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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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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9부


81. 창호(窓戶)


범어(梵魚)스님의 지극한 간호(看護)로 김삿갓의 발목은 많이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범어스님은 문종이와 풀을 가지고 와서 뚫어진 창구멍을 말끔히 발라놓고는 창(窓)을 활짝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어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데 때마침 산머리에는 달이 솟아오르고 골짜기에서는 물소리마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범어(梵魚)는 즉흥시(卽興詩)를 한 수 지어 김삿갓에게 내밀며 시평(詩評)을 청했다.


        바람이 부니 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달이 솟아오르니 물결이 높아지네.

 

            風動樹枝動

            月昇水波昇


범어스님은 원래 시에는 능하지 못한 편이었다. 이 시 또한 아무리 보아도 좋은 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시상(詩想)이 너무 단조로운데다가 표현조차 반복적(反復的)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복적 표현이 덮어놓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의 효과(效果)는 고사하고 우선 시혼(詩魂)이 결여(缺如)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김삿갓은 남의 시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아 얼른 이렇게 말머리를 돌렸다.


“스님께서 창구멍을 막아 주셔서 바람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구멍이 막혀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대신에 전에는 달빛이 비치지 못하던 곳에 달빛이 새로 비칠 곳이 생겼으니 저는 거기에 대한 시(詩)를 한 구절 읊어보겠습니다.” 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바람은 다니던 옛길을 잃었고

        달은 새로 비칠 곳을 얻었도다.


           風失古行路

           月得新照處


범어의 시가 단순한 나열식(羅列式)이라면 김삿갓의 시는 변화하는 현상을 생동적(生動的)으로 묘사한 시였다. 범어는 김삿갓의 시를 읽어보고 또다시 감탄(感歎)을 마지않는다. 같은 사람인데 같은 현상을 보고 떠오르는 시상과 그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는가.


“선생의 착안(着眼)에는 오직 경탄(驚歎)이 있을 뿐이외다. 창구멍 하나 막은 데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선생의 시상은 어쩌면 그렇게도 기상천외(奇想天外) 하십니까."범어는 김삿갓의 천재적인 시재를 한껏 찬양(讚揚)하면서 속으로 자신의 무딘 시상을 나물하고 있었다. 


82. 『종이(紙)』


범어스님은 김삿갓이 누어있는 기회에 시를 배우려고 틈이 날 때마다 가르쳐 달라고 졸라 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며 지난번에는 창구멍을 막는 시를 지으셨으니 이번에는 종이에 대한 시를 한 수 지어 달라고 했다. 


김삿갓은 범어의 요청(要請)을 거절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지어 주었다.


         넓적한 등전지는 본래 나무로 만든 물건

         펼쳐 놓고 글을 쓰면 글씨가 가볍도다.

         천권 책을 모두 읽고 차곡차곡 쌓으면 

         그 높이 하늘 아래 만리로 뻗으리라.


         闊面藤霜本質情

         鋪來當硯點毫輕

         耽看蒼錄千編積

         誕此靑天萬里橫


         화려한 족자에 쓰인 명성 모두가 후진이요

         문방 족속 가운데 종이가 홀로 선생이라.

         집집마다 창을 발라 방안을 밝게 하고

         종이로 된 책으로 사람들의 길을 깨우치오.


         華軸僉名皆後進

         文房列座獨先生

         家家資爾糊蒼白

         永使圖書照眼明


범어스님은 이 시를 세 번 네 번 읽어보고 감탄을 마지아니하였다. 종이의 효용성(效用性)을 종합적이고도 익살스럽게 그려 놓은 시였다.


83. 붓(筆)


범어스님은 또다시 "전번에는 종이에 대한 시를 지어 주셨으니 이번에는 붓에 대한 시를 한 수 지어 달라"고 했다. 김삿갓은 다시 범어의 청을 들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네 친구가 서로 어울리되 너 만을 君이라 함은 

       고금의 문장을 너만으로 쓰기 때문이리라.

       출세하고 낙오함도 네 힘에 달려 있고

       영리하고 우둔함도 네 혀끝에 달렸도다.


       四友相須獨號君 

       中書總記古今文

       銳精隨世昇沈別

       尖舌由人巧拙分


       두꺼비와 까마귀를 그리면 일월이 분명하고

       용과 범을 그리면 풍운이 일어난다.

       자기 임무를 다한 뒤엔 몽당붓이 되지만

       지난날의 그 공로 가장 크다 하리라.


       畵出蟾烏照日月

       摸成龍虎動風雲

       管城歸臥雖衰禿

       寵擢當時最有勳


      주: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붓을 중서군(中書君)이라 했다.


이 시 역시 붓에 대한 효용성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예찬(禮讚)한 시였다. 이와 같이 김삿갓은 누어있으면서도 많은 시를 지었고 범어는 덕택(德澤)에 시 공부를 이어 갈 수 있었다.


84. 신세타령(身世打令)


김삿갓의 다친 발목이 거의 나아서 지팡이를 짚고 걷기 시작할 무렵, 범어(梵魚)스님은 아직 혼자 걷기는 불편(不便)하리라면서 '안산댁(安山宅)' 이라는 미모의 젊은 여인을 보조자(補助者)로 천거해 주었다. 


안산댁(安山宅)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이 절에 단골로 다니기 시작한 여신도인데 글도 잘하는 편이니 말동무가 될 것이라 했다.


김삿갓은 그 날부터 안산댁(安山宅)의 부축을 받아가며 하루 두세 시간씩 보행연습(步行演習)을 하였다. 안산댁(安山宅)은 어떻게나 행동거지가 얌전하면서도 민첩(敏捷)한지 김삿갓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날마다 거름걸이가 좋아지고 있었다. 


다리에 신경을 적게 쓰게 되면서 대화가 늘어났고, 김삿갓의 짓궂은 물음에도 안산댁(安山宅)은 수줍은 미소를 감추지 않으면서 재치 있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산댁(安山宅)은 부축을 멈추고 뒤 따라 오면서 김삿갓을 홀로 걷게 했다. 


김삿갓은 저만치 앞서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면서 "이제는 안산댁(安山宅)과도 헤어질 때가 되어 가는가 보다"고 했고, 안산댁(安山宅)은 당황한 빛을 보이며 한참을 걷다가 "불경(佛經)에 회자정이(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더니 만난사람은 반듯이 헤어져야 하는가 봅니다."하고 탄식(歎息)에 가까운 말을 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자기도 안산댁(安山宅)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지만 안산댁(安山宅)도 자기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이것저것 조심스럽게 물어 볼 때마다 농담(弄談)으로 얼버무렸던 것이 미안해서 헤어지기 전에 자기의 정체(正體)를 조금은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고우음(自顧偶吟)이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웃으며 푸른 창공 바라보니 앉아서도 닿을 듯한데 

    지나온 길 돌아보니 더욱 멀고 아득하구나.

    가난하게 사니 매양 집안사람의 불평만 듣고

    어지러이 마시니 저자거리 아낙에게 조롱 받기 일쑤일세.

    笑仰蒼穹坐可迢 

    回思世路更迢迢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이 세상 모든 일을 落花 보듯 바라보며

    평생을 달밤처럼 흐릿하게 살아왔소

    나의 인생 하는 일이 기껏 이 뿐이니

    청운의 뜻 내 분수 밖임을 점차 깨달았다오.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明月宵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김삿갓은 신세타령의 시를 읊으면서도 안산댁(安山宅)이 그 뜻을 알아줄까 저어하였다. 그러나 안산댁은 "선생님의 시는 너무 허망하옵니다."하고 한숨을 쉬면서 한참을 걷더니 "선생님은 이 나라에 잘못 태어나신 듯싶습니다. 중국에 태어나셨더라면 이태백(李太白)이나 두자미(杜子美)처럼 만인의 숭앙(崇仰)을 받았을 것인데 이 나라에서는 선생님을 몰라보고 있습니다." 하여 김삿갓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85. 안산댁(安山宅)과의 이별(離別) 


김삿갓이 진봉산(進鳳山) 천석사(泉石寺)에 머문 지도 어언 한 달이 넘었고 다친 다리도 안산댁(安山宅)의 극진한 간호로 다 나았으니 이제는 떠나야 했다. 범어스님과 안산댁(安山宅)이 한사코 말렸지만 김삿갓은 훌훌 털고 산사를 내려왔다.


안산댁(安山宅)이 못내 아쉬워하면서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지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가 어디로 갈지를 어찌 미리 알겠느냐고 대답하고, 자기의 생활철학과 인생행로를 나타내는 다음과 같은 시로서 석별(惜別)의 정을 표하였다.


        솔바람 차게 부는 쓸쓸한 주막에 

        한가롭게 누워 있는 속세를 떠난 사람

        산골이 가까우면 구름으로 벗을 삼고

        물에 임하면 물새와 함께 사노라.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내 마음 조금인들 거칠게 할까보냐

        시와 술로서 인생을 스스로 즐기련다.

        달이 밝은 밤이면 시를 읊기도 하며

        고운 꿈을 유유히 나대로 키워 가리.


        錙銖寧荒志

        詩酒自娛身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안산댁(安山宅)은 그 시를 두 번 세 번 외워보고는 한숨을 푸- 쉬면서, 선생님의 시는 마치 게송(偈頌)과 같아서 선미(禪味)가 넘쳐흐른다고 했고, 김삿갓은 더 이상의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많은 추억이 담긴 진봉산(進鳳山)을 뒤 돌아 보지 않고 유유히 걸어 내려오고 말았다.


산 밑의 마을에 다다를 지음 소년 행자(少年行者)가 급히 달려와 편지 한 통을 전한다. 편지를 뜯어보니 "선생님을 전송조차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려 주옵소서. 옛 시 한 수를 빌어 저의 심정을 아뢰나이다." 하는 짤막한 사연과 함께 시 한수가 적혀 있었다.


       베개 베고 누워도 잠은 안 오고

       등잔불만 나불나불 눈에 비치오.

       참다운 인연인데 무슨 꿈이 필요할까

       임이 남겨 주신 시를 거듭 외웁니다.


        錙銖寧荒志

        詩酒自娛身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참으로 애절한 시였다. 김삿갓은 안산댁(安山宅)이 보내준 시를 거듭 외워 보는 동안에 눈시울이 자꾸만 달아올랐다.


86. 소리정(笑離亭)에서  


이별(離別)이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하물며 사모하는 여인과의 이별에 있어서이랴. 안산댁은 생각할수록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마음이 비단결 같이 고와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인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얼마를 걷다보니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조차 괴이한 소리정(笑離亭)이라 했다. 소리정(笑離亭)? 옛날에 어떤 풍객(風客)들이 헤어지기가 하도 아쉬워 이왕이면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이름을 소리정(笑離亭)이라 했나보다. 정자에 오르니 「참다운 인연이면 그만이지 그 외에 또 무슨 꿈이 필요하겠느냐」고 한 안산댁(安山宅)의 전별시(餞別詩)가 다시 머리에 떠올라 그리움이 사무치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정자에는 다음과 같은 현판시(懸板詩)가 걸려 있었다.


       알고 사귄 지 여덟 해가 되건만 

       만남은 적고 이별만 많았소.

       떠나는 천릿길이 너무도 아득해 

       눈물 가리며 이별곡을 듣노라


       相知八年來

       會少別離多

       臨分千里手

       掩淚聞淸歌


말만은 웃으며 헤어지려고 정자의 이름조차 소리정(笑離亭)이라 했으나  이별에 따르는 슬픔만은 그 누구도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그 옆에는 이런 시도 걸려있었다.


       밤마다 그리워 밤이 깊은 줄도 모르오.

       저 달은 멀리 가신임에게도 비치리

       애끊는 이 내 심정 그 누가 알리오

       정자에 기대서서 마냥 눈물 흘리오.


       夜夜相思到夜深

       東來殘月兩鄕心

       此時寃恨無人識

       孤倚山亭淚不禁


시를 음미하며 안산댁(安山宅)에 대한 그리움에 잠겨있는데 늙은 선비 한 분이 서서히 걸어 올라온다. 현판시들을 함께 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지고 의기가 투합(意氣投合)해갔다. 그는 대대로 송도(松都)에 살아온 사람이라며 송도로 돌아가는 길이니 동행하자고 했다.


87. 망국(亡國)의 한(恨)


소리정(笑離亭)에서 만난 선비와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이야기하며 무심히 발길을 옮겨 놓다보니 어느덧 개성(開城)의 진산(鎭山)인 송악산(松嶽山)이 멀리 바라보인다. 5백년 도읍지를 이제야 구경하게 되었구나 싶어 벌써부터 감개가 무량(感慨無量)해진 김삿갓은 고려조의 충신(忠臣)이요, 포은(圃隱), 목은(牧隱)과 더불어 여말삼은(麗末三隱)으로 일컬어지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시조 한 수를 읊조렸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김삿갓이 야은의 시조를 읊어 보이자 같이 걷던 선비는 크게 기뻐하면서  이방원(李芳遠)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의 시조로서 화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윽고 선비가 안내한 곳은 선죽교(善竹橋)였다. 그 곳에는 백성들이 선생의 충절(忠節)을 기려서 그의 핏자국이라고 일러오는 붉은 돌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당당하게 그를 추모하는 시 한 수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면서 선비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는 무명시인의 시 한수를 소개했다.


        산천은 옛 대로인데 거리는 비어 있고

        저녁놀 잠긴 곳에 물소리만 처량하다

        홀로 말 세우고 옛 자취 찾아보니

        꺾인 비석에 정문충만 남아 있네.


        山河依舊市朝空

        流水殘雲落照中

        歇馬獨來尋往迹

        斷碑猶記鄭文忠


망국의 설움이 가슴을 파고드는 시였다. 조선왕조 초에는 나라의 기휘(忌諱)가 두려워 포은의 충절을 누구도 예찬(禮讚)하지 못했다는 것은 알만한 일이다. 


염량세태(炎凉世態)란 본시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김삿갓은 나라의 기휘(忌諱)가 두려워 시흥을 묵살(默殺)하는 겁쟁이는 되고 싶지 않아 한 수 읊었다.


        옛 강산에 말 멈추니 시름은 새로운데

        오백 년 왕업에 빈터만 남았구나.

        연기 어린 담장 가에 까마귀 슬피 울고 

        낙엽 지는 폐허에 기러기만 날아가네.


        故國江山立馬愁

        半千王業一空邱

        煙生廢墻寒鴉夕

        葉落荒臺白雁秋


        돌로 된 짐승은 오래 되어 말이 없고

        구리 대는 쓰러져 머리를 숙였구나.

        둘러보아 유난히 가슴 아픈 곳은 

        선죽교 아래 냇물 흐름 없는 흐느낌이네.


        石狗年深難傳舌

        銅臺陀滅但灰

        周觀別有傷心處 

        善竹橋川咽不流


88. 고려궁(高麗宮)의 정원(庭園) 만월대(滿月臺)


송악산(松嶽山) 남쪽 기슭에 있는 만월대(滿月臺)는 고려조의 정궁(正宮)이었던 연경궁(延慶宮) 앞의 널따란 정원의 이름이었다. 고려국(高麗國)이 태평성대(太平聖代)였을 때 임금님은 밤이면 궁녀들을 거느리고 정원을 거닐며 달구경을 즐겼기에 정원의 이름을 만월대라 했다.


만월대 주변에는 정궁인 연경궁을 비롯하여 회경전(會慶殿), 장화전(長和殿), 원덕전(元德殿), 건덕전(乾德殿), 만령전(萬齡殿), 팔선전(八仙殿) 등등 수많은 궁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을 뿐 아니라 뜰에는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하였고, 나무 숲 사이로는 궁복(宮服)을 곱게 차려 입은 궁녀들의 내왕도 빈번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궁전을 떠받치고 있던 주춧돌만 여기저기 남아 있을 뿐, 우거진 잡초사이로 무심한 낙엽(落葉)만 흩날리고 있었다. 만월대(滿月臺)를 둘러보고 비감함을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던 듯, 성종(成宗) 때 시인 안침(安琛; 호 竹溪 1444~1515)이 남긴 다음과 같은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오백 년 옛 자취는 티끌이 되고

       송악산 푸른빛은 몇 번이나 새로웠나.

       이끼 덮인 궁터는 나무꾼의 길이 되니

       넓은 뜰은 비에 젖어 풀만이 봄이로다.


       五百年前迹已塵

       松山蒼翠幾回新

       苔封輩路樵成逕

       雨灑毬庭草自春


       뒷대궐 풍류가락 지금은 들을 길 없고

       동쪽 연못 놀잇배도 잠긴 지 오래도다.

       아득한 지난날을 누구에게 물어보리?

       만월대 상공에는 조각달만 떠 있구나.


       後殿笙歌今寂寞

       東池舟楫久沈淪

       悠悠往事憑誰問

       臺上唯餘月一輪


실로 가슴이 메어져 오는 비장감이었다. 망국지한(亡國之恨)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배달민족(倍達民族)의 주류적인 감성은 <한(恨)>이라 하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주춧돌을 하나씩 밟아 보며 허무감에 젖어있는데 문득, 머리를 들어보니 송악산은 바야흐로 단풍이 절정(絶頂)이다. 


아 ~ 아, 국가의 흥망(興亡)이란 오로지 인간사에 불과한 것, 국가의 흥망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자연의 추이(推移)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는가 보다.


89. 산 이름은 송악(松嶽)인데


개성시내 곳곳의 유적(遺跡)을 안내하면서 자기 집에 유숙케 하는 선비의 친절(親切)은 고맙지만 가난해 보이는 선비 집에 여러 날 머물러 있을 수도 없어서 만류(挽留)를 무릅쓰고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그러나 어제 보았던 단풍으로 곱게 물들은 그 송악산(松嶽山)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자만홍(千紫萬紅)을 한 눈으로 바라보며 송악산을 서서히 올라갔다 내려오니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개성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가야겠기에 이집 저집을 찾아 다녔지만 모두 거절이다. 한 집은 여자만 있어서 안 된다 하고, 또 한 집은 과객(過客)을 재울 방이 없다고 하더니 또 다른 집은 땔 나무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원 이런 놈의 인심이 어디 있단 말인가. 


김삿갓은 울분을 토로(吐露)하면서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읍 이름이 개성이니 문을 닫지 말아라.

      산 이름은 송악인데 왜 나무가 없다 하는가.

      저녁에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닌데

      예의 바른 나라에서 그대만이 진 나라 놈이구나.


      邑號開城莫閉門

      山名松嶽豈無薪

      黃昏逐客非人事

      禮儀東方子獨秦


시 한수를 읊고 나니 울분이 한결 풀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잠자리가 해결(解決)된 것은 아니다.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어느 절간을 찾아 갈 수밖에 없는데 어떤 절이 어느 산 구석에 박혀 있는지 그것조차 알 길이 없지 않는가. 무턱대고 산으로 오르려는데 저 멀리서 나무꾼의 노랫소리가 들여온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나무꾼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시 한 수를 읊는다.


      오두막 저녁밥 짖는 연기 사라지고

      해 저물어 새는 깃으로 돌아가는데

      나무꾼은 하늘가 밝은 달을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며 청산을 내려오네.


      茅屋炊煙歇

      日暮飛鳥還

      樵客見明月

      長歌下靑山


90. 개다리소반(狗足盤)에 죽(粥) 한 그릇


산에서 내려오던 나무꾼 변서방(卞書房)은 절을 묻는 김삿갓에게 절을 찾아가기엔 너무 늦었으니 누추(陋醜)하지만 자기 집으로 가자고했다. 산기슭의 단칸 움막에 가재도구라고는 방 한복판에 놓인 화로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나마 마누라가 없는 탓인지 불씨마저 싸늘하게 꺼져 있었다. 


그 화로라는 것이 커다란 통나무 뿌리를 캐어다가 아무렇게나 잘라 만든 것이어서, 모양새가 얼른 보기엔 호랑이 대가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고래가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괴상(怪狀)하게 생긴 화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삿갓은 빙그레 웃고 나서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읊었다.


      머리는 호랑이요 입모양은 고래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이도 저도 아니로다.

      머슴을 시켜 불이라도 활활 피워 놓으면

      호랑이도 고래도 능히 구워 먹겠구나.


      頭似虎豹口似鯨

      詳看非虎亦非鯨

      若使雇人能盛火

      可煮虎頭可煮鯨


화롯불에 고기 구워 먹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변서방(卞書房)이 저녁이라고 들고 들어 온 것은 삶은 감자가 반쯤 담긴 바가지 하나였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먹고 살지만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해서 어쩌느냐고 그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자기 먹을 것도 부족(不足)한 것을 나누어 주면서 오히려 미안해하는 그 인정이 얼마나 고마운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일수록 인간미(人間美)가 넘치는 것을 한두 번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은 느직이 점심을 겸해서 먹는 것인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변서방(卞書房)은 햇볕 바른 토방에 멍석을 깔고, 침침한 방보다는 햇볕 쪼이는 이곳으로 나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부른다. 나가 보니 개다리소반에 죽 한 그릇이 덩그렇게 노여 있는데 그 죽이라는 것이 어찌나 묽은지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훤히 내려 비치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 대접을 하려고 쌀 한 줌을 어렵게 구하여 죽을 쑤어 내왔나보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주인과 마주하여 맹물과 다름없는 멀건 죽을 먹으면서 ‘이토록 착한 백성들이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순수한 마음씨에 감복(感服)하여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다시 읊었다.


      네 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

      하늘빛 구름그림자가 함께 비치네.

      주인양반 조금도 무안해 할 것 없소

      내 본시 물에 거꾸로 비친 산 그림자를 좋아한다오.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악암(岳岩)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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