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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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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자격과 가난한 사람들

평등한 권리와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의 개념

: 심옥숙

요즘 세상에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럴까 싶다.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비정규직(非正規職), 계약직(契約職), 인턴(实习职员), 취업준비(就業準備) 중이라는 그럴싸한 표현들 속에 드리운 가난의 그림자는 정말 가난과는 무관한 것일까. 불안정한 직장에 나가는 아들의 결혼(結婚)을 코앞에 둔 지인이 요즘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인가를 실감한다고 한다. 그 지인은 연금수령자다.

 

#가난의 그림자

사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먹고사는 것을 해결한다고 해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세월 따라서 가난의 기준과 의미가 달라졌어도 가난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늘 삶의 왜곡과 소외다. 특히 가난과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은 항상 충돌(衝突)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러시아 작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만큼 잘 보여준 사람은 드물다. 그의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괴물 앞에서 무너지는 사랑과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지만 가난이 휘두르는 폭력(暴力)을 견뎌내지 못하는 가난한 연인들의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 다른 표현과 단어로 포장된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가난의 질곡(桎梏)으로 추락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작가의 진술(陳述)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가난이라는 폭력의 잔인함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등의 장편소설들을 쓴 작가다. 그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에 한 사람으로 꼽힌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가난의 수렁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깊은 내면과 영혼의 어두운 부분까지 드러내 보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탁월(卓越)함이 압도적이다. 그는 당시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한번 추락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적 가난을 구체적으로 묘사(描寫)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 데도 의지 할 곳이 없는 고아 소녀 바르바라와 이 소녀를 사랑하는 가난한 관리 마까르의 절실한 사랑 이야기다. 가난이 사랑을 파괴하는 잔인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폭력의 잔인(殘忍)함에 사랑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말한다. 마까르는 오갈 데 없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바르바라를 열렬히 사랑하고 이 사랑을 위해서라면 마지막 남은 물건까지 파는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혼자 살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월급(月給)을 받지만 바르바라를 가까이에서 보살피기 위해서 하숙집 부엌에 딸린 싸구려 칸막이 방으로 기꺼이 이사를 한다. 자신은 입을만한 변변한 옷 한 가지도 없지만 바르바라를 위해서는 무리를 해가면서 넉넉하게 옷도 사고 꽃과 사탕까지 선물한다. 이런 사랑은 오래 지속되기에는 참 구질구질하고 찌질하게 보인다. 서로 주고받던 편지에는 늘 돈에 관한 이야기다. 이 사랑은 애초부터 지켜질 수 없는 사랑이다. 결국 예상대로 바르바라는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돈 때문에 이별하고 배신(背信)하고 헤어지는 연인들의 모습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가난은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가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고통보다는 가난이 어떻게 삶을 왜곡하고 파괴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직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포기해야 할 때 마까르는 저는 오로지 당신 한 사람만을 위해 살았습니다.”라고 절망(絶望)한다. 마까르의 절망은 사랑을 통해서 발견한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공허와 무의미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는 바르바라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자신이 발전하고 성숙하며 이웃과 관계를 맺고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는 의미(意味)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록 가난하지만 바르바라와의 사랑을 위해서 더 나은 사람, 더 현명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바르바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책을 읽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글 쓰는 능력도 늘려간다. 이 모든 노력에도 마까르는 가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떠나는 바르바라를 붙잡을 수 없다. 가난하더라도 심장만큼은 저도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을 것이라는그의 믿음 또한 헛된 망상(妄想)과 희망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바르바라에게는 사랑을 잃고 받는 고통보다는 가난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만이 바르바라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모를 리도 없다. 이런 절박함에 대해서 바르바라는 이렇게 말한다. “불행은 전염병입니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전염(傳染)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 말에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날카로운 비판이 들어있다.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의 대부분의 가난은 구조적(構造的)인 문제인 까닭이다.

 

#무분별한 경쟁이 가난 양산

마까르와 바르바라처럼 가난하지 않아도, 가난하다고 느끼도록 주변으로부터 강요당하는 강제된 가난도 있다. 잘못된 사회 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 쳐도 일상의 곳곳에서 행해지는 무분별한 경쟁(競爭)놀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양산한다. 경쟁놀이에서 낙오한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도록 강요당한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이 된다. 가난은 곧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 낙오와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하게 병적(病的)인 경쟁놀이가 바로 이상하게 고착화된 결혼문화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비용이라는 험난한 장애물(障碍物)을 넘어야 한다. 수 천 만원은 기본이고 수억에 이르는 이 엄청난 결혼비용 때문에 정작 헤어지거나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결혼이 재산(財産)의 정도를 세상에 과시하는 사치스러운 놀이가 되고, 이를 감당 못하는 사람들은 무능하고 쓸모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된다.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형벌 같은 소외감(疏外感)이다. 이런 뜻에서 설령 끼니를 굶는 가난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난은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기만(欺瞞)과 위선(僞善)으로 가득한 잔인한 놀이를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가난이라는 것의 외양만 눈에 들어왔다. 부엌 한 귀퉁이에 칸막이만을 세워 방을 만든 곳에서 하숙을 하는 마까르 제부쉬킨의 열악한 환경과 다 해진 옷’, ‘누더기 조각만 걸치고’, ‘구멍 난 신발같은 단어들로 불행한 가난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우정과 부성애(父性愛)를 내세운 사랑의 희생이 감동적이었다. 가난은 가난을 겪어본 사람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그 정도로만 이 소설을 읽었다.

 

이번에 다시 읽은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9등 서기관 마까르는 의지(依支)할 곳 하나 없는 가난하고 병약한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를 딸처럼 대하고 아끼며 그녀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다. 자신도 겨우 먹고 살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사서 보내고, 격려한다. 그러던 그는 소설의 중간 시점에서부터 갑자기 변한다.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표현하며 한탄하고 세상의 불공평(不公平)에 대한 원망을 한다. 바르바라는 마까르가 전에 보이지 않던 단점을 드러내며 흉한 모습으로 망가지고 술을 마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마까르는 아무리 아껴 살아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빚만 늘어나는 삶에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차 한 잔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울음을 터트리게 하는 가난은 집요하게 엉겨 붙고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바르바라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게 한다. 번역자 석영중의 해설에서와 같이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에서 가난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과 그들의 불안(不安), 좌절(挫折), 고통(苦痛)을 작가는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가난은 생활의 불편함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점점 사람의 영혼에 잠식해 들어가며 정신을 파멸(破滅)시킨다. 마까르와 같은 집에 살았던 가난해도 그처럼 가난할 수 없는고르쉬꼬프와 고골의 소설 외투의 주인공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그런 이유로 허무하게 죽는다.

 

러시아 소설에는 하급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들은 지금의 공무원(公務員)과 같은 신분인데도 무시당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절실히 필요한 새 외투 한 벌 해 입지 못하고 다 해진, 더 이상 천을 덧대어 수선조차 할 수 없는 실내복 같은 외투만 입고 다녀야만 했다. 이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뻬쩨르부르그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직 고귀한 자리에 오르지 못한 4만 명이 넘는 가난한 공무원의 대부분을 이루는 하급관리들은 이처럼 궁핍(窮乏)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받는 월급을 거의 식료품과 하숙비에 다 썼다. 혼자서 온전한 식권 한 장을 사는 것이 부담되어 두 세 사람이 시내에서 가장 값싼 식당의 식권(食券)을 공유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새 외투를 사거나 장화를 사기 위해서는 몇 달간 신경을 써서 저축하고 희생해야 했기에,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의 주인공이 자신의 새 외투를 도둑맞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읽고서 놀란 독자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와 고골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밤에 계단 밑에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오는 가난한 주인공에 대해 쓴 것은 사실 그대로였다. 그런 공간은 1840년대에 교육은 좀 받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일상적인 주거지(住居地)였다. -p196 ‘상트페테르부르크, W.브루스 링컨, 삼인]

 

하급관리가 받는 월급은 형편없었지만 농촌에서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출세하기 위해 수도로 몰려들었다. 1840년대에 좋은 교육을 받은 수백 명의 하급관리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부 건물에서 단지 서류 필사 서기로 일해야 했다. 정부는 이들의 재능을 활용하지 못했고, 먹고 살만한 월급을 주지도 못했다. 이르면 9월부터 내리는 눈을 다음 해 5월까지도 볼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궂은 날씨도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데 한 몫 했다. 허술한 옷에 잘 먹지도 못한 그들이 춥고 질퍽한 도시를 몇 시간만 돌아다녀도 감기가 들기 일쑤이며, 며칠간 앓아누워야 했다. 생활비(生活費)의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은 아무리 아껴가며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것이 러시아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은 출간(出刊)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好評)을 받았다.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간 작가가 그나마 가장 평화로운 시기에 쓴 작품이다. 하급관리 마까르가 사랑하는 사람인 바르바라와 주고받는 편지의 형식(形式)이며 중간에 짧은 바르바라의 수기가 들어 있다. 서한체 소설이기 때문에 사실 바르바라와 마까르의 관계를 확실히는 알 수 없다. “순수한 부성애”, “당신은 저의 사랑스런 딸이에요!”, “우정이라는 표현으로 보면 마까르가 바르바라의 후원자일 수 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은 결코 무분별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안다면의 문장으로 본다면 두 사람은 연인관계이다.

 

두 사람은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친절하다.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尊重)한다. 마까르는 바르바라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그녀를 사랑한다. 마까르보다 더 지적이고 교양(敎養)이 있는 바르바라는 더 정확한 사회를 인식시키기 위해 그를 뿌쉬낀과 고골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녀가 그에게 보내준 책은 벨낀 이야기외투이다. 군주(君主)에 대한 비판에 가장 앞 선 작가가 뿌쉬낀인 것을 감안(勘案)한다면 어느 정도 도스토옙스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마까르는 벨낀 이야기중에서 역참지기에 대해서는 자신이 삼손 비린과 비슷하다며 칭찬한다. 그러나 외투는 어떤 사람의 사생활을 글로 써낸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비판한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완벽한 이해(理解)를 하지는 못했다.

 

제부쉬킨과 바르바라는 서로를 돌봐주고 산책도 가고, 연극도 보러 가지만 더 이상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가 없다. 가난이 점점 그들의 발목을 잡고 삶을 지탱(支撑)할 수 없게 만든다. 바르바라는 마음에도 없는 결혼으로 현실을 탈피(脫皮)하려 하고, 그런 그녀에게 마까르는 무기력하다. 오히려 마까르는 휘몰아치는 듯 급하게 진행되는 바르바라의 결혼식을 위해 그녀의 심부름을 하다가 앓아눕는다. 이 어이없고 웃기기도 한 상황이 기가 막히지만 미래를 저당 잡힌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다.

 

마까르가 바르바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아마 그녀에게 전달(傳達)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찢어지며, 시릴 정도로 슬픈 마음이지만, 그녀를 사지로 보낸 것 같은 심정이지만, 이 남자는 여자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다.

 

미래를 위해 현실을 포기하는 것,

사람과 사랑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가난이다.

 

[나의 소중한 바렌까, 귀여운 사람, 고귀(高貴)한 이여. 당신을 내게서 떼어 내 멀리 데려갑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고 있습니다! 차라리 내 가슴속 심장을 꺼내 갈 일이지, 어째서 당신을 내게서 떼어 놓는단 말입니까!....당신은 제가 불쌍한 거죠? 당신도 저를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그곳에선 당신의 작은 가슴이 슬프고 괴롭고 시릴 텐데요. 우수(憂愁)가 당신 심장의 피를 모두 빨아먹을 겁니다. 비애(悲哀)가 그 심장을 부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죽게 될 겁니다.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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