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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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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열등감에 대하여

图片信息 职场压力属于压力的一种压力,是工作本身,人际关系,环境因...


남이 잘 되는 꼴을 못 보고 질투하며 시기하는 것을 이르는 속담(俗談)이 있는데 다름 아닌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프다’로 요약(要約)하여 쓰기도 한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속담이기도 하다.

유능한 동료 앞에서 위축(萎縮)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팀에서 동료 중에 자기보다 유능(有能)한 사람이 있으면 해당 팀의 다른 구성원들은 그 동료로 인해 심리적 위축감(萎縮感)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가끔 가다 인터넷에서 보면 이런 속담은 한국에만 있으니 그만큼 한국인들은 이기적인 민족이라고 자국 혐오(嫌惡)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속담으로서는 한국에만 있을지 몰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다른 국가, 다른 지역, 다른 민족 내에서도 이런 현상은 자주 일어난다. 애당초 가톨릭에서 규정한 7대 죄악 중 하나가 질투인 것만 봐도 서양에서도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질투심(嫉妬心)을 경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 오래전부터 서양권(西洋圈)에서도 질투로 인한 문제가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심리학계에서도 심리학적으로 타인의 행복에 불만(不滿)을 느끼고 반대로 타인의 불행에 행복을 느끼는 정서(情緖)가 있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속담이 일제 강점기를 걸쳐 뜻이 왜곡(歪曲)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 사촌이 땅을 산 것은 집안의 경사(慶事)이며 축하를 해주어야 마땅하지만 과거 못 먹고 못살던 시절에는 배 아파서 똥을 눈 다음 그걸 거름이라도 줘야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사실은 속담 자체가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由來)되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즉 ‘왜곡(歪曲)’이고 ‘왜곡(矮曲)‘이고를 논하기 이전에 당장 이 속담의 유래 자체(原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중간에 왜곡이 되었는지 어떤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마디로 줄여서 관련 자료들 중에 왜곡 여부를 논할만한 근거(根據)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왜곡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는 거다. 왜곡설(歪曲說)을 아주 부정한 건 아니고 '우리도 잘 모르겠다'면서 한발 뺀 의견이긴 하지만 적어도 답변 자체를 놓고 본다면 왜곡되었다고 볼 근거로 삼을 문헌(文獻)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확실한 왜곡의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왜곡된 것이다!"라고 주장(主張)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므로 정말로 의미가 왜곡되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나오지 않는 한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질투의 의미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르다. 사실 왜곡설에서 주장하는 의미 자체도 어감(語感) 상 부자연스럽고 상식적으로 봐도 그런 의미였다면 다른 표현을 썼을 것이므로 반일감정에 의한 왜곡 내지는 창의력(創意力) 교육을 빙자한 왜곡이라는 게 정설(正說)이다.

학폭(學暴) 가해자에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응당 법적책임을 지우는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연예계(演藝界)와 스포츠계 등에서 연이어 '학폭 의혹'이 제기되고 물의를 빚은 가해자에게 상응한 징계가 내려진 가운데 일부 팬들의 글이 논란이 일고 있다. "저희 세대 때 폭력은 다반사였고 왕따는 물론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며 “그 때 해결하지 못하고 잘 되고 나서 한참 잘 될 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때 당시 충분히 어른들한테 얘기해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잘 되고 있으니 잘되는 꼴 보기 싫어 그러는 대한민국 세상 참 안타깝다"며 “이제 가해자들이 잘못 뉘우치고 부디 상처 받지 않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글, "피해자란 그분은 꼭 언론에 제보를 해야 했나"라며 "개인적으로 만나 용서를 받지 안타깝다"고 썼고, “학폭이 아닌 상대방이 먼저 시비 거는 등 폭력을 휘둘렀기에 자매의 힘으로 뭉쳐 정당방위한 건 아닐까”라며 “처벌을 받더라도 능력 낭비로 국가 배구인재들을 잃지 않기 위해 서둘러 복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전에 다녔던 한동안 잊고 지내던 회사 이름을 보니 우선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었다. 회사가 성장했다는 뜻이니까 뿌듯하기도 했다. 아주 작은 회사였는데 제가 그만둔 5년 새 꽤 성장해 있었다. 후미진 구석이었던 사무실도 아주 번듯해졌다. 그리고 사장님과 반가운 얼굴인 직원들이 시상식에 참석한 사진까지 말이다. 그런데 왜 일까요. 뭔가 밑에서 슬금슬금 올라온다. 약이 오른다. 왠지 부아가 치민다. 잘 모르겠지만 질투 같다.  감히 나 없이 잘되다니 이럴 수가 괜히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즐겁게 다녔지만 전망이 없다고 판단해 몇 달 만에 이직했던 곳이다. "왜 내가 나오니까 잘 된 거지?"란 생각이 자꾸 들고 나 없이 잘됐다는 사실에 배가 아팠다. 작은 성공이지만 그곳에 내가 없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려 계속 소화제를 먹었다. 여러 번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다. 

카톡을 하는데 전 여친의 사진이 뜬다.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웨딩 사진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다.  괜찮지가 않다. 이제 남이니까 상관없다고 최면을 걸지만 신경이 쓰인다.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니 잘되길 바란다. 뭔가 안 풀렸다는 소문이 들리면 씁쓸하다. 그런데 결혼을 해? 배가 아프다. 

코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애정을 갖고 보유했던 코인이 잘 될 꺼라 믿었다. 그런데 자꾸 떨어지기만 한다. 참고 참다 보내주었다. 10%의 손절과 함께 그런데 팔고나니 값이 오른다. 지붕을 뚫는다. 한때 애정 줬던 코인이니 잘되면 좋을까? 아니 배가 아프고 부아가 치민다. 나 없이도 잘 되나 한번  두고 보자 했더니 젠장 정말 잘 되네. 왜 이런 식일까?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걸까?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전 아직 멀었나 보다.

분명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인데 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까? 심지어 지금 1인당 소비하는 칼로리의 양은 옛 중국의 진시황제보다 더 높다고 한다. 황제보다 분명 잘 사는데 왜 그리도 자살률이 높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분명 물질적으로 절대적으로 성장했으나 그만큼 불평등이 심해지고 공정한 기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공정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평등과 공정함을 중시한다는 최후통첩 게임은 누구나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만 독재를 만들 수도 있다. 가령 어느 독재자가 나와 횡포를 부리고 무리하게 세금을 걷는다고 치자. 당연히 국민들은 힘을 모아 저항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때 독재자는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후통첩 게임을 적용하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나는 요즘 자신이 자꾸 패배자란 느낌이 든다. 승진과 인사발령이 나는 요즘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자신을 보면 그렇다는 거다. 동료의 승진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는 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니 그게 아니란다. 승진은 회사나 조직으로부터 받는 칭찬이고 관심이며 열심히 일한 보상인데 ‘내가 회사에서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구나’하는 마음이 크다. 따라서 왠지 자신이 쓸모없는 월급 벌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하게 된단다. 이런 생각은 승진과 인사발령이 있을 때마다 하게 된단다. 몹시 힘들겠다.

동료의 승진을 이야기하던 김은 동료의 승진이 회사정치를 잘하고 라인을 잘 타서 된 것이지 업무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동료보다 자신이 더 선·후배들과 관계가 좋고, 실적도 좋으며 고과 성적이 더 나은데도 자신은 상사나 인사권자에게 아부, 아첨, 아양을 잘 떨지 못해서 승진에서 밀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회사생활은 능력이나 실력, 실적이 아니라 눈치와 요령, 편법이 필요하단다. 그러면서 세상은 불공평하고 공정하지 않으니 자신처럼 성실한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그의 승진탈락은 그가 사내정치를 안 해서 일까?
 
나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나는 ‘자기보다 잘되거나 나은’ 사람을 괜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들거나 혹은 몹시 부러워질 때가 있는가. 아마도 살다보면 많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시샘하고 질투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그저 그가 잘되거나 좋은 것을 지니고 있는 상황을 불편해 할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하고 있는 경우나 내가 가진 것보다 나은 것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불편해 하는 경우.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보다’ 더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봤을 때 마음속에서 ‘안 읽고 장식용’일 거라며 은근 폄하하면서 샘을 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누군가 나보다 잘되면 ‘누구나’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는 걸까? 혹시 어떤 사람의 승진은 배가 아프고 어떤 이는 기쁨이 되기도 하는가. 혹자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은 입사동기나 동창생, 내 친구와 같이 자신과 비교적 비슷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서 경험한다고 한다.이를테면 이등병은 자신보다 먼저 입대한 위 기수나 선임들에게 시샘을 하지 중대장이나 대대장에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부러움과 선망의 감정을 흔하게 느낀다. 그러면 왜 남이 잘 되는 게 배가 아플까. 타고나 못된 심보 때문일까.

속담처럼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플 수 있다. 부러움 때문에 배가 아플 수도 있고, 시샘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배가 아플 수 있다. 부러움 때문에 배가 아픈 사람은 논을 산 사돈을 벤치마킹해서 자신도 땅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괜시리 사돈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만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때때로 시기와 질투는 자신보다 나은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동기’가 되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 행동을 지속하게 하는 심리적 기제가 된다. 그것이 특히 욕구, 흥미, 호기심, 즐거움과 같이 내적이고 개인적인 요인일 경우 동기가 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열등감이 가져오는 ‘세상과 다른 사람 탓’과 반면에 자신을 남보다 못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며 스스로는 그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열등감 때문에 배가 아플 수도 있다.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 하고 힘들게 세상을 헤쳐 나가지 않은 채 ‘세상과 다른 사람 탓’하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러는 열등감도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동기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열등감을 갖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장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촉각이나 후각, 청각을 더 발달시키는 것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저앉는 대신에 자신이 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나 장점이 무엇인지에 주목하라고.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 비단 ‘승진’ 뿐 일리 없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몹시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때로 당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도 시기와 질투의 감정으로 지옥을 경험하게 했을 때가 있었을 터이니, 어쩌면 우린 서로에게 ‘지옥’과도 같은 존재인건가.

이런 말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고 질투하며 시기하는 것을 이르는 속담이다. 왜 배가 아플까? 다른 곳이 아프지는 않을까? 꾀병은 아닐까? 우선 위의 속담과 관련해서는 '신체화(身體化)'라고 한다.

신체화(身體化)란 의사의 진단 또는 신체의 병리적 소견 유무와 관계없이 건강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부적응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통증, 소화기계 증상, 성적 증상, 가성 신경계적 증상이 조합되어 나타난다. 쉽게 말해서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위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고 호흡곤란이 생기거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신체화가 신체 감각에 지나치게 주의를 주고 심각하게 지각하는 것, 증상에 사로잡히고 신체에 그 원인을 돌리는 결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신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집착하기 때문에 긴장성 두통이나 소화불량 같은 사소한 중상들이 더 과장되게 된다는 것이다.

사소한 신체 증상을 신체 이상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면 신체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사소한 증상을 더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에 신체에 집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받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여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면 신체화일까? 그것은 아니다. 위의 증상 외에 신체감각기관(눈, 코, 입, 귀, 혀)과 수의근육계의 증상(운동 등)으로 표출되는 무의식적 과정은 '전환(轉換)'이라고 한다. 어려운 상황을 합법적으로 물러날 수 있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발달시키는 기술로 병리적인 이유 없이 신체기능이 상실되거나 변화를 가져온다.

전환은 위의 증상처럼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등의 감각기능 증상이 나타나거나 신체에 경련이 생기거나 한 쪽 다리가 마비되어서 걷기가 힘들 수 있는 등의 운동기능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질병불안장애는 신체건강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이다. 병에 걸렸거나 걸릴 것 같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궁금증 하나 더! 꾀병은 다른 걸까? 질병불안장애는 다시 말해 신체화(身體化)와 전환(轉換)은 의식적인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꾀병은 일부러 아픈 척을 하는 것이다. 흔히 부담스러운 일을 책임회피하기 위한 것이며 어떤 형태의 재정적 이득을 받기 위해서 행해진다.

인위성 장애(人爲性障礙)를 가진 사람은 꾀병과 관련되어 있다. 인위성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해를 입힘으로써 질병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흔히 20~40대에 발생하며 꾀병과 다르게 환자역할과 함께 제공되는 정서적 관심에 동기화된다. 이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것은 뮌하우젠증후군(夸大综合征)인데 이것은 대상자가 병원에 입원하고 정서적 관심을 반복적으로 얻기 위해 증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이러한 증상이 신체의 질병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심리적 갈등으로 인해 신체로 나타나는지 기질적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신체질환이라면 그 질환을 치료해야 하고 심리적 요인이라면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신체적 문제가 심리적 요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신체적 문제가 심리적 문제보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낙인이 적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 사서 배가 아프면 질투가 많다고 비난하거나 소화제를 주기보다 뭐가 문제인지 대화로 풀어보는 건 어떨까? 결론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건 심리적 요인에 의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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