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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회사, 자본을 알고 싶은가? 이 책을 보라!

 

▲ <어나더 경제사>(홍기빈 지음) ⓒ시월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기사입력 2023.07.19. 05:29:16

[장석준 칼럼] <어나더 경제사> 1·2(홍기빈 지음)를 읽고

돈(화폐), 회사(기업), 자본….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들이다. 그래서 다들 그 뜻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돈이 무엇이요?'라고 묻는다면, 뜸 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회사'도 그렇고, '자본'도 그렇다. 뭔가가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하지만, 줄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말들인데도 그렇다.

일상어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경제학 개론' 같은 책들을 나름 공부하고 난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책에서 읽고 받아들인 설명을 불변의 상식이라 여기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두 세기쯤 전 이야기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화폐는 물물교환 과정에서 진화한 산물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대학교 경제학 교재에도 그렇게 씌어 있었고, 심지어는 카를 마르크스도 <자본> 1권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설명을 했다. 그러니 좌파와 우파가 다 같이 인정하는 희귀한 진리라 여겨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를 읽고 나서 이 믿음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현대 고고학 연구 성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폐의 기원은 물물교환과는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채무 관계와 연관이 깊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가장 기초적인 경제 관념들을 둘러싼 우리의 이해는 일상어뿐만 아니라 교과서 수준에서도 혼란스럽고 일면적이기만 하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이후 그런 경제 관념들을 명석하게 이해하지 않고는 도무지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그러하다. 

 

물론 이런 암흑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외국어로 된 낯선 고전과 최신 연구 성과를 뒤적여야 하겠지만, 이것은 생활인에게는 꿈만 같은 도전이다. 게다가 대다수 한국 대학 교수나 지식인은 이런 작업을 떠맡기는커녕 대세에 휩쓸리면서 역시 암흑 속에서 헤맬 뿐이다. 

 

다만, 이런 혼돈 속에서도 누군가는 동료 시민들의 경제 상식에 새롭게 빛을 밝히려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했다. 팬데믹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낡은 질서와 독단에 맞서 최근 드디어 그 작업의 첫 결실이 세상에 나왔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의 <어나더 경제사> 1, 2권(시월, 2023)이다. 

 

너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 단점인 경제사 

<어나더 경제사>는 제목 그대로 경제사다. 무려 구석기 채집 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인류의 경제적 여정을 그려나간다. '자본주의'라는 부제가 붙은 제1권은 중상주의 시대까지를 다루며, '산업문명'이 부제인 제2권은 제1차 산업혁명부터 20세기 말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작까지를 짚는다. 

 

그리고 제3권이 있다. 이번에는 1, 2권이 우선 나왔고, 내년에 3권이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지구적 시스템'을 부제로 달 3권은 바로 우리 시대, 즉 21세기 초의 세계를 정리할 계획이다. 1, 2권이 각각 390쪽, 350쪽이니 3권도 이 정도 분량일 것을 감안하면, <어나더 경제사> 전체는 1000쪽이 훨씬 넘는 대작이 될 것이다. 

 

'경제사'에다 '대작'이라고 하니 듣기만 해도 아득해질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도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것은 이 책의 진상과는 정반대되는 오해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다. 진도가 빨리 나가다 보니 자칫 '숲'을 놓치고 '나무들'만 기억에 남기 쉽다. 

 

우선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설명이 쏟아진다. 책을 펼칠 때마다, 고대 사회에서는 현대인이 당연시하는 교환보다는 선물이나 재분배가 더 중요한 경제 행위였다는 사실, 수천 년 전 고대 도시에서 이미 현대 도시의 궁지나 고뇌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연, 21세기 경제학자보다 더 지혜롭게 인간 경제 생활의 진실을 꿰뚫어 본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 등등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잇달아 등장한다. 2권 끝까지 계속 이런 식이다.

 

게다가 이런 대량의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전하는 필치가 전혀 현학적이지 않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나 용어가 많아 눈이 어지러울 수는 있어도 경제학 서적에서 흔히 보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문장과 만날 일은 없다. 문체는 동료 시민에게 건네는 입말에 가깝고, 역사의 각 장면은 하나같이 그 시절 보통사람들이 먹고 입고 자며 살아가던 이야기로 다가온다. <삼국지> 등장인물 수에 버금갈 수많은 사상가들의 주장과 견해를 그런 친근한 언어와 맥락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어나더 경제사>를 이렇게 무협지처럼 읽어 내려가다 보니, 저자가 숱한 주제와 사건을 검토하며 구축해 가는 커다란 체계를 그만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권의 부제는 허투루 달린 게 아니었다. 이것은 쉴 새 없이 달려 나간 첫 번째 독서 뒤에 각 권의 서문과 결론 내용을 곱씹으며 두 번째 독서를 시작하자 분명해졌다.

 

<어나더 경제사> 1권 '자본주의'는, 현대 경제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여전히 시원하게 해명되지 못하고 있는 화폐의 발전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한다. 화폐를 둘러싼 기존 경제학설이 실제 역사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현대 화폐의 여러 기능이 각기 다른 기원에서 비롯되어 유럽 상업 경제의 전 지구적 팽창을 통해 합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통상의 경제사가 대개 조역 정도로나 다루는 근대 국가권력의 성장을 함께 짚는다.

 

화폐와 권력, 이 둘은 1권 말미에서 드디어 하나로 결합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본'이라는 새로운 주인공과 정면으로 마주하기에 이른다. 자본,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러나 <어나더 경제사>에서 만나는 자본의 모습은 새삼 선명하다. 예전 어떤 책에서 접한 것보다 더 해상도가 높은 자본의 실상이 독자를 기다린다.

 

자본은 권력과 화폐의 결합이다 

'자본'이라고 하면, 자본가들이 투자한 기계 설비 따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학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학 교과서는 토지 이외에 생산에 사용되는 재화를 '자본재'라 부르며, 기업 이윤이 자본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자본재 투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한다. 

 

한동안 이런 식 설명만 횡행하던 남한에도 20세기 말에 마르크스의 <자본>이 다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 고전을 뒤늦게 학습하면서, 아니 더 정확히는 그 대중적 소개서들을 접하면서 어느덧 한국 사회에도 자본은 '자기 증식하는 가치'라는 규정이 널리 알려졌다.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이런 자기 증식 과정 이면에 자본과 임금노동의 계급관계가 있음을 밝혔고, 그래서 자본은 이제 사회관계와 동떨어진 생산요소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본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애매한 데가 있다. 마르크스 자신이 제1차 산업혁명의 현장이던 영국 사회를 <자본> 1권의 무대로 삼은 탓에 '자본'은 계속 자본가들의 생산 투자와 뒤얽혀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자본>이 해명했다는 자본의 속성에 여전히 빈 구석이 남게 된다. 끊임없이 자본을 움직이는 "축적하라, 축적하라"는 지상명령은 뭔가 미완의 문장으로 다가오며,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명제도 과연 '극대화'의 기준이 무엇인지 새로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어나더 경제사> 1권에서 홍기빈은 17세기에 꼴을 갖춘 최초의 자본주의 체제를 해부한 뒤에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한 전혀 다른 출발점을 제시한다. 경제학자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자본은 경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뜻밖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럼 자본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본은 권력 현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화폐와 하나로 결합된 근대적 권력이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차등화에 바탕을 둔다. 저들보다 내가 더 막강한 폭력을 지니거나 더 많은 땅을 지배해야 한다. 근대 유럽에서는 이 차등화를 측정할 합리적 수단이 등장했다. 화폐가 권력의 크기를 측정하고 표현하는 최적의 형식으로 부상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사회에서는 '어느 만큼의 화폐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어나더 경제사> 1권, 382쪽)를 놓고 권력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쟁 주자는 화폐와 일체화한 권력이었으니, 바로 자본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번에 이런 반문이 나올 것이다. 이것은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중상주의 단계에나 적합한 설명이 아닌가? 자본이 아직 상업과 금융업만을 맴돌던 시기에 한정되는 정리가 아닌가? 

 

물론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그 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원격무역에 투자하던 자금을 최신 기계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노동자나 여타 계급들과 맺는 사회관계를 축적 과정에 끌어들였으며, 여기에서 비롯된 여러 심각한 문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전에 없던 사회 제도들을 창안했다. 그리하여 <어나더 경제사> 2권이 집중 분석하는 산업문명이 인류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전에 확립된 자본의 근본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축적하라, 축적하라'는 지상명령에서 빠진 것은 다름 아니라 '경쟁 자본보다 더 많이'라는 문구다. 이 '더 많이'라는 요청을 충족하는 만큼 이윤은 '극대화'되어야 한다. 자본의 외양은 공장주와 그에게 투자한 은행가 무리로 바뀌었지만, '권력 + 화폐'라는 자본의 속성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산업이라는 새로운 수단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자본은 여전히 다른 자본에 대한 차등화 축적을 통해 권력을 확인하고 유지했다. 

 

자본이 산업문명을 촉발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산업 자체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점은 산업문명이 보다 원숙해진 시점, 즉 제2차 산업혁명 시기에 분명히 드러났다. 이 무렵 최첨단 중화학공업을 담당하는 거대 기업을 뒷받침할 새로운 제도, 즉 자산시장이 대두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은 다시금 노골적으로 '어느 만큼의 화폐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어나더 경제사> 2권은 이렇게 정리한다.

 

"이런 과정[19세기 말 금융자본주의 부상-인용자]을 거치면서 '자본의 가치'라는 의미도 완전히 변화하게 됩니다. (중략) 그 회사가 소유한 물품의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그 회사가 미래에 얼마나 큰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지, 이를 현재 가치로 할인한 '자산가치'가 얼마인지, 이에 대한 자본시장에서의 평가로 나타나는 '시가총액'이 얼마인지 등으로 바뀌게 됩니다. 마르크스와 같은 이는 <자본론> 3권에서 이 후자의 의미로서의 자본을 '허구적 자본'이라 부르며 의미를 폄하하려고 했지만, 그가 죽은 1883년 이후의 세계에서는 이 … 의미의 자본 가치가 지배적인 의미가 [됩니다.] 이를 누누이 강조했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소스타인 베블런을 들 수 있습니다." (<어나더 경제사> 2권, 182쪽)

 

요컨대 자본이 '권력 + 화폐'라는 정식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자본주의가 원숙기에 접어드는 시점에 더 들어맞는다. 19세기 말에 부상한 금융자본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거친 지금 우리 시대에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어나더 경제사> 1권과 2권에 각각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라는 부제를 붙이며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을 따로 떼어놓은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대다수 시민이 일상에서 둘을 동일시하며, 실제로 자본주의가 산업문명을 탄생시키는 데 앞장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둘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도 자본주의는 한편으로는 산업문명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끊임없이 긴장을 빚고 충돌하며 인간 사회 전체를 미지의 세계로 떠밀고 있다.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의 복잡한 뒤얽힘이 최근까지 인간 사회를 떠밀어 온 궤적이 바로 <어나더 경제사> 3권이 규명하기로 예정된 '지구적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의 분석에서 보여준 신선한 시각이 과연 난마와 같은 현 상황에 어떠한 새로운 빛을 비춰줄 수 있을까? 벌써부터 <어나더 경제사> 3권의 출간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3권 '지구적 시스템'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풀어낸 이야기는 <어나더 경제사> 1, 2권 내용 중 극히 일부에 대한 '조야한' 정리일 뿐이다. 책을 두 번째로 읽으며 뒤늦게 이 대안적 경제사의 골격을 확인해 가는 독자의 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많은 이가 이 책을 발견하고 나처럼 새로운 지식과 풍부한 영감을 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야 할 때다. 기후위기, 돌봄위기, 패권충돌위기 같은 대위기가 한꺼번에 엄습하는 복합위기-다중재난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파국의 원인이라 지목되는 사회적 현실들에 대한 보다 명석한 이해다. 지금 우리 일상의 중대한 구성요소인 화폐, 기업, 산업, 자본, 국가 등등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적 준비는 여전히 한참 지체되어 있다. <어나더 경제사>는 어떻게든 이 간극을 뛰어넘고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때맞춰 당도한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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