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청나라 문학가 조설근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안았던 4대기서 ‘홍루몽’

图片信息 《红楼梦》 第一回 甄士隐梦幻识通灵 贾雨村风尘怀闺


중국의 4대 기서(四大奇書)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수호전(水滸傳)''서유기(西遊記)''금병매(金甁梅)'를 꼽지만 '홍루몽(紅樓夢)'의 문학성을 이들보다 훨씬 높게 치는 게 일반적이다. 청 건륭제(乾隆帝)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장편소설 '홍루몽'은 원제가 '석두기(石頭記)'이며 '금옥연(金玉緣)''풍월보감(風月寶鑑)''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등의 별칭이 있다. 80회본의 판본(板本)은 조설근(曹雪芹)의 원작으로 필사본(筆寫本)이며 고악(高鶚)이 40회를 덧붙여 1791년 120회본을 내놓은 판본을 정갑본(程甲本)이라 한다.

금릉(남경)에 있는 가(賈)씨 집안을 무대로 500여 명의 등장인물(登場人物)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인물에 대한 세밀한 성격 묘사(性格描寫)와 시대의 오탁(汚濁)을 극명하게 부각시켜 중국 전통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숱한 평론이 쏟아져 '홍루몽(紅樓夢)' 연구를 '홍학(紅學)'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다.

당시 사람들이 “‘홍루몽(紅樓夢)’이 나오자마자 ‘삼국지(三國志)’의 인기를 뛰어넘어 집집마다 이 책을 사들여 놓고 읽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을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홍루몽’은 이를 반영하듯 ‘석두기(石頭記)’, ‘금옥연(金玉緣)’,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 ‘정승록(情僧錄)’, ‘풍월보감(風月寶鑑)’ 등 다양한 제목으로 불렸다. 남 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을 중심으로 임대옥(林黛玉)과 설보채(薛寶釵)라는 세 젊은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과 슬픈 이별의 이야기, 그리고 젊은 아씨마님 왕희봉(王熙鳳)의 전횡을 중심으로 하는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80회본과 120회본이 전할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이 책은 젊은 주인공(主人公)들의 사랑과 이별을 중심으로 4회의 이야기를 정선하고 상세한 해설을 곁들였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홍루몽’
저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후스(胡適)에 의해 조설근(曹雪芹)의 창작으로 정리되었다. 조씨 가문이 청나라 황실의 비호를 받기도 했으며 가문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의 내용이 작자의 자전적 내용이라는 평가다. 500명이 넘는 등장인물(登場人物)과 그들의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드러나는 인생의 깨달음은 ‘홍루몽(紅樓夢)’의 매력이다. 120회본이 복간(復刊)된 이래 30종 이상의 속작(續作)이 나왔을 정도로 두루 읽혔던 이 소설은 작품에 대한 평론도 속출(續出)하여 ‘홍학(紅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치밀한 구성으로 재미를 더하는 소설
‘홍루몽(紅樓夢)’은 전후 대칭형(對稱形)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회와 제120회는 처음과 끝부분의 포장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진사은(甄士隱)과 가우촌(賈雨村)을 등장시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인생사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이들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제2회에서 가보옥(賈寶玉)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부의 상세한 소개, 제3회에서 임대옥(林黛玉)의 상경, 제4회에서 설보채(薛寶釵)의 상경, 제5회에서 가보옥(賈寶玉)의 태허환경 유람(太虛幻境遊覽) 등으로 방대한 이 소설의 전반적 기반(基盤)을 조성하고 있다. 제116회에서 다시 가보옥(賈寶玉)이 태허환경(太虛幻境)을 찾아가 깨달음의 기회로 삼는 일이나 제119회에 보옥(寶玉)이 과거 시험을 치르고 스스로 실종(失踪)되어 출가하는 대목이 전반적으로 명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체의 구성을 살피기에는 부족하지만 중국 대표 소설 ‘홍루몽’의 진면목(眞面目)을 맛볼 수 있으며 작품을 이해하는 데 기초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홍루몽’의 작자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은 중국 청나라 사람으로 남경의 강녕직조(江寧織造)에서 귀공자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모가 강희제의 유모였으므로 가문은 3대째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고 있었다. 그의 조부 조인(曹寅)은 남경(南京)의 문화계 인물로 폭넓은 교유 활동을 펼치고 있었고 시사와 희곡 등에 정통해 강희제(姜熙帝)의 칙명에 따라 양주에서 ‘전당시(全唐詩)’를 간행하기도 했다. 옹정제(雍正帝) 즉위 이후 백년영화를 누리던 조씨 가문은 마침내 몰락해 북경(北京)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조설근(曹雪芹)은 어린 시절 잠시 가문의 문화 전통을 맛보았지만 집안이 몰락(沒落)하자 커다란 충격에 빠져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중년 이후 북경 교외 향산(香山) 아래로 옮겨 빈궁한 속에서도 시와 그림을 즐기며 필생의 역작 ‘홍루몽(紅樓夢)’을 창작했다. 그의 생전에 ‘석두기(石頭記)’ 필사본 80회가 전해졌으며 그의 사후에 고악(高鹗)이 이를 수정 보완했고 정위원(程偉元)이 ‘홍루몽’ 120회본을 간행했다.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가문을 모델로 당시 귀족 집안의 파란만장한 인간사를 그리고 있으며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설보채(薛寶釵) 등의 청춘 남녀의 사랑과 슬픔을 핍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의 대관원은 지상낙원(地上樂園)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나 하나같이 불행해지는 젊은 여성들의 비참한 운명 앞에 무기력한 로맨티시스트 가보옥(賈寶玉)은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근대 이후 중국의 지성인들은 ‘홍루몽’의 사상과 예술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다양한 논쟁(論爭)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이 소설은 중국의 전통문화를 폭넓게 담고 있는 백과사전(百科事典으로 인식되어 오늘날 다양하게 펼쳐지는 홍루 문화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일명 ‘석두기(石頭記)’ 혹은 ‘금옥연(金玉緣)’으로 불리는 ‘홍루몽’은 다른 백화소설처럼 작자에 대해 분분하지만 아직도 정설이 없고 다만 조설근(曹雪芹)이 산개(刪改)한 것만은 분명하거니와 그 장회에 대하여도 분분하여 본래 있던 80회본에 고악(高鶚)이 40회를 가하여 120회본으로 되었다고 하나 믿을 수 없는 것은 120회 전편의 필치가 같다는 점에서이다. 전편이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의 연애를 배경으로 한 대가정의 흥성(興盛)에서 몰락(沒落)까지를 그려 인생의 무상을 묘파(描破)한 이 소설은 그 스토리의 배경에 대해서도 각종 사실(史實)의 소설화라고 가정하는데 중국 최고의 비극소설임에 틀림없다. 그 원본이 워낙 애독되어 귀서자(歸鋤子)의 ‘홍루몽보(紅樓夢補)’, 조자근(曹子芹)의 ‘후홍루몽(後紅樓夢)’, 진자침(秦子忱)의 ‘속홍루몽(續紅樓夢)’, 난고주인(蘭皐主人)의 ‘기루중몽(綺樓重夢)’ 등 속서들이 나왔으나 원본과는 비할 수 없이 졸렬한 것이다.

대관원은 어디인가?
대관원(大觀園)은 존재하지 않는 미궁(迷宮)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넓은 지역에 궁전 같은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곳곳에 회랑과 정자, 가산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시내가 휘돌아 지나가고 있지만 소설 속 공간은 그림에서 보듯 시각적으로 명확(明確)하지 않다. 때문에 대관원(大觀園)의 평면도(平面圖)나 전면도(全面圖)를 그린 것을 보면 사람마다 다르게 그렸다. 예컨대 소설을 보면 A 건물 오른쪽에 B가 있고, B 건물 북쪽에 C가 있고, C 건물 왼쪽에 D가 있다면, 당연히 A 건물 북쪽에 D가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대목에서 같은 건물을 묘사할 때는 또 다른 구조(構造)로 묘사된다. 건물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공간을 부유(浮遊)하고 차원 속을 넘나든다. 때문에 평면도와 마찬가지로 북경이든 상해든 어디에 있든 현실 속의 대관원(大觀園)은 소설 속 대관원이 아니다.

소설 속 대관원은 영국부(榮國府)의 후원을 중심으로 하고 녕국부(寧國府)에서 회방원(會芳園)을 떼어와 만든 가원춘(賈元春)이 성친 올 때 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형 정원이다. ‘3리 반’이라는 길이는 녕국부(寧國府)의 동쪽면과 북쪽면을 합한 길이가 될 것이다. 이로부터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만 확실한 면적은 파악하기 힘들다. 회방원(會芳園)에서 흘러들어오는 시내(活水)는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보인다. 하단 중앙에 보이는 것이 정문이고 중앙의 주황색 건물이 주건물인 대관루(大觀樓)일 것이다. 가보옥(賈寶玉)이 처음 아버지 가정(賈政)을 따라 정원을 구경하면서 대관루(大觀園)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기시감에 가슴이 떨린다. 그래서 건물 앞에 선 패방에 ‘천선보경’(天仙寶鏡)이란 제액을 쓰고자 했는데 이는 그가 꿈에서 보았던 ‘태허환경’(太虛幻境)의 패방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관원(大觀園)은 지상의 태허환경이라는 비유이다. 그러나 이곳이 지상임을 환기시키기 위해 가보옥(賈寶玉)의 누나 가원춘(賈元春)은 이를 ‘성친별서’(省親別墅)라 고친다. 정원은 이상이자 현실이었다.

지금 화책의 그림엔 사람이 없다. 대관원(大觀園)이 막 조성된 다음날의 모습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이 떠나고 안개처럼 흩어진 다음일까? 정원은 비어있다. 욕망(慾望)을 투사할 무대인가 아니면 욕망은 그처럼 비어있다는 것인가. 1817년 ‘치인설몽(痴人說夢)’ 속의 대관원(大觀園)도 이래 사람들은 평면도를 그리거나 사진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림 가운데는 사람이 없이 텅 비어 있지는 경우도 있지만 ‘금옥연(金玉緣)’의 대관원도(大觀園圖)엔 청대 궁중화처럼 나긋나긋한 여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정원은 꿈이자 욕망이었다.

청나라 문학가 조설근
조설근(曹雪芹) 이름은 점(霑), 자는 몽원(夢阮)이고 근포(芹圃), 설근(雪芹), 근계(芹溪) 등 호(號)를 가지고 있다. 그의 선조는 한족(漢族)이었으나 청 왕조시기 그의 가문은 귀족세가(貴族世家)로 되였다. 그의 증조부로 부터 부친 항렬에 이르는 3대에 거쳐 세습적인 강녕직조(江寧織造)를 지내면서 조정에서 각종 직물의 직조, 구입, 공급 등 일을 맡아보았다.

조설근(曹雪芹)의 조부 조인은 시, 사, 희곡에도 능한 명사(名士)였는데 이는 조설근(曹雪芹)의 문학수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설근(曹雪芹)의 부친 대에 이르러 부친이 파직(罷職)당하고 가산도 몰수당해 그의 가문은 파멸(破滅)의 일로를 걷게 되였다. 조설근(曹雪芹)은 13살까지 호의호식하면서 나날을 보냈지만 13살 후부터는 죽이나 겨우 먹는 가난한 신세가 되였다. 귀족가문이 극성하던 데로부터 쇠퇴(衰退)에 이르는 거대한 변화와 직접 겪은 빈곤한 생활은 조설근(曹雪芹)의 사상 감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조설근(曹雪芹)이 "홍루몽(紅樓夢)"을 창작하는데 심각하고 풍부한 생활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홍루몽"은 조설근(曹雪芹)이 곤궁에 빠졌던 만년에 쓴 것이다. 그는 "홍루몽(紅樓夢)" 제1회에서 "글자마다 피니 10년의 고생은 예사롭지 않았다."고 썼다. 생활이 어려운데다가 단 하나밖에 없던 어린 자식마저 요절하자 조설근(曹雪芹)은 고통이 병이 되여 "홍루몽"을 80회까지밖에 쓰지 못하고 50세도 못되어 생을 마감했다.

조설근(曹雪芹)은 "홍루몽" 책이름을 처음에는 석두기(石頭記)라 하였고 80회밖에 쓰지 못했다. 1791년 정위원(程偉元)과 고악(高鶚)이 쓴 40회까지 합쳐 120회본을 처음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으면서 책 이름을 "홍루몽(紅樓夢)"이라 고쳤다.

홍루몽(紅樓夢)은 백과전서식의 소설이다. 책에 나타난 인물들로는 황제의 측근과 나라의 친척으로부터 귀족관료, 여종과 사동, 승려와 상인, 농민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 중국사회의 각 계층을 거의 망라(網羅)하였다. 소설이 묘사한 범위를 보면 상층사회의 예의와 교제, 관혼상제(冠婚喪祭), 평민 백성들이 종사하는 일, 예컨대 건축, 나무, 화초 재배, 의학, 점치기, 예술 공연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홍루몽(紅樓夢)중의 인물 형상들은 아주 성공적으로 부각(浮刻)되었다. 홍루몽중의 인물은 700명이 넘는데 그중 전형적(典型的)인 인물이 백 명도 더 된다. 조설근(曹雪芹)은 여성, 특히는 청소년 여성의 미묘하고 복잡(複雜)하며 민감하고 변덕스러운 심리상태와 정감세계(情感世界)를 파헤치면서 그들의 염원과 기대, 특히는 사랑에 대한 그들의 갈망(渴望)을 잘 보여주었다.

"홍루몽" 가씨, 사씨, 왕씨, 설씨 4대 가정을 배경으로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의 애정비극을 주선으로 하여 가씨 가문이 흥성으로 부터 쇠망(衰亡)해 가는 과정을 통해 청 왕조가 흥성하던 데로부터 붕괴되어가는 필연적인 역사적 운명을 보여 주었다. 또한 "홍루몽(紅樓夢)" 통치계급 내부 즉 황실과 귀족, 관료들 사이의 모순과 귀족 가정 내부 모순이 바로 그들 자체를 쇠망에로 이끈 중요한 원인의 하나임을 까밝혔다.

"홍루몽" 사상성(思想性)이 높을뿐더러 탁월한 예술적 성과로 중국 고대 장편소설가운데서 사실주의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작품이다. "홍루몽" 예술적 성과는 우선 전형적인 인물형상을 부각한데 있다. 가보옥(賈寶玉), 임대옥(林黛玉), 설보채(薛寶釵), 왕희봉(王熙鳳) 등 인물형상은 널리 전해지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홍루몽" 언어는 세련되고 성격화(性格化)되었으며 표현력이 강하다. "홍루몽" 후세에 와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거작(巨作)으로 되였다.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