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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 대벌레, 우린 '징그러운' 벌레를 혐오할 자격이 있을까?

[프레시안 books]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정부희 우리곤충연구소 소장

글: 이상현 기자 
최근 서울 곳곳에 대량으로 발생해 사람들을 기겁하게 했던 '러브버그'나 2020년 공원 정자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대벌레까지. 보통 사람들은 벌레를 징그러운 존재로만 여긴다. 더 나아가 벌레는 민원의 대상이고, 살충제를 사용한 토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벌레는 죄가 없다"라고 말하는 곤충학자가 있다. '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벌레박사 정부희(60) 우리곤충연구소 소장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익충과 해충'의 구도도 곤충보다 한참 늦게 지구상에 나타난 인간의 자의적인 관점일 뿐이다.

곤충이 실제로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는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적다. 지금까지 기록된 150만 종의 동물 중 100만 종 이상을 차지하는 곤충을 피하기만 하면서 살아가는 일도 불가능하다. 어디에 살든지, 눈에 밟히는 게 곤충이다.

정 소장은 "곤충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꾸준히 미기록종과 신종을 발표하고, 곤충학 입문서인 <정부희 곤충학 강의> 등 한국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정 소장은 벌레를 바라보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마음이 담긴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동녘)을 출간한 정 소장을 11일 올림픽공원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책에는 마흔의 나이로 대학원에 입학한 여성 연구자의 여정이 담겼다. 벌레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마음도 덤이다. 

▲ 서울 곳곳에 '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하자 지자체는 대대적인 방역에 나섰다. 우리곤충연구소 정부희 소장은 "벌레는 죄가 없다"라고 말한다. 정 소장은 벌레를 바라보는 마음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존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벌레를 사랑하던 어린 시절은 어디 갔을까

정 소장에게 벌레는 "늘 공기처럼 머무르고 있어서 호불호 자체가 없는" 이들이었다. 전기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 자랐던 정 소장의 집에는 작은 불빛에도 벌레들이 흘러들어왔다. 마당에도, 마루에도, 심지어 방에도. 벌레는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다. 

"전깃불이 없으니까 석유를 넣는 램프등을 처마 끝에 매달아 놨어요. 그것도 불빛이라고 정말 많은 벌레가 찾아왔어요. 사슴벌레부터 물방개까지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도 찾아왔죠. 마루에 평상깔고 밥 먹을 때 국에도 벌레들이 떨어지곤 했어요.(웃음) 그러면 그냥 젓가락으로 빼고 다시 먹는 거죠. 그게 일상생활이었어요.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같이 살았던 거죠. 항상 내 옆에 있는 공기 같은 존재니까요." 

그렇게 벌레와 함께했던 유년생활이지만 곤충을 공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공부하는 게 좋았고, 영어 선생님이 되려고 영어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러다 두 자녀를 낳았다. 

자녀들과 함께 자연을 돌아다녔다. 유적지를 찾아가고 나무, 꽃을 관찰했다. 자연을 돌아다니니 다시 벌레가 보였다. 이름도 모르는 곤충들이 대부분이었다. 

곤충 도감도 별로 없던 시기다. 있더라도 외국 곤충 위주였다. 어린 시절 필독 도서인 '파브르 곤충기'만해도 그렇다. 프랑스 곤충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했다. 외국의 곤충도감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곤충들이 많았지만 자료가 없었다.

정 소장은 곤충의 이름이 궁금했다고 말한다. "보면 볼수록 귀엽고 신비롭고 앙증맞은 곤충"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곤충분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이 마흔이었다.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걸 안 좋아하지만 저는 그렇게 나눠진 사회에서 자랐어요. 소위 말하는 '태생적인 문과'였죠. 그런데 곤충들을 볼수록 너무 궁금한 거예요. 얘가 누구고,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했어요. 일종의 학구열이죠. 

자료가 없었어요. 아마도 지금만큼의 자료가 있더라면 굳이 대학원까지는 안 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자료도 많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곤충을 알고 싶은 욕구가 충족이 안 되니까 결국 대학원에 가게 됐죠." 

▲하루살이를 채집·관찰하고 있는 정 소장. 정 소장은 사랑에 빠진 곤충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정부희

매일 울던 여성 연구자에서 나만의 연구실을 가지기까지 

그렇게 곤충분류학자의 길을 걸었다. 문과 출신, 만학도로서 학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제3지대 곤충학자"였다. 특히 두 자녀를 키우는 여성 연구자이기도 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동료와 달리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녀에 대해서 묻는 이들이 많았다. 

"회의 끝난 후에 정 박사님께 물어봐야겠어요. 언제 살림하고, 언제 아이 돌보고, 언제 이 많은 연구를 하는지 말이에요."

참가자들은 박장대소했지만 나는 불쾌했다.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161p) 

정 소장 또한 초조한 마음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계에서 보는 시각도 그렇지만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다는 마음에 스스로 불안감이 들었다. 대학원 입학 전 인생의 대부분을 자녀에게 쏟아부었다고 말할 만큼 긴 시간을 자녀와 보냈다. 대학원 입학 후에는 학업에 치여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그만큼 줄었다. 자녀 양육이라는 굴레가 죄책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들 둘이 있는데요. 제 인생의 거의 전부였어요. 아이들을 손에서 놓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어요. 오래 고민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로도 많이 힘들어서 울었어요. 내가 이기적인 것 같아 보이고 죄인이라는 생각이 컸죠. 아이들이나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어도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곤충의 생태를 담은 책이 아닌 벌레를 사랑하는 여성 연구자로서의 마음을 담은 책을 내게 된 이유도 그렇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싶었다.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현실적으로 공부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다 해내는 그런 슈퍼우먼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롤모델은 될 수 없겠지만 여성 후배들한테 이렇게 간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자신이 더 행복한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돌보는 게 더 중요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 길로 가면 되고,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면 그 길을 가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문과 출신, 만학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정 소장은 진짜 하고 싶었던 연구를 계속 하기 위해서 경기도 양평에 작은 연구소를 마련했다. 연구소 앞 꽃들은 '곤충의 밥상'이 되고 정 소장의 연구장소가 된다. ⓒ정부희

우여곡절 끝에 박사까지 취득했다. 제안이 온 곳도 있었지만 제도권 학계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연구소를 차렸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우리곤충연구소다. 정 소장은 여전히 곤충들을 위한 정원을 꾸리고, 채집을 나가 국내 신종·미기록종 곤충들을 만난다. 또 대중을 위한 곤충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곤충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보면 부모보다 곤충을 더 잘 알아요. 관심도 있고 지식도 많아요. 근데 어느 순간 '사회화'가 되면서 그게 다 사라지거나 변해요. 

제가 직접 본 이야기인데요. 아이하고 부모랑 수목원에 체험학습을 와서 막 보다가 아이가 개미들이 소나무 밑둥에 있는걸 보고 "꺅" 소리를 질러요. 그러면 부모는 관리실에 전화해서 개미가 많으니 살충제를 치자고 말해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다리도 많고 털도 있는 생김새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요. 결국 인식 전환을 해나가야죠. 우리는 곤충과 공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곤충학자들이 노력해야죠. 살충제라는 단순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곤충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곤충이라는 우주가 무너지고 있다 

곤충을 알게 되면 곤충을 대하는 태도도 변할 수 있다. 징그럽다고 박멸하는게 아니라 공존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종 다양성이라는 생태계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가는 요즘에는 곤충을 관찰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도심의 곤충 대발생과 꿀벌 실종사태 등 곤충을 둘러싼 일들은 기후변화의 증거이기도 하다고 정 소장은 말한다.

"기후변화와 사람의 간섭. 그 쌍두마차가 곤충을 사라지게 하기도, 대발생을 일으키기도 해요.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보통 곤충의 서식지가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말하는데요. 이건 곤충들이 점점 올라가서 생활한다기보다는, 산 정상이나 북쪽에서 살아가는 곤충들만 살아남고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제주도에 서식하는 살굴뚝나비의 경우 한라산에서만 발견이 돼요. 제주도에서 제일 시원한 곳에서만 살아가고 나머지는 다 죽은 거죠. 고립되는 거예요. 

아열대 종 같은 경우는 계속 국내로 들어와서 살아남아요. 이게 외래종이거든요. 그냥 기후가 잘 맞아서 살아남았을 뿐인데 교란종이라는 이유로 몰살되기도 하죠. 결국 추운데서 살아가는 곤충은 사라지고 따뜻한 곳에서 사는 곤충은 늘어나요. 종의 균형이 무너지는 거죠. 

종의 균형이 무너지면 생태계가 자연적으로 복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의 간섭이 그걸 막고 있어요. 예컨대 곤충이 대발생했다고 살충제를 뿌려버리면 목표했던 곤충뿐만이 아니라 식물도 다 죽어요. 그러면 또 곤충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더 줄어들어요." 

▲대벌레 모습. 과거 도심 속 대발생으로 민원이 폭주했던 대벌레지만 실제로는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던 종이었다. 정 소장은 민원을 이유로 살충제를 뿌리면 결국 곤충의 서식지와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Wikimedia

정 소장은 곤충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러브버그와 같은 곤충 대발생이 오히려 신기하다고 말했다. 2020년 도심 속 공원에 나타나 '징그럽다'는 민원이 폭주한 대벌레 같은 경우는 원래 관측되는 개체수가 줄어들던 종이었다. 민원을 이유로 살충제를 뿌려버리면 다시 서식지가 파괴되고 생태계의 복원력이 약해질 수 있다.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이라고 표현했잖아요. 곤충도 마찬가지예요. 매년 그 수가 줄고 있어요. 이번에 제주도 곶자왈을 다녀왔는데 그곳은 '침묵'이었어요. 원래는 제가 연구하는 대왕거저리만 해도 엄청 많은 곳이거든요. 기후 문제도 있겠지만 산책로를 만든다고 사람이 살충제를 뿌리면서 그 수가 줄고 있는 거 같아요.

저만 느끼는 현상은 아닐 거예요. 채집을 나가면 어디서든 작년보다도 종, 개체 수가 줄어든 게 느껴져요. 5년 전과 비교했을 때는 2~3배 차이가 나요. 그러니 러브버그나 대벌레의 대발생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 소장은 "곤충의 세계에 반 발짝만  들여 놓아도 다른 세상이 열린다"라고 말한다. 벌레를 바라보는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곤충 멍'이다.  ⓒ프레시안(이상현)

불멍·숲멍·물멍말고 곤충 멍 해보실래요? 

정 소장은 결국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고 싶어도 보기 싫어도 눈에 띄는" 벌레를 바라보는 마음을 바꾸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이다. 정 소장은 그 방법의 하나로 '곤충 멍'을 제안한다. 불에 타는 나무를 보면서 멍때리는 '불멍'처럼, 잠시 가만히 앉아서 곤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걷다가 곤충이 눈에 보이면 그 자리에 멈춰요. 그리고 그냥 한없이 바라보면 돼요. 잘 보면 벌레들이 더듬이를 막 휘저을 때도 있고 짝짓기를 하려고 할 때도 있거든요. 곤충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얘들이 구애작전을 하면 그게 느껴져요. 사냥을 하는 곤충이나 밥 먹고 멍때리는 곤충, 아니면 자기 몸을 청소하는 애들을 보면 돼요. 그렇게 관찰하다가 궁금한 마음이 들기만 해도 대성공입니다. 관련해서 책을 읽어봐도 되고, 조금 더 나아가면 연구를 해봐도 돼요." 

아쉽게도 도심 속 공원은 살충제 살포가 심해 다양한 벌레를 만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썩은 나무도 곤충과 애벌레들에게는 최적의 서식지지만 금세 치워진다. 정 소장은 그럼에도 "어느 장소든 조금만 멈추면 곤충은 보인다"라고 말한다. 특히 산책길에 흔히 있는 버드나무는 버드나무만 찾아오는 곤충이 많을 정도로 "큰 우주"라고 말한다. 발밑의 우주를 보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벌레박사 정 소장의 말처럼 다른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정부희 지음)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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