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민주당은 2022년 11월 중간 선거에서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며,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의회 주도권을 공화당에 빼앗긴 뒤 남은 임기 동안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24년 미국 대선의 향배가 중요한 것은 아슬아슬하게 멈춰진 파괴적 동력이 계속 갈 것이냐, 아니면 조금 더 강한 힘으로 저지당할 것이냐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후보로 트럼프가 다시 등장한다면, 그는 '제2의 선거 쿠데타'를 기획할 것이며, 이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힘들다."(<아노크라시> 181쪽)
'새빨간 거짓말'로 만든 세상
바이든의 민주주의냐. 트럼프의 민주주의냐. 미국 민주주의가 또다시 갈림길에 선 가운데 주목할 책이 나왔다. 전홍기혜 기자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2년 6개월간 특파원 생활을 하며 취재하고 경험하고 사유한 기록물 <아노크라시(Anocracy)>(숨쉬는책공장 펴냄)가 그것이다.
기자가 한국에서 짐을 꾸릴 때만 해도 "한 세기 만에 찾아온 감염병 사태"를 맞게 될 줄 몰랐다. 팬데믹으로, 특파원 임기 중 가장 큰 임무였던 2020년 대선 취재 일정도 꼬였다. 바이러스는 소수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자양분 삼아 빠르게 퍼졌으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LivesMatter)'는 외침 또한 전역에 확산됐다.
트럼프는 차기 대선이 치러지기 전부터 선거 불복 움직임을 보이며 '공작 정치의 달인'으로 불리는 측근을 사면했다. "때문에 워싱턴 정가는 음모론에 가까운 시나리오들이 난무했다." 혼돈의 시간을 거쳐 최종 승자가 확정됐지만, 트럼프는 결과에 승복하기는커녕 뒤집기를 시도하며 무차별적 소송전을 이어갔다.
그렇게 그날이 왔다. 2021년 1월 6일, 자신의 표를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고 건물의 일부를 점령했다. 전날 '의회로 가라'며 사람들을 선동한 트럼프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당부한 뒤에야 폭동은 끝났다. 미국 민주주의가 약탈당한 시간은 187분, 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취임식에 불참하고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 리조트로 갔다. 전임 대통령이 후임의 취임식에 불참하는 것은 1869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 이후 15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통령 트럼프의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재임에 실패한 11번째 대통령이자 두 번의 대선에서 두 번 모두 대중 투표에서 진 최초의 대통령이다. 또 미국 역사상 최초로 두 번 탄핵 소추된 대통령이다.
기자는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분노와 이에 기반한 증오"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빅 라이(Big Lie, 새빨간 거짓말)'는 분노와 증오를 추동했고,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창궐했다.
트럼프의 '킹 메이커' 역할을 한 <폭스뉴스>는 코로나19 가짜뉴스 확산에도 일조했다. 특히 음모론 집단 '큐어넌(Qanan)'은 선거를 통해 주류사회에 진입, 연방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총기 규제에 반대하며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섰다.
트럼프는 '원인' 아닌 '결과', '진짜 재난'은 아직…
"마스크 착용 거부, 백신 접종 거부 등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아시안 증오 범죄,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에 이르기까지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미국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극우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럼프의 이름을 딴 '트럼피즘'으로 불렸던 정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자부심을 훼손하는 진짜 재난이었다."(9쪽)
기자는 트럼프 4년에 대해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의 자부심을 훼손"한 "진짜 재난"이라고 말한다. 특히 1.6 의회 폭동 참가자 다수가 "평범한 미국 백인들"이라는 사실은 재난의 심각성을 더한다.
"시카고대학교 로버트 페이지 교수는 의회 폭동 가담자들은 흔히 생각하듯 "외로운 늑대(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나 "'프라우드 보이' 등 극우 폭력 조직원"만이 아니라 다수가 "가정과 직장이 있는 평범한 백인들"이라고 밝혔다. 기소된 이들의 90% 이상이 인종적으로는 백인이며, 성별로는 남성이었다.
(중략)
이런 사실은 정치인 트럼프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극우적 이데올로기는 트럼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미국 보수 세력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회문화적 가치들이 특정 정치인 내지는 정치 세력을 만나 극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트럼프가 없는 트럼피즘'이 얼마든지 작동 가능하다는 사실은 바이든 집권 후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기와 같은 연방대법원의 우경화를 통해 목격되고 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론 디샌티스 등 극우성향의 '대타'를 통해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의 실행을 꾀할 수도 있다."(96쪽)
미국 사회 저변에 자리한 극우적 이데올로기는 중간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민주당을 위협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의 지지율은 40%로(10월 3~23일 조사) 직전 중간선거가 있었던 2018년 트럼프 지지율 41%보다도 낮다. 응답자의 49%는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봤으며, 17%만이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 美중간선거 직전 바이든 지지율 역대 최저 수준…위기의 민주당)
현지 언론은 민주당이 이번 선거 과정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데 따른 임신중지권 보호와 총기 규제 등 사회 문제에 집중하면서 경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바이든 역시 최근 플로리다 주지사 후보 지원 연설에서 공화당 소속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디샌티스를 "트럼프의 화신"이라고 비난하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했다.
기자가 2019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경험한 워싱턴D.C.는 재난의 현장이었다.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 중간의 무질서를 의미하는 아노크라시(Anocracy) 상태"에서 재난 현장은 제대로 진화되지 않았다. 기자의 표현대로, "파괴적 동력"이 아슬아슬하게 멈췄을 뿐.
아시안 증오 범죄 급증에 따른 인종주의는 더 강해졌으며 총기 문화 영향으로 크리스마스에 '탄약'을 선물 받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 등 다양성 교육을 거부하는 성난 학부모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고 여성의 몸은 여전히 '통제'의 영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