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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간성(天間星) 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

[圖片信息   천간성(天間星) 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


천간성(天間星) 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은 중국 고전 소설 “수호지(水滸志)”의 등장인물이다. 도사(道士) 나진인(羅眞人)의 제자로서 도술(道術)에 능통하다. 별명은 입운룡이며 도호는 일청도인(一淸道人)이며 키가 장신이며 푸른 도포에 송문고정검(松文古定劒)을 메고 있다. 108마왕 중 천한성(天閒星)의 환생이다. 

조개(晁蓋)의 생신강사건(生辰綱事件)에 참여하는 계획에 첫 등장(登場)한다. 이 때 벌였던 실랑이 등을 살펴보면 기존 도사가 갖고 있는 신비한 이미지는커녕 강도(强盜)의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러나 스토리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동안에 도적(盜賊)의 이미지는 완전히 씻겨나가고 하도(何濤)의 관군을 불과 바람으로 태워서 도통(道通)한 도사 이미지를 갖게 된다. 조개의 양산박(梁山泊) 일원으로 조개 사후의 양산박에서 서열(序列)로 따져 제4위가 된다. 

도술(道術)로 양산박의 전투에 도움을 주다 송강(宋江)이 가담한 직후 도술수행과 늙으신 어머님의 봉양(奉養)을 위해 양산박을 떠난다. 이후 이규(李逵)가 이운(李雲), 주부(朱富)를 얻었지만 어머니를 모신다는 공손승(公孫勝)이 안 돌아오자 대종(戴宗)이 찾으려고 하지만 양림(楊林), 배선(裴宣), 등비(鄧飛), 맹강(孟康)을 얻는 성과를 올렸을 뿐 공손승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양산박이 관군 고렴(高廉)의 도술에 곤혹(困惑)을 겪을 때 이규와 대종이 그를 찾으러 나서게 된다. 

공손승(公孫勝)은 속명을 버리고 법명인 일청(一淸)으로 칭하면서 피해 다니지만 끝내 대종(戴宗)과 이규(李逵)는 공손승을 찾아낸다. 결국 공손승은 돌아가기로 결심(決心)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반대하자 이규가 공손승의 집을 부숴버리고 공손승 어머니를 협박(脅迫)했다. 어떻게 어머니께 반 강제(强制)로 허락을 받고 난 후 그를 다시 양산박(梁山泊)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이번엔 나진인(羅眞人)을 설득하지만 나진인도 반대하자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이규는 냅다 스승 나진인을 밤중에 도끼로 찍어버렸다. 물론 찍힌 나진인은 이규의 지독(至毒)한 행동에 진절머리가 난건지 공손승을 양산박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돌아온 공손승은 고렴(高廉)을 결국 놓아 보냈다. 문제는 고렴이 고구(高俅)의 사촌(四寸)이었지만 고구도 결국 공손승에게 패배(敗北)한다. 

망탕산(茫荡山)의 산적 번서(樊瑞)가 공손승(公孫勝)에게 도술로 패배한 이후 그의 제자가 되었고 몰우전(沒羽箭) 장청(張淸)도 그의 안개 술법(術法)에 걸려들어 결박(結縛)당했으며 양산박의 귀순(歸順) 이후 요(遼)나라의 하중보의 요술(妖術)을 물리쳐버렸고 역적 전호(田虎)의 부하 교도청도 그의 제자(弟子)가 되었다. 도술(道術)로서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다. 그만큼 도술의 세계 최강자이라는 셈이다. 물론 진짜 최강자(最强者)는 당연히 나진인(羅眞人)이다. 

결국 공손승(公孫勝)은 방랍전(方臘戰)이 시작되기 전에 도술수행(道術修行)으로 스승에게 돌아간다고 하자 앞서 나진인(羅眞人)의 부탁을 받았던 송강(宋江)은 눈물을 흘리면서 공손승을 놓아주었다. 방랍토벌전(方臘討伐戰)에서 항주(杭州) 공략까지 마친 뒤 송휘종(宋徽宗)이 공손승이 떠난 것을 알았는지 천강성 35인 기준으로 하사품(下賜品)을 보냈는데 이때에는 천강성 7명, 지살성 18명이 전사(戰死)한 뒤였는지라 송강은 더욱 슬퍼했다. 과연 송휘종 답다. 따라서 그의 화려한 행적 때문에 수많은 호걸 사상자(死傷者)를 낸 방랍토벌전(方臘討伐戰)에서 공손승(公孫勝)이 빠진 것이 균형을 깨뜨린 것 아니냐는 말도 심심찮게 거론(擧論)되고 있다. 

도술(道術)뿐만 아니라 진법(陣法)과 모략(謀略)에도 능하지만 진법에 능통(能通)한 주무(朱武)의 양산박 합류(合流)로 이후론 도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도술사(道術士)의 모습으로만 비쳐진다. 그의 도술은 여러 차례 양산박군의 위기를 넘기는데 일조(一助)했는데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그가 존재(存在)할 때와 존재하지 않을 때의 두령 사망 수만 봐도 그 차이가 극명(克明)하다. 물론 강남의 패왕 방랍(方臘)의 군세가 강하기는 했으나 요나라의 전호(田虎), 왕경(王慶)을 그렇게 쉽게 밟아버린 힘을 가진 양산박군(梁山泊軍)이 공손승(公孫勝)의 술법을 잃자마자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낸 것은 방랍군의 강력(强力)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도인이라서 도교(道敎)를 믿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고 국수와 대추를 먹는다. 이규(李逵)가 탕륭(湯隆)을 데려올 때도 근처 떡집에서 산 대추떡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또한 요나라 토벌 전 후에 노지심(魯智深)이 자신의 주지였던 지진장로(智眞長老)를 찾아갈 때 다른 종교의 사람과 만나기를 꺼려하는 모습이 나왔다. 

다시 서술하면 천간성(天閒星)-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의 별호는 입운룡(入雲龍)이며 천간성(天閒星)에 상응한다. 계주(薊州) 사람으로 도호는 일청(一淸)이고 어려서부터 창이며 막대 쓰는 법을 익혔고 다른 무예(武藝)에도 능하여 공손승 대랑(大郞)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예를 좋아해 수련하던 공손승(公孫勝)은 신선이라 불리우는 나진인(羅眞人)을 만난 후 그의 제자가 되어 도술(道術)을 배웠다. 채태사(蔡太師)의 생일선물(生日膳物)을 강탈 사건(强奪事件)을 공모하러 이름 난 호걸인 조개(晁蓋)를 찾아와 함께 도모(圖謀)하고 양산박으로 피신한다. 

양산박(梁山泊) 생활 중에 노모와 스승을 보러 계주(薊州)로 돌아가 이름을 청도인(淸道人)이라 고치고 숨어 지내나 고렴(高廉)을 격파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러 온 대종(戴宗)과 이규(李逵)에 의해 다시 돌아온다.  

진법을 이용하여 망탕산(芒砀山) 산적 패거리를 물리치기도 했으며 귀순 후 요나라와의 전쟁 때 도사 하통군의 법술을 격파(擊破)하고 난을 일으킨 전호(田虎)의 도사 교도청도 항복시켰다. 나진인(羅眞人)으로부터 진언(眞言)을 받아 왕경(王慶)의 난을 토벌(討伐)한 후 다시 스승에게 돌아갔다. 

애초에 양산박 집단(梁山泊集團)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나진인(羅眞人)의 제자인 그가 채태사(蔡太師)의 보화의 정보를 가지고 조개(晁蓋)를 찾아왔다는 것부터가 뭔가 어색하다. 부군사의 자리에 있지만 작전회의(作戰會議) 때 계략을 내놓거나 하지는 않고 가끔 도술(道術)을 사용하는 적에 대항하는 역할을 한다. 방랍 토벌(方臘討伐) 직전에 형제들을 떠난 것은 강력한 그를 이야기에서 제거함(除去)으로써 108명의 대부분을 전사(戰死)시키기 위한 작위적(作爲的)인 연출로 보인다.  

당대의 이름난 도인 나진인(羅眞人) 아래서 도를 닦아 바람과 비를 부르고, 안개와 구름을 움직이는 도술을 부릴 수 있다. 스스로 조개를 찾아와 채태사(蔡太師)에게 바쳐지는 생신강(生辰綱)을 강탈(强奪)할 것을 제안하였고 후에 조개(晁蓋)와 함께 양산박(梁山泊)에 들게 된다. 

양산박에서 오용(吳用)을 보조하는 부군사(副軍師) 자리에 있다가 중간에 나이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스승에게서 도를 전수(傳受)받기 위해 양산박을 떠났다가 송강(宋江)이 고렴(高廉)의 요술에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자 찾아온 대종(戴宗)과 이규(李逵)의 노력으로 겨우 스승 나진인(羅眞人)의 허락을 받아내어 양산박으로 돌아가게 된다. 

스승에게서 오뢰천심정법(五雷天心正法)을 물려받아 고렴(高廉)을 물리치고 이후 송강(宋江)이 나라의 명을 받고 선봉(先鋒)이 되어 요나라와 사방의 반란군을 칠 때에도 적장(敵將)들이 부리는 요술을 제압하여 송군을 수차례 위기에서 구해내었다. 송강이 왕경을 토벌한 직후 스승 나진인(羅眞人)에게로 돌아가 도를 닦으며 여생(餘生)을 보내었다. 

공손승(公孫勝)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도사(道士)이자 양산박의 부군사(副軍師)를 맡고 있는 네 번째 두령(頭領)이다. 도술(道術)로 비와 바람을 부를 수 있어 입운룡(入雲龍)이라고 불린다. 

어려서부터 진인(眞人) 곁에서 도술을 익혀 여러 도술(道術)에 능하다. 키가 장신이며 항상 송문고정검(松文古定劒)을 지니고 있다. 우연히 조개(晁蓋)의 집 대들보 위에 북두칠성(北斗七星)이 내려앉는 것을 보고 10만 관의 탈취 작전에 가담(加擔)한다. 탈취 작전이 성공하자 좇아오는 하도(何濤)의 관군을 물리친다. 그 후 조개 일행과 함께 양산박(梁山泊)에 입단하려고 하지만 양산박의 당시 총두령 왕륜(王倫)은 그들을 꺼림칙하게 여겨 거부한다.  

이에 당시 양산박에 입단해 있던 표자두(豹子頭) 임충(林冲) 두령이 왕륜을 처단(處斷)하고 조개(晁蓋)를 총두령에 세운다. 이에 따라 공손승(公孫勝)은 세 번째 두령이 된다. 이후 어머니와 진인을 만나러 잠깐 양산박(梁山泊)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이 와중 양산박이 간신배(奸臣輩) 고구 태위(高俅太尉)의 사촌 고렴(高廉)에게 대패한다. 이리하여 공손승을 찾으러 가는데 진인이 허락(許諾)하지 않자 앙심(怏心)을 품은 이규(李逵)가 진인을 죽이려 한다. 이에 진인은 도술을 부려 위기(危機)를 모면하고 이규를 꾸짖는다. 이규와 대종(戴宗)이 용서를 빌자 진인은 그제서야 공손승을 허락한다. 이로 인해 고렴은 패하고 죽게 된다. 이후 장청(張淸)을 사로잡는 데 공을 쓰는 등 큰 활약(活躍)을 하나 방랍(方臘)의 난 이전에 노모와 진인(眞人)에게 돌아간다. 그 후로는 공손승(公孫勝)의 행적(行蹟)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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