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책 제목 자체가 현재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겐 눈길을 확 잡아끈다.
이 책을 쓴 김지윤 작가는 201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을 'N세대(Net Generation)가 낳은 N세대'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의 화면(온라인)과 일상을 분석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당시 10대와 20대를 보냈던 첫 N세대의 자녀들인 2010년 전후로 태어난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미디어(스마트폰, 태블릿)를 접했고, "스마트폰을 부수는 것은 나를 부수는 것"이라며 분노한다고 한다. 인터넷이 기본 인프라가 됐으며, 스마트폰이 자아의 일부가 된 세상에서 김지윤 작가는 "무작정 아이들이 '중독'되었다며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어른'들이 만든 화면 속에서 안타까운 주체성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들
김 작가는 20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애당초 화면이 야기하는 각종 문제는 어른들의 산물이었고 젊은 세대는 이미 만들어진 화면 속 세상을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마주했던 사람들"이라면서 "기성세대가 화면의 명암을 만들었다면 그들의 자식들은 그 명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아이'들의 중독 여부를 걱정하게 만드는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와 게임 모두 '어른'들이 만들지 않았나.
그는 "일평생 온라인 디폴트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때로는 화면을 이용하고, 때로는 화면에 저항하면서 "삶의 균형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서 이들의 '주체성'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결국 주어진 화면이지만, 자기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선택하거나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측면에서 안타까운 주체성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난 2022년 말 '챗GPT 3.5'의 등장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인공지능(AI)까지 겹져지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생산성을 극대화하면서 창조성이 폭발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어떤 것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아무 것도 안 하게 만드는 "주체성의 빈부 격차"마저 극도로 벌어지는 시대가 왔다.
"게임 중독 걱정? 게임조차 무의미하다 느끼는 무력감이 가장 두렵다"
현재 부모들의 가장 큰 골치거리인 게임과 관련해 김 작가는 자녀들과 대화를 시도하라고 조언했다.
"게임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무슨 의미인지 자녀에게 물어봤을 때 자기 나름의 설명과 효능감을 이야기한다면 중독이 아니라 나름의 의미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게임에 대해 물어봤을 때 방어적으로 무조건 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와는 다르죠.
올해 2월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게임에 관련된 연구를 하나 발표를 했어요. 게임을 하는 초중고등학생과 학부모를 조사했는데 게임을 이용하는 학생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게임을 긍정적으로 승화해서 사용을 하고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적극적 이용군, 그 다음에 일반 이용군, 마지막으로 과몰입하는 문제 이용군. 이들 중 문제 이용군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일반 이용군이었습니다.
자녀들과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겠지만 부모들이 게임에 대해 물어본다면 아이들도 스스로에게 내가 게임을 왜 하고 있는지 복기하고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아이들이 과몰입하는 게임 중독의 문제보다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게임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조차 재미를 느끼거나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굉장히 무력하게 있게 되는 세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저는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시작점이라고 봅니다. 결국 시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이보다 무력감이 좀 더 앞설 수 있고, 그렇게 계속 노력이 배신당하고 어차피 그렇고 그런 삶이라는 무력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닐까요."
"대학을 어디를 가고, 연봉을 많이 받고, 어디에 집을 사야 되고, 이런 식의 경직된 어른들의 사고 속에서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내가 갖게 될 것은 딱 저만큼인데 지금 뭘 그렇게까지 노력해야 되나' 어린 나이부터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 자기의 미래를 바꾸거나 현재 자기가 더 마음이 가고 몰입해서 할 수 있는 걸 찾을 수도 있는데 애초 그럴 마음조차 안 드는 상태가 됐을 때, 아무리 '이렇게 하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요'라고 가르쳐도 '저는 물고기는 별로, 물고기 먹으면 뭐가 좋아지죠' 라고 말하는 세대가 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제일 큽니다."
어른들이 만든 게임식 세상에서 가시밭길을 걷는 N세대
경제력에 기반한 정보와 지식의 격차, 과도한 개인주의와 인간 관계의 왜곡 또는 단절 등 화면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 현실 사회의 문제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AI가 그간 사람들이 해오던 많은 일들과 다수의 직업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사실을 목도하는 아이들을 '산업 역군'에 걸맞는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으로 몰아넣고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고 있는 현실의 부당함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삶도 옥죈다.
김 작가는 "화면의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테크기업들의 지나친 권력 집중과 지배 구조", "테크 기술이 인류에 미치는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문제마저도 빅테크 기업의 기술자들이 정답을 제시하는 현실"에 대해 이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고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냐, 대체한다면 어떻게 대체할 것이고, 그 경우 많은 사람들이 실업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기본소득을 줘야 하고, 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이런 인문학적인, 정치사회적인 이야기까지도 그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이렇게 기술과 함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이 대화에 우리도 관심을 두고 끼어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불을 지르면서 불을 끄는 사람들의 얘기에 따라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쓴 김 작가 본인이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파도를 타고 경로 이탈을 하는 삶"을 살아왔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기자로 일을 하다가 테크 미디어 '뉴즈'를 공동 창업했고, 최근 디지털 에이전시 '스텔러스'를 만들었다. 그래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N세대'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애정이 느껴지는 이 책은 김 작가 본인의 '성장기'로도 읽혔다. 지금 한참 성장통을 겪고 있을 10-2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게 무엇이 의미 있는지에 대한 내 나름의 의미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주변에서 '너는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니' 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가슴 졸이며 지켜볼 부모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찾아서 나름의 의미를 얻으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인내와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손 놓고 있을 때 그 미래를 더 오래 살아가야할 젊은 세대는 가시밭길을 걷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게임식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야기하는 삶의 불균형을 고스란히 답습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심정을 먼저 헤아리려는 어른은 드물었다. 알고리즘이 가짜뉴스와 동일한 자극의 쳇바퀴를 굴릴 때 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몫은 개개인의 것으로 돌아갔다. 인공지능이 바꿔놓은 장래희망은 젊은 세대에게는 생존의 문제일 텐데, 이 사회는 '인생 다 원래 불공평하고 괴로운 것'이라고 그들의 눈을 가리지 않았나."(에필로그 중에서,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