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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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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문체 형식과 장르 개념에 대한 종류의 구분법

어떠한 형식의 글이든 간에 다 문학의 장르에 귀결(歸結)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문학의 개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藝術), 또는 그런 작품인데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 장르는 문예 양식의 갈래라고도 하는데 특히 문학에서는 서정, 서사, 극 또는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로 나눈 기본형(基本形)을 이릅니다. 

문학 양식(樣式)의 하위 부류에 해당하는 장르는 문학의 사회 문화적 또는 역사적 실체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작은 갈래의 문학 형태(形態)를 말합니다. 문학에서 서정적 양식, 서사적 양식, 극적 양식 등은 각각 시대와 여러 문화에 걸쳐 가장 보편적이며 지속적인 속성(屬性)을 드러냅니다. 이들 문학양식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하위의 역사적 장르로 형상화되어 특정한 언어를 기반으로 문학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문학의 장르는 그 소재(素材)와 형식의 구성 방법에 따라 각각의 특징이 규정됩니다. 이것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변화하며 공간적으로 특정의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그 형태나 구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사적인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의 하위 장르의 개념(槪念)과 속성은 보편적인 문학 연구의 방법에 의해 규정되기보다는 그 장르가 존재했던 역사적 조건에 의해 해명(解明)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문학의 하위 장르의 범주(範疇)와 그것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양상은 문학사 연구에서 특정 시대의 문학적 경향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요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의 장르는 특정한 나라나 시대의 문학을 바탕으로 한 개별성(個別性)이 강조되는 개념입니다. 

개별적인 문학의 장르는 특정의 언어를 매체(媒體)로 하여 특정 나라나 시대에 따라서 구체적인 문학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서 문학의 큰 갈래 속에 묶이게 된다. 예컨대, 한국문학에서 향가, 고려 가요, 시조, 현대시는 그 시대와 배경(背景)이 다르고 작가가 다르지만 여러 가지 공통점(共通點)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우선 작가의 눈에 비친 대상과 그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와 사상을 관련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각(浮刻)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또 말의 가락, 나아가서는 마음의 가락을 느끼게 하며 그 길이가 짧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공통점들을 통해 이들을 서정적 양식이라는 큰 갈래로 묶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정한 범위(範圍)나 한도 밖에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산문, 수필, 에세이, 칼럼, 논설문, 사설에 대한 구별에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일반적인 기억 속에 고착(固着)된 오래된 경험과 낡은 지식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상식을 다시 점검하고 헤아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문체의 형식(形式)과 장르의 개념에 대한 종류의 구별을 알아보고자 우선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정리(整理)해 봅니다. 

1). 산문(散文): ①[문학]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 ②소설, 수필, 논문, 서간, 일기, 희곡, 평론 등이 있음. 

2). 수필(隨筆): [문학]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산문 형식의 글.  

3). 에세이(小品文):  '①[문학]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본 것, 체험한 것, 느낀 것 따위를 생각나는 대로 쓰는 산문 형식의 짤막한 글 ②어떤 주제에 관한 다소 논리적이고 비평적인 글 ③또는 그러한 글투의 작품'임. 

4). 칼럼(评论): ①신문이나 잡지 따위에서, 시사성이 있는 문제나 사회의 관심거리 등에 대해 평한 짧은 기사임. 

5). 논설(論說): ①신문, 잡지 등에서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한 견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글 ②어떤 주제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논거를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밝힘 ③또는 그러한 글이나 말. 

6). 사설(社說): 신문, 잡지 등에서 펴낸이의 주장을 실어 펼치는 논설.(다음 백과사전) 

산문(散文)은 자유롭게 쓴 글을 모두 포괄하는 문학형태입니다. 소설(小說)도 산문에 속한다고 합니다. 수필(隨筆)은 인생과 자연 등 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형식에 구애(拘礙)받지 않고 자유롭게 쓴 산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수필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남송(南宋)의 용재 수필(容齋隨筆)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고대 이전부터 다양한 산문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여기서 덤으로 “용재수필”은 남송(南宋)의 학자로 한림학사까지 지낸 홍매(洪邁 1123~1202)가 저술한 책입니다. 1163년 그가 나이 만 40세가 되던 해에 집필을 시작해서 79 세로 사망하기까지 39년 동안 모두 5부작(5筆), 74권(卷), 1229칙(則)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책을 썼습니다. 기술된 내용은 경서(經書), 사서(史書), 제자백가, 시사문한(詩詞文翰)은 물론 의술·복(卜)·천문·역산(暦算)·병법·지리·식물, 불교와 풍속, 민간신앙 등에 이르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항들을 논의한 것들입니다. 엄청난 양의 독서가 앞서야 하고 자유로운 발상과 날카로운 판단력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계속하여 수필은 대략 두 가지 형태로 나눠진다. 몽테뉴 형 수필 즉 경수필(輕隨筆)과 베이컨 형 수필인 중수필(重隨筆)입니다. 경수필은 신변잡기나 개인적인 취향, 경험, 생각 등등을 자유롭게 진술(陳述)하여 글쓴이가 주체로써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이 경수필입니다. 반면에 중수필은 글쓴이가 주체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관찰(觀察)과 사색을 바탕으로 주제, 의견, 비평, 논증 등이 구체적이고 뚜렷합니다. 문자 그대로 경수필은 가볍고 중수필은 무겁습니다. 이점에서 경수필과 중수필의 독자층이 확연하게 구분되기도 합니다.  

또 흔히 에세이(중수필)와 혼동(混同)하는 칼럼은 글쓴이가 대중에게 자기 의견, 생각, 평가, 주장을 피력(披瀝)하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논한 짧은 글로 그 목적이 뚜렷합니다. 그 대상이 대중이고 그 내용은 사회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글쓴이의 교양과 지식, 경험이 중요시됩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바르게 직시(直視)할 수 있는 냉정하고 올바른 안목 또한 마땅히 전제(前提)됩니다.  

한편으로 칼럼은 주장하고 설득(說得)하는 논리 일변도의 딱딱한 논설 또는 신문 사설과는 다릅니다. 논리와 형식에서 자유롭습니다. 이점에서 포괄적 의미의 산문, 좁은 의미에서의 수필과 닮은 듯합니다. 하지만 주제와 대상과 목적이 분명한 비문학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요즘엔 칼럼도 에세이처럼 심한 경우 소설처럼 쓰는 이들도 가끔 보입니다. 소설이라 함은 사실이 아닌 허구에 사적인 감상과 감정까지 개입(介入)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단견(短見)에 따르면 인문학으로 덧칠하여 감성을 팔아 장사를 하는 소위 글쟁이들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종이우산과 같은 쓰레기 글들은 대부분 여기에 속합니다. 

흔히 보는 잡글 즉 경험에서 나오는 일상적인 글들은 경수필에 해당합니다. 일기나 자기를 나타내고 표현하여 소개하는 글도 경수필에 해당합니다. 일기(日記)는 '날마다 자신이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등을 사실대로 적은 개인의 기록'입니다. 사회생활에서 흔히 요구되는 자기소개서(自己紹介書)는 '자기를 남에게 알리기 위해 쓴 글'이다. 이 둘의 성격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전자는 개인적인 사생활의 차원이고, 후자는 자기광고의 차원으로 설명문(說明文)에 가깝습니다. 둘 다 목적만 다를 뿐 자기만의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보호해야 할 자기만의 사생활(私生活)을 공개할 경우, 자칫하면 예상치 못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스스로 공개한다는 것은 그 예상할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감수할 만큼 무언가 바라는 목적(目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기와는 달리 자기소개의 글은 그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수필이 되기도 하고 자기를 설명하는 논술(論述) 즉 비문학적인 글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온갖 수사를 동원하여 자신의 경험 그리고 신변잡기적(身邊雜記的)인 일상 생각마저 창작이 되는 듯한 추세(趨勢)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수필의 자기소개적인 창작화입니다. 공개적인 일기도 그렇고 자기소개서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사방을 둘러봐도 그 내용들이 틀에 박힌 듯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소설은 실제처럼 가상(假像)하고 글로 그리는 허구(虛構)입니다. 하지만 산문(수필)은 다릅니다. 일상의 자기 삶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필이든 논술이든 자기를 그려내는 데에 자기 아닌 다른 모습을 그려낸다는 것입니다. 마치 조약돌을 색칠(色漆)하여 옥돌이라 보아달라는 격입니다. 매끈한 몽돌에 무늬를 그려 넣고는 보석이라 감정(鑑定)해 달라는 격입니다. 수탉이 그 색칠한 깃털을 공작새인양 아름다움을 세상에 뽐내고자 하는 격입니다.  

사물의 추함과 아름다움, 좋음과 싫음의 기준은 개인이 가진 가치관(價値觀)의 잣대, 인식의 틀에 좌우지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세상 만물은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찾아내고, 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가진 마음의 눈에 달려있습니다. 그 마음의 눈이 무언가 외적인 것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면 무언가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왜곡(歪曲)되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하겠습니다. 

경수필이 일상적인 경험에서 나온 개인의 감상(感想) 또는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보편성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개인이 경험을 통해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굳이 남에게 인정받고 공감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當爲性) 또한 없습니다. 경험과 감정을 꾸며내고 흉내 내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제와 구성과 거기에 어울리는 서술적인 특징을 의미하는 문체를 요하는 창작문장은 다릅니다. 특히 스토리가 있는 소설과 같은 창작문장이 그렇습니다. 창작문장이란 허구(虛構)를 사실처럼 혹은 가깝게 만드는 것입니다. 허구와 거짓말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창작에는 뼈를 깎는 고통의 과정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수필과 달리 창작문장인 소설은 마음먹는다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나 쓸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작가, 소설가는 참 대단한 재능(才能)을 지닌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튼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높이고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쓰는 모든 형태의 수필은 자전적(自傳的)이 아닌 자기소개서적인 소설과 가깝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어렵습니다. 일기든 자기소개서이든 창작을 하려니 손댈 엄두를 못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가벼운 산문은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마음이 진정으로 동하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마치 일기나 낙서를 끄적거리듯 타인을 의식(意識)하거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뿐입니다. 

좋은 수필이란 관찰과 경험이 마음과 생각을 거쳐서 자기만의 뚜렷한 관점으로 우러나오는 소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소리는 공명(共鳴)에 의하여 나옵니다. 따라서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없고 속에 든 것 또한 없으면 나오는 것 또한 당연히 없게 마련입니다. 글은 아무리 꾸민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이 은연중(隱然中)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패턴의 문제고 일관성의 문제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솥단지를 만드는 거푸집에서 대종(大鐘)이 나올리는 만무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본인만 아는 목적이 반드시 있게 나름입니다. 어쨌든 자기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은밀한 일기(日記)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의 글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아침 다르고 저녁 다릅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면 그 글이 어떤 형태(形態)를 띠고 있든 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간에 창작의 고통이 여실히 엿보이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좀 고루(固壘)한 결론이지만 글은 매일 정해진 식사를 하듯이 습관처럼 많이 읽고 많이 의문을 가지고 많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면 자연히 늘게 되어 있습니다.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으면 비록 재미가 없어도 난해(難解)하지 않아 납득이 용이하고 생각게 하는 논리적인 글과 책을 많이 읽으면 됩니다. 따라서 글에 담긴 생각과 철학과 신념(信念)이 뚜렷하고 저자의 삶과 괴리가 없어 많은 이들에게서 검증이 된 좋은 책들을 골라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古典)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이외에 자기의 일상을 사실 그대로 정리하고 은밀하게 헤아리는 일기(日記)는 기본입니다.  

여담(餘談)으로 보통 분노나 증오, 슬픔, 등등의 감정이 치솟아 오를 때는 흔히들 그 표면적인 감정에 쉽게 휩싸여 버립니다. 그럴 때 심리를 치유(治癒)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가능하면 토(吐)해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고 감정보다는 그 감정의 이면을 살펴보라고 또 조언(助言)합니다. 문제의 진짜 본질은 그 감정의 이면(裏面)에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글은 자기를 객관화(客觀化)하여 살피고 헤아려 볼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헤아리는 진솔(眞率)하고 진정성 있는 글은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이는 효과가 있다'라고 분명히 믿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다만 자신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인정받기 위한 자기소개서적인 창작글로 자기치유와 정신적 성장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을 쓰는 목적과 스타일은 각양각색이요 백인백색(百人百色)의 자유의지에 속한 거라 뭐라 딱히 토를 달 것은 못됩니다. 여하튼 타인을 의식(意識)하거나 외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산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所見)으로 자기를 헤아리고 미루어 알게 하는 좋은 도구요 수단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 역시 문학의 장르에 대해 많이 헷갈립니다. 여기저기에 뽑은 자료를 나의 참고용(參考用)으로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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