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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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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인이며 삼국지 작품세계 중 최고의 미녀인 초선의 신세내력

图片信息 三国虚拟人物貂蝉缘何入选"四大美女"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초선(貂蟬)은 그 미모와 함께 혼란(混亂)한 세상에서 계략의 희생양(犧牲羊)으로 살게 된 비극적(悲劇的)인 운명으로 인해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유명(有名)한 인물이다. 미모를 이용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켜 동탁(董卓) 세력을 몰락시킨 일화(逸話)는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쯤 들어는 봤을 이야기일 것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초선이 등장하는 부분은 조정의 실권을 잡고 폭정(暴政)을 휘두르던 동탁(董卓)이 반동탁연합전선(反董卓聯合戰線)과의 전투로 인해 낙양(洛陽)에서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을 무렵이다. 한왕조의 충신(忠臣)인 사도 왕윤(王允)은 동탁의 폭정을 막을 수 없어 한탄하고 있었는데 마침 집에 들어와 자신의 양녀인 초선(貂蟬)을 보고 그 미모를 이용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 시켜 동탁을 암살(暗殺)하는 계획을 생각하게 된다.

초선(貂蟬)을 설득한 왕윤(王允)은 먼저 여포를 집에 초대해 초선을 보여주어 여포(呂布)가 초선에게 반하게 만든 후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주겠노라 약속(約束)을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탁(董卓)에게 초선을 보인 후 동탁 역시 초선(貂蟬)에게 반하자 동탁에게 초선을 바친다. 이를 알게 된 여포(呂布)가 화가 나 왕윤(王允)에게 따지러 오자 왕윤은 '동탁의 영(令)을 거스를 수 없었다'며 모든 것을 동탁에게 뒤집어 씌워버리고 만다. 이때부터 여포는 동탁에게 불만(不滿)을 품게 되는데 동탁에게 가 있던 초선(貂蟬) 역시 몇 번이고 몰래 여포(呂布)를 만나 자신의 마음은 여포에게 있다며 동탁(董卓)에 대한 여포의 불만을 더욱 크게 만든다.

초선(貂蟬)이 미모를 이용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한 장안(長安)의 위치이다. 즉 현재의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지역이다. 한편 초선과 여포의 밀회(密會)를 알게 된 동탁은 분노(忿怒)하여 여포를 없애려 하는데 동탁의 사위이자 참모 이유(李儒)는 여포를 잃는 것은 손실이 너무나 크다며 차라리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라 동탁을 설득(說得)한다. 이유의 말에 공감(共感)한 동탁이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려하자 이번에는 초선이 난폭(亂暴)한 여포에게 가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리는 명연기로 동탁(董卓)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이렇듯 동탁(董卓)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 시킨 끝에 결국 왕윤(王允)의 계획대로 동탁은 여포(呂布)의 손에 암살된다. 이후 초선은 여포에게 가게 되는데 여포에게는 이미 엄씨라는 정실(正室)이 있었으므로 첩의 신분이었으며 여포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여포가 하비성(下邳城)에서 조조·유비 연합군(曹操劉備聯合軍)에 패하여 사형(死刑)에 처해진 이후 초선(貂蟬)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초선의 마지막 무대가 된 하비성(下邳城)은 현재의 강소성(江蘇省) 서주시(徐州市) 지역이다. 이후 초선의 행적에 대해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번역한 여러 서적에서 각기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데, 하비에서 여포가 패한 후 자결했다는 설도 있지만 흥미롭게도 관우와 연결되는 이야기가 많다. 조조와 관우가 초선을 놓고 다투었으나 결국 관우가 초선을 데려갔다는 설, 조조가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토마와 함께 하사하였다는 설, 관우가 남자를 홀리는 요녀라 하여 초선을 베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관우가 초선을 데려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많은 후일담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선이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창작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여포가 동탁을 암살하는 부분에 대해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눈이 맞아 은밀한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동탁에게 들키게 될 것을 두려워한 여포가 왕윤에게 이를 상담하니 마침 동탁을 쓰러트릴 계획을 세우던 왕윤은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만들었다'라는 기술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나오는 동탁의 시녀가 바로 삼국지 연의에 나오는 초선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중국 4대 미인 중 한명이자 그 중 유일한 가공의 인물인 초선은 가공의 인물임에도 중국 4대 미인으로까지 꼽힐 정도이니 삼국지연의에서 묘사한 초선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초선(貂蟬)의 신세내력
중국에서 고대 사대미인 중의 하나로 불리우는 초선의 경우에는 삼국연의에서 유명하지만, 그녀의 진실한 신세내력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그녀는 소설속의 여인이고 실제인물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녀의 신세에 관한 주요한 네 개의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왕윤(王允)의 가기(歌妓)로 보는 견해 왕윤은 동한 때 태원 기현사람이다. 자는 자사이고, 처음에는 군리를 지내다가 영제 때 예주자사를 역임한다. 헌제의 등극 후에는 사도(司徒)를 지낸다. 왕윤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하여 미인계를 써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초선을 생각해냈고 왕윤은 그녀에게 사정과 이해관계를 설명한 후, 그녀에게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초선은 왕윤의 요구에 따라 그녀의 미색으로 여포와 동탁 간을 이간질하고, 최후에 여포를 이용하여 동탁을 살해한다. 이로써 왕윤이 자기의 정적을 죽이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목적달성 후 초선은 화원에서 왕윤을 위하여 달에 기도하는데, 묘하게도 이 때 한 채색구름이 달을 가린다. 왕윤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초선의 미색이 달마저도 구름 뒤에 얼굴을 숨기도록 만드는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후세 사람들은 초서에게는 "폐월(閉月)"의 용모를 가졌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둘째, 동탁의 비녀(婢女)로 보는 견해. 동탁은 동한 때 농서 임조사람(현재의 감숙성 민현)이다. 자는 중영이고, 원래 양주지방의 호족이었다. 영제 때 병주목사를 지낸다. 소녕원년에 병사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서 소제를 폐하고 헌제를 세운 후 조정을 농단한다. 조조와 원소 등의 기병에 반대하고 그는 헌제를 데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며, 스스로 태사가 된다. 후에 여포에게 죽임을 당한다. '후한서, 여포전'의 기재에 따르면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부자로 서약했으며, 그를 믿고 사랑했다. 자주 조그만 실의가 있을 때면 극을 뽑아서 던졌다. 동탁은 민첩하여 피할 수 있었다. 여포는 이로 인하여 동탁에 원한을 가졌다. 동탁은 여포로 하여금 중각을 지키도록 하였는데 사사로이 노비와 정을 통하였다." 이 기재를 보면 바로 풍의각에서 극으로 찌른 일을 기재한 것이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초선이 바로 여포와 정을 통한 동탁의 비녀라는 것이다.

셋째, 여포의 처로 보는 견해이다. '삼국지(三國志).여포전(呂布傳)'에서 인용한 '영웅기'에는 "건안원년 6월, 밤이 깊은 때 여포는 하내의 학맹이 반란을 일으켜 병사를 이끌고 여포가 다스리는 하비부에 들어올 때 직접 부인을 데리고..." "여포가 진궁(陳宮)과 고순(高順)에게 서울 지키도록 명령하고 자신은 말을 타고 조조의 양식보급로를 차단하려고 할 때 여포의 처가 말하기를 '진궁(陳宮)과 고순(高順)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데 진궁(陳宮)과 고순(高順)은 분명히 마음을 같이 해서 성을 지키지 안을 것이다. 만일 잘못되면 장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첩은 예전에 장안에 있을 때 첩을 버려 방서가 첩신(妾臣)을 사사로이 숨긴 적이 있는데 이제 첩을 돌보지 않으려 하십니까' 여포는 처의 말을 듣고 우울(憂鬱)해하며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였다" 여기에 묘사된 여포(呂布)의 처가 바로 초선(貂蟬)이라는 것이다.

넷째, 여포의 부장인 진의록(陳宜祿)의 처라는 견해. '삼국지. 관운장전'에서 인용한 '촉기'에 따르면, "조조와 유비(劉備)가 여포를 하비에서 포위할 때 관운장은 "여포가 진의록(秦宜祿)에게 원군을 청하도록 보냈습니다. 바라건대 거의 처를 취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조조에게 청했고 조조는 이를 허락했다. 성을 격하할 때 다시 조조에게 다시 청했다. 조조(曹操)는 그녀가 자색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먼저 맞이해서 보고는 자기가 가져버렸다. 관운장(關雲長)은 마음이 영 불쾌해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진의록(秦宜祿)의 처는 매우 예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관우가 먼저 그녀를 처로 삼고자 하였으나 조조가 스스로 가져버리는 바람에 관우의 질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우는 질투심에 불타서 한칼에 진의록(秦宜祿)의 처를 죽여 버린다. 원나라 때의 잡극 '관공이 달 아래 초선을 참하다'는 것은 바로 이 일을 가지고 창작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진의록(秦宜祿)의 처도 전설중의 초선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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