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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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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속성(天速星)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

[圖片信息  천속성(天速星)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 


천속성(天速星)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은 중국 소설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인물로 강주부(江州府)의 감옥(監獄) 간수(看守)였다가 양산박의 두령이 되었다. 양 다리에 부적(甲馬)를 붙이고 신행법(神行法)을 쓰면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도술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별명이 신행태보(神行太保)이며 대종님 축지법(縮地法)을 잘 쓴다. 

강주부(江州府)로 귀양 온 송강(宋江)에게 상납금(上納金)을 안 바친다고 심술을 부렸으나 강호(江湖)에서 명성이 자자한 송강이란 것을 알자 그만 죽어서 바로 형님 대접을 한다. 원래 오용(吳用)과는 아는 사이여서 송강이 귀양 갈 때 대종(戴宗)을 만나보라고 귀띔해줬다. 

강주부(江州府)에서 수하로 부리던 거친 사내 이규(李逵)를 막 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대종(戴宗)의 특기 때문에 전령(傳令)이나 탐색(探索) 등 역할을 많이 맡는데 이때 난장세상 구경하고 싶은 이규도 동행(同行)하겠다고 떼를 썼기 때문에 종종 함께 행동한다. 

한번은 이규(李逵)에게 갑마(甲馬)를 주면서 '도술의 비결은 채식(菜食)에 있으니 절대로 고기를 먹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당연히 이규는 씹었고 덕분에 광란(狂亂)의 질주를 벌였다. 사실 채식 운운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고 이규가 빌자 술법(術法)을 풀어줬다. 대종(戴宗)이 맡는 임무들은 하나같이 기밀과 정숙(正肅)을 요하는데 개망나니 이규가 겁 없이 나대다가 일을 망칠까봐 군기(軍紀)를 잡은 것 계획대로다. 

도술(道術)에 있어서 개성적 존재인 공손승(公孫勝)과 달리 사실 대종은 신행법(神行法)만 능했지 다른 도술은 능한 말이 없다. 또한 사실 신행법도 완벽한 편도 아니라서 전호전(田虎戰)에서 역적 전호의 부하 마령에게 달리기로 한번 발린 적이 있다. 마령이 노지심(魯智深)에게 잡히고 양산박을 잠시 도울 때 마령에게 도술을 배워 신행법을 새로 익힌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후에는 벼슬을 받았으나 송강과 만나 이야기 하다가 송강에게 자신은 벼슬을 반납(返納)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송강(宋江)이 이유를 묻자 꿈속에서 최판관(冥府使者)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종(戴宗)은 벼슬을 반납하고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다가 수호후전에서 채경(蔡京)의 편지를 전하다가 옛 동료들과 다시 뭉친다. 

대종(戴宗)은 강주(江州)의 옥리(獄吏)이며 부적으로 하루에 800 리를 갈 수 있는 도술을 구사하여 신행태보(神行太保)라 불린다. 감옥장(監獄長) 출신이기 때문에 대원장(大院長-원장은 강남 지방에서 옥졸을 부르는 명칭)이라고도 불린다. 수하로 이규(李逵)와 함께 죄인들을 관리하였고 태사 채경(蔡京)의 아들인 강주 태수 채득장(蔡得章)의 파발꾼 역할을 하였다. 

송강(宋江)이 염파석(閻婆惜)을 죽이고 강주(江州)로 유배되자 대종(戴宗)은 송강을 알아보지 못하고 몽둥이를 들어 뇌물(賂物)을 요구한다. 송강은 대종의 친구인 오용(吳用)의 편지를 대종에게 보이자 곧바로 송강을 환대하였고 이규(李逵)를 소개하였다. 대종의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송강은 아무 탈 없이 유배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강주(江州)의 유명한 주점인 심양루(潯陽樓)에 오른 송강(宋江)은 술에 취하여 벽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恨歎)하는 시를 썼다. 이를 무위군(無爲軍)에 살던 황문병(黃文炳)이 발견하고 곧바로 채득장(蔡得章)에게 송강이 모반시를 썼다는 누명을 씌웠다. 대종은 송강이 결백함을 채득장에게 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송강에 대한 판결(判決)을 묻는 편지를 아버지인 채경(蔡京)에게 보내게 하였다. 

대종(戴宗)은 신행법(神行法)으로 동경(東京)으로 가던 중 주귀(朱貴)의 주막에 들렀다. 몽혼약(朦昏藥)에 취하여 물품이 털린 대종은 곧 조개(晁蓋)와 오용을 만나 송강의 위기를 알리게 된다. 오용(吳用)은 송강을 구하기 위해 소양(蕭讓)에게 거짓 편지를 김대견(金大堅)에게 가짜 도장을 만들도록 하였다. 가짜 편지를 가지고 강주에 도착한 대종은 채득장이 속기를 기다렸으나 황문병(黃文炳)이 이를 알아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공적인 일에 사용되는 도장(圖章)을 찍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오용도 뒤늦게 알아채어 조개와 호걸들이 강주로 출병을 개시하게 되었다. 

거짓 편지로 인해 대종(戴宗)까지도 사형(死刑)에 처할 위기에 처했다. 바로 처형되는 날 양산박 호걸과 쌍도끼를 든 이규(李逵)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 탈출에 성공한 송강(宋江)은 황문병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무위군(無爲軍)을 공격하였고 게양진(揭陽鎭)의 이준(李俊)과 호걸들에 의해 황문병(黃文炳)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황문병은 이규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대종(戴宗)은 양산박에 합류하여 정보 수집 및 전령 임무를 맡았다. 음마천(飮馬川)의 호걸들과 석수(石秀), 양웅(楊雄), 시천(時遷) 등 여러 호걸들이 양산박에 합류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냈다. 전호 토벌 당시 하루 1000 리를 달리는 마령이 사로잡힌 후 투항하자 그에게 술법을 배웠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후 무절장군(武節將軍)으로 천거되었으며 연주(兗州)의 사령관(司令官)으로 발령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태산(泰山)으로 출가하였다. 몇 달 뒤 대종(戴宗)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열린 연회 도중 자신의 수명(壽命)이 다했음을 깨닫고는 웃으며 최후를 맞이했다.  

대종(戴宗)은 수호지에서 '모습'보다 '이름'이 먼저 나온다. 바로 양산박의 군사 오학구(吳學究)가 송강(宋江)에게 대종의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오학구는 당시 대종을 "강주(江州)의 대원장(戴院長)"이라고 소개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금릉일대에서는 '절급(節級)'을 가장이라고 불렀고 호남 일대에서는 원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강주는 호남(湖南) 일대에 있는 지역이었고 대씨 성을 가진 원장이라 하여 대원장이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좀 허망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종(戴宗)이 별거 아닌 인물은 아니다. 수호지 초중반부에 등장해서 송강(宋江)과 함께 양산박에 들어가며 그 후로도 양산박에서 꾸준히 활약을 하는 인물이니 말이다. 강주의 대원장(戴院長)인 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대종(戴宗)은 봉술(棒術)에 능했다고 하지만 사실 양산박 108호걸 중 봉술에 능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니 굳이 내세울만한 일이 못된다. 하지만 대종은 그만의 독특한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선행법이다. 신행법(神行法)은 일종의 도술로써 다리에 갑마(甲馬)라는 부적을 붙이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부적을 두 장 붙이면 하루에 오백 리를 달리고 넉 장을 붙이면 하루에 팔백  리를 달렸다고 하니 부적은 2배인데 거리는 2배가 아니다. 정말인지 속도(速度) 하나로는 양산박에서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양산박(梁山泊) 외에 다른 인물 중에서 대종(戴宗)을 따를 자가 딱 한명 수호지에 등장한다. 바로 전호(田虎) 토벌전에서 적군으로 등장하는 '마령'이라는 인물인데 그 또 한 대종과 마찬가지로 신행법(神行法)을 사용하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마령은 대종(戴宗)보다 한 수 재간이 더 뛰어났던 건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었다고 하니 대종이 아무리 죽어라 추격(追擊)해 봐도 사로잡질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마령도 노지심(魯智深)의 석장에 대갈통이 깨져서 사로잡힌다. 사로잡힌 마령은 항복(降伏)해서 잠시나마 양산박을 돕게 되고 그 때 마령에게 한 수 배운 대종은 신행법(神行法)을 새롭게 배워 자신도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게 된다. 

대종(戴宗)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108성 중 20위이자 천강성(天罡星)의 천속성(天速星)에 해당한다. 신행법(神行法)이라는 도술(道術)을 써 하루에 800 리를 간다 하여 신행태보(神行太保)라는 별호로 불리며 본래는 도사(道士)였다. 

강주(江州)의 옥리(獄吏)이며 수하에 있는 이규(李逵)와 함께 죄인들을 다스렸다. 또한 하루에 800 리를 갈 수 있는 신행법(神行法)이라는 도술(道術)을 사용하며 채경(蔡京)의 아들인 채득장(蔡得章)의 파발꾼 역할을 맡기도 했다. 

어느 날 인망이 높기로 유명한 송강(宋江)이 강주로 유배를 오면서 친한 친구인 오용(吳用)의 편지를 갖고 오자 대종(戴宗)은 송강을 환대하고 친하게 지냈지만 이후 송강은 황문병(黃文炳)에 의해 모반을 하려 했다는 누명(陋名)을 쓰고 사형수를 가두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송강이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대종은 채득장(蔡得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채득장에게 송강에 대한 판결(判決)을 묻는 편지를 채경(蔡京)에게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뒤 대종은 신행법(神行法)을 써 동경(東京)으로 가던 도중 우연히 양산박(梁山泊)에 들러 두령인 조개(晁蓋)와 오용을 만났으며 오용은 송강을 동경(東京)으로 호송하라는 내용의 가짜 편지를 써 송강을 호송하는 부대가 양산박(梁山泊) 근처에 오면 송강을 구하자는 계획을 구상했다. 대종은 가짜 편지를 들고 강주로 가 채득장에게 전했으며 채득장은 편지를 읽고는 송강을 동경으로 호송(護送)하려 했으나 황문병이 가짜 편지임을 간파(看破)해 대종 또한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이후 송강과 대종의 처형 당일 이규와 양산박 산적(山賊)들의 도움으로 송강과 대종은 풀려났으며 대종(戴宗)은 양산박 산적들과 함께 양산박으로 대피해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그 뒤 대종(戴宗)은 자신의 장기인 신행법(神行法)을 이용해 다방면에서 활약했으며 정보 수집·전령·첩보 공작·포로 구출·실종자 및 인재 수색 등을 담당했다. 특히 양림(楊林)·배선(裴宣)·등비(鄧飛)·맹강(孟康)이 양산박에 합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석수(石秀)·양웅(楊雄)·시천(時遷)이 양산박의 일원이 되는 일에 기여(寄與)하였다. 

양산박 두령 108성 집결(集結) 이후에도 계속 정보 수집 등을 담당했으며 방랍(方臘)의 난을 평정한 뒤 양산박 군이 해산한 이후에는 무절장군(武節將軍)에 천거되었다. 그리고 연주(兗州)의 사령관(司令官)으로 발령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태산(泰山)으로 출가하였다. 몇 달 뒤 대종(戴宗)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열린 연회(宴會) 도중 자신의 수명(壽命)이 다했음을 깨닫고는 웃으면서 편히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도 꿈속의 휘종(徽宗)을 양산박으로 이끄는 역할을 수행(遂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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