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선들이 살았을 때는 지리산 전체를 학(鶴)에 비유하였다. ‘남비청학쌍계사(南飛靑鶴雙溪寺)요, 북래백학실상사(北來白鶴實相寺)라!’ 남쪽으로 날아간 청학은 쌍계사가 되었고, 북쪽으로 날아온 백학은 실상사가 되었구나!
지리산은 불교 이전에 선가(仙家)의 청학과 백학이 먼저 살았던 동네였다. 후발 주자인 불교가 들어오면서 신선들이 놀던 자리에 암자와 절이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북쪽으로 백학이 날아온 실상사를 기점으로 7암자 순례길이 있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이 그 7암자에 해당한다. 지리산 북쪽에 있는 이 7암자 코스를 한번 순례하면 ‘좌·우파에 대한 분노’와 ‘인생 살아 보니 별것도 없다’는 허탈감을 약간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만큼 지리산의 서늘한 정기와 깊은 품속의 온화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등산길이다. 분노와 허탈감은 서늘함과 따뜻함을 모두 느껴 보아야 치유된다.
나는 이 7암자 가운데서도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고려 후기 보조 지눌(1158~1210) 선사가 41세 때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선(禪·명상)은 고요한 곳에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禪不在靜處), 그렇다고 시끄러운 곳에서 되는 것도 아니다(亦不在鬧處)’라는 대목을 읽다가 깨달았다. 중국의 대혜종고 선사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 꼭 조용한 곳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장소에 구애 받을 필요는 없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건 공부가 어느 정도 된 프로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아마추어 초심자는 장소에 구애를 받기 마련이다.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
선불교의 화두는 고정관념이나 도그마를 깨기 위한 것이고, 도그마를 깨려면 반대로 이해할 줄 아는 폭넓음이 있어야 한다. 상무주암은 삼정산 남쪽 자락의 1100m 고지에 있다. 암자 뒤는 기가 센 바위 암벽이고 부엌에서는 맛 좋은 암반수가 솟아나는 명당이다. 암자 앞으로는 동대(東臺)와 서대(西臺)가 터를 감싸고 있어서 터의 기운을 모아준다. 지리산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는 수행 도량이다.
1970년대 말에 이 터에 들어가 40년 넘게 화두 하나 들고 참선하던 선승 현기(玄機) 선사가 엊그제 돌아가셨다. 향년 86세. 40여 년을 이 터에서 머무르며 화두를 잡다가 시간 나면 암자 앞의 자그마한 채소밭에서 배추, 무 다듬고 살았던 선승. 현기 선사는 뭘 위해서 이런 삶을 살다가 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