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라는 직업이 있다. 한자로 풀자면 큰 대(大), 거느릴 통(統), 거느릴 영(領)이다. 헌법적으로 풀자면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헌법 제66조 1항)" 자리다. 하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보다도 실제 권력적 속성은 훨씬 더 강렬하다.
"'大統領'은 영어의 'president'를 메이지 시대에 일본인들이 옮긴 한자어다."
막부와 천황의 시대를 살아온, 민주주의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가 투영되어 있는 번역어다.
하지만 왕조 시대가 아닌 지금에도, 국민의 대표자 혹은 위임인에 불과한 자리를 두고 '대'통령 이라고 호칭하는 건 괜찮은 걸까. 나야 내각제주의자라서 대통령제 자체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살지만, 아직까지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president'를 대통령으로 호칭하는 건 과연 국민주권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타당한 칭호일까.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대통령에서 '대'자라도 빼던지, 아니면 대통령을 '대표'나 '의장' 정도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게 나의 오랜 지론이다.
번역어가 형식을 만들었고 형식이 민주주의라는 내용까지 지배해버렸다. 위험한 역사적 변천을 거쳐온 용어다. 그래서는 아니되었을 학술적 근거가 있다. 윤혜준 교수의 <근대 용어의 탄생>이다.
라틴어에서 출발한다. "라틴어 'praesident / praesidens'는 한 조직을 대표하는 행위를 뜻하기는 하지만 '다스리는' 통치의 의미가 아니다. 동사 'preaesidere'는 '회의를 주재하다, 의장 자리에 앉다'를 뜻한다. 이 말에서 파생된 'president'가 권위나 권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의미할 경우 그것은 '의장'으로서, 선출된 대표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용례가 수없이 많다. 단적인 예를 들면 '유럽의회 의장'도,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도 다들 President다." 이렇듯 선출된 유럽연합의 주요 지도자들 모두 President가 들어가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을 대통령이라고 번역하지 않는다. 이것이 본래적 어법이다.
미국의 President는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인 '대통령'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직함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자면 (역시나) '아메리카의 주연합(United States) 의장'"에 불과하다.
대통령을 예로 들어서 그렇지 이 책은 '근대문명의 키워드'인 말의 역사에 대한 지극히 깊이 있고 학술적인 책이다. 무지를 깨우쳐 주는 고마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