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외입양아 가운데 미혼모 아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99.7%, 2019년 100%, 2020년 99.6%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미혼가정의 직접 양육에 대한 지원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입양아동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혼외 임신을 터부시하고, 미혼모와 자녀의 분리를 당연시하는 역사는 한국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1950-60년대 혼외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분리되며 입양 외 어떤 선택도 주어지지 않았던 '아기 퍼가기 시대'(Baby Scoop Era)가 있었다.
<아기 퍼가기 시대: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 (캐런 윌슨-부터바우 지음, 권희정 옮김)은 이런 '미국 미혼모 잔혹사'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1966년 미혼모로 갓 출산한 딸을 입양 보내야 했던 당사자이기도 했다.
다음은 역자 권희정 박사가 이 책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미국의 미혼모 억압의 역사는 우리에게 낯설다. 먼저 '아기 퍼가기 시대'란 무엇인가?
'미혼' 임산부에게 낙인을 찍고 미혼모 시설에 수용한 후 그들이 출산한 아기는 중산층 결혼한 부부에게 입양 보내고 미혼모는 교화와 갱생을 통해 다시 결혼하기 적합한 '여성'으로 만들어 사회에 복귀시키는 일이 사회복지 또는 아동복지 이름으로 실천되던 시기를 말한다.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 즉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이런 일이 일었다. 결혼하지 않고 임신한 여성들은 '미혼모'로 낙인찍혔으며,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다. 미국에서는 600만에서 1000만 명에 이르는 미혼모가, 캐나다에서는 약 35만 명의 미혼모가 입양으로 아기를 잃었다.
# 왜, 어떻게 '아기 퍼가기 시대'가 가능했나?
근대 출현한 국민국가의 과업 중 하나는 중산층 핵가족 만들기였다. 부부 중심의 핵가족으로 법과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근대적 학문으로서의 사회과학, 정신분석학 등은 결혼 제도 안에서의 임신과 출산만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이 아닌 경우 '결손' 가정으로 낙인찍었다. 그 결과 혼전 순결은 중요해졌으며 미혼 임신과 출산은 비정상, 나아가서는 정상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적 행위로까지 인식되었다. '아기 퍼가기 시대' 실천된 서구의 사회복지학은 안타깝게도 미혼모로부터 아기를 떼어 입양을 보내는 실천적 학문으로서 기능했다. '정상가족' 만들기 이면에서 미혼모는 아기를 출산했으나 '어머니'가 아닌 불우 여성이 되었으며, 미혼모의 자녀는 어머니가 있으나 '고아'가 되었다.
"1940년대 심리적 결함이 있는 미혼 여성이 사생아를 임신한다는 관점이 등장한다. 당시는 매우 성애화된 사회였으나 피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고 피임 도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시대 미혼 임신은 더 증가했다. 심리학 및 사회복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혼모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출산 후 바로 그 아기를 입양 보내는 것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 되었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이란 미혼모에 대한 관점은 미혼모와 범죄자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두 개의 신분은 마치 동의어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아기 퍼가기 시대> 본문 중에서 41-42쪽)
# 책의 출간 배경이 궁금하다
저자 캐런 윌슨-부터바우가 바로 '아기 퍼가기 시대'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미혼모 당사자다. 그녀는 1966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아기를 출산했다. 아기를 키우고 싶었지만 입양 외에는 어떤 선택지도 없었다. 30년이 지난 1996년 평생 그리워하던 딸과 재회했지만 2007년 딸은 루게릭 병으로 사망한다. 바로 그해 캐런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아기 퍼가기 시대 연구협의체'를 만들고 미혼모 낙인화가 언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하여 미혼모가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돕던 과거의 양육 중심의 지원 제도가 왜 제2차 대전 이후에는 미혼모 자녀를 대거 입양보내는 정책으로 전환되었는지 수많은 관련 서적을 읽고, 자료를 모았다. 또한 '아기 퍼가기 시대' 아기를 입양으로 잃은 여성들과 연대해 과거 잘못된 입양 관행으로 침해당한 모성권, 재생산권, 시민권, 그리고 인권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정부와 관련 기관으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한 운동을 최근까지 활발히 해왔다. 책에는 지난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저자가 수집한 수많은 자료들이 연대기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미국 '아기 퍼가기 시대'의 생존자인 미혼모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 수많은 미혼모가 미혼이라는 이유로 아기를 입양 보낸 것은 한국 사회가 경험한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한국은 1970년대 이후 입양 아동의 대부분은 미혼모의 자녀가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미국의 '아기 퍼가기 시대'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한국에서는 입양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설명이 사실처럼 유통되고 있는데, 하나는 '한국 전쟁 후 발생한 고아 구제를 위해 한국의 근대 입양이 시작되었다'는 근대 입양 기원에 관한 설명이고, 또 하나는 입양 증가는 산업화 과정의 '부작용'으로 '미혼모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거나, 핏줄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하는 설명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며 개연성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의 졸저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들의 역사』(2019, 안토니아스)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다시 간략히 정리하면 한국 전쟁 직후 근대 입양은 부계 혈연 질서를 위반했다고 여겨지는 혼혈 아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 말까지 한국 정부는 국내에 있는 '모든 혼혈 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입양 보낼 계획을 세웠고,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하에 많은 경우 심지어 어머니에게 길러지고 있던 혼혈 아동들도 대거 국외로 보냈다. 반면 비혼혈 요보호 아동들은 원가족이나 친척을 찾아 돌려보냈고 그 가정에 양곡 지원을 해서 키우도록 했다. '거택구호'로 불리던 이 정책은 1960년대 말 사라진다. 대신 미혼모의 자녀가 혼혈아동을 대체하며 주요 입양 대상 아동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모든 주요 입양 기관에서는 일제히 '미혼모 상담 사업'을 실시한다. 미혼모의 친권 포기와 입양 권유를 중심으로 한 상담이었다. 미국 '아기 퍼가기 시대'의 사회복지 실천이 국내에 들어와 미혼모 자녀의 입양이 입양기관을 중심으로 제도화된 것이다.
# 어떻게 미국의 '아기 퍼가기 시대' 사회복지가 국내에 들어오게 되었나?
그렇게 된 배경은 한국 전쟁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전쟁 후 국내에는 다양한 외원 기관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그중 유니테리언연합회(Unitarian Service Committee)는 한국 사회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사업가(지금의 사회복지사) 양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미네소타대학 사회사업대학원 원장 존 키드나이(John Kidneigh) 박사를 파견했다. 그는 서울대학교와 논의 끝에 "진정한 의미의 근대 과학"으로서의 사회사업을 교육하는 학과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그 준비 단계로 사회지원서비스 직무 경험이 있는 세 명을 선발해 미국에 유학시키고 학위를 받고 귀국하면 교수진으로 임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선발된 3인은 1955년에서 1957년까지 미네소타대학에서 수학하고 사회사업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1958년 서울대학교에 사회사업학과를 창설하고 교수진으로 임명된다. 이후 국내 사회복지학은 미국의 사회복지에 큰 영향을 받으며 발전되었다.
그런데 한국 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국내에 들여온 과학적 학문으로서의 사회복지학은 미혼 임신 여성을 시설에 수용하고, 출산 후 아기는 입양 보내고, 그 어머니는 교화시킨 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아기 퍼가기 시대'의 실천적 지식에 기초하고 있었다. "미혼모"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unwed mother"란 용어와 개념이 들어왔고, 미국의 '아기 퍼가기 시대'의 대표적 이론가의 이론이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사업 학술지에 소개되기 시작한다. 이후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는 "케이스 워커"가 등장하고 미혼모에게 아기 포기와 입양 선택을 권유하는 상담 사업을 펼친다. 바로 앞서 언급했던 1970년대 전후 입양기관이 '미혼모 상담 사업'을 도입했을 때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미혼모의 병리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더구나 빈곤하고 취약한 가정의 아이들까지도 미혼모 자녀로 둔갑되거나 고아로 신분이 세탁되어 수십만 명의 미혼모의 아기들과 함께 입양 길에 오르며 원가족과 헤어진다.
1950년대 미국의 정신과 의사 볼비는 "서구 '아기 퍼가기 시대'에 일어나는 미혼모와 자녀를 입양으로 분리하는 일은 '놀랍고도', '정상 궤도를 벗어난 일'이며, 개발 도상국에서 모방하지 않기를 바란다"(<아기 퍼가기 시대> 본문 중에서 274~275쪽)"고 말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더 놀랍고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원가족과의 분리를 전제로 한 입양이 아동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 한국 사회는 지금 영아살해, 미등록 아기 문제 등 여러 가지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등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진실과 마주하고, 과거를 성찰하고, 정의로운 미래를 건설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미혼모의 아동은 '중산층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정상' 가정에서 자랄 것이며, 미혼모는 미혼 여성으로서의 '정상적'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 (<아기 퍼가기 시대> 본문 중에서 112쪽) 속에 수십만 명의 서구의 미혼모들과 미혼모 자녀들은 입양으로 헤어졌다. 하지만 이제 서구 사회는 '아기 퍼가기 시대'를 끝내고 미혼모 재생산권의 확대, 입양 아동의 '알 권리'를 신장해 나가고 있으며, 모든 아동은 태어난 가정과 국가에서 자랄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그리고 '아기 퍼가기 시대' 미혼모와 그 자녀의 분리에 앞장섰던 사회복지사와 입양기관 그리고 몇몇 국가들은 원가족과 입양인들에게 공개 사과를 하고 있다.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그 직업의 일원으로서 그분들께 한 일을 슬프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분들을 무시하고, 강요했으며, 도덕적, 윤리적, 법적, 그리고 보살핌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사과합니다." (Ryburn 1996) (<아기 퍼가기 시대> 본문 중에서 279-280쪽)
"본 의회는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혼외 출산을 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강제적 입양이 자행되었으며, 그로 인해 야기된 고통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용납할 수 없는 입양과 돌봄 관행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미혼모에게 주거와 재정적 도움을 포함한 복지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충분한 정보에 입각해 입양 동의를 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전 정부의 태만을 인정한다." (<아기 퍼가기 시대> 본문 중에서 281-282쪽)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호출산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보호해야할 것은 미혼모나 취약한 환경에서 출산하는 여성의 신분이 아니라, 바로 여성들이 아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돌보고 보호해주어야 함을 우리는 정녕 모르는 걸까? 현재 "372명의 해외 입양인의 진실 찾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정녕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애초에 출산과 양육의 어려움에 처한 어머니와 친생가족을 보호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낙인 속에 아기를 포기해야 했던 이 땅 어딘가에 살고 있을 수많은 어머니들과 원가족 보호를 뒷전으로 했던 국가의 입양중심 정책으로 원가족의 역사와 유산을 잃어버린 입양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희망한다. 또한 더 이상 어머니의 신분 숨기기나 편의에 따라 아동을 자의적으로 배치하는 입양이 아닌, 원가족을 보호하는 건강한 복지 정책이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는데 자극제가 되길 희망한다. 학문적으로는 한국에서의 미혼모에 대한 낙인 및 미혼모 자녀의 대거 입양은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도 아니고, 핏줄을 중시한 "고질적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도 아닌, 기혼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중산층 가족 만들기라는 서구 근대화의 역사적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는 통찰을 주고 미혼모성 억압 역사를 바라보는 지평이 확장되는 데도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입양으로 인한 상실은 트라우마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희생자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트라우마이다." 키스 C. 그리피스 목사(Reverend Keith C. Griffith, MBE) (<아기 퍼가기 시대> 본문 중에서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