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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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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옥과 습인 사이를 질투하지 않은 임대옥은 시녀에 대한 위계질서 때문일까

图片信息 陈晓旭,林黛玉


가보옥(賈寶玉, 홍루몽의 남자주인공)은 여자아이들에 둘러싸여 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대관원(大觀園), 홍루몽의 배경이 된 집안에 있는 여자아이들은 모두 그와 매우 가깝게 지내는데 이 중에서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임누이(林妹妹) 임대옥(林黛玉)에 대한 태도는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같이 먹고 같이 자며 정의(情誼)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특이(特異)한 것은 두 사람의 성정(性情)이 아주 닮았다는 것이다. 임대옥(林黛玉)이 가부(賈府), 가씨 저택에 들어온 그 때부터 가보옥(賈寶玉)은 바로 이 누이(林黛玉)를 마치 이전에 본 것 같았다. 그들의 인연(因緣)은 한두 마디로 충분(充分)히 말할 수는 없을 정도이다.

임대옥(林黛玉)의 성격으로 인하여 생각이 많고 모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녀가 확신(確信)하지 못하는 것은 가보옥(賈寶玉)의 마음속에 그녀만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주 성질(性質)을 부려 가보옥(賈寶玉)을 상대하지 않곤 했다. 그런데 가보옥(賈寶玉)은 아무리 설명(說明)해도 상황을 납득(納得)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가장 뛰어나게 묘사(描寫)한 것은 보누나(寶姐姐) 설보채(薛寶釵)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임대옥(林黛玉)에게는 마음의 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성깔을 부리고 질투(嫉妬)하곤 했다. 설보채(薛寶釵) 외에 가모(賈母), 소설속의 가보옥(賈寶玉)의 할머니가 자주 가부로 데려오는 사상운(史湘雲)에 대하여도 질투(嫉妬)한다. 그저 보옥(寶玉)이 어떤 여자아이와 좀 가깝게 재내고 임대옥(林黛玉)이 그것을 보게 되면 마음속으로 화가 일어난다.

이런 것으로 따지자면 이홍원(怡紅園, 대관원(大觀園)내에 가보옥(賈寶玉)이 머무는 집) 내의 시비(侍婢)중 우두머리인 습인(襲人)은 가보옥(賈寶玉)과 관계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홍원(怡紅園)의 시비중 청문(晴雯)까지도 "난 정말 너희들이 뭔지 모르겠다. 나까지 너희들 때문에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너희들이 남들 몰래 하는 그 짓은 나를 속일 수 없다. 어디에서 '우리'라고 하느냐. 아씨들마저도 아직 얻지 못했는데 우리 같은 시녀(侍女)들이야. 어떻게 '우리'라고 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임대옥(林黛玉)의 예민(銳敏)함과 총명(聰明)함이라면 그녀도 일찌감치 알았을 것이다. 

가보옥과 습인(襲人)의 정분이 보통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런데도 임대옥(林黛玉)은 조금도 개의(介意)치 않았다. 심지어 그녀 자신도 가보옥(賈寶玉)과 습인(襲人) 두 사람을 놀리기까지 한다. "올케, 내가 말하는데 분명히 너희 둘이 말싸움 했을 거야. 누이에게 얘기해봐. 내가 화해(和解)하도록 말해 줄테니까." "너는 네가 시비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너를 올케로 대할 거야." 그렇다면 이런 것은 좀 통상적인 이치(理致)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왜 임대옥(林黛玉)은 습인(襲人)에 대하며만 질투(嫉妬)를 느끼지 않은 것일까?

전에 이렇게 설명(說明)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임대옥(林黛玉)의 뼛속에는 계급관념(階級觀念)이 박혀 있다고. 왜냐하면 습인(襲人)은 시녀이기 때문에 습인(襲人)이 가보옥(賈寶玉)과 어떻게 되더라도 주인과 시녀의 위계질서(位階秩序)를 벗어날 수 없으며 비록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장래(將來)에 그저 집안사람 즉 가보옥의 첩(妾)이 될 뿐이라고 보고 그래서 임대옥(林黛玉)은 기본적으로 습인(襲人)에 대하여는 질투심(嫉妬心)을 느끼지 않은 것이라고. 이 말에 숨은 뜻은 그녀는 그녀와 가보옥(賈寶玉)과의 결혼을 위협(威脅)할만한 사람에 대하여만 질투심(嫉妬心)을 느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가장 그녀가 주의해야할 대상(對象)은 바로 설보채(薛寶釵)였을 것이다. 

그저 보기에는 아주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정말 그랬을까 의심이 든다. 임대옥(林黛玉)을 질투를 그저 상대방이 가보옥(賈寶玉)의 부인이 되는데 위협(威脅)을 줄만한 사람에게만 느낀 것일까. 사실상 이것은 문제의 실질(實質)에서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이것은 아주 편면적인 곡해(曲解)이고 임대옥(林黛玉)의 진지(眞摯)한 감정을 모독(冒瀆)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임대옥(林黛玉)의 마음속에는 일찌감치 가보옥(賈寶玉)을 지기(知己)로 삼았다는 것을 이후의 나날에서 그녀는 항상 마음을 쓰고 모든 면에서 가보옥(賈寶玉)을 주의했다는 것을. 특히 보누나(薛寶釵)가 온 이후에 그녀는 더욱 가보옥(賈寶玉)과 설보채(薛寶釵)의 거동 하나 말 한 마디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조금만 그릇된 것이 보이면 말로써 표현하고 뱃속 가득히 불만을 가졌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임대옥(林黛玉)을 첨산각박(尖酸刻薄)한 사람이라고 설보채(薛寶釵)처럼 그렇게 활달대도(豁達大度)하지 못하다고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엇이 임대옥(林黛玉)으로 하여금 이렇게 마음 쓰게 하였는가?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누나(薛寶釵)가 오게 됨으로 인하여 모든 집안의 사람들이 다 그녀를 칭찬하고 품행이 방정(芳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두 임대옥(林黛玉)은 따라갈 수 없다고 하며 사람들에게도 아주 능란(能爛)하게 대한다. 임대옥(林黛玉)이 스스로 고고하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은 눈에 두지 않아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임대옥(林黛玉)으로 하여금 우울(憂鬱)하게 만들었고 가보옥(賈寶玉)도 두 여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가보옥(賈寶玉)은 원래 천성이 형제자매(兄弟姉妹)를 모두 하나로 대하고 가깝고 멀고 친하고 소원한 구별을 두지 않았다. 임대옥(林黛玉)은 가모와 함께 생활하므로 다른 자매들보다 더 익숙했고 이미 습관이 되어서 더 친숙해 진 것이다. 이제 설보채(薛寶釵)가 오니 품행이나 용모(容貌)가 뛰어나고 시사를 짓는데도 임대옥(林黛玉)과 막상막하이며 박학다식(博學多識)할 뿐 아니라 임대옥(林黛玉)이 가진 것은 다 가지고 있고 임대옥(林黛玉)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도 전혀 손색(遜色)이 없고 심지어 조금 나은 정도였다. 이런 뛰어난 여자 대가집 규수(閨秀)를 가보옥이 어찌 못 본 척 하겠는가? 

가보옥(賈寶玉)이 임대옥(林黛玉)을 좋아하는 것은 많은 부분은 두 사람의 취향이 맞았다는 것이다. 임대옥(林黛玉)은 독특한 재주가 있고 기질(氣質)이 독특하며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전혀 달랐었다. 이제 설보채(薛寶釵)가 오니 모든 측면에서 임대옥(林黛玉)과 비견할 만하고 뛰어났다. 임대옥(林黛玉)의 입장에서는 가보옥이 설보채(薛寶釵)에게 끌려서 더 이상 그녀가 가보옥(賈寶玉)의 유일한 지기이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그래서 상심한 것이다. 더군다나, "금옥양연(金玉良緣, 가보옥(賈寶玉)이 가진 옥패(玉佩)와 설보채(薛寶釵)가 가진 금쇄(金鎖)에 한 쌍의 문구가 새겨져 있음)"이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녀가 처음으로 가부에 들어왔을 때 가보옥(賈寶玉)은 임대옥(林黛玉)에게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하였고 임대옥(林黛玉)도 그가 어디서 본 것 같았으며 아마도 전생에 마치지 못한 인연(因緣)이 이어진다고 생각했으며 두 사람은 그 후에 그렇게 친밀(親密)하고 서로 떨어지지 않았는데 왜 다시 설보채(薛寶釵)가 하나 더 나타났는지? 그리고 왜 금옥지연(金玉之緣)을 얘기하는지? 이것은 임대옥(林黛玉)으로 하여금 곤혹(困惑)스럽게 만들었고 마음속에 쌓여서 병이 되었다. 이것은 모드 그녀의 마음속에 진실한 감정(感情)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찌감치 보옥(寶玉)을 지기로 생각했고 그녀도 보옥(寶玉)의 유일한 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고 서로 아끼고 알아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설보채(薛寶釵)의 등장은 그녀의 머리에 한방을 먹이는 꼴이었다. 이 보누나(薛寶釵)는 모든 방면에서 빛을 발했다. 임대옥(林黛玉)은 가보옥의 마음에 설보채(薛寶釵)가 자리 잡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임대옥(林黛玉)은 스스로 이 집안에 얹혀산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부모형제(父母兄弟)가 없어서 의지할 데가 없어서 매번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 아파했었다. 오로지 가보옥의 위로와 관심(關心)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해결(解決)해주었다. 만일 그마저도 더 이상 그녀가 마음속으로 의지(依支)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최종적인 비극(悲劇)이 예정된 것이다. 영혼(靈魂)의 의지처(依支處)를 잃으면 어찌 세상을 더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주제로 돌아오면 임대옥(林黛玉)이 습인(襲人)에 대하여 질투를 느끼지 않은 것은 이상의 이해를 근거로 하면 분명해진다. 질투(嫉妬)를 느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맞다. 습인(襲人)은 그저 가보옥(賈寶玉)을 성심성의껏 모시는 것이다. 가보옥(賈寶玉)도 습인(襲人)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녀에 대하여는 다른 시녀들과는 다르게 친밀(親密)하게 지낸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영혼상의 소통(疏通)은 아니다. 왜냐하면 습인(襲人)은 그저 보통의 여자아이이고 글도 모른다. 

요즘 말로 하면 문화소양(文化素養)이 없는 것이다. 즉 문맹(文盲)이다. 그래서 가보옥(賈寶玉)과는 공동의 정신적인 지향점(指向點)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신영역(精神領域)이나 사상영역(思想領域)에 이르면 그녀는 따라올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임대옥(林黛玉)이나 설보채(薛寶釵)에게 도움을 받아서 왜 가보옥(賈寶玉)이 이상한 짓을 하는지를 알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녀는 설보채(薛寶釵)와는 다르고 사상운(史湘雲)과도 다르다. 그녀는 영원히 가보옥(賈寶玉)의 지기가 될 수는 없다. 즉 가보옥(賈寶玉)이 그녀에게 얼마나 잘 대하든지 간에 이것은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두 사람간의 아음이 서로 통하는 정분(情分)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반대로 설보채(薛寶釵)나 사상운(史湘雲)이라면 그녀들이 가보옥의 마음의 일부분을 빼앗아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모두 재주가 있고 총명(聰明)하고 영특하기 때문이다. 특히 설보채(薛寶釵)는 여러 측면에서 최고였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 완벽하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임대옥(林黛玉)이 그녀에게 질투심(嫉妬心)을 느끼는 것은 이해가 된다. 습인(襲人)에게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것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습인(襲人)이 시녀이냐 아니냐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임대옥(林黛玉)의 뼛속에 무슨 계급관념(階級觀念)이 있어서도 아니다. 더군다나 습인(襲人)의 신분으로는 임대옥(林黛玉)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다는 것 등등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고 임대옥(林黛玉)과 가보옥(賈寶玉)의 정신적인 사랑을 멸시(蔑視)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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