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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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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중심내용 읽다보면 허구와 진실이 뒤섞인 존유폄조(尊劉貶曹) 경향성 짙다

图片信息 演义的作者罗贯中是尊刘贬曹的,对大耳朵刘备描写,带着几分...


우리가 읽는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를 흔히 ‘칠실삼허(七實三虛)’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곧 역사적 사실이 7할이고 소설로 꾸며낸 이야기가 3할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소설 삼국지’의 구체적(具體的)인 사건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3할 보다는 훨씬 많은 허구(虛構)들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삼국지’와 역사학자 진수(陳壽)가 쓴 ‘정사 삼국지’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 책의 기본적인 내용은 두 가지 삼국지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사실 나관중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던 소위 ‘이야기꾼’들의 삼국지를 나관중이 집대성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삼국지’는 대부분 나관중본(羅貫中本)이 아니라 청(淸)나라 시대의 모종강(毛宗崗) 부자(父子)가 다듬은 모종강본(毛宗崗本)이다. 우리는 삼국지연의를 ‘존유폄조(尊劉貶曹)’, 즉 유비(劉備)를 높이고 조조(曹操)를 깎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는데, 유교적 입장에서 많은 부분을 고친 모종강본(毛宗崗本)에서 그런 경향이 훨씬 짙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의 허구는 거의 대부분이 유비(劉備), 혹은 촉나라와 관련된 사건이나 인물에 집중되어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아예 없는 사건이나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의 목을 베었다는 관우(關羽)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있었던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크게 부풀리거나, 다른 사람이 했던 일을 이 사람이 한 것으로 변형시키는 방법이다. 조운(趙雲)이 당양(當陽)에서 어린 유선(劉禪)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여기 포함된다. 셋째는 이쪽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저쪽 사람을 깎아내리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동오(東吳)의 명장 주유(周瑜)는 제갈량(諸葛亮)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속 좁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상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허구(虛構)는 촉의 인물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에 수많은 왕조가 들어서고 몰락(沒落)했지만 유독 조조만이 한나라를 찬탈한 역적의 이미지를 뒤집어썼는데 사실 엄격히 따지면 황제(皇帝)를 칭한 것은 그의 아들 조비(曹丕, 조조의 둘째 아들로 위나라 개국 황제가 된다)지 조조가 아니다. 유비의 촉한을 정통으로 인정하느냐 조위(曹魏)를 정통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논쟁은 각자 가진 역사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물론 현대를 사는 우리가 촉과 위의 정통론을 앞에 두고 다툴 이유는 하나도 없다.

민중들이 은연중에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삼형제를 응원하는 것은 유교주의자들의 정통론(正統論)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삼국의 지도자 중 유비가 가장 서민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유비가 한나라 황족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조조(曹操)나 손권(孫權)에 비하면 거의 밑바닥에서 출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약자와 강자가 맞붙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기 마련이다. 자신과 별다를 것도 없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갖은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꿈을 향해 계속 도전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지 유교적인 대의명분론(大義名分論)에 입각하여 유비가 한나라를 이은 정통이므로 촉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陳壽)는 매우 엄격한 역사학자로 의심스럽거나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은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사 ‘삼국지’의 내용은 매우 간략하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배송지(裴松之)는 ‘삼국지’에 많은 주석을 달았는데 ‘삼국지’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 매우 요긴한 자료이다. 하지만 사료의 질을 따지지 않고 삼국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인용(引用)했으므로 배송지(裴松之) 주의 내용이 모두 믿을 만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정사에 기록된 것이라 하더라도 꼭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정사 ‘삼국지(三國志)’ 외에 삼국지 혹은 중국의 삼국시대를 연구하고 해설한 많은 책들을 참고로 삼았다.

역대이래로 논자들은 '삼국연의'에 '존유폄조(尊劉貶曹)'의 경향이 있다고 말해왔다. 필자는 기실 이것은 나관중을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관중(羅貫中)은 확실히 유씨 한왕조(漢王朝)의 정통관념을 떠받들었다. 다만 유비를 정통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짜정통의 전형으로 썼다. '삼국연의'는 기실 난세에 영웅으로 등장하여 쟁패하는 3가지 대표적 인물을 보여준다. 첫째는 간웅(奸雄) 조조이고, 둘째는 가짜정통 유비이며, 셋째는 군벌 손권(孫權)이다. 나관중은 이 세 가지 대표인물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각자 '천추(千秋)'가 있다고 적었지 어느 하나를 떠받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독자들은 소설이 '존유폄조(尊劉貶曹)'라고 느끼는가? 그것은 조조의 간웅은 외향적이어서 그는 무슨 추악하고 악독한 일도 감히 말하고 감히 행했다. 친구를 죽이고 여자를 빼앗고...때리고 죽이고 전혀 가리는 법이 없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그대로 들어낸다. 그러나 유비의 가짜정통은 허위적이다. '희노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말을 하고 행하는 것이 가인가의(假仁假義)이다. 진실한 추악함을 뼛속에 감추고 있다. 그래서 무수한 천애과객들을 속여 넘긴 것이다. 일반 독자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노신(魯迅)은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에서 '삼국연의'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유비의 장후이사위(長厚而似僞)를 들어내고자 했다. 기실 나관중(羅貫中)이 원래 쓰려고 한 것은 그의 '위(僞)'이다.

유비의 가짜정통은 그의 일관되게 입으로 떠드는 인의도덕(仁義道德)이나 그가 베푸는 작은 은혜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가 정치적으로 처한 극복할 수 없는 모순 가운데 있다. 첫째, 유비(劉備)는 내력이 불분명하다. 신분이 의심스럽다. 짚신을 삼던 자가 황숙을 칭하는 것 자체가 가짜라는 것이다. 그와 무슨 중산정왕은 조그만치도 관계가 없다. 이런 위조(僞造)된 족보로 명인의 후예를 사칭하는 것은 현재에도 성행하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유비의 정치적 구호가 한황실의 종친으로 한나라의 정통을 보호하는 것이고 인의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필생사업은 진정한 한황실 종실인 유표(劉表), 유장의 손에서 형주, 서천을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칭왕칭제(稱王稱帝)한다. 그 자체는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첨예한 모순이고 날카로운 풍자이다.

그렇다면 가짜황숙이 진정한 한황실을 찬탈(簒奪)하였는데 유비와 조조의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과는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손권의 할거칭패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무슨 인의를 얘기할 게 있는가? 조조의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은 바로 영웅을 논한 것인가? 그는 분명히 말했다. 유비야, 너도 더 이상 가장하지 말라. 우리 둘은 같은 사람이다. 모두 꼬리가 긴 늑대이다. 이런 인생궤적(人生軌跡)과 이야기구조는 바로 유비의 가짜정통, 가짜인의의 대표인물이라는 속성을 확실히 한다.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유비의 일생을 묘사했다. 그를 자체 모순되는 석쇠 외에 올려놓았다. 이것을 '존유(尊劉)'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삼국연의'는 또한 유비(劉備)가 이처럼 자체 모순되는 정치적 행위에서 여러 가지 사기, 허위 내지 난감하고 비열(鄙劣)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유비가 유표의 손에서 형주(荊州)를 탈취할 때 유표의 한실정종 내지 지방세족의 명망은 실로 너무나 컸다. 그는 부득이 조심스럽게 처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신야에서 유표를 대신하여 조조를 막고, 유표가 죽고 나서도 감히 대리인을 맡겠다고 하지 못한다. 다만 나관중(羅貫中)은 이 자가 부주의하게 마각을 드러내게 하였다. 한번은 유표와 한담하면서 조조와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한 이야기를 꺼낸다. 거기서 한 마디를 한다. "흥...나에게 한 조각의 땅만 주어진다면...." 유표는 그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자는 자신이 실언한 것을 알고는 급히 화장실(化粧室)로 도망쳐 버린다. 이것은 그가 유표의 앞에서 가짜정통행세를 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혹은 기량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경과오를 저지른다. 이를 위하여 유비는 조조(曹操)에게 들개처럼 쫓김을 당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또한 동오의 앞에서도 유표를 빌어 한황실 정통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오히려 위곡구전(委曲求全)하게 손권이라는 이 토호에게 '형주를 빌린다". 심지어 손씨 집안의 사위가 되기까지 한다. 생각해보라. 만일 그 유비(劉備)가 진짜 황숙이라면 이렇게 해야 했을까?

나중에 유장에게서 서천을 빼앗을 때 유비는 이 교훈(敎訓)을 이미 익혔다. 그래서 정통의 기치를 내걸고 반정통의 음모궤계를 멋지게 성사시킨다. 취서천은 원래 제갈량(諸葛亮)이 기획한 것이고 유비의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는 야심이다. 또한 이를 위하여 유장의 곁에 있는 장송과 법정을 매수한다. 다만 그는 그래도 유장이 적극적으로 '원천항조(援川抗曹)"를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 자신은 형제라는 신분으로 병력을 이끌고 사천에 들어간다.

유장은 친히 멀리까지 마중을 나오고 방통은 홍문연(鴻門宴)을 펼칠 것을 건의하지만 유비(劉備)는 단연코 거절한다. 그리고 가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인의를 잃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나오면서 반드시 조조와 반대되는 식으로 해야 성공(成功)을 거둘 수 있다. 조조는 폭력으로 나는 관대함으로 조조는 이익으로 나는 의리로 조조(曹操)는 조급함으로 나는 느긋함으로 그래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그가 실제로 고려한 것은 "처음에 다른 나라로 들어가서 은혜와 신의(信義)가 아직 두드러지지 않은데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여서는 인심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제 둘은 서로 관직(官職)을 봉하고 장로를 친다는 명분으로 유장(劉璋)이 영지와 군수를 대량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유비(劉備)의 군대가 북상하여 면양과 양평관(陽平關)의 사이에 있는 가맹(葭萌; 지금의 사천성 광원 경내)에서 멈추고 이때부터 대거 인심을 얻으며 자신의 대오를 발전시킨다.

유비(劉備)가 어디 장로를 치러 갔는가? 그는 유장(劉莊)을 칠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통인의라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도록 유비는 시기를 기다린다. 유장이 불인불의의 죄명을 뒤집어쓰도록 기량을 쓴다. 212년 조조가 제2차로 남정하여 손권을 친다. 손권은 자신의 매부이자 맹우인 유비에게 긴급구원을 청한다. 유비는 기실 손권을 구하러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장에게 서신을 써서 자신은 현재 구원하러 가지 않으면 조조가 반드시 형주를 취할 것이므로 급히 돌아가서 본거지를 방어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의로 사자대기구(獅子大開口)하여 유장에게 1만 군대와 상응한 군수물자(軍需物資)의 지원을 요청한다. 유장은 원래 이미 유비가 장로를 치는 것을 계속하여 늦추는데 불만이 있었고 그의 진실한 의도(意圖)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물자를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형제의 체면을 봐서 그에게 4천명과 절반의 양초를 준다. 그리하여 유비는 이를 핑계로 추궁을 하여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당시 방통(龐統)조차도 유비의 허위를 간파하지 못한다. 그래서 묻는다. "너는 형제는 인의를 강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유비는 화를 벌컥 내며 방통(龐統)을 물러가라고 한다.

'삼국연의'에 비록 방통의 사망이 유비를 노하게 만들었다고 적었지만 유비의 진면목을 진정으로 드러내게 된 것은 기실 장송(張松)의 형인 장숙(張肅)이 유장에게 장송과 법정이 일찌감치 유비에게 의탁했고 서천(西川)을 취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죄행을 고했을 때이다. 그리하여 유비의 가면은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의 가짜정통은 실재로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게 된다. 깡패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번 나쁜 짓을 하면 끝까지 해버리는 것이다. 유방이 투항하여 성을 바칠 때까지 그리하여 서천을 점거하고 촉한을 세우고 황제에 오른다. 조조가 생전에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비가 서천을 취득한 것은 기실 가짜정통이 그대로 폭로된 것이고 유비(劉備)의 허위와 악독함이 소설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당연히 '삼국연의'에 핵심스토리에서 유비를 가짜정통으로 묘사하는 외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장면들도 그의 허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그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고귀한 혈통을 사칭하여 관우, 장비, 조운의 존경을 얻어낸다. 그는 한실종친이라고 거짓말하여 조조(曹操), 원소, 유표등 혁혁한 귀족의 주목과 인정을 받는다. 심지어 한헌제(漢憲帝)까지 그를 황숙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유비가 등장할 때 요란하게 떠들던 것과 나중에 황실종실에게서 영토를 빼앗아 황제를 칭하는 것은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는 그의 가짜정통과 가짜인의를 더더욱 잘 드러내준다. 나관중은 유비라는 가짜정통의 인물이미지는 이처럼 진위를 구분하기 어렵게 썼다. 이처럼 고금의 여러 독자들이 미혹되게 적었다. 이것은 작자의 예술수법의 성공이며 역사상 이런 유의 인물 자체가 아주 큰 사기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특히 봉건 통치자(封建統治者)들은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고의로 대거 선전했고 봉건정통관념은 다시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되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아마도 봉건정통은 그 자체가 모조리 가짜인지 모르겠다. 진위(眞僞)를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삼국연의(三國演義)'가 '존유(尊劉)'라는 오해를 하는 것은 기실 역사에 대한 일종의 오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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