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惰性)은 오래 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이고, 관성(慣性)은 물체가 외부(外部)의 작용을 받지 않는 한 정지(停止) 또는 운동(運動) 상태를 계속 유지(維持)하려는 성질이다. 어찌 보면 이 말은 서로 모순(矛盾)되는 것 같지만 기실 밀접한 연관성(聯關性)을 갖는다.
우리 속담에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그 뜻은 어렸을 때 한 번 굳어진 버릇은 늙도록 고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나이 먹어도 바뀌지 않은 세 살 버릇, 종종 후회(後悔)를 낳는 인생의 오점(汚點)이 된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란 말처럼 작은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結局)에는 바윗돌에 구멍을 뚫는다. 따라서 좋은 습관(習慣)이 쌓이면 그것은 인생성공의 디딤돌(垫脚石)이 되지만 나쁜 습관은 인생성공의 걸림돌(绊脚石)이 된다.
매일 운동(運動)하는 습관이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신(守護神)이 되고 매일 기도(祈禱)하는 습관은 인생을 밝히는 등대지기(灯塔看守) 된다. 매일 글 쓰는 습관이 작가(作家)가 되게 하고, 매일 신문사설(新聞社說)을 낭독하는 습관이 명연설가(名演說家)로 만든다. 어렸을 때의 도벽(盜癖)이 팔십 노인(八十老人)이 되어서도 무의식중(無意識中)에 남의 지갑에 손을 대는 평생 범죄자(犯罪者)로 만든다.
지금도 빈번(頻繁)히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安全事故)의 원인은 작은 폐습(弊習)이 쌓이고 쌓인 적폐(積弊)임을 너무나도 뼈아프게 경험(經驗)하고 있다. 이처럼 작은 습관은 인생 성공(成功)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파멸(破滅)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안전(安全)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재난(災難)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조짐(兆朕)이 나타날 때 고쳐야 한다. 굳어지면 바로잡기 어렵다. 주역(周易)에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즉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얼 때에 이르게 된다.’했다. 이 말속에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것이니 평생(平生) 고벽(痼癖)이 되지 않도록 어렸을 때에 나쁜 버릇을 고치라는 교훈(敎訓)이 내재(內在)되었다.
자식이 그 부모(父母)를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살해하는 대역무도(大逆無道)한 죄(罪)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불효(不孝)와 불충(不忠)의 마음이 점점 쌓여 굳어진 것이다. 이런 기미(機微)를 알고 미리 방지(防止)하지 못한 부모에게도 그 책임(責任)이 있다. 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패륜범죄(悖倫犯罪)나 흉악범죄(凶惡犯罪)도 미리 그 조짐(兆朕)을 예방하지 못한 국가(國家)도 책임이 크다. 국가차원에서 조짐(兆朕)을 막을 수 있는 정책 즉 인성교육정책(人性敎育政策) 부재(不在)가 미봉(彌縫)할 수 없는 실책(失策)이다.
‘마약(痲藥)을 하면 안 된다.’ ‘음주운전(飮酒運轉)을 하면 안 된다.’는 엄격한 원칙(原則) 속에 ‘딱 한번 뿐인데 뭐’라는 요행심리(僥倖心理)에 유혹(誘惑)되어 양심이 무너져 마약중독자(痲藥中毒者), 음주운전자(飮酒運轉者)가 된다. 인간이 짓는 모든 죄악은 비양심의 유혹(誘惑)에 기인(起因)된다. 그러니 무자기(無自欺) 즉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신독(愼獨) 즉 자기 홀로 있을 때 삼가고 조심(操心)하여야 한다. 그 어떤 경우(境遇)라도 자기 양심을 철저(徹底)히 지키라는 충고(忠告)이다.
그렇다. 추풍낙엽(風掃落葉)이다. 인생에 저해(沮害)되는 타성(惰性)과 관성(慣性)을 가을바람이 낙엽 쓸 듯 싹 쓸어버려야 한다.
악암(岳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