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박 서열(序列) 다섯 번째인 천용성(天勇星) 대도(大刀) 관승(關勝)은 관우(關羽)의 후예(後裔)라고 수호지(水滸志) 내에서도 제대로 띄워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양산박 토벌군 출신으로 정목안(井木犴) 학사문(郝思文)과는 의형제사이다. 추군마(醜郡馬) 선찬(宣贊)의 천거로 높이 등용(登用)되었으나 송강(宋江)의 인덕에 이끌려 결국에는 양산박(梁山泊)에 합류하게 된다.
관승(關勝)은 수호전에서 등장하는 108성 중 하나로 양산박의 천용성(天勇星) 다섯 번째 두령이다. 가상 인물이며 수호전(水滸傳)에선 관우의 직계 자손(直系子孫)으로 나온다. 별명은 대도(大刀)로 큰 칼이라는 뜻이며 그가 쓰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말한다.
능주(凌州)의 장군으로 관우(關羽)의 후손으로 나오며 이미지도 관우와 판박이다. 얼굴이 붉고 수염이 길고 아름다우며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잘 써서 별명도 대도(大刀)이다. 무예 역시 관우처럼 뛰어나다. 관우의 후손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염공(美髥公)은 주동(朱仝)이다.
양중서(梁中書)에게 구원군을 보내는 서신을 받은 채경(蔡京)이 관승(關勝)을 불러 양산박에 토벌(討伐)하라고 보냈다. 부관으로 정목안(井木犴) 학사문(郝思文)과 추군마(醜郡馬) 선찬(宣贊) 등을 이끌고 토벌군의 대장(大將)으로서 양산박을 치러 갔다. 초전(初戰)에서 기습하러 온 수군두령인 장횡(張橫), 완소칠(阮小七)을 복병으로 유인해 생포(生捕)한다. 이 소식을 들은 송강군은 대명부(大名府) 포위를 풀고 양산박으로 회군한다. 관승은 송강(宋江)의 예의 깊은 말에 응하지 않고 임충(林冲), 진명(秦明)과 연이어 싸움을 펼친다. 송강이 징을 쳐 임충과 진명을 불러들였고 관승은 송강의 행동에 의문이 들어 사로잡은 장횡, 완소칠에게 송강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잠기던 중 중 호연작(呼延灼)이 거짓 항복해 유인하면서 함정(陷穽)에 걸려들어 생포된다. 생포된 이후 송강의 특기(特技)인 '묶은 사람 호통 치며 풀어주기'에 넘어가 양산박의 두령이 된다.
북경 대명부에서 삭초(索超)와 싸우고 북경대명부(北京大名府)가 함락되고 단정규(單廷珪)와 위정국(魏定國)이 양산박을 치려고 하자 양산박에 합류한 이후 특별한 공을 세우지 못했고, 단정규와 위정국과는 잘 아는 사이니 자신이 나서겠다고 하며 선찬(宣贊), 학사문(郝思文)과 함께 단정규, 위정국과 싸운다.
마군 오호상장(五虎上將) 중 한 사람이며 오호상장답게 단기 대결(單騎對決)에서 대부분 '벽력(霹靂)같은 기합과 함께 내지른 일격' 으로 적장(敵將)을 두 조각으로 나눠버린다. 특히 요(遼)나라편의 사문공(史文恭)과 같은 급인 올안광과 왕영(王英), 호삼랑(扈三娘) 부부를 죽인 정표의 목을 베었다.
머리도 좀 돌아가는 편으로 항주 전투(杭州戰鬪)에서 석보와 붙었는데 석보(石寶)가 도망치자 뒤를 쫓지 않고 그냥 돌아온다. 송강이 물어보니 아무래도 뭔가 계략(計略)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송강(宋江)이나 오용(吳用)이 굉장히 신뢰(信賴)하고 있는 대장급 두령이다. 수호지 무장을 대상으로 최강 논쟁이 벌어지거나 하면 임충(林冲)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무장인데 인기(人氣)도 좋고 덤으로 굴욕(屈辱)도 적다.
수호지(水滸志)의 대학살이라 불러 손색이 없는 방납(方臘)의 반란 사건에서도 죽지 않은 몇 안 되는 양산박 영웅(英雄)이다. 관직 생활도 잘했지만 그 뒤에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말을 탔다가 낙마(落馬)하였고 그 때문에 치명상(致命傷)을 입어 사망한다. 하지만 등장인물 설정(設定)을 새로 꾸민 이야기를 만들어낸 수호후전(水滸後傳)에서는 멀쩡히 살아서 다시 등장(登場)한다.
천용성(天勇星) 대도(大刀) 관승(關勝)은 기실 관우(關羽)의 후손으로 능주(凌州) 포동군(蒲東郡)의 순검이었으나 서른두 살에 추군마(醜郡馬) 선찬(宣贊)의 추천을 받아 정목안(井木犴) 학사문(郝思文)과 함께 태사(太師) 채경(蔡京)의 명으로 양산박(梁山泊)을 토벌하러 나선다.
병서(兵書)도 자주 읽어 문무(文武)에 모두 능하나 양산박에 가담(加擔)한 장수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이 귀순하러 온 척하자 간계(奸計)에 넘어가 사로잡히고 말았다. 송강(宋江)의 뜻에 감화되어 양산박(梁山泊)에 입단한 뒤 자신들을 토벌하러 온 신화장군(神火將軍) 위정국(魏定國)과 성수장군(聖水將軍) 단정규(單廷珪)를 설득시켜 모두 입단(入團)시킨다. 그 뒤 양산박 마군오호장(馬軍五虎將)의 두목이 되어 전투에서 불패의 명성(名聲)을 보여준다.
요의 장수 을안통군과 방납(方臘)의 장수 형정, 전진붕, 정마군 정표 등을 살해했다. 방랍 토벌 후 대명부(大名府) 정병마총관(正兵馬總管)으로 북경의 병마를 총괄(總括)하다 만취하여 말에서 떨어져 병사하였다.
양산박 최강의 무장(武將)으로 묘사되지만 개인적 활약상이나 개인사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관승(關勝)은 관우(關羽)의 이미지를 가져온 인물이나 실존인물(實存人物)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의 관승은 송(宋)의 산동지방(山東地方)의 제남(濟南)을 지키던 장수로 대도를 사용하며 용맹(勇猛)이 뛰어났다고 한다.
외모가 수려하고 관우(關羽)와 거의 똑같이 생긴 얼굴을 가졌다. 관우가 가지고 다녔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쓴다. 본래 조정에 있던 장수였으나 추군마(醜郡馬) 선찬(宣贊)의 추천으로 정목안(井木犴) 학사문(郝思文)과 함께 양산박을 치러 간다. 전투 중 오용(吳用)의 계책으로 호연작(呼延灼)의 거짓투항에 속아 선찬, 학사문과 함께 양산박(梁山泊)에 입단한다. 후에 단정규(單廷珪)를 붙잡아 입단시키고 위정국(魏定國)을 설득해 양산박에 입단시켜 양산박은 5명의 득을 본다. 요나라, 방납(方臘)의 난에서 특히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며 그중에 올안광과 정표를 죽이는 데에 공을 세우며 난 이후 대명부(大名府) 정병마총관(正兵馬總管)에 임명되었다. 과다한 음주로 인해 낙마하여 숨을 거둔다.
관승(關勝)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修飾語)가 바로 '무신의 후예'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무신(武臣)이라 함은 누구인가? 무신은 바로 ‘삼국지(三國志)’의 관우를 일컫는다. 관우(關羽)는 사후에 관우, 관후, 관제, 무신의 단계를 거쳐 사람들에게 칭송(稱頌)받는데 바로 이 관우의 후예라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관승이다.
관승(關勝)은 능주(凌州) 포동현(蒲東縣) 순검(巡檢) 출신으로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잘써서 별명도 대도(大刀)이다. 소설에서는 관우의 직계후손으로 등장한다. 용모는 관우(關羽)처럼 수염이 길고 대춧빛의 얼굴을 가졌다. 북송(北宋) 때 실존한 인물을 토대로 재구성된 인물이다.
선찬(宣贊)에 의해 천거(薦擧)되어 학사문(郝思文), 위정국(魏定國), 단정규(單廷珪)와 함께 양산박(梁山泊)에 공격당한 북경으로의 지원군을 지휘한다. 하지만 관승(關勝)은 북경이 아니라 양산박으로 진군하는 작전을 세우게 되었고 이를 알아차린 양산박군은 황급히 북경 포위(北京包圍)를 풀고 되돌아가 관승과 대결(對決)하였다. 임충(林冲), 진명(秦明) 등 양산박의 주력 호걸(主力豪傑)들과 호각세(互角勢)를 이루었으며 야습(夜襲)하러 온 적의 수군을 두 번이나 격파하고 장횡(張橫)과 완소칠(阮小七)을 잡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한때 관군이었던 호연작(呼延灼)의 거짓 투항 계략(投降計略)에 속아 붙잡히고 만다. 송강(宋江)과 대면한 관승은 그의 태도와 생각에 감동(感動)하여 양산박으로 투항한다. 그리고 곧이어 공격해온 단정규(單廷珪)를 사로잡고 위정국(魏定國)을 설득하여 양산박에 끌어들인다.
양산박 기병 오호장(騎兵五虎將) 중 한명으로 학사문(郝思文)과 선찬(宣贊)을 부장으로 두어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하였고 귀순(歸順)하여서는 전국 각 지에서 용맹(勇猛)을 보여준다. 요나라와의 전투에서는 적의 총대장 올완광을 장청(張淸)과 함께 무찔렀으며 전호 토벌(田虎討伐) 시 적장 당빈을 내응(內應)시키는데 성공한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때에는 최강의 적인 석보와 호각을 이루었고 번서(樊瑞)의 도움으로 요술사 정표를 무찌른다.
반란 평정(叛亂平定) 후엔 병마총관(兵馬總管)으로 임명되었으나 군사조련(軍事調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음주(飮酒)로 인한 낙마가 원인이 되어 사망하였다.
한편 후수호전(後水滸傳)에서는 음주(飮酒)로 죽지 않고 생존(生存)하여 다시 동료들의 권유(勸誘)에 받아 양산박(梁山泊)에 합류하고 섬라국(暹羅國)으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