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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11부


김삿갓 전기(金笠傳記) 11부



101. 내 눈(眼)이 어느새 이렇게 ...


김삿갓이 묘향산(妙香山)을 떠나 희천(熙川)을 지나서 강계(江界)로 들어섰을 때에는 아직 입동(立冬)도 안 되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얼음이 얼기 시작하였다. 북쪽지방은 계절이 유난히 빠르다. “오동 잎 하나 떨어지면 모두 가을임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고했으니 이제 그도 겨울 준비를 해야 할 시기(時期)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형편이 아니니 헤진 옷이라도 기워 입으려고 바늘귀를 꿰려 했으나 눈이 가물가물 좀처럼 꿰여지지 않는다. ‘내 눈이 어느새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뿐이랴. 글자도 잘 안보이고, 이를 잡으려고 해도 전 같지가 않다.


      볕을 향해 실을 궤도 바늘귀를 모르겠고

      등불 돋우고 책을 펴도 魯자와 魚자를 혼동하네.

      봄도 아닌 마른나무에 꽃이 핀 듯 보이고

      갠 날도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 같구나.


      向日貫針絲變索

      挑燈對案魯似魚

      春日白樹花無數

      霽後靑天雨有餘


      길에서 인사하는 소년 누구인지 모르겠고

      옷을 뒤져 보아도 움직여야 이 인 줄 아네.

      가련타 이 늙은이 낚싯대 드리워도

      물결이 보이지 않아 미끼만 빼앗기리.


      揖路少年云誰某

      探衣老寔知渠蝨

      可憐南浦垂竿處

      不見風波浪費蛆 


나의 인생이 어느새 그렇게도 늙어 버렸는가 싶고, 생각할수록 처량(凄涼)한 기분이 들어 ‘안혼(眼昏)’이라는 제목으로 읊은 즉흥시(卽興詩)였다.


102. 백발한(白髮恨)


진종일 산속을 걷다가 어느 오막살이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김삿갓이 다음날 아침 상투를 다시 틀려고 거울을 들려다 보다가 적이 놀랐다. ‘아니 내 머리가 어느새 이렇게 반백(半白)이 되었던가?’ 머리카락을 헤집고 다시 살펴보니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았다. 그 옛날 백낙천(白樂天)은 흰머리 한 올을 발견하고도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지 않던가.


     어느새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아침 거울 속에 나타나 보이네.

     한 가닥뿐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이제부터가 백발이 될 시초니라.


     白髮生一莖

     朝來明鏡裏

     勿言一莖少

     滿頭從此始



백낙천(白樂天)은 흰머리 한 올을 보고도 늙어 감을 한탄(恨歎)했는데 나는 이미 반백이 넘었지 않는가. 


김삿갓은 백발이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發見)하고 무심히 넘길 수가 없어서 지나온 반생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백발한(白髮恨)>을 읊었다.


     넓고 넓은 천지간에 대장부 사나이야

     내 평생 지낸 일을 뉘라서 알 것이냐

     삼천리 방방곡곡 부평초로 떠돌아서

     사십년 긴긴 세월 글과 노래 허사였네.


     嗟平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청운의 꿈 어려워 바라지도 않았으니

     나이에서 오는 백발 슬퍼하지 않노라

     고향 꿈에 놀라 깨어 일어나 앉으니

     삼경에 날아든 새 남녘 가지에서 우짖누나.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驚罷還鄕神起坐

     三更越鳥聲南枝


103. 강계미인(江界美人) 추월(秋月)이


조선의 북단, 압록강(鴨綠江) 상류의 독로강(禿魯江)에 접한 강계(江界)고을은 무척 추운 지방이면서도 미인(美人)이 많기로 이름난 곳이다. 


어느 날, 한 정자(亭子)에 올랐더니 옷매무새로 보아 기생(妓生)이 틀림없는데도 시를 제법 아는 듯 정자에 걸려 있는 시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속으로 음미(吟味)하는 여인이 있었다. 잠시 후, 여인은 내려가고 동자(童子)에게 물으니 과연 그는 시서(詩書)와 가무(歌舞)에 모두 능한 강계에서도 일등 가는 기생 추월(秋月)이라 했다. 


김삿갓은 장난기가 동하여 동자에게 '내 편지를 써 줄 것이니 가져다주고 답장(答狀)을 받아 오라' 고 했다. 동자는 빙긋이 웃으면서 편지를 받아 들고 내려가더니 얼마 후에 답장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김삿갓이 보낸 편지에는 단지 <유(榴)>자 한 자가 씌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뜻을 모를 추월(秋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옛날 송도기생 황진이(黃眞伊)에게 당시의 거유, 소세양(蘇世讓)이 보낸 편지였고, 황진이는 <어(漁)>자 한 자를 써서 답함으로서 바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당시는 몰론, 먼 후일까지도 온 나라에 짙은 염문(艶聞)을 뿌린 사랑의 일화(逸話)이다. 


그 뜻은 이러하다. 


유(榴)자는 '석유나무유' 자이니 이를 한문으로 석유나무유(碩儒那無遊) 라고 쓰면 ‘큰선비와 어찌 함께 놀지 않으려느냐.’ 라는 뜻이 되니 소세양이 황진이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이고, 어(漁)자는 '고기잡을어' 자이니 그 발음대로 한자로 고기자불어(高妓自不語)라고 쓰면 ‘품위 있는 기생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니 황진이의 완곡(婉曲)한 수락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추월(秋月)에게서 김삿갓에게 온 답장(答狀)은 그게 아니었다. <유자서한칙(榴字書翰則) 거유소세양지서야(巨儒蘇世讓之書也) 물위표절(勿爲剽竊)> 이라고 씌어 있지 않는가. ‘유(榴)자 편지는 소세양이 썼던 편지이니 남의 글을 함부로 표절(剽竊)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김삿갓이 추월(秋月)을 한낱 기생으로 보고 희롱(戲弄)을 했다가 되게 얻어맞은 셈이었다.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고 너털웃음을 웃고 잊으려 했다. 그리하여 봉향산(奉香山)의 법장사(法藏寺), 백운산(白雲山)의 영각사(英覺寺), 선주산(善住山)의 심원사(深原寺) 등등을 구경하면서 달포가 지난 어느 날 김삿갓이 묵고 있는 객줏집으로 추월(秋月)이 찾아왔다.


추월(秋月)도 김삿갓의 편지를 받은 날 부질없는 선비의 장난으로 치부(置簿)하고 잊고 있었는데 심원사(深原寺)의 노스님을 찾아갔다가 ‘그분이 바로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말씀을 듣고 놀라 용서(容恕)를 빌고자 온 강계(江界) 고을의 객줏집을 모두 수소문하여 찾아왔노라고 했다.


그러면 이제라도 답장(答狀)을 다시 써 주겠느냐고 김삿갓이 짐짓 농을 거니 추월(秋月)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어(漁)자를 써 올린다. 이렇게 해서 김삿갓은 거처(居處)를 추월의 집으로 옮겼는데 방으로 들어가 보니 벽(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한 폭 걸려 있었다.


       인간의 부귀영화 탐내지 말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노닐어 보세. 

       정든 님 모시고 호젓한 오두막에서

       가을바람 밝은 달과 함께 늙어나지고.


       富貴功名可且休

       有山有水足遨遊   

       與君共臥一間屋

       秋風明月成白頭


김삿갓이 시를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는 조운(朝雲)이라는 기생이 남지정(南止亭)에게 보낸 시가 아니냐고 물으니, 


추월이 그렇다면서 자기는 이 시를 하도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외워보고 혼자 즐거워한다고 했다. 이런 시를 좋아한다면 그도 산수(山水)를 퍽 좋아하는가 보다.


104. 고향생각(鄕愁)


소쩍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불현듯 고향생각이 간절(懇切)해 왔다. 조선의 북쪽 끝에 와 있으니 김삿갓의 고향은 아득한 남쪽 나라다. 고향(故鄕)을 떠난 지 이러구러 얼마이던가. 이것도 나이 탓일까. 고향생각이 전에 없이 새삼 간절하여 또 다시 시한 수를 읊는다. 


      서쪽 땅 13 주를 헤매었건만

      아직도 떠날까 머물까 망설이네.

      눈비 내리는 한밤에 고향 그리워 잠 못 이루니

      산천 따라 나그네 길 몇 해이런가.


      西行已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젊었을 때 생각하고 슬퍼할 것 없나니

      영웅호걸 누구도 백발만은 못 면한다.

      객점 외로운 등불 아래 또 한 해를 보내니

      꿈속에나 고향 땅을 찾아가 보리.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고향(故鄕) 꿈이나 꾸어 보려고 불을 끄고 잠을 청해 보지만 마음이 산란(散亂)하니 잠이 올 리 없었다.


105. 강계(江界)에서 맞은 섣달그믐(臘月)


한 겨울 강계(江界)의 추위는 살을 에는 듯 맹렬(猛烈)했다. 눈은 오는 대로 쌓이고 모진 바람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이 추위에 추월(秋月)의 보살핌이 아니었던들 김삿갓은 어찌 되었을까. 어쩐 복인지 따뜻한 방에서 술을 마시며 추월(秋月)의 거문고(玄琴)소리를 듣기도 하고, 시를 읊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꿈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섣달그믐의 밤이다. 


추월은 조촐한 술상을 보아 가지고 들어와서 '오늘은 잠을 자서는 안 되는 날이라고 하니 모든 시름 다 떨쳐 버리고 술이나 마음껏 드시라' 고 했다. 그래서 술이 거나해진 김삿갓은 빈 잔을 추월(秋月)에게 건네고, 자기고향 선배이기도 한 계전(桂田) 신응조(申應朝)의 <제야(除夜)>라는 시를 목청을 돋워 읊어 본다. 


      술 많이 마신다고 어줍게 생각 말게

      내일 아침이면 내 나이 일흔 살일세

      좋은 청춘 꿈결 같이 헛되이 보내고

      지금은 부질없는 백발만 남았다네.


      莫怪今多把酒頻

      明朝七十歲華新

      夢中猶作靑年事

      世上空留白髮身


추월(秋月)은 가냘픈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은 칠십이 되시려면 아직도 멀었사옵니다. 오늘이 그믐날 밤이라서 고향이 그리워 그런 시를 읊으신 것 같사온데 매우 외람(猥濫)되오나 제가 자작시 한 수를 거문고에 실어 선생님의 시름을 달래드리겠사옵니다.’하더니 즉석에서 거문고를 타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주는 것이었다. 


      이 해가 저무는 밤 나그네 잠 못 들고

      형님 생각 아우 생각 심사가 처량하다

      등잔불 가물가물 시름 참기 어려워

      거문고 껴안고 가는 해를 보내노라.


      歲暮寒窓客不眠

      思兄憶弟意凄然

      孤燈欲滅愁歎歇

      泣抱朱絃餞舊年


추월의 거문고 솜씨도 대단했지만 시를 그렇게 잘 지을 줄은 미처 몰랐다. 김삿갓이 '자네 시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이 무색할 지경이라' 고 칭찬을 하자 추월은 과찬의 말씀이라고 수줍어하면서 제가 외람되이 먼저 시를 지은 것은 선생님의 손수 지으신 시를 듣고 싶어서였으니 이제는 선생님의 자작시를 들려 달라고 했다.


106. 하늘과 땅은 만물의 객주집이다(天地者萬物之逆旅) 


추월(秋月)의 간절한 청을 받은 김삿갓은 반백의 나이에 북녘 변방에서 맞는 제야(除夜)의 감회와 함께 취흥(醉興)과 시흥(詩興)이 한데 어우러져 천지자만물지역여(天地者萬物之逆旅; 하늘과 땅은 만물의 객주집이다)라는 웅장(雄壯)한 제목을 먼저 써서 장시(長詩)를 한 편 지어보려는 태세를 취하고, 추월(秋月)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제1연을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천지는 조물주가 만든 객줏집과 같은 것

     말을 달리며 틈새로 엿보는 것 같도다.

     낮과 밤이 두 개의 세계로 서로 엇갈려

     눈 깜박할 사이에 오고 가고하누나.


     造化主人遽廬場

     隙駒過看皆如許

     兩開闢後仍朝暮

     一瞬息間渾來去


김삿갓의 시는 첫 구절부터 그 내용이 웅혼(雄渾)한 철학을 담고 있어서 추월(秋月)을 더욱 긴장케 했다. 별로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붓끝에서는 그토록 거창(巨創)하고 도도한 문장이 마치 강물이 흐르듯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돌아보면 우주는 억천만 년 내려오는 것

     뜻있는 선비들이 간밤에 자고 간 곳일세.

     만물은 끝이 있어도 천지는 끝이 없는 것

     백년 쯤 살고 가는 나의 여관인 것을--- 


     回看宇宙億千劫

     有道先生昨宿所

     無涯天地物有涯

     百年其間吾逆旅

   

     몽선은 부질없는 말 많이 늘어놓았고

     석가도 번잡한 거리에서 많이 떠들었건만

     구구하게 살아온 그들의 백년 세월도

     연꽃잎에 고인 한 잔 술처럼 허망하도다.


     夢仙礧空短長篇  

     釋氏康莊洪覆語

     區區三萬六千日

     盃酒靑蓮如夢處


몽선(夢仙)은 원(元)나라 때에 수심결(修心訣)이라는 저서를 남긴 몽선화상(夢仙和尙)이요, 석씨(釋氏)는 석가모니(釋伽牟尼)를가리키는 말이다. 김삿갓의 장시(長詩)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107. 봄 동산에 잠시 핀 꽃은


김삿갓의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의 역여(逆旅)’라는 장시(長詩)는 그의 춤추는 붓끝에서 그칠 줄 모르고 거침없이 이어진다.


      봄 동산에 잠시 피는 복사꽃 오얏꽃은

      하늘땅이 내뿜는 숨결과 같은 것

      광음이 화살처럼 오가는 이 마당에

      죽고 사는 일이 어지럽기만 하구나.


      東園桃李片是春

      一泡乾坤長感敍

      光陰瞬去瞬來局    

      渾沌方生方死序


      인간은 한 번 살고 가도 만상은 복잡하여

      변화의 면에서 보면 크고 작음이 없나니

      산천과 초목은 끊임없이 바뀌어 가고

      제왕과 호걸도 흥망이 항상 반복되도다.


      人惟處一物號萬 

      以變觀之無巨細

      山川草木成變場

      帝伯侯王飜覆緖


김삿갓은 단숨에 여기까지 써 내리고, 잠시 붓을 멈추며 추월(秋月)을 바라보고 “어떤가, 자네도 이 시에 공감(共感)하는 바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추월은 깊은 꿈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조그맣게 속삭인다. 


“공감정도가 아니옵고, 저는 이 시에서 인생(人生)의 참된 모습을 새삼 깨달은 듯하옵니다. 


백낙천(白樂天)의 시에 장생무득자(長生無得者) 거세여부유(擧世如蜉蝣; 죽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으니 온 세상은 하루살이와 같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오나 선생님의 시를 읽어 보면 인생이 너무 왜소한 것 같사옵니다.”


김삿갓은 인생(人生)이란 본시 그런 것이 아니냐 면서 붓을 다시 들어 아직도 못다 편 소회(所懷)를 펼쳐 나간다.


108.  "'정인(情人)’이라고 한번 불러주게"


추월(秋月)은 선생님의 시에는 영겁(永劫)과 찰나(刹那), 죽음과 삶, 흥망(興亡)과 성쇠(盛衰)가 모두 달려 있어서 마치 우주(宇宙)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면서 이왕 붓을 드셨으니 끝까지 써 달라고 한다. 김삿갓은 천지만물지역여(天地萬物之逆旅)라는 시의 연속이라면서 다시 써내려 간다.


      하늘과 땅 사이에 큰 집을 한 채 지었으니 

      지황씨와 천황씨가 주인 남녀로다

      헌원씨는 터를 닦아 뜰과 거리를 넓혔고

      여와씨는 돌을 갈아 주춧돌을 높였도다.


      其中遂開一大廈

      地皇天皇主男女

      分區軒帝廣庭街

      鍊石皇媧高柱礎  

  

      길 가던 노인들이 한푼 두푼 보태 준 빚은 

      명월과 청풍으로 모두 갚았건만

      노파가 날마다 극락을 쓸고 닦는 동안

      뽕나무 밭이 세 번이나 바다로 변했네.


      行人一錢化翁債      

      明月淸風相受與      

      天台老嫗掃席待  

      大抵三看桑海都


      우산에 해 저물어 길손은 제나라에 자고

      신기루 가을바람에 초나라를 지나간다.

      저 멀리 선경에서 새벽 닭소리 들려오니

      다함없는 나그네 길엔 너와 내가 없도다.


      牛山落日客宿齊

      蜃樓秋風人過楚

      扶桑玉鷄第一聲

      漂漂其行無我汝


우산(牛山)은 우면산(牛眠山) 즉 명당을 뜻하고, 부상(扶桑)은 전설 속의 선경(仙境)을 말한다.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고 붓을 던지며 추월(秋月)을 향하여 “이 시는 나의 우주관(宇宙觀)을 솔직히 고백(告白)한 시일세. 이 시에 대한 자네 소감(所感)은 어떤가?”하고 물었다.


추월(秋月)은 벅찬 감격에 사로잡힌 듯 “우주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현상을 이처럼 간결(簡潔)하고 섬세(纖細)하게 그려 주신 글이 거듭 놀랍기만 하옵니다. 저는 이제야 말로 참 스승을 만나 뵈온 듯 기쁘옵니다.”하고 대답한다.


김삿갓은 다시 술을 몇 잔 기울이고 나서 “이 사람아 자네는 언제까지 나를 스승이라고만 불으려나. 이왕이면 ‘정인(情人)’이라고 한번 불러주게.”하고 웃었다. 


109. 추월(秋月)과 작별(作別)하고


어느덧 깊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와 여기저기 꽃이 만발(滿發)하고 강계(江界) 고을 전체가 도원경(桃源境)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김삿갓은 어머니 생각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돌아가시기 전에 가 뵙고 용서(容恕)를 빌어야지’ 생각이 이에 미친 그는 어렵게 입을 열어 추월(秋月)에게 알린다.


추월(秋月)은 예견(豫見)은 하고 있었지만 가슴이 메어져 오는 것만 같아 대답을 못하고 가슴속으로 흐느껴 울기만 했다. 


묵묵히 김삿갓을 따라 강가에 나와서 나룻배를 기다리던 추월(秋月)은 자기도 모르게 시 한수를 구슬프게 읊었다.


       독로강 긴 둑에 풀내음 향긋한데

       정 있고 말 없어 무정한 것 같도다.

       정든님 머나먼 만 리 밖에 보내자니

       언제 또 만나 뵐까 그리움 한이 없네.


       禿魯長堤芳草香

       有情無語似無情

       送君萬里碧山外

       何時再逢離思長


대장부(大丈夫)의 간장(肝腸)을 에어내는 애절(哀切)하고도 그윽한 시였다. 김삿갓은 추월(秋月)의 시가 찡하고 가슴에 울려오자 나룻배에 오르면서 소리를 크게 내어 다음과 같이 화답(和答)하였다. 


       봄바람에 복사꽃 향기 온 산에 가득한데

       임 보내는 가을 달(秋月)의 눈물 한이 없구나.

       내 이제 배 위에서 그대에게 묻노니

       이별의 슬픔 그대와 나 과연 누가 더할꼬.


       春風桃花滿山香

       秋月送客別淚情

       我今舟上一問之

       別恨與君誰短長


추월(秋月)은 추월대로 슬펐지만 김삿갓은 김삿갓대로 추월 못지않게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는 추월(秋月)을 다시 보지 않으려고 뒤로 돌아서서 뱃사공에게 길을 재촉했다.


110. 어머님은 이미 돌아가시고(母已北邙山)


소복차림으로 꿈에 나타난 어머니를 뵙고 부랴부랴 강계(江界)를 떠나 외가가 있는 충청도(忠淸道) 홍성(洪城)으로 달려온 김삿갓은 이미 10여일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장례(葬禮)까지 마쳤다는 소식을 마을 어귀의 한 주막(酒幕)에서 들었다. 그의 노모는 김삿갓이 방랑길에 오르자 친정에 가 늙은 몸을 의탁(依託)하다가 꿈에 그리던 아들을 영영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世上)을 떠난 것이다. 


김삿갓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지만 외가에는 들어갈 면목(面目)조차 없었다. 물어물어 묘지(墓地)를 찾아간 김삿갓은 무덤 앞에 꿇어앉아 술 한 잔 부어놓고 어머니를 불러보지만 이미 유명(幽冥)을 달리한 어머니에게서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울다 울다 날이 저물어 할 수 없이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끄러미 어머니의 무덤을 돌아다보고 자기도 모르게 시 한수를 읊었다.


       북망산 기슭에 새로운 무덤 하나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네.

       해는 저물어 마음은 적막한데

       들려오는 것은 솔바람소리 뿐이로다.

 

       北邙山下新墳塋

       千呼萬喚無反響

       西山落日心寂寞

       山上唯聞松栢聲


어머니를 만나 뵙고자 천리 길을 달려왔다가 뵙지 못한 채 또 다시 방랑길에 오르는 김삿갓의 심정은 착잡(錯雜)하기만 했다. 


       세상만사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들은 헛되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구나.


       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


이라는 말을 천리(天理)처럼 믿어 온 그였지만 설마 어머니와 자기 사이의 운명(運命)조차 그렇게도 야속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악암(岳岩)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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