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시선이 러시아의 선택에 모여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벨라루스에 핵무기 배치를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이미 벨라루스 정부와 이에 관해 합의했고 7월 1일까지 핵무기 저장시설을 완공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군용기 10대도 이미 벨라루스에 주둔시켰다고 밝혔다.
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가 국외에 핵무기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할 경우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상당한 파장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목해야 할 움직임은 또 있다. 미국이 나토 회원국에 신형 전술핵을 배치할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현재 나토 회원국인 독일과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에 구형 전술핵인 B61를 배치해놓고 있는데, 이들 무기를 신형 전술핵인 B61-12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부터 B61-12 개발에 착수한 미국은 2020년대 초반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해 현재에는 약 500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B61-12를 '스마트 핵폭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러한 별명에는 군사적 효율성은 극대화하면서 부수적 피해와 방사능 오염은 최소화해 미국의 핵 공격 옵션을 다양화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각종 전투기와 전략폭격기에 탑재할 수 있는 이 전술핵은 정밀유도 장치를 통해 정확도를 크게 높여 적대국의 핵무기 보유고와 같은 주요 군사 시설, 특히 지하화된 시설을 타격하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러시아가 7월 1일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힌 벨라루스의 핵무기 저장시설이 1차적인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전술핵 배치 움직임이 맞물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의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는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이고 미국의 B61-12 유럽 배치도 극비리에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는 구형 전술핵을 신형으로 대체하려는 "현대화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전황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미국이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두려는 움직임을 중단하지 않으면, 유럽의 핵위기도 피할 수 없게 된다. 60여 년 전 미국이 튀르키예에,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을 초래했던 상황이 유럽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나토 회원국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러한 벨라루스에 러시아의 핵무기가 전진배치되면 폴란드 등 나토 회원국도 미국의 전술핵 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럽 핵위기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매우 흡사하게 전개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책임 있는 핵보유국"을 자처해온 미국과 러시아는 전술핵을 앞세운 '힘의 과시'를 자제하고 '쌍중단'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핵무기 교체 프로그램을, 러시아는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 계획을 유보하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핵무기'로 불리는 전술핵은 핵전쟁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기에 '가장 위험한 무기'이다. 대량살상을 야기하지 않고도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전술핵에 대한 미신과 상대방의 핵사용 문턱이 낮아졌다며 핵보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은 핵무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