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책의 형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책,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는 공저입니다. 문병호와 남승석, 두 학자가 함께 썼습니다. 공저는 흔히 볼 수 있는 저술 형식이지요. 학계에서 출판하는 공저는 보통 선집, 즉 '앤솔로지'가 많습니다. 책으로 묶어야 하니 특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여러 학자의 글을 편장으로 삼아 모아내는 형식입니다. 이런 공저는 같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모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글을 꿰뚫어 내는 초점이 보이지 않고 산만해지는 때도 없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방법과 관점이 뭉치고 스며들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 이렇게 두 학자가 주거니 받거니 써낸 책은 놀랍고 신선합니다. 의기투합이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지 않을까요? 아도르노 철학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과 산업을 깊이 천착해 온 문병호, 철학과 동시대 기술을 바탕으로 영화와 미디어, 문화연구에 이르는 폭넓은 의제를 다루는 연구자이자 영화 현장을 지켜온 남승석의 비평은 단순한 조합을 넘어 찰진 결합과 융합을 향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제목의 벤야민과 아도르노라는 이름을 두 저자의 '알레고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줄곧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도에 지지와 찬사를 보내기 위해 조금 더 공식적인 용어를 붙이자면 '상호-비평'(inter-criticism)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두 저자는 남한, 중국, 대만,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시대 영화를 다룹니다. 멀게는 1979년에 나온 일본영화 <복수는 나의 것>부터 가깝게는 2017년에 나온 남한영화 <택시운전사>를 봅니다. 다섯 편의 영화가 불려 나옵니다. 영화를 제작․출품한 시간이 무려 40년에 걸쳐 있지만, 이 영화들을 관통하는 의제는 하나입니다. 바로 국가 폭력입니다. 1979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국가 폭력은 여전히, 동시대의 의제라고 봅니다. 국가 폭력은 세대를 이어오면서 우리의 시대를 비껴가지 못한 채,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리하여 비평의 대상인 영화가 세상에 선보인 시간이 40년이라는 시간을 흐르는 까닭은, 40년 전의 의제가 곧 오늘의 의제이기 때문이며, 오늘의 의제가 40년 전에도 이미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들이 다루는 이야기는 대체로 실제 사건에 근거합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만 제법 그럴듯한 허구에 기대고 있을 뿐, 나머지 네 편은 모두 일어난 일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꾸밉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도 완전한 허구라고만 몰아붙일 수 없습니다. 문병호는 이 영화를 두고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개인과 사회에 유발하는 고통과 불행에 대해 묻고 있다"(85쪽)고 씁니다. 그렇다면 이런 허구는 조금 더 폭넓은 둘레의 '사실'로 귀결됩니다.
거꾸로 나머지 영화가 사실을 따르면서 다양한 허구를 뒤섞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사실과 허구의 교차란 결국 더 큰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기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책은 허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더 큰 사실을 드러내는 영화,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작은 허구를 뒤섞어서 다시 사실의 지붕 아래로 모여드는 영화를 함께 다룹니다. 사실과 허구의 이런 교차는, 문병호의 글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듯이, 알레고리라는 예술 창작의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빛을 발합니다.
더 중요한 쟁점이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동시대 한반도, 남북 분단의 문제를 다룹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18을 다룹니다. <여름궁전>은 1989년 천안문을 그립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1961년 타이베이에서 일어난 학생 살인 사건을 다시 보여줍니다. <복수는 나의 것>은 1963년 후쿠오카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불러냅니다. 그러므로 영화 출품의 시간 못지않게, 이야기가 다루는 사건의 시간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196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는 '원사건'의 발생 시점과 영화가 출품된 시간을 함께 놓고 보면, 이것은 결국 20세기 후반 우리의 삶을 끈질기게 쫓아온 문제가 됩니다. 모두 2차 대전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 이후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동시대 허구를 주된 서사로 삼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외하고 나머지 4편의 영화가 기대는 원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영화가 제작된 시점을 짝지어 보면 이렇습니다. <택시운전사> 1980년-2017년, <여름궁전> 1989년-2006년,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1961년-1991년, <복수는 나의 것> 1963년-1979년입니다. 짧게는 16년, 길게는 37년의 시차입니다. <택시운전사>는 5․18을 다룬 여러 영화들에 뒤이어 나왔기에 상대적으로 시차가 길지만, 다른 영화들은 동일 사건을 다룬 영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영화는 원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그것을 어떻게 재현할까, 고민해 온 셈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영화적 성과가 10여 년에서 30여 년 사이에 이뤄진 셈입니다.
벤야민과 아도르노, 아니 문병석과 남승석은 원사건으로서의 현실과 재현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탐구와 비평을 분담합니다. 남승석은 영화는 모름지기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고 믿는 '영화' 비평을 위하여 5편 영화의 안쪽을 미학, 장르, 서사, 역사를 통해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문병호는 영화는 현실의 맥락을 반영하고 재현한다는 믿음을 가진 영화 '비평'을 위하여 사회, 철학, 역사라는 영화의 바깥 둘레를 탐구합니다. 영화의 내부 구조를 놓치지 않으면서, 외부 맥락을 함께 해석해 냅니다. 영화와 사회, 현실과 재현, 미학과 철학, 장르와 역사를 더불어 토론하면서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는 극대화된 방법을 채택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영화의 안팎에 대한 줄탁동기의 접근을 통해 국가 폭력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1948년 남한, 1949년 중국과 대만, 1946년 일본은 제국과 식민을 벗어나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합니다. 동아시아를 잇는 근대국가는 모두 힘을 원했습니다. 강력한 국가를 만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3대 필요조건만 있으면 근대국가를 만들 수 있었지만, 자신의 국가가 더욱 위대하고 강력하기를 바란 나머지 역사, 문화, 경제, 스포츠를 동원하여 공작의 날개 같은 화려함을 뽐냈습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작동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국에게 배운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국가를 만들기 위해 꼭 있어야 할 주체인 국민을 강력한 힘으로 통제하고 싶었습니다. 당장 국민을 한데 묶으려니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연성 조건보다는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강성 조건에 더욱 매력을 갖게 됩니다. 국가가 가진 '합법'적인 힘,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폭력이 일상화됩니다. 제국과 식민을 벗어나 국민국가의 공간에 안착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국민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탈식민을 성취하지만, 이제 같은 종족이 행사하는 또 다른 힘에 의해 식민 못지않은 폭력에 시달리게 됩니다. 억압적 국가기구의 활약은 식민의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어집니다.
문병호와 남승석은 20세기 후반, 우리의 삶에 파고들었던 바로 그 국가 폭력을 다룹니다. 전쟁, 광주, 천안문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선 폭력입니다.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 행사입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과 <복수는 나의 것>을 국가 폭력의 둘레 안에서 다룰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 버려도 그만인 사건들을 어떻게 국가 폭력의 둘레로 끌고 들어올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할 수 있습니다.
문병호는 이를 거대폭력과 미시폭력으로 나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핵심 개념은 알레고리입니다. 그는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을 가져와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식민 지배, 문화 정체성, 독재 폭압이 복합적으로 착종되어 있는 대만"에서 "수수께끼적 성격이 강하게 형상화된 알레고리"로 읽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을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의 폭력과 광기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냅니다. 그는 <복수는 나의 것>이 "작품 자체로 거의 완전한 수수께끼"이며 "이 수수께끼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일본 현대사에서 확인되는 부정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304쪽)고 역설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거대폭력과 미시폭력이 순환하면서 인과를 형성하는 현실을 폭로합니다.
남승석은 영화에 더 집중합니다. 그의 글들은 다섯 편의 영화를 꼼꼼하게 독해하는데 힘을 기울입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세계영화와 한국영화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공동경비구역 JSA>에 관한 비평에서 우리는 "포스트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의 주요 특징"으로서 "개인이 사회적 폭력에 휘말린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상업적 고려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혼합성을 보여주는 스릴러나 갱스터 영화 장르에 기반을" 둔다, "상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예술적 가치를 고려하는 태도가 있다"(61~62쪽)는 탁월한 통찰을 만나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남승석은 상대적으로 영화 자체의 입구를 열고 비평의 장으로 들어갑니다. 장르, 미학, 서사, 문법에 관한 그의 설명과 해석은 흥미롭습니다. 필름 누아르, 관찰자 시점, 마트료시카 구조, 몽타주, 어트랙션, 이미지, 롱 테이크, 익스트림 롱 쇼트, 미장아빔 등에 이르는 다양한 영화 비평의 언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장르, 미학, 서사, 문법을 대표하는 이런 용어들을 따라 남승석의 글을 읽어가다 보면, 영화 해석을 위한 탄탄한 관찰을 만나게 되어 즐겁습니다.
그렇다고 남승석이 역사나 사회를 버려두지는 않습니다. 남승석은 영화-미학-역사-사회로 이어지는 비평을 수행합니다. 그의 비평은 영화에서 페이드 인되어 미학과 역사에서 클라이맥스에 오른 뒤 사회에서 페이드 아웃됩니다. 그러면 곧바로 문병호가 이를 이어받아 사회-역사-장르-영화로 이어지는 비평을 수행합니다. 그의 비평은 사회에서 페이드 인되어 역사와 장르에서 클라이맥스에 오른 뒤 영화에서 페이드 아웃됩니다. 이 두 조명이 비추는 두 줄의 빛이 이 책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고 있습니다. 성실과 진심과 창의와 흥미로 버무려진 상호-비평을 만난 흥분의 정동을 감출 수 없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