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한 번 밖에 없을까?
인연(因緣)의 소중(所重)함을 인지(認知) 못한 탓으로 내 곁을 떠난 사람을 생각(想念)하면 자책(自責)과 후회(後悔) 뿐이다. 한때는 하늘 우러러 백년해로(百年偕老)를 다짐(盟誓)했건만 아차! 하는 순간(瞬間) 서로(相互)를 저버려 지금(只今)은 어디(哪儿)에 사는지도 아예(干脆) 모른다. 관계(關係)의 죽음(死亡)에 의한 아픔(苦痛)이나 상실(喪失)로 인해 사람은 외로(孤獨)워지고 쓸쓸(寂寞)해지고 황폐(荒廢)해진다. 애당초(當初) 나를 절대(絶對) 속이지 않으리라는 신뢰(信賴)와 서로(互相) 해(害)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확신(確信)을 주는 사람이 주변(周邊)에 하나만 있어도 살아가는 일은 막막(寞寞)하지 않고 불안(不安)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心情)이 평화(平和)롭게 살아가는 힘(力量)은 서른(三十)이나 마흔(四十) 혹은 오십(五十)이 되어 저절(自然)로 생(生)기는 것이 아니다. 내일(來日)을 자신(自身)의 일(事)처럼 생각(思考)하고 내 아픔(苦痛)과 기쁨(喜悅)을 자기 아픔(苦痛)과 기쁨(喜悅)처럼 생각(思考)해줘야 한다. 간혹(間或) 앞뒤(前後)가 안 맞는 얘기도 들어주며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所重)함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幸福)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온전(穩全)한 사랑(愛情)이라는 생각(思考)도 언제나 인연(因緣)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가도 생각(思考)하며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지난날(舊時)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에게 상처(傷處)를 덜 줬을 것이다.
결국(結局) 이별(離別)할 수 밖에 없는 관계(關係)였다 해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는 시(詩)의 한 구절(句節)처럼 우리가 자주 만난 날들은 칠색 무지개(七色彩虹)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게 이별(離別)했을 것이다.
진작(早就), 인연(因緣)은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고 걸 알고 살았더라면 그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정말 상대방(相對方)을 그토록 가슴(心情)이 아프지 않게 하였을 걸 ... 남은 건 후회막급(後悔莫及) 뿐이다. 악암(岳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