 조개 등과 함께 유배지(流配地)로 가 송강을 구출했다. 그 뒤에는 조개가 양산박을 비웠을 시 요새(要塞)를 지키는 등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조개가 사망(死亡)한 뒤에는 양산박 군의 선봉에 서 가장 먼저 적진에 돌진(突進)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장청(張淸)과의 전투에서 일대일 대결에서 패해 포로(捕虜)가 되었으나 공손승(公孫勝)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보병군(步兵軍) 두령(頭領)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관군과의 계속된 전투에서 좋은 활약(活躍)을 보였다. 이후 조정에서 양산박의 귀순(歸順)을 권하자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결국 양산박은 조정에 귀순하였다. 그 뒤 전호(田虎)와의 전투에서 교도청(喬道淸)의 환술로 인해 붙잡혔으나 공손승(公孫勝)의 도움으로 구출되었으며 방납(方臘)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적(功績)을 노리고 가장 먼저 성내로 진입하다가 적군의 함정(陷穽)에 걸려 성문에 깔러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