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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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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10

 

91. 장기(象棋)

 

개성(開城)을 벗어나 북으로 올라가니 바로 황해도(黃海道) 땅이다. 황해도 곡산(曲山)의 천동마을이 김삿갓의 마음의 고향(故鄕)이다.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대역죄(大逆罪)를 입어 가문이 파멸(破滅)될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머슴의 고향(故鄕)이던 곡산(曲山)의 천동마을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서울에서 산 기억은 너무 어려서 나지 않고, 그 이후로도 영월(寧越)로 갈 때까지 양주(楊州), 광주(廣州) 등지를 전전했었지만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기억이 없으며, 오직 황해도(黃海道) 곡산의 천동마을만이 기억에 생생하여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천동마을에는 본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꺾쇠, 왕눈이, 개똥이 하고 별명으로 부르던 친구(親舊)들은 산과 들로 싸다니며 뛰놀기도 했고, 몇 해 동안 글방에서 글을 함께 읽었으므로 그리운 정이 간절하여 황해도(黃海道)에 들어서자 먼저 천동마을부터 찾았는데 코흘리개 옛 친구들은 모두 장년이 되어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동리의 모습(模襲)은 변함이 없었다.

 

방랑길에 나선이래. 처음으로 자기의 본명을 밝히고 옛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반갑게 환대(歡待)하면서 이집 저집에서 묵어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한 달 여를 천동마을에 묵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장기(象棋)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고향(故鄕)에 온 것처럼 편안(便安)한 세월(歲月)을 보내다가 어느 날 김삿갓은 장기(象棋)라는 제목(題目)으로 다음과 같은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읊었다.

 

술 잘하고 시 잘 짖는 친구끼리 모여 앉아

방안에서 한 바탕 싸움판이 벌어졌네.

포가 훨훨 날아 넘어 위세가 웅장하나

상이 딱 버티고 있어 그 진세도 만만찮다.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飛包越處軍威壯

猛象前衛陣勢雄

 

차가 바로 달려 졸을 먼저 잡아먹고

모로 가는 날랜 말이 궁을 항상 엿본다.

이 말 저 말 잡아먹고 연달아 장 부르니

사 둘만으로는 당해내기 어렵구나.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장기(象棋)가 막판에 몰려 존망(存亡)이 경각에 달려있는 위급(危急)한 상황을 절묘(絶妙)하게 표현한 시이다.

 

92. 바둑(围棋)

 

김삿갓은 어릴 때 함께 글공부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围棋)을 두고 있었다. 지난 번 장기에 대한 시를 보고 감탄(感歎)했던 친구들은 바둑에 관한 시도 한 수 지어보라 졸라댔고 김삿갓은 못 이기는 척 다시 한 수 읊었다.

 

검은 돌 흰 돌이 진을 치고 에워싸며

잡아먹고 버리기로 승부가 결정 난다.

그 옛날 사호들은 바둑으로 세상 잊고

삼청의 신선놀음 도끼자루 썩었다네.

 

縱橫黑白陣如圍

勝敗專由取捨棋

四皓閑枰忘世坐

 

三淸仙局爛柯歸

 

* 四皓란 옛날 한고조 때의 신선을 말함이요,

三淸은 그들이 살던 집이다.

 

꾀를 써서 요석 잡아 유리하게 돌아가니

잘못 썼다 물러 달라 손을 휘휘 내젓는다.

한나절에 승부 나고 다시 한판 시작하니

돌 소리는 쩡쩡하나 석양이 기울었네.

 

詭謀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半日輸瀛更挑戰

丁丁然響到斜煇

 

옛날부터 바둑을 신선놀음이라 일컬어 오거니와 속세(俗世)를 떠난 듯, 한가롭게 싸워가며 바둑을 두어 가는 모습을 절묘(絶妙)하게 묘사한 시였다.

 

93. 육십(六十) 노과부(老寡婦)

 

2의 고향인 황해도(黃海道) 곡산(曲山)을 뒤로 하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던 김삿갓은 어느 날 한 노파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어 달이 휘영청 밝은데 노파(老婆)가 송편을 빚고 있었다.

 

예쁘게 빚어 놓는 송편만 보아도 침이 절로 넘어가지만 교교한 달빛 아래 곱게 늙은 노파의 송편 빚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홀로 시 한 수를 읊었다.

 

손바닥으로 살살 돌려서 새알을 만들고

가장자리를 하나하나 조가비처럼 오므린다.

쟁반 위에 가지런히 세우니 첩첩한 산봉우리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반달처럼 아름답다.

 

手裡廻廻成鳥卵

指頭個個合蚌脣

金盤削立峰千疊

玉箸懸登月半輪

 

노파가 글을 알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혼자 읊은 시인데 노파가 무릎을 치며 감탄(感歎)을 하고 시를 거듭 거듭 외워 보면서 혹시 선생이 김삿갓 아니냐고 묻는다. 빙그레 웃기만 한 김삿갓이 20 전에 과부(寡婦)가 되어 평생(平生)을 홀로 살았다는 노파에게 왜 재혼(再婚)을 안 했느냐고 물으니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시로써 대답한다.

 

육십 먹은 늙은 과부가

빈방을 홀로 지킴은

<여계>라는 시를 습관처럼 외워서

사임당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탓이라오.

 

六十老寡婦

單居守空閑

慣誦女戒詩

頗知任師訓

 

이웃에선 시집가기를 권했고

얼굴이 꽃 같은 신랑감도 있었다오.

나는 흰 머리를 젊게 꾸미자니

분 바르기가 부끄러워 시집을 못 갔소.

 

傍人勸之嫁

善男顔如槿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김삿갓은 노파가 재혼(再婚)을 못한 솔직한 심정을 알고 크게 웃고 노파가 쩌 내온 송편과 술을 들며, 두 사람은 오랜 지기를 만난 듯 밤늦도록 담소(談笑)를 즐겼다.

 

94. 대동강(大同江)

 

육십 노과부의 집을 나선 김삿갓은 당초의 목표였던 평양(平壤)을 향하여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여러 곳을 두루 구경하면서 몇 달이 지나서야 대동강(大同江) 나루터에 다다르니 도도하게 흘러내리는 강물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설레 인다. 개천(价川)에서 흘러내리는 순천강(順川江)과 양덕(陽德), 맹산(孟山)에서 흘러내리는 비류강(沸流江), 그리고 강동(江東), 성천(成川) 등지에서 흘러내리는 서진강(西津江) 등등, 여러 갈래의 물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강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대동강(大同江)이라 했다던가.

 

나룻배에 올라 대동강(大同江)을 건너려니 고려 인종 때의 문신이요 시인이었던 이 고장출신 남호(南湖) 정지상(鄭知常)대동강(大同江)이라는 시가 머리에 떠오른다.

 

긴 둑에 비가 개어 풀빛이 완연한데

고운 님 보내자니 노래가 슬프구나.

대동강 푸른 물은 언제나 마를런가?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강물을 불리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대동강(大同江) 위에서 사랑하는 남녀들의 이별이 얼마나 많았으면 고려 때부터 그러한 시가 나왔을까. 뱃사공은 푸른 물결을 갈라 헤치며 흥겹게 노를 저어 나간다.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가득가득 타고 있는 수많은 놀잇배에서는 멋들어진 피리소리와 함께 구성진 노랫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시흥이 절로 솟아 즉흥시(卽興詩) 한수를 읊었다.

 

대동강에 떠 있는 수많은 놀잇배들

피리소리 노랫소리 바람결에 들려오네.

길손은 말 멈추고 시름겹게 듣는데

창오산의 산 빛이 구름 속에 저문다.

 

大同江上仙舟泛

吹笛歌聲泳遠風

客子停驂聞不樂

蒼梧山色暮雲中

 

95. 모란봉(牡丹峰)

 

대동강(大同江)의 경치가 좋아 시흥이 도도했던 것도 잠시, 나룻배에서 내린 그를 반겨줄 곳이 만무하여 구차한 하룻밤을 보낸 김삿갓이 다음날 모란봉(牡丹峰)에 올랐다.

 

평양북쪽에 있는 높이 96m, 평양의 진산(鎭山)인 금수산(錦繡山)과 그 줄기에 있는 을밀대(乙密臺)와도 연결되는 경승지(景勝地)여서 꿈에 그리던 평양(平壤)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눈 아래 비단 폭처럼 넘실거리는 것이 대동강(大同江), 그 위에 절벽을 이루며 우뚝 솟은 산이 금수산, 강 건너 수양버들이 실실이 우거진 섬은 능라도(綾羅島), 그 옆으로 반월도(半月島), 양각도(羊角島) 등등의 작은 섬들이 점점이 하중도(河中島)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를 자고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불러오고 있는 것도 이 평양의 금수산(錦繡山)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삿갓은 대동강(大同江)을 내려다보며 이곳을 먼저 지났던 옛 선비들의 시들을 치레로 머리에 떠 올려 본다.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달고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짠다면

고운님을 위해 춤옷을 지으리라.

 

浿江兒女踏春陽

江上垂楊正斷腸

無限烟絲若可織

爲君裁作舞衣裳

 

이는 풍류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의 패강가(浿江歌),

 

금수라는 비단 산이 이미 있는데

능라라는 비단 섬을 또 보노라

조선 사람들은 그 이상 사치를 경계하려고

일부러 하얀 옷을 입는가 보다.

 

旣有錦繡山

更見綾羅島

東人戒驕誇

衣裳多素縞

 

이는 당나라 사신 사도(史道)의 노래이다,

 

날이 저물어오자 강 위에 떠 있는 놀잇배에서는 등불들이 하나 둘 꽃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꿈나라의 환상인 것만 같아 김삿갓은 불현듯 백난천(白樂天)의 시를 연상하였다.

 

꿈같은 세상에 봄이 찾아오니

허황한 인생이 물거품 같구나.

오만가지 시름을 모두 없애려거든

술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랴.

 

幻世春來夢

浮生水上漚

百憂中莫入

一醉外何求

 

그러나 오늘도 김삿갓에게는 술도 없고 잠자리도 없지 않는가.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데, 좌우간 인가근처로 내려가 봐야 할 것이었다.

 

96.을밀대(乙密臺)

 

그 날도 김삿갓은 혼자 을밀대(乙密臺)에 올랐다. 금수산(錦繡山) 위의 평탄(平坦)한 곳에 자리한 을밀대에는 사허정(四虛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을밀대(乙密臺)를 일명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이면 정자 이름을 사허정(四虛亭)이라고 했을까? 처음에는 의아(疑訝)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을밀대(乙密臺)는 동서남북이 모두 탁 틔어 있어서 사허정(四虛亭)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합한 듯싶었다.

 

하늘로 날아올라갈 듯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사허정(四虛亭)의 웅자(雄姿)를 노래한 당()나라 어느 시인(詩人)의 시 한수가 걸려 있다.

 

금수산 머리에

손바닥처럼 평평한 대가 있네.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바람 타고 때때로 놀러 오는 곳이리.

 

錦繡山上頭

一臺平和掌

恐有天上仙

乘風時來往

 

때마침 정자(亭子) 위에서는 굉장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평양갑부(平壤甲富)라는 임진사(林進士)의 회갑잔치라고 했다.

 

김삿갓은 여러 날 술을 굶어 출출하던 판인지라 마침 잘 되었다싶었다. 정자(亭子) 위에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 아래에서 술 한 잔 얻어먹은 그는 그래도 그대로 물러서기가 미안해서 축시(祝詩) 한 수를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저 멀리 강포 풍경 아름다워라

고운 모래가 십리나 이어져 있네.

그 모래알 낱낱이 모두 주어다놓고

양친부모 그만큼 수를 누리게 하소서.

 

可憐江浦望

明沙十里連

令人個個拾

其數父母年

 

아무 생각도 없이 모래사장을 바라보다가 한 순간에 즉흥적(卽興的)으로 써 갈긴 것이다.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어느 선비가 하도 놀라워 감탄(感歎)하여 마지않으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글도 좋지만 글씨 또한 명필(名筆)이라고 법석을 떨며 다투어 보려하자 드디어 정자 위로 올려져 임진사(林進士) 앞에 놓였다.

 

시를 좋아하는 임진사(林進士)는 시서(詩書)가 모두 비범함을 알고 그를 정자(亭子) 위로 모시게 하여 "나는 임광득(林光得)이란 사람이요" 하고 정중(鄭重)히 인사를 한다. 그러니 노인의 인사를 받고 자기이름을 밝히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할 수 없이 "소생은 김립(金笠)이라 하옵니다"하고 대답했다.

 

임진사(林進士)는 퍽 놀라워하면서 방랑시인으로 유명하신 삿갓선생을 내 일생 한 번 뵙기 소원(所願)이었는데 내 환갑날에 스스로 와 주셨으니 이렇게 광영(光榮)일 수가 있느냐면서 자손들을 불러 인사를 올리게 하는 등 임진사(林進士) 환갑잔치의 분위기는 갑자기 김삿갓 환영연(歡迎宴)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97. 평양기생은 무엇을 잘 하느냐(平壤妓生何所能)

 

임진사(林進士)는 을밀대(乙密臺)에서의 회갑잔치가 끝난 후에도 김삿갓을 놓아주지 않았다. 평양(平壤)에 머무는 동안 몇 달이라도 좋으니 자기 집에 있으라면서 시문(詩文)에 능한 기생을 데려다가 명승고적(名勝古跡)들을 안내케 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그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어제까지 토굴 잠을 자면서 끼니를 걱정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평양기생(平壤妓生)의 수발을 받는 한량(閑良)이 된 것이다.

 

20 이 갓 넘어 보이는 죽향(竹香)은 평양의 기생세계에서 20 이 넘으면 노기(老妓)라면서 겸손(謙遜)해하지만 시서가무(詩書歌舞)가 모두 능한 재기 넘치는 활달한 명기(名妓)였다. 김삿갓은 그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연광정(練光亭)을 비롯하여 부벽루(浮碧樓), 망월루(望月樓), 풍월루(風月樓), 영귀루(詠歸樓), 함벽정(涵碧亭), 쾌재정(快哉亭), 영명사(永明寺), 장경사(長慶寺) 등등, 평양에서 이름난 명소는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돌아보았다.

 

어느 날 연광정(練光亭)에 올라 술이 거나해진 김삿갓은 죽향(竹香)에게 평양기생은 무엇을 잘 하느냐? (平壤妓生何所能)”고 물었더니 죽향(竹香)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시도 또한 잘 한다. (歌能舞能詩亦能)”고 거침없이 대답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김삿갓은 눈 딱 감고 잘한다잘한다 하는데 그중에 특별히 잘하는 것은 무어냐? (能能其中別何能)”고 또 물었다.

 

죽향(竹香)이 얼굴을 잠시 붉히더니 달밤 삼경에 사나이 다루는 것을 잘한다.(月夜三更弄夫能)”고 대답한다. 김삿갓이 무릎을 치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그것은 차차 확인(確認)이 될 터이지만 먼저 시를 한수지어보라고 했다. 죽향(竹香)은 강촌모경(江村暮景)이라는 제목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읊는다.

 

실버들 천만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구름인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 수 없네.

목동의 피리소리 그윽이 들리는데

부슬비 내리는 강에 날이 저문다.

 

千絲萬縷柳垂門

綠暗如雲不見村

忽有牧童吹笛過

一江烟雨白黃昏

 

김삿갓은 두 번 세 번 감격(感激)스럽게 읊어 보면서 누구의 시냐고 물었다. 정자(亭子) 위에 걸려있는 어느 시보다도 멋진 이 시가 한낮 기생(妓生)의 자작 시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김삿갓이었다.

 

죽향(竹香)은 못내 서운한 듯, 묵묵히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가 김삿갓이 재차 누구의 시냐고 채근(採根)하자 "제 비록 기생(妓生)일망정 남의 시를 표절(剽竊)할 만큼 천박(淺薄)하지는 안사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술이 말끔히 깬 김삿갓은 다시 한 번 시를 읊어 보고 "과연 평양기생(平壤妓生)이로구나" 생각하면서 죽향(竹香)에게 정중히 거듭 사과(謝過)한 후에 어색한 분위기를 얼버무리기 위하여 똑 같은 문(), (), () 석 자의 운자를 써서 연광정(練光亭)이라는 즉흥시 두 연을 연거푸 읊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 물결 굽이친다.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했는데

천만가닥 실버들 십리 강촌에 늘어졌구나.

 

截然乎屹立高門

萬頃蒼波直碧翻

一斗酒三春過客

千絲柳十里江村

 

외로운 따오기는 노을 빛 끼고 돌아오고

짝지은 갈매기 눈발처럼 휘 나른다.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孤丹鷺帶來霞色

雙白鷗飛去雪痕

波上之亭亭上我

坐初更夜月黃昏

 

연광정(練光亭)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大同江) 풍경을 바라보며 죽향(竹香)의 시에 화답한 시였다. 김삿갓의 시를 몇 번이고 거듭 읊어 본 죽향(竹香)은 어느새 시에 취한 듯 그늘졌던 낯빛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98. 죽향(竹香)과의 이별(離別)

 

임진사(林進士)의 환대와 죽향(竹香)의 보살핌 속에 꿈같은 나날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김삿갓에게는 처음 맛보는 황홀한 날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사코 잡는 임진사(林進士)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 그를 죽향(竹香)이 대동강나루터까지 전송을 나왔다. 김삿갓은 차마 배에 오르지 못하고 죽향(竹香)을 바라보는데 죽향(竹香)이 눈물 어린 시선으로 김삿갓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시 한 수를 읊는다.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천만가지 실버들도 잡아매지 못하오.

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임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大同江上別情人

楊柳千絲未繫人

含淚眼看含淚眼

斷腸人對斷腸人

 

그야말로 간장(肝腸)이 녹아나는 시였다. 못다 편 정()에 애끊는 김삿갓도 여기에서 한마디응수(應酬)가 없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눈앞에 전개되는 대동강(大同江) 풍경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푸른 새는 강물에서 정답게 노닐고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임 보내는 시름은 북쪽 산에 어리고

멀리 떠나가는 길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翠禽暖戱對浮沈

晴景闌珊也未收

人遠漫愁山北立

路長惟見水東流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는데

나는 다락에 기대어 풀밭만 바라보노라

그대를 보내고 나 혼자 언덕에 남으면

달이 질 때 설움을 무엇으로 달래리.

 

垂楊多在鶯啼驛

芳草無邊客依樓

怊悵送君自崖返

那堪落月下汀洲

 

죽향(竹香)은 김삿갓이 읊는 이별(離別)의 시를 듣고 옷소매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 없이 흐느껴 울고 있었다. 대동강 건너는 것만이라도 바라보고 돌아서겠다는 죽향(竹香)을 간신히 달래어 돌려보내고 그의 뒷모습이 시야(視野)에서 사라진 후에야 김삿갓은 휘청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나룻배에 올랐다.

 

99. 부자(富者)도 가난뱅이(乞人)

 

평양(平壤)에서 죽향(竹香)과 이별한 김삿갓은 묘향산(妙香山)을 향하여 북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침식(寢食)을 해결하기가 더욱 난감(難堪)해 진다. 오십 평생을 거지생활을 해 오면서도 이때처럼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는 아무 걱정도 없었건만 임진사(林進士)가 준 노잣돈이 달랑달랑해가니 전에 없던 걱정이 생긴 것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걱정,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대로 걱정

배가 부르나 고프나 걱정하기는 마찬가지

부자도 가난뱅이도 내 원치 않으니

숫제 빈부를 떠나서 살고 싶어라.

 

富人困富貧困貧

飢飽雖殊困則均

貧富俱非吾所願

願爲不富不貧人

 

김삿갓은 부()와 빈()을 초월(超越)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은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객줏집 아낙은 선돈을 받아 놓고도 무얼 하는지 저녁 줄 생각을 안는다. 마을이름은 '안락(安樂)' 이라는데 뚫어진 창문으로 찬바람은 스며들고 종일 굶은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동을 처서 조금도 안락하지 못한 심정을 또 한 수의 시로 달래본다.

 

안락촌 마을에 해는 저물어 오는데

관서지방 선비는 시를 안다고 으스대나

마을풍속 고약해 밥 줄 생각은 안 하고

주막 인심 야박해 돈부터 내라네.

 

安樂村中欲暮天

關西儒者聳詩肩

村風厭客遲炊飯

店俗慣人但索錢

 

배가 고파 꼬르륵 천둥소리 요란한데

뚫어진 창구멍으로 냉기가 서려온다.

아침부터 진종일 산천 공기만 마셨으니

나를 안 먹고 사는 신선으로 아는가 묻노라.

 

虛腹曳雷頻有聲

破窓透冷更無穿

朝來一吸江山氣

試問人間辟穀仙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지만 점잖은 체면(體面)에 화를 낼 수도 없고,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 김삿갓의 생활신조(生活信條)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화를 달래기 위해서 비어 있는 창자(脹子)를 움켜잡고 시를 읊은 것이다.

 

100. 묘향산(妙香山)

 

김삿갓이 묘향산(妙香山)을 찾아 영변(寧邊) 고을에 왔지만 먼저 찾은 곳은 약산(藥山)이었다. 영변의 진산(鎭山)인 약산은 참으로 명산(名山)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단군(檀君)의 신시개천(神市開天)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도 하고, 단군이 탄생(誕生)했다는 단군굴이 있다고도 전하는 산이다. 옛 기록에 "준엄(峻嚴)한 멧부리들이 사방으로 둘러 서 있는 모양이 마치 무쇠 솥과 같다."하여 약산성(藥山城)을 철옹성(鐵瓮城)이라 한 데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채(城砦)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전한다.

 

약산성(藥山城)을 두루 살펴본 김삿갓은 금강산(金剛山), 한라산(漢拏山)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명산의 하나라는 묘향산(妙香山)으로 향했다.

 

묘향산(妙香山)하면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나 묘향산(妙香山) 속에서 자랐고, 수도(修道)와 득도(得道)를 모두 묘향산(妙香山)에서 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서산대사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대사는 일직이 묘향산을 이렇게 평한 일이 있었다.

 

금강산은 배어나되 장엄하지 못하고(秀而不莊),

한라산은 장엄하되 배어나지 못하다(莊而不秀).

 

그러나 묘향산은 배어내게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하다(秀而亦莊). 영변에서 묘향산을 가려면 첩첩태산을 130리나 걸어 넘어야 했다.

 

길은 가도 가도 험준(險峻)하였다. 산속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걸어 넘으려니 숨이 턱에 차오르지만 그래도 가슴은 설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읊었다.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었던고.

묘향산을 한 번 구경하는 것이었노라

산은 첩첩, 모든 멧부리가 한없이 높고 가파르니

길은 층층, 열 거름에 아홉 번은 쉬어야 하네.

 

平生所願者何求

每擬妙香山一遊

山疊疊千峰萬仞

路層層十步九休

 

묘향산(妙香山)은 산세가 험준(險峻)하고 가는 곳마다 사찰(寺刹)이 많아 어느 골짜기나 비경 아닌 곳이 없었다. 그 규모가 웅대하기로 금강산(金剛山)의 장안사(長安寺)나 유점사(楡岾寺)가 유가 아니었다는 보현사(普賢寺)를 찾아 가다가 산봉우리에 올라 풍진 세상을 굽어보면서 일직이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끝내고 돌아오다가 읊었다는 선시(禪詩) 한 수를 머리에 떠올렸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천 가문 호걸은 하루살이로다

달빛 밝은 창가에 허심히 누었으니

무한한 솔바람 끊임없이 불어오네.

 

萬國都城如蟻垤

千家豪傑若醯鷄

一密明月淸虛枕

無限松風韻不齊

 

선미(禪味)가 철철 넘쳐흐르는 도통(道通)한 시였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것이 69, 그 후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원적암(圓寂庵)에 머물렀다. 그의 임종(臨終)은 참으로 선사(禪師)다웠다. 제자(弟子)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울을 드려다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했다.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였는데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그러고 나서 운명(殞命)하기 직전에 최후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읊었다.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이와 같도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대사는 마지막 임종게(臨終偈)를 읊고 나서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조용히 잠들듯이 세상을 하직(下直)했다고 한다악암(岳岩)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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