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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 무공이 양산오호 수준인 인물은 양산에는 4명 양산밖에는 15명 존재

图片信息 水浒志江湖版7册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장숙야(張叔夜)에게 토멸(討滅)당하였다" 정도가 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양산박이 의(義)를 내세우는 집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초대 두령 조개(晁蓋)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송강(宋江)의 취임식 행사 때 발견된 비문에 의해 서열(序列)이 결정되어 이후 주장과 부장을 결정하는 데에도 이 서열에 따랐다는 점이다.

송나라 시대의 역사서인 '송사(宋史)'에 송강 등 도적의 괴수 36인이 귀순(歸順)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방랍(方臘)이 강남에서 반란(反亂)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즉 송강이 조정에 항거(抗拒)하다 귀순한 것과 방랍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부분만이 사실이었다는 소리다.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실존인물로는 송강(宋江) 이외 36인 즉 이 36인도 어떠한 사람이 실존인물인지 분분하다. 양지(楊志), 이충(李忠), 임충(林冲), 유당(劉唐), 왕륜(王倫), 방랍(方臘), 여사낭(呂師囊), 정표(鄭彪), 고구(高俅), 동관(童貫), 양전(楊戩), 채경(蔡京), 양사성(梁師成), 후몽(侯蒙), 장숙야(張叔夜), 이사사(李師師) 등이 있다.

양산오호(梁山五虎)는 임충(林沖), 관승(關勝), 진명(秦明), 호연작(呼延灼)과 동평(董平)을 가리킨다. 이 5명은 모두 마군두령(馬軍頭領)으로 각각 무공이 고강하여 양산의 기둥들이었다. 양산에는 비록 108명의 호한이 모여 있지만 대부분은 무공수준이 평범했고 오호수준(五虎水準)에 이른 인물은 단지 노준의(盧俊義), 노지심(魯智深), 양지(楊志)와 화영(花榮) 정도이다. 양산(梁山)에는 겨우 4명밖에 없는데 양산밖에는 15명이나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각각 누구일까?

양산의 최대적수는 방랍(方臘)이다. 송강이 이끄는 형제들은 방랍을 토벌할 때 50여명의 형제들이 방랍의 장수와 병사들의 손에 죽었다. 그렇다며 방랍의 진영에 무공이 양산오호(梁山五虎)에 필적하는 인물들이 누가 있을까?

석보(石寶) : 방랍(方臘) 수하의 맹장이다. 일찍이 연속하여 삭초(索超), 등비(鄧飛), 연순(燕順), 포욱(鮑旭), 마린(馬麟)의 다섯 양산맹장을 죽인 바 있다. 수십 회합에 여방(呂方)을 격패(擊敗)시키고 오호중 하나인 관승(關勝)과 직접 싸워서 승부를 내지 못했다. 관승도 석보(石寶)의 무공이 자신보다 아래가 아니라고 인정한 바 있다.

방걸(方傑) : 그는 총명한 무장이다. 무공도 고강하고 총명하며 교활했다. 그는 부장(副將)의 도움으로 오호의 하나인 진명(秦明)을 죽인다. 관승(關勝)과 화영(花榮)이 협공하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를 보면 방걸(方傑)은 무공도 뛰어나고 담량도 큰 맹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인(王寅) : 무공이 고강하다. 그는 일찍이 양산의 4명의 맹장을 죽인 바 있다. 왕인을 죽이기 위하여 양산에서는 손립(孫立), 황신(黃信), 추연(鄒淵), 추윤(鄒潤)의 4명장수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1:4로 싸우면서도 왕인(王寅)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충(林沖)이 와서 5명이 합공하고서야 결국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여천윤(勵天閏) : 양산의 주통(周通), 장청(張淸)은 여천윤에게 살해당한다. 주통은 무공이 평범하지만 장청(張淸)은 돌이 없으면 근접전에서는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이 두 사람을 죽인 것만으로는 여천윤(勵天閏)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천윤은 양산오호(梁山五虎)중 하나인 동평(董平)을 격패시킨다. 이를 보면 그의 무공은 절대 양산오호에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등원각(鄧元覺) : 등원각은 다른 버전의 노지심(魯智深)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무공은 고하를 가리기 어렵다. 그들은 일찌기 항주성 밖에서 한번 크게 싸운 바 있는데 승부를 내지 못했다. 노지심(魯智深)의 무공은 양산오호(梁山五虎)에 뒤지지 않고 비교적 육전에 강하다. 그런 그가 등원각(鄧元覺)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보면 등원각(鄧元覺)의 무공이 절대 양산오호에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방랍진영(方臘陣營)에서 5명의 실력이 양산오호(梁山五虎)에 뒤지지 않는다. 역시 양산의 숙적(宿敵)이라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또 어떤 사람들의 실력이 양산오호(梁山五虎)에 뒤지지 않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왕진(王進) : 왕진과 임충(林沖)은 같이 금군교두(禁軍敎頭)로 있었다. 고구(高俅)와의 갈등으로 스스로 금군을 떠난다. 연안부(延安府)로 가는 길에 석가장(石家莊)을 지나다가 사진(史進)을 혼내준다. 그후 사진을 제자로 삼는다. 그가 다 배우고 나자 사진의 집을 떠나 연안으로 간다.

사문공(史文恭) : 증두시교두(曾頭市敎頭). 양산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조개(晁蓋)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양산과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이다. 다만 송강(宋江)은 사문공(史文恭)의 무공을 꺼렸고 수하 대장들이 사문공과 대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중에 노준의(盧俊義)를 양산으로 오게 만든 후에 노준의의 손을 빌어 사문공(史文恭)을 제거한다.

손안(孫安) : 전호(田虎) 수하의 대장이다. 일찍이 양산오호(梁山五虎)중 하나인 진명(秦明)과 50회합을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한 바 있다. 그리고 옥기린 노준의(盧俊義)와도 싸워본 적이 있는데 노준의(盧俊義)가 봐준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무공은 양산오호의 아래가 아니다.

두학(杜壆) : 왕경(王慶) 휘하의 두령이다. 일찍이 노준의(盧俊義)와 싸워본 적이 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손안의 도움으로 노준의(盧俊義)는 두학(杜壆)을 죽일 수 있었다.

변상(卞祥) : 전호 휘하의 대장인데 일찍이 혼자서 사진(史進), 화영(花榮)의 협공을 막아내며 전혀 두려움이 없이 두 사람과 30회합을 싸우고 승부를 내지 못했다. 당연히 변상(卞祥)의 무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그가 맹장 풍태(酆泰)를 죽인 것이다.

풍태(酆泰) : 풍태는 변상(卞祥)에게 가볍게 죽임을 당했다. 그렇다고 그의 실력이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수위에 고수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욱 용맹한 변상(卞祥)을 만난 것이 그의 불행이다. 풍태(酆泰)는 수호전 일류 고수에 들어간다. 이는 그가 맹장 산사기(山士奇)를 죽였다는데서 알 수 있다. 산사기도 일류교수이다. 산사기(山士奇)를 죽였다는 것은 그의 무공이 결코 낮지 않음을 알게 해준다.

산사기(山士奇) : 그가 풍태(酆泰)에게 참살당한 것은 일생의 오점이다. 그러나 그의 능력을 폄하(貶下)할 수는 없다. 그는 일찍이 양산오호(梁山五虎)의 하나인 임충(林冲)과 50회합을 싸우면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임충(林冲)의 무공은 양산오호(梁山五虎)중에서도 중상수준은 되므로 사사기(山士奇)의 무공이 오호에 못지않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왕환(王煥) : 왕환은 노장이다. 일찍이 고구(高俅)를 따라 양산을 토벌하러 간다. 임충은 왕환(王煥)의 나이기 이미 많음을 보고 그에게 젊은 장수를 보내 자신과 싸우게 하라고 한다. 자신의 손에 일세의 영명(榮名)을 훼손당하지 않으려면 임충(林冲)의 말은 왕환(王煥)을 격노하게 만들었고 그는 뛰쳐나가 임충(林冲)과 싸운다. 두 사람은 7,8십 회합을 싸웠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고 각자 병사를 거두어 14병영으로 돌아간다.

난정옥(欒廷玉) : 손립(孫立)의 사형으로 무공이 고강(高强)하다. 일찍이 그는 진명(秦明), 등비(鄧飛)를 생포한 적이 있다. 그도 아주 대단한 인물이다.

무안광(無顔光) : 요군(遼軍)의 대장이다. 그는 혼철점강창(渾鐵點鋼槍)을 쓰며 무공이 대단했다. 양산은 그를 죽이기 위하여 관승(關勝), 장청(張淸), 화영(花榮)의 3명을 보낸다. 이 점을 볼 때 그의 무공에 양산(梁山) 측에서도 꺼리는 점이 있었다고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도의(道義)를 무시하고 3명의 맹장을 보내 협공(挾攻)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첫 번째 장수 대도(大刀) 관승(關勝)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 첫 번째 장수는 양산박 108호걸 중 서열 5위 천용성(勇) 대도(大刀) 관승(關勝)이다. 관우(關羽)의 후손이자 조상님처럼 청룡언월도를 무기로 써서 별명이 대도(大刀)이다. 양산박 호걸들이 거의 모이기 시작한 후반부에 양산박을 토벌하기 위한 관군(官軍)의 장수로 등장했던 관승(關勝)은 송강(宋江)의 양산박에 귀순한 뒤에는 기병을 이끄는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이 된다.

양산박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의 이름에 걸맞게 양산박 호걸 통틀어서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며 방랍(方臘)을 토벌하고 개선할 때까지 수많은 적장의 목을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로 베고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던 양산박 두령이었다. 수호전 작중 통틀어 표자두 임충(林冲)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양산박 최강인물에 해당하며 패배를 모르는 완벽에 가까운 장수였으나 방랍(方臘)의 난까지 모두 토벌한 뒤 술 먹고 말을 타다가 낙마한 후유증(後遺症)으로 사망하였기에 최후가 유일하게 안습(眼濕)이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양산박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 중에서는 유일하게 사고사로 죽은 인물이다.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두 번째 장수 표자두(豹子頭) 임충(林沖)
수호전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 중 두 번째는 108호걸 중 서열 6위 천웅성(雄)  표자두(豹子頭) 임충(林沖)이다. 양산박 오호대장군과 108호걸 통틀어 작중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송나라 조정(朝廷)을 호위하는 80만 명의 경호원(警護員)의 무예를 가르치는 출신이었으나 수호전 작중 악당이었던 고구(高球)의 모략(謀略)에 휘말려 가족과 일자리를 잃고 결국 양산박(梁山泊) 산채로 들어가게 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수호전 초반부(初盤部)에 등장하고 그 삶이 상당히 드라마틱했던 인물이었으며 양산박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 중에서는 양산박 짬밥을 가장 먼저 먹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표자두 임충(林沖)의 무기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장비(張飛)처럼 장팔사모(丈八蛇矛)이다. 이 때문에 '작은 장비'라는 별명까지 있는 임충이다. 양산박(梁山泊) 호걸과 수호전 작중 등장하는 모든 장수(將帥)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강력한 무력의 소유자(所有者)이다. 

양산박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 중에서도 대도 관승(關勝)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강한 인물로서 축가장(祝家莊) 결전에서는 여걸 호삼랑(扈三娘)을 사로잡기도 했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전투에서 뛰어난 무력으로 무수한 적장의 목을 달아나게 하여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 지위에 걸 맞는 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임충(林沖)은 방랍(方臘) 토벌이 끝난 뒤 송나라 조정에 귀환하기 직전 중풍(中風)으로 쓰러져 병사(病死)한다. 수호전 악당이었던 고구에 직접적인 원한을 지니고 있던 두령이었으며 수호전 초반부 주역(主役)이기도 했기에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수호전 팬들 뿐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표자두(豹子頭) 임충(林沖)이다.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유일하게 병으로 죽은 인물이기도 하다.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세 번째 장수 벽력화(霹靂火) 진명(秦明)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 세 번째는 108호걸 중 서열 7위 천맹성(猛) 벽력화(霹靂火) 진명(秦明)이다. 본래 군인이었으나 송강(宋江)의 계략에 의해 양산박(梁山泊)의 일원이 됐으며 무기는 낭아곤(가시돋힌 방망이) '우렁찬 번갯불'이라는 뜻의 별명 그대로 전투에서도 항상 선봉(先鋒)에 나서면서 우렁찬 고함을 지르며 낭아곤(狼牙棍)으로 무수한 적장들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저돌적인 맹장(猛將)다운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특유의 저돌적(猪突的)인 성격 때문에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적들에게 가장 많이 사로잡혔던 장수이기도 하다. 진명(秦明)은 낭아곤(狼牙棍)을 휘두르면서 용맹(勇猛)을 떨쳤던 맹장이었으나 아쉽게도 방랍(方臘) 토벌 도중에 전사한다.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네 번째 장수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 네 번째는 108호걸 중 서열 8위 천위성(威)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이다. 본래 조정에서 양산박(梁山泊)을 토벌키 위해 파견한 군인이었고 양산박과 치열한 전투(戰鬪)를 이어나갔으나 결국 패하여 송강(宋江)에게 귀순하게 된다. 

양산박에 귀순한 뒤로는 양산박 기병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일원 중 한 명으로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별명 그대로 두 자루의 편(鞭 : 스틱 형태의 몽둥이)을 무기로 쓴 쌍편(雙의鞭) 명수이기도 하다.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작중 가장 오래 생존했던 장수이기도 한데 요나라 정벌과 방랍토벌(方臘討伐) 후까지 살아남았다. 금나라가 침공했을 때 전사했으니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생존했던 인물에 해당한다. 

수호전 오호대장군(梁山大將軍) 다 섯째 장수 쌍창장(雙槍將) 동평(董平)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 마지막은 108호걸 중 서열 15위 천입성(立) 쌍창장(雙槍將) 동평(董平)입니다.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 가장 늦게 양산박에 합류한 인물로서 별명 그대로 두 자루의 창을 잘 쓴다.

양산박에 합류한 뒤에 주무기인 두 자루의 창을 휘두르며 많은 전공을 세우긴 했으나 수호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활약도라든지 존재감 자체가 나머지 두령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인물이기도 하다.

방랍(方臘)을 토벌할 당시에 전사했다.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중에서는 가장 빨리 전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수호전(水滸傳)에는 사나이 못지않게 비범한 용력을 갖춘 여장군들이 많이 등장한다. 일장청(一丈青) 호삼랑(扈三娘), 모대충(母大蟲) 고대수(顧大嫂),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嫏) 수호전 후반부에 등장하는 경시족(瓊矢族) 경영(瓊英)도 그 중의 한명이다. 웬만한 사내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비범한 무력 그리고 백발백중(百發百中)의 돌팔매 실력까지 위 장면은 양산박의 소울지(小尉遲) 손신(孫新)에게 돌팔매를 명중시키는 경영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력을 갖춘 경시족(瓊矢族) 경영(瓊英)일지라도 역시 양산박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이자 '작은 장비(張飛)' 표자두 임충(林冲)을 당해내진 못한다. 

임충에게 팔매질을 하는 경시족(瓊矢族) 경영(瓊英)은 수호전 작중 최강자 그 자체이자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의 일원이었던 임충(林冲)을 팔매질로 상처 입게 하였고 이것은 전투에서 패배를 모르던 임충에게 유일한 굴욕(屈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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