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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예술은 존중하지만, 인간 반 고흐는 좋아할 수가…”

글: 곽아람
세 여동생이 가족에 쓴 편지 토대… 神話 벗기고 ‘오빠 반 고흐’ 그려

 

반 고흐의 누이들|빌럼 얀 페를린던 지음|김산하 옮김|만복당|352쪽|2만5000원

“오빠는 사람에 대해 지나친 환상이 있어서 그 사람을 다 알기도 전에 먼저 판단해 버려. 그리고 사람들의 민낯을 보거나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금방 실망하고는 시들해진 꽃다발처럼 내다 버리지. 시든 꽃다발에서도 조금만 잘 다듬으면 버리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 것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1875년 4월 28일 영국 웰린, 교사 일을 하던 스무 살 네덜란드 처녀 안나가 남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안나는 영국서 함께 생활하던 오빠 빈센트에게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다. 1923년 안나는 세상을 뜬 오빠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뭐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오빠의 예술 세계는 존중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정말 좋아할 수 없어요.” 안나의 오빠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다.

반 고흐의 세 누이. 왼쪽부터 안나, 리스, 빌레민.

예술가는 대중에겐 신화(神話)이지만 그 민낯을 아는 가족에겐 그저 현실일 뿐. 그간의 반 고흐 신화에는 막역한 사이였던 남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수 통의 편지가 한몫했다. 화상(畫商)이라 형의 예술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테오와의 아름다운 교신에 가려 안나, 리스, 빌레민이라는 세 여동생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네덜란드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반 고흐의 세 누이를 추적, 이들이 가족과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를 토대로 6남매의 맏이였던 ‘오빠 반 고흐’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두 살 아래의 큰누이 안나는 1885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직후 반 고흐와 심하게 다퉜다. 안나는 서른둘인데도 부모에게 얹혀살며, 단정하지 못한 행동거지 때문에 목사인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하던 오빠를 용납하지 못했다.

 

“오빠가 집을 떠나 속을 덜 썩이는 게 엄마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안나의 말에 화가 난 반 고흐는 집을 뛰쳐나와 고향을 떠났다. 어머니와 누이들은 반 고흐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반 고흐의 1888년작‘에턴 정원의 추억’. 그림 맨 왼쪽 여성은 막내 여동생 빌레민을, 바로 옆 여성은 어머니를 모델로 했다. 반 고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린 이 그림을 아를의 침실에 걸어두었다. /만복당

둘째 누이 리스는 글을 썼다. 그가 낸 시집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반 고흐 사후인 1910년 오빠에 대해 쓴 회고록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리스는 유명 화가의 여동생이자 반 고흐 가족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가끔 빈센트 오빠가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별로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빈센트 오빠가 쓴 편지에 대체로 공감하기도 어려워.” 올케 요에게는 이렇게 썼다. “빈센트 오빠의 작품이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오빠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믿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아빠와 테오 오빠의 금전적 지원에 대해서도 결코 크게 감사히 여긴 적이 없었어요. 그저 잠시 빌려 쓰는 것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사랑하는 동생아, 네 편지를 많이 기다렸는데 보내줘서 정말 고맙구나. 너한테 계속 편지를 쓰고 싶거나 너한테 편지를 써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기 어려웠거든. 편지에서 네가 겪었다고 언급한, 지금 내가 다시 경험하고 있는 이 우울한 상태일 때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처럼 기질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지탱하는 데에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야.”

 

빈센트 반 고흐는 1888년 6월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나흘에 걸쳐 이 편지를 썼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테오가 아니었다. 막내 여동생 빌레민(애칭 빌)이었다.

 

아홉 살 아래인 빌은 세 누이 중 반 고흐와 가장 가까웠다. 둘 다 사회의 관습에 저항했고, 종교·미술·문학에 심취했다. 독신이었고, 정신 질환을 앓았다. 반 고흐는 1887년 10월 파리에서 빌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책을 쓰거나,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생명력이 있는 그림을 그리든가 하려면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독서광이었던 반 고흐는 빌에게 해리엇 스토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휘트먼의 시를 읽어보라 권했다. 그림을 즐겨 선물했고, 빌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언젠가 정말이지 네 초상화를 그려보고 싶구나.” 타계하기 한 달 전인 1890년 6월 빌에게 보낸 편지에 남긴 말이다. 빌은 간호사와 교사로 활발히 일했고, 네덜란드 페미니즘 1세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말년은 참담했다. 1941년 눈을 감기 전까지 38년간 정신병원에 있었다. 가족들은 반 고흐가 빌에게 준 작품을 팔아 병원비를 댔다.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오해하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복잡미묘한 관계를 숙고하게 하는 책이다. 오빠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못마땅해하고, 애틋해하면서도 못 견뎌하는 개성 강한 세 자매…. 이들 역시 ‘반 고흐’다.

 

조선일보 문화·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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