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해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미국 내 여론
미국 제6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 대선이 이제 1년 3개월 남짓 남았다. 아직 민주당, 공화당 양당의 공식적인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작년 11월 15일 대선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올해 4월 26일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할 일을 마무리"하겠다며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일찍부터 대선 레이스에 불이 붙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최근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관계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을 군사적, 경제적 위협으로 바라보는 미국 대중들의 시각 때문이다.
올해 3월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응답자 가운데 단 15%만이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45%는 매우 부정적, 그리고 39%는 대체로 부정적이라고 응답하여, 사실상 미국 성인 10명 가운데 8명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같은 설문에서 미국인의 66%가 중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64%가 경제적 위협으로 지목하여 부정적 인식의 원인이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시각 때문임을 보여주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지지하는 정당과 관계없이 팽배해 있는데,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18%가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단 6%만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공화당 지지자가 중국을 더 적대시하긴 하지만, 양당 지지자 모두 압도적인 다수가 중국을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 :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이처럼 미국 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압도적인 만큼, 집권당인 민주당의 경선 후보들 역시 중국 문제에 대한 정책과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서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인물은 조 바이든 현 대통령, 인기도서 작가이자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영적 멘토로 주목받은 마리앤 윌리엄슨, 그리고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조카이자 안티백신 운동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있다. 하지만 경쟁자들의 정치적 경험이 짧거나 경력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가장 높다.
작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양국 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타진하였지만, 올해 2월 초 미국 영공 내에서 중국 스파이 풍선이 발견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
하지만 4월 말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지지한다"면서 중국과의 관계단절이 목표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이어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윌리엄 번즈 CIA 국장, 자넷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특사, 지나 레이몬도 상무장관 등 고위인사가 연이어 중국을 방문하며 대중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미 고위인사의 방중이 여름에 집중된 이유는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대선 레이스 때문으로 보이는데, 바이든 측은 공화당 대선 후보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정치적 부담이 덜 한 상태에서 중국과의 실무 대화를 진행하고, 이후 긴장 완화와 민간 교류 복구 등의 외교적 성과를 대선 과정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중국 화웨이가 자사의 최신 스마트폰인 메이트 60 모델에 서방 제재로 중국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7나노 칩셋을 삽입했다고 발표한 만큼, 대중 기술 제재의 효용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공화당의 공세에 수세로 몰리거나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설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공화당 : 중국과의 완전한 결별
9월 8일 현재까지 경선 출마를 공식화한 후보가 3명뿐인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에서는 현재까지 10명이 대선 도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등 각각의 후보가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모두 중국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인식을 보인다.
현재 공화당 후보 가운데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중국산 주요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했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당선 이후 중국산 생필품 수입을 차단하고 미국 기업의 중국 내 투자를 제한하며 중국이 누리고 있는 "최혜국" 대우를 파기, 사실상 미중 간의 경제 협력을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의존"을 끝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이자 현재 지지율 2위를 기록 중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역시 중국 견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디샌티스 또한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여 미국이 경제적으로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경우 이미 플로리다 주 내에서 중국과 관련된 여러 논란이 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는데, 정부와 학교에서 지급하는 스마트 기기에 중국의 소셜미디어 앱인 틱톡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의지가 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국민이 군사 시설이나 "핵심 인프라" 인근에 토지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나, 연방 정부가 반헌법적이라고 제동을 걸기도 할 정도로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공화당의 많은 경선 출마자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인물은 비벡 라마스와미이다. 오하이오 출신의 인도계 미국인이자 기업가인데, 트럼프, 펜스, 헤일리 등 다른 쟁쟁한 후보들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8월 말 트럼프가 불참한 채 열린 공화당 첫 경선 토론회에서 공격적인 언사로 토론을 주도하며 일약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라마스와미 역시 다른 공화당 경선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미국의 가장 큰 지정학적,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중국 정부 소유의 기관이나 기업이 미국 내에서 토지를 매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중국공산당이 무너지거나 "스스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할 때까지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라마스와미의 중국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다른 공화당 경선 출마자와 다른 지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보여줬던 고립주의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라마스와미는 한 미국 보수 매체에 "실행할 수 있는 현실주의와 부흥 독트린"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베트남전 이후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축소한 "닉슨 독트린", 아메리카 대륙 이외 지역에 대한 불간섭을 주장했던 "먼로 독트린"을 인용하며 미국이 신고립주의를 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라마스와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간접 지원하여 러시아가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으니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여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견제에 참여하는 아시아 동맹국 역시 미국의 안보 보장에 기대지 말고 군비를 확충하라고 주장하는 등의 고립주의를 표방, 트럼프 지지 세력의 공감을 얻고 있다.
현재는 지지율 6%에 불과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종 혐의로 인해 대선 완주가 불가능해질 경우에는 트럼프의 대안으로 공화당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라 라마스와미의 대중관 역시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 대선 결과로 급변할 수 있는 국제 환경에 대비해야
작년 5월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서방 국가의 중국 견제에 동참할 뜻을 밝히고, 올해 4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는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며 중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워싱턴 선언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대중 무역 적자 확대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을 둘러싼 국내 갈등까지 감수하며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였지만, 당장 2024년 미국 대선의 향방에 따라 현 행정부가 한미관계를 축으로 하여 설계한 외교 정책의 근본 자체가 흔들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미국 내 집권당이 교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기본적인 합의를 끌어내고 긴장을 해소하게 된다면, 중국을 적대시하며 생긴 경제적, 안보적 부담을 한국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닥칠 수도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문제나 홍범도 장군과 관련된 논란에서 현 정부가 보여줬던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