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자가 있거나
남자가 있으면 좋기는 한데
짝사랑에게 정중히 권하고 싶다
가까이에서 매일 같이 붙어 있기 보다는
조금은 떨어져 쉽게 만자니 못하는 거리에서
서로 보고 싶고 그리워하면서 사랑 익혀가는 법을
한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말씀을
물론 남자 빈자리는 남자가 채워야 하고
여자의 빈자리는 여자가 채워야 하지만
사랑이 꼭 만나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멀리 있으면
설사 손잡을 수 있고 얼굴 만져볼 수 있어도
사랑은 섹스로 달아오른 불길처럼 갑자기 타올랐다가
한순간에 냉수를 뒤집어 쓴 것처럼 꺼져버리게 된다
적어도 짝사랑은 오래간다
물론 정작 만나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면서
짝사랑에 시달리는 건 자랑 아니지만
짝사랑은 아픈 것 같아도
이별 없어서 그나마 좋은데
이별을 경험한 사랑 실패자는
너무 많은 이별을 경험해서
오히려 이별 없는 사랑은
그 사람에게 사치일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사랑은
만나서 손도 잡고 얼굴도 만지고
하는 일 자체가 사치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그냥 내 앞에서
잠적만 해주지 않아도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하여 이별에 앞서
만나는 일이 먼저 두려워진다
만나지 말고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사랑이야기야말로 아주 맛이 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비록 만나지 않는 사랑이
너무 슬프고 가련한 변명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스럽지만
섹스가 사랑의 한 부분이지
사랑이 섹스의 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암(岳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