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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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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패성(天敗星) 활염라(活閻羅) 완소칠(阮小七)

[圖片信息  천패성(天敗星) 활염라(活閻羅) 완소칠(阮小七)] 


천패성(天敗星) 활염라(活閻羅) 완소칠(阮小七)의 별호는 활염라(活閻羅)이며 천패성(天敗星)에 상응한다. 

제주(濟州) 석갈촌(石碣村)에서 두 형 완소이(阮小二), 완소오(阮小五)와 함께 고기잡이와 장사를 하고 있던 중 오용(吳用)이 생신강(生辰綱) 강탈 작전에 그들을 끌어들이니 망설임 없이 응하였다. 하도(何濤)가 군사를 이끌고 오자 조개(晁蓋), 공손승(公孫勝), 두 형과 함께 쳐부순 뒤 양산박(梁山泊)으로 들어갔다. 
  
물질에 능해 양산박에서 수군두령(水軍頭領)으로 활약하였으며 방납 토벌(方臘討伐)에서 방원동 대궐(大闕)을 칠 때 장난삼아 방납(方臘)의 평천관(平天冠)을 쓰고 곤룡포(衮龍袍)를 입은 뒤 장난을 치다 조정(朝廷)에서 내려온 장수 왕품(王稟)과 조담(趙譚)과 시비가 붙게 되었다. 방납 토벌 후 개천군 도통제(都統制)에 제수되었으나 왕품과 조담이 예전에 그에게 품은 한을 잊지 않고 동추밀(童樞密)에게 고자질하여 채태사(蔡太師)를 거쳐 천자에게 상주됨으로써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양산박 석갈촌(石碣村)으로 돌아가 고기잡이로 어머니를 봉양(奉養)하다가 나이 예순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천강성(天罡星) 36두령 중 하나이며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 완소이, 완소오, 완소칠) 중 막내이다. 별호(別號)는 활염라(活閻羅)인데 살아있는 염라대왕(閻羅大王)이라는 뜻이다. 두 형과 함께 양산박의 수군으로 활약한다. 막내라서 그런지 호방(豪放)하며 치기어린 행동을 몇 번 저지른 재미있는 두령이다. 

첫 번째는 황제(皇帝)가 양산박을 회유(懷柔)하기 위해 칙사(勅使)를 보냈는데 이 때 황제가 하사한 어주(御酒)의 맛이 궁금해 어주의 운반 도중 자기 몫만 먹겠다고 마신 것이 점점 쌓이면서 결국 어주 전부를 다 마셔버린 것이다. 이후 다른 두령 몫까지 빼 먹은 게 미안했는지 어주 대신 술병에 시골 싸구려 탁주(濁酒)로 바꿔치기를 한다. 

도착한 칙사(勅使)가 거만한데다 들고 온 칙령(勅令)이 양산박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칙령이라 화가 나는 참에 황제가 하사한 어주(御酒)가 시골 탁주(濁酒)인 것을 보고는 양산박의 두령들은 완전 꼭지가 돌아버려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완소칠(阮小七)의 장난이 동관(童貫)과 고구(高俅)의 양산박 토벌(討伐)을 초래한 것이다. 뭐 이를 통해 양산박이 관군에게 제대로 실력행사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방납 토벌(方臘討伐) 막바지에 방납의 궁궐로 쳐들어가 방납의 면류관(冕旒冠)과 곤룡포(衮龍袍)를 입고 장난하며 돌아다닌 것이다. 하필 동관의 부하 장수인 왕품(王稟)과 조담(趙譚)이 이 장면을 목격(目擊)하고 완소칠(阮小七)을 역적이라고 욕하자 이에 욱한 완소칠이 그들을 패버리려다 송강(宋江)의 질책을 받고 물러섰다. 결국 이 일이 화근(禍根)이 되어 완소칠은 귀환 후 개천군 도통제(都統制)가 된지 얼마 안 되어 그 동안의 공적과 상관없이 파면된다. 이후 받은 하사금(下賜金)과 모은 돈을 가지고 석갈촌(石碣村)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편안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수호후전(水滸後傳)에서는 원작의 결말과 달리 스토리 전체의 첫 머리를 장식한다. 도통제(都統制)에서 파면된 뒤 석갈촌(石碣村)에서 형들의 장례를 치루고 어머니를 모시면서 어부 생활을 하던 완소칠(阮小七)은 폐허(廢墟)가 된 양산박 옛터에 들러 지난날을 회상(回想)하며 친한 어부들이랑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때 지난날 칙사(勅使)로 왔던 장 간판이 양산박에 나타났다. 장 간판은 양산박(梁山泊)에 남겨진 보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이때 완소칠(阮小七)이 보이자 예전의 원한(怨恨)도 있고 도적질을 한다는 모함(謀陷)을 하고 그를 체포(逮捕)하려고 했다. 분노한 완소칠은 몽둥이 하나로 수십 관병들을 패주어 장 간판이 도망가게 만들었다. 다음 날 태연히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이틀 후에 이들이 그를 죽이러 밤에 찾아오자 검을 빼들어 무쌍을 전개한 다음 장 간판을 죽였다. 그 다음 노획(鹵獲)한 말에다 어머니를 모시고 등운산으로 떠났다.  

등운산(騰雲山)으로 가던 중 완소칠(阮小七)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머니가 사라져버리자 어머니를 찾다가 만난 사내에게 다짜고짜 어머니를 내놓으라고 잠깐 횡포(橫暴)를 부린다. 그 뒤 사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그 사내는 완소칠이 양산박 사람이라고 하자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가 어찌되었느냐 축가장(祝家莊)과 싸움에서 일장청(一丈靑) 호삼랑(扈三娘)이 양산박에 끌려간 뒤 어찌되었는지 묻자 사내에게 이규는 죽었고 호삼랑은 양산박에 끌려간 뒤 왜각호(矮脚虎) 왕영(王英)과 결혼하고 양산박의 두령으로 있다가 방납(方臘)의 난 때 남편인 왕영과 함께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 사내는 호삼랑의 죽음을 슬퍼했으니 그는 바로 호삼랑의 오라버니인 비천호(飛天虎) 호성(扈成)이었다. 호성은 이규가 호가장(扈家莊)을 박살낸 뒤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쩌다가 꽤 많은 재물(財物)을 모았는데 어느 부호의 무리에게 재물을 뺏기고 갈 곳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완소칠(阮小七)은 뒤늦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일단 주막에서 술이나 마시자고 그와 함께 주막으로 간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한 주막은 손신(孫新), 고대수(顧大嫂) 부부가 운영하던 주막(酒幕)이었다. 고대수를 만난 완소칠(阮小七)은 호성(扈成)을 소개해 주고 호성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고대수는 호성에게 그 부자의 생김새를 자세히 묻더니 등주(藤州)의 부호인 모홀의 짓이라고 말하며 남편인 손신(孫新)과 추윤(鄒閏)에게 말해 모홀을 친다. 그 뒤 난정옥이 등운산(騰雲山)을 치러오자 삼지창을 들고 손립(孫立)과 함께 맞서 싸운다. 그러다 호성(扈成)이 난정옥(欄廷玉)을 설득시켜 난정옥이 등운산 산채에 합류한 뒤에는 손립이 자신은 지살성이니 천강성인 완소칠이 2인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자신은 그 자리에 있을 그릇이 못 된다며 손립을 2인자에 앉히고 호성을 3인자에 앉히려 하다가 다른 호걸들의 설득으로 3인자가 되었다. 그 뒤 등운산에서 재물(財物)을 실은 수레가 지나가자 완소칠(阮小七)이 부하들을 이끌고 재물을 털려고 했는데 그 재물을 운반하던 책임자가 바로 귀검아(鬼臉兒) 두흥(杜興)이었다. 두흥을 알아본 완소칠은 그를 등운산 산채로 데리고 간다. 두흥은 손립의 부탁으로 악화(燕靑)에게 편지를 전해주기로 한다. 이후 이준(李俊)을 도와 섬라국의 신하가 된다.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들이 다 그렇지만 한량기질(閑良氣質)이 있으며 막내라 그런지 더더욱 장난기가 다분하고 명량(明亮)한 듯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지 완씨 삼형제 중에서 개성(個性)이 있는 편이다. 

완소칠(阮小七)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108성 중 31위이자 천강성(天罡星)의 천패성(天敗星)에 해당한다. 난폭(亂暴)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했으며 '살아 있는 염라대왕(閻魔大王)'이라는 의미의 활염라(活閻羅)라는 별호로 불린다. 완소이(阮小二) · 완소오(阮小五)와 형제 관계이며, 완씨 삼형제 중 막내이다. 

양산박(梁山泊) 인근에 있는 석갈촌(石碣村)에 거주하는 완씨 집안의 삼남(三男)으로 태어났으며 형제들과 함께 어부(漁夫)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관리들의 가혹한 세금 징수(稅金徵收)와 양산박의 산적들로 인해 생활고(生活苦)를 겪었고 착실하게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암시장(暗市場)에도 손을 대는 등 생계(生計)를 위해 불법적(不法的)인 일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평소에 자신들이 신세를 지고 있던 오용(吳用)이 찾아왔으며 완씨 심형제는 자신들의 삶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들의 솜씨를 발휘할 만한 방법이 없다고 한탄하였다. 이 때 오용은 완씨 심형제에게 자신과 친분이 있는 조개(晁蓋)가 유당(劉唐)과 함께 북경(北京)의 유수사(留守使)인 양세걸(梁世傑)이 자신의 장인인 채경(蔡京)의 생일 선물로 보내는 생신강(生辰綱)을 강탈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니 함께 협력해달라고 부탁하였고, 평소에 자신들이 모시고 싶어 했던 조개와 함께 하기를 원했던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기꺼이 수락했다. 

이후에 합류한 공손승(公孫勝)까지 총 7명으로 생신강 강탈(生辰綱强奪)을 계획했으며 이들이 함께 계략을 꾸며 생신강 탈취((生辰綱奪取))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 관군의 추격을 피해 양산박에 몸을 의지하려는 조개(晁蓋)를 따하 함께 양산박으로 갔으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양산박의 두령인 왕륜(王倫)이 자신의 지위 보전(保全)을 위해 조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임충(林冲)이 왕륜을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임충이 왕륜을 살해한 뒤 조개를 새로운 두령으로 삼자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 또한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그 직후 조개 일행을 공격하기 위해 제주(濟州)의 관리 하도(何濤)가 관군을 이끌고 양산박으로 왔으며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어부로서의 경험과 양산박의 지형을 이용한 수상전을 펼쳐 이들을 전멸시켰다. 

그 뒤 완씨 삼형제는 양산박의 수군(水軍)을 이끌었으며 능진(凌振)이 이끄는 포병 부대를 전멸(全滅)시키는 등의 활약을 했다. 이후 관승(關勝)과의 싸움에서 장횡(張橫)이 붙잡히자 장순(張順)의 만류를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관승을 공격했으나 오히려 완소칠이 사로잡혔고 이후 양산박 동료들의 활약으로 완소칠은 구출(救出)되었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수군 두령(頭領)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관군과의 계속된 전투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 조정에서 양산박의 귀순을 권하자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결국 양산박은 조정에 귀순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의 활약은 계속되었지만 계속적으로 송강(宋江)에게 조정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등 조정에 대한 불신감(不信感)을 드러내었다. 

이후 방납(方臘)의 난을 진압(鎭壓)하는 과정에서 강남(江南)이 하천이 많은 지형이라는 점을 이용해 활약했으며 자신의 첫째 형 완소이(阮小二)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 뒤 다른 수군 두령들과 함께 적에게 거짓 항복을 한 뒤 적의 내부에서 적을 공격해 청계(靑溪)를 함락시키는 데 공헌했으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둘째 형 완소오(阮小五)가 사망했다. 방납의 난을 평정한 뒤 완소칠(阮小七)은 방납의 곤룡포(袞龍袍)를 뒤집어 쓴 채 방납의 흉내를 내며 진내를 누볐고 이를 조정에서 파견되어 온 신하들이 반역자(叛逆者)의 흉내를 내고 천자(天子)를 참칭(僭稱)한다며 못마땅해 하자 완소칠은 그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결과 완소칠(阮小七)은 자신에게 주어진 관직을 박탈(剝奪)당했다. 

원소칠(阮小七)은 제수 받은 벼슬자리로 부임(赴任)했으나 강남의 방원동 궁궐에서 방납의 황포(黃袍)를 입고 방납의 흉내를 내다가 송군(宋君)의 장수 왕품(王稟), 조담(趙譚)과 다툰 적이 있어서 그들이 앙심(怏心)을 품고 간신들을 통해 황제에게 상주(上奏)하니 벼슬에서 해임되어 서민(庶民)이 되었다. 원소칠(阮小七)은 오히려 이를 기뻐하면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양산박의 석갈촌(石碣村)으로 돌아가서 고기잡이로 어머니를 봉양(奉養)하다가 60세에 세상을 떴다. 

수호전(水滸傳)은 난세의 참혹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서술해 놓은 비극(悲劇)이다. 원한이 맺힌 자의 인육(人肉)을 먹거나 주막에서 길손들을 몽혼약(曚昏藥)으로 실신시켜서 도살(屠殺)하여 요리해서 돼지고기로 속여 파는 장청(張靑)과 손이랑(孫二娘) 부부의 일화라든지 주동(朱仝)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기 위해 죄수가 된 주동이 돌보던 관리의 네 살이 된 아들을 이규(李逵)가 도끼로 머리를 빠개서 죽이는 등의 심하게 야만(野蠻)스럽고 무도한 일화는 실로 끔찍하고 혐오(嫌惡)스러운 것이었다.  

중국의 문학(文學)과 중국의 역사는 한국(韓國)과 연관성과 유사성(類似性)이 있지만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한국은 중국이라는 나라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사로잡혀 민족적 자존심(自尊心)과 국력이 약화되고 그 때문에 요(遼)나라, 원(元)나라, 청(淸)나라, 일본 등 다른 열강(列强)들에 의해 침탈(侵奪)과 수모를 겪고 국권(國權)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이런 와중에서 국운(國運)은 정부와 국민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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