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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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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12부

김삿갓 전기(金笠傳記) 12

111. 헤어질까 두려워(心裏畏空房)

정성을 다해 받들어 모시는 추월(秋月)에게 김삿갓은 얼이 빠져 버렸다. 그러기에 밤마다 춘정(春情)을 무르녹도록 나누다가 어느 날 밤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추월을 예찬(禮讚)했다.

옛날부터 가을은 쓸쓸하다 하지만
나는 가을을 봄보다 좋아하노라
맑은 하늘에 학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나의 시정은 하늘에 솟는 것만 같구나.

自古逢秋悲寂寥
我言秋日勝春朝
晴空一鶴徘雲上
便引詩情到碧宵

추월(秋月)이라는 이름의 ‘秋’자를 따 가지고 추월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학에 비유(比喩)하여 그를 한껏 예찬(禮讚)한 것이었다. 사세가 이렇게 되고 보니 추월도 한 마디 없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로서 화답(和答)했다.

오래 사모하다 우연히 만나 뵈니
모두가 꿈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지금은 이렇게 즐기고 있어도
언제 또 혼자될까 두렵습니다.

久慕偶相逢
俱疑是夢中
卽今歡樂事
心裏畏空房

김삿갓이라는 사나이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영원한 방랑객임을 잘 아는 추월(秋月)은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즐거움보다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사랑이란 그래서 영원히 애달픈 것이라고 일러 오는지도 모른다.

112. 낙화암(落花巖)은 말이 없고

어머니 무덤을 하직하고 내려와 허탈한 마음을 금할 길 없는 김삿갓은 이곳이 옛 백제 땅이니 백제고도(百濟古都)나 한번 돌아보려고 부여의 부소산(扶蘇山)에 올랐다. 낙화암(落花巖)에서 백마강(白馬江) 푸른 물을 굽어보며 잠시 옛날의 비극(悲劇)을 머릿속에 그려 보며 옛 시 한수를 생각했다.

백마대 텅 빈지 몇 해이런가.
낙화암 꽃이 진지 몇 해이런가.
만약에 청산이 말 할 수 있다면
백제의 천고 흥망을 물어 알련만.

白馬臺空經幾歲
落花岩立過多時
靑山若不會緘默
千古興亡問可知

산천은 변함이 없어도 인간사 흥망성쇠(興亡盛衰)는 변화무쌍함을 말해 주는 시이다. 봄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부소산 일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붉게 피어 있어서 "해마다 꽃은 똑 같이 피어도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는 시와 함께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낙화음(落花吟)이라는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새벽에 깨어 보니 꽃이 온 산에 붉은데
피고 지는 일이 빗속에 이루어졌구나.
꽃은 나무에서 바위로 옮겨 붙으려 하건만
떨어지기 아쉬운 꽃은 바람결에 시달리네.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無端作意移添石
不忍辭枝倒上風

산에서는 두견새 울다 그치고
향기로운 창공엔 제비가 오락가락
한때의 영광은 꿈과 같은 것이라고
성터에 앉아 있는 늙은이가 탄식하네.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金空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고란사(睾蘭寺)를 거쳐 백마강(白馬江)으로 내려와서 전설에 얽힌 조룡대(釣龍臺)를 바라보며 나룻배를 타고 낙화암(落花巖)을 돌아 구두래 나루로 향한다.

113. 구두래 나루의 주모(酒母) 연월(娟月)

구두래 나루터에는 퇴물임 늙은 기생이 낸 작은 술집이 이었다. 말이 통하는 여인이었다. 젊어서 늙은 정인을 하나 만났는데 그가 죽은 후 혼자 산다기에 그토록 의리를 지키는 사유를 물었더니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자용(女爲悅己者容; 사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가꾼다)"이라는 옛말로 대답을 대신(代身)한다.

“그것은 중국 역사 예양전(豫讓傳)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자네는 그런 책(冊)도 다 읽었는가? 그러면 이런 시도 알겠네그려.”하고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으면서 공술 얻어먹을 생각을 했다.

죽은 뒤에 돈을 하늘까지 쌓아도
살아생전에 술 한 잔만도 못하니라.
身後堆金柱北斗
不如生前一盃酒

연월은 "세상사는 석자 거문고요, 인생은 한잔 술이라(世事琴三尺 人生酒一盃)"라는 시도 있는데 오늘 풍류남아(風流男兒)를 만났으니 어찌 아니 마시겠느냐 면서 조촐한 술상을 차려 내왔다. 김삿갓은 원래 두주불사(斗酒不辭)하는 주호였지만 연월(娟月) 역시 그에 못지않은 주량(酒量)이었다. 창밖으로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가에 송아지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風景)이 하도 좋아서

백마강 가에서 누런 송아지가 울고 있네.
白馬江頭黃犢鳴

한 마디 중얼거렸더니 주모도 맞은 편 노인산에서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노인산 밑으로 소년이 걸어가오.
老人山下少年行

하고 대뜸 대를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백(白)과 황(黃)을 대조적(對照的)으로 표현한 데 대하여 주모는 노(老)와 소(少)를 대조(對照)시킨 절묘한 화답이었다. 그것도 거침없이 응구첩대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시재(詩才)가 비범(非凡)함을 알게 했다. 그래서 김삿갓은 뜰에 있는 연못을 내다보며

연못 속의 부용은 물이 깊어서 보이질 않네.
澤裡芙蓉深不見

하고 읊어 보았다. 그러자 주모(酒母)는 즉석에서 복사나무를 내다보며

뜰에 있는 복사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소.
園中桃李笑無聲

하고 또 다시 멋들어진 대를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부용꽃(芙蓉花)>이라고 한데 대해<복사꽃(桃花)>으로 대를 놓고, <물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서는 <웃어도 소리가 없다> 고 대를 놓았으니 모두가 격에 어울리는 대구(對句)였던 것이다.

김삿갓은 연월(娟月)을 보고 아마도 ‘月’자 이름을 가진 여인들은 시를 잘하는가 보다고 했다. 예전 송도 기생 명월이(明月이; 황진이), 평양기생 계월(桂月)이 이름 난 시인이었는데 여기오기 전에 강계에서 만난 추월(秋月)이도 시를 잘 하더니 이제 또 연월(娟月)이 시를 잘하는 것을 놀랍다고 칭찬(稱讚)을 아끼지 않았다.

연월(娟月)은 나를 어찌 감히 명월(明月)이나 계월(桂月)에게 비하겠느냐면서 강계(江界)에서는 언제 떠났느냐고 묻는다. 김삿갓은 대답 대신에

정초에 집을 떠났는데 어느새 삼월이 되었네.
離家正初今三月

하고 읊었더니 주모는

손님을 초저녁에 만났는데 어느새 삼경이오.
對客初更復三更

하고 화답을 보낸다. 김삿갓은 이에 마음이 몹시 동요되어

이 밤의 흥겨움을 무엇으로 비기리요.
良宵可興比難於

하고 유혹의 시를 한마디 던졌더니 연월(娟月)은 대뜸 이렇게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자오산에 떠 있는 달이 한창 밝으옵니다.
紫午山頭月正明

그 화답에는 김삿갓의 유혹(誘惑)을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삿갓은 염복(艶福)도 많았었나보다. 그래서 그토록 긴 세월(歲月)의 방랑(放浪)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14. 광한루(廣寒樓)에서

정사원서(情絲怨緖; 애정과 원한은 서로 엇갈려 돌아감)라는 말도 있고, 낙불가극(樂不可極; 즐거움은 끝까지 누리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만남과 헤어짐은 때가 있는 법, 김삿갓은 연월(娟月)의 집에서 5,6일 묵은 후에 그의 만류(挽留)를 뿌리치고 단호히 일어서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익산(益山)을 거쳐 춘향(春香)의 고사가 얽힌 전라도 남원(南原)의 광한루(廣寒樓)를 찾아 갔다. 역시 광한루는 경치도 정자도 모두 좋아서 그런지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모여들어 곳곳에서 시회가 열리고 술 인심도 좋았다. 김삿갓을 알아본 선비들이 여기저기서 함께하기를 청했다. 그래서 김삿갓은 광한루(廣寒樓)에서 시를 여러 편 지었다.

남국의 경치는 이 광한루에 다 모였는가.
용성 아래의 오작교 머리에 섰네.
마른 강에 소나기 퍼 붓고 지나가니
들판 적신 남은 구름 거치지 않네.

南國風光盡此樓
龍城之下鵲橋頭
江空急雨無端過
野潤餘雲不肯收

지팡이와 집신뿐인 외로운 나그네가 천리 길 찾아 드니
신선들은 사시장천 장구 치며 노는구나.
은하수와 봉래섬이 한 줄기로 이었으니
구태여 바다의 용궁을 찾아 무엇 하리오.

千里笻鞋孤客倒
四時歌鼓衆仙遊
銀河一脈連蓬島
未必靈區入海求

또 어떤 술좌석에서는 술을 진탕 먹어가며 지극히 환상적(幻想的)인 시를 읊기도 했다.

구태여 정자에서 달구경만 할 것인가
광한루 허공으로 몸과 맘을 날려 보자
내 몸 달빛에 비치면 모두 우러를지니
그림자 강물에 비쳐 흐름 위에 둥실 뜨리.

看月何事依小樓
心身飛越廣寒頭
光垂八域人皆仰
影入千江浮其流

그 옛날 이태백은 몇 번이나 말했던고
달 속의 옥토끼와 시름 같이 나누자고
둥근 달 오늘 밤에 둥실 높이 떠오르니
검은 구름 모두 걷혀 푸르기만 하구나.

擴古詩仙曾幾問
長生藥兎來應愁
圓輪白重今宵出
碧落雲霽廓已收

김삿갓의 시상은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활달자재(豁達自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感銘)을 주었다.

115, 강진(康津)에서의 수양(修養)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낸 김삿갓은 몸도 마음도 쇠잔(衰殘)하여 가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광한루에서 만난 한 선비는 소개장을 써 주면서 강진 고을의 안진사(安進士)를 찾아 가라고 권했다. 과연 안진사(安進士)는 선비 중의 선비였다.

반갑게 맞아주면서 한겨울 자기 집에 묵으면서 편히 수양(修養)하라고 했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바라보여서 수양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더욱이 뒷산 위에는 조망(眺望)이 좋은 정자까지 있어서 더욱 좋았다.

안진사(安進士)의 극진한 배려 속에 한 겨울 푹 쉬면서 안진사(安進士)와 함께 지내보니 그는 인품과 언행이 비길 데 없는 도덕군자(道德君子)였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한다. 김삿갓도 이에 감탄(感歎)하여 그를 간접적으로 예찬하는 시를 이렇게 읊었다.

물을 안고 산을 등진 선경 같은 마을에서
채마밭도 둘러보고 서당에도 들르네.
등잔불과 눈 빛은 아직도 겨울인데
언덕 위의 버들과 매화는 어느 쌔 봄이로다.

抱水背山穩逸鄕
時遊農圃又書堂
燈火野雪兩全色
岸柳江梅二獨陽

날마다 한가롭게 바둑친구만 만날 뿐
번거로움 싫어하고 아침술도 안 마신다.
사람은 누구든지 몹쓸 사람 없으니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만 취하게.

日謀閑趣從棋友
深却繁華遠媚觴
人物皆擧無不用
捨其所端取其長

116. 안진사댁을 떠나며(離安進士宅)

안진사댁(安進士宅)에서 보낸 한 겨울은 무척 푸근했다. 어느 때는 연못가에서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잠기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창가에 기대앉아 달을 바라보며 한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언젠가는 소나기 퍼붓는 광경을 바라보며 풍류시(風流詩)를 읊기도 했다.

방초 푸른 늪에서는 개구리소리 요란하고
손님 없는 문전에는 시골길 한가롭다
소나기 퍼붓는 비바람에 대나무 흔들리고
물고기 날뛰는 물보라에 연잎이 번득인다.

斑苔碧草亂鳴蛙
客斷門前村路斜
山雨驟來風動竹
澤魚跳躍水飜荷

시를 읊는 창가에는 달빛이 가득하고
버들 가린 골목은 안개로 자옥하다
홀아비 하룻밤에 좋은 경치 다 보고 나니
붉은 얼굴 어디 가고 백발만 남았구나.

閑吟朗月松窓滿
淡抹靑烟柳巷遮
鰥老一宵淸景飽
顔朱換却髥皤皤

늙고 병든 몸 아직도 수척(瘦瘠)하지만 깊은 겨울 다 지나고 이제는 봄이 왔으니 김삿갓은 어디론가 다시 떠나야 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작별시 한 수로서 안진사(安進士)에게 떠날 결심(決心)을 알렸다.

먼 나그네 오랫동안 병을 빙자하여
댁에 폐를 끼치며 봄을 맞게 되었소.
봄이 와서 동서로 뿔뿔이 헤어지면
이 곳 꽃구경은 다른 사람 몫이오.

遠客悠悠任病身
君家蒙恩且逢春
春來各自東西去
此地看花是別人

117. 그림자(陰影)

안진사댁(安進士宅)을 나온 김삿갓은 다시 정처 없는 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결국 죽는 날까지 나의 유일한 친구는 오직 나의 그림자가 있을 따름인가 보구나.’ 햇빛이나 달빛에 따라 형태(形態)가 여러 가지로 변하지만 언제나 자기를 따라다니는 충실(忠實)한 벗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오나가나 너는 항상 나를 따라 오는데
서로가 비슷해도 네가 나는 아니로다.
달빛 받아 길어지면 괴상한 꼴이 되고
한낮에 뜰에 서면 난쟁이 꼴 우습구나.

進退隨儂莫汝恭
汝儂酷似實非儂
月斜岸面驚魁狀
日午庭中笑倭容

베개 베고 누우면 찾아볼 길 없다가도
등잔 뒤를 돌아보면 홀연 다시 만나건만
담담히 사랑해도 너는 끝내 말이 없고
빛 없는 곳에서는 종적조차 감추누나.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心雖可愛終無言
不暎光明去絶蹤

118. 담뱃대(煙臺)

김삿갓에게는 항상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또 하나의 친구 담뱃대가 있었다. 심심할 때 피우는 것이라고 해서 담배를 <심심초>라고도 했다. 심심해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담뱃대를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읊었다.

둥근 머리에 목은 굽고 몸은 길기도 한데
은장식 구리장식 값이 헐하지 않다
푸른 연기 한 번 빨면 안개가 자옥하니
향초가 탈 때마다 봄도 함께 사라지네.

圓頭曲項又長身
銀飾銅裝價不貧
時吸靑煙能作霧
每焚香草暗消春

주막집 찬 등불 아래 온갖 시름 벗하고
부슬비 내리는 정자에서 한 대 피우는 맛 새롭구나.
너로 인해 해마다 얼룩참대 잘라 내니
요 임금의 따님들이 강가에서 울리라.

寒燈旅館千愁伴
細雨江亭一味新
斑竹年年爲爾折
也應堯女泣湘濱

* 담뱃대로 쓰이는 얼룩참대는 중국 동정호(洞庭湖)에서만 생산되는데 요(堯)임금의 따님이 눈물을 뿌려서 얼룩졌다고 하는 소상반죽(瀟湘斑竹)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119. 삿갓(笠)

산길을 걸어오노라니 바람은 차도 등에서는 땀이 흐른다. 땀을 식히려고 삿갓을 벗어 들고 그윽이 바라보았다. 40 성상을 풍우를 같이 해 온 삿갓은 낡을 대로 낡아 내버려도 주어갈이 없겠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삿갓이 무한히 정답게 느껴져서 즉석에서 영립(詠笠)이라는 시를 한 수 읊었다.

가벼울손 나의 삿갓 빈 배와 같구나
한번 쓰고 사십 평생 같이 살아왔도다.
목동이 들에서 소를 몰 때 가볍게 걸치고
늙은 어부 갈매기를 벗 삼아 쓰던 것인데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牧竪輕裝隨野犢
魚翁本色伴白鷗

술 취하면 벗어서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다락에서 달구경도 함께 하네
속물들은 의관을 장식물로 여겨 오나
나만은 비바람도 네 덕에 걱정 없네.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俗子衣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120. 깨달음(覺醒)의 경지(境地)에

정처 없이 호남일대(湖南一帶)를 떠돌던 김삿갓은 강진을 떠날 때 안진사(安進士)가 써준 편지를 꺼내 보았다.

김삿갓이 화순(和順)의 동복(同福)에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적벽강(赤壁江)과 똑같은 강이 있다는데 꼭 한 번 찾아가 보겠다고 했을 때 그 곳에 가려거든 신석우(申錫愚)라고 하는 자기 친구를 찾아 가라면서 써 준 편지였다.

김삿갓은 이제 기력이 쇠잔(衰殘)하여 더 이상 방랑할 수도 없었다. 신석우라는 선비를 찾아가서 신세를 지면서 마지막으로 적벽강(赤壁江)이나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벽강(赤壁江)이 있다는 화순 동복을 찾아가는 길에 가지산(迦智山)의 명찰 보림사(寶林寺)와 용천사(龍泉寺)를 구경하고 풀밭에 누워 피로를 풀며 자기 신세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천명인데 어찌 쉽게 얻으랴
나는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노라
고향 하늘 바라보니 천리 길 아득한데
남쪽을 헤매는 신세 물거품과 같구나.

窮達在天豈易求
從吾所好任悠悠
家鄕北望雲千里
身勢南遊海一漚

술잔을 비로 삼아 시름을 쓸어버리고
달을 낚시로 삼아 시를 낚아 오면서
보림사 용천사를 두루 구경하고 나니
내 마음 욕심 없어 스님과 다름없네.

掃去愁城盃作帚
釣來詩句月爲鉤
寶林看盡龍泉又
物外閑跡共比丘

이 시로 미루어 보면 김삿갓은 이미 일체의 욕망(慾望)을 버리고 깨달음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21. 적벽강(赤壁江)에서

김삿갓이 화순(和順) 동복(同福)으로 신석우(申錫愚) 선비를 찾아 왔을 때는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정도로 극도로 쇠약(衰弱)해 있었다. 50고개를 바라보는 시골 선비 신석우는 안진사의 소개편지를 받아 보고 김삿갓을 무척 측은히 여기며 별채까지 내주면서 푹 쉬기를 권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다음 날 아침 적벽강(赤壁江)을 가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주인이 만류(挽留)하다 못해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했으나 김삿갓은 조용히 구경하고 싶다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도록 작은 배 한 척만 혼자 탈 수 있도록 구해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루터까지만 같이 와서 혼자 배를 타게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물 위에 둥둥 떠도는 작은 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물 흐름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라는 글에 보면;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淸風徐來)
물결은 일어나지 않아(水波不興)
망망한 물 위로 떠가노라면(凌萬頃之茫然)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浩浩乎如憑虛御風)"는 말이 나오거니와 지금 김삿갓은 그 옛날 소동파가 적벽강(赤壁江)에서 누렸던 즐거움을 그대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점점 몽롱(朦朧)해 오는 의식 속에서 문득 ‘귀천(歸天)’이라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고 귀천이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죽는다는 말이지만 김삿갓은 마음이 그렇게 편안(便安)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기구하기 짝이 없는 50평생이었다. 그러기에 혼미(昏迷)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시를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鳥棲獸巢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리 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中方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네.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안에 태어나
한강 북녘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初年有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조상은 부귀영화 누려왔던 사람들
장안에서도 이름 높던 가문이었다.

簪纓先世富貴門
花柳長安名勝生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隣人來賀弄璋慶
早晩歸期冠蓋場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소

鬢毛稍長命漸奇
小劫殘門飜海桑

의지할 친척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망했도다.

依無親戚世情薄
曲盡爺孃家事荒

김삿갓의 마지막 시는 언제 끝을 내려는지 그칠 줄 모르고 거침없이 이어진다.

122. 붓을 던지고(羽化登仙; 종결편)

김삿갓은 가물가물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정력(精力)을 다 쏟아 시혼(詩魂)을 불사른다.

새벽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從南曉鐘一納履
風土異邦心細量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搖頭行勢豈本習
糊口圖生惟所長

그런 중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 할수록 아득하네.

光陰漸向且巾失
三角靑山何渺茫

떠돌며 구걸한 집 수 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는 바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두 맛 보았네.

千金之家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鬢髮蒼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자니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歸兮亦難停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다가 마침내 기력(氣力)이 다하여 붓을 던지고 말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응구첩대(應口輒對)로 시를 읊어 댄 것은 그의 타고 난 천품(天稟)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힘이 다하여 눈을 감은 채 무거운 침묵(沈默)에 잠겨 버린 것이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 보면;
"바람이 가볍게 불어 세상을 잊고
우뚝 선 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다.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라는 말이 나온다.

김삿갓은 지금 신선(神仙)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坊坊曲曲)을 두루 답파(踏破)하여 수많은 시를 뿌려 놓던 천재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全羅道) 동복의 적벽강(赤壁江) 범선 위에서 영구귀천(永久歸天) 하였으니 때는 철종14년 (1863), 향년 56세 이었다. (끝). 악암(岳岩)

.... 이상은 “武陵挑源의 情든 사람들”님이 제공해주신 자료를 보충(補充) 정리(整理)하였습니다. 아울러 심심한 감사(感謝)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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