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의 사대미녀가 있다. 서시, 초선, 왕소군, 양옥환. 그녀들의 미모는 전설이 되었지만, 초상화나 사진이 남아 있지는 않다. 초상화가 없기 때문에, 후세에 무한한 상상의 여지를 남겨 주었다. 누구든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그녀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만일 백명의 마음 속에 백명의 햄릿이 있다면, 천명의 마음 속에는 천명의 사대미녀가 있을 것이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이 4명의 미녀중 앞의 3명은 정치적 공로가 있다. 서시는 월을 도와 오를 멸망시킨 공이 있고, 초선은 왕윤을 도와 동탁을 죽인 공이 있다. 왕소군은 변방의 충돌위험을 없애고, 한나라와 흉노간의 우호를 건립시킨 공이 있다. 양옥환은 아무런 공로도 없다. 그리고 당현종 이융기를 홀려, 처형인 양국충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도록 방임했으며, 야심만만한 안록산을 총애하여, 그의 세력이 커지도록 놔두었다. 그 결과 "어양비고동지래(漁陽鼙鼓動地來), 경파예상우의곡(驚破霓霜羽衣曲)"이 되었다. 이미 중흥했던 대당이 쇠락의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사대미녀에 대응하여, 중국역사상 사대추녀(四大醜女)도 있다: 모모(嫫母), 종리광(鍾離光), 맹광(孟光), 완씨(阮氏). 이 사대추녀도 초상화나 사진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적의 문자기재를 보면, 확실히 못생겼다. 그러나, 사대미녀와 비교하면 사대추녀는 사람들이 존경심을 갖게 만든다.
모모는 황제(黃帝)시대의 사람이다. 사적의 기재에 따르면, 그녀는 머리가 망치처럼 앞으로 돌출되어 튀어 나왔다. 콧대는 너무 높고, 몸은 뚱뚱했다. 아래 위가 통으로 굵어서 마치 대나무상자같았고, 얼굴은 새카맣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후세에 귀신분장을 하는 사람이 쓰는 면구(面具)는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추악하기 그지없는 여인이 현숙총혜(賢淑聰慧)했고, 덕과 재능이 뛰어났다. 그리하여 그녀는 황제 희헌원의 네번째 비로 뽑히고, 그녀에게 후궁을 관리하도록 명하며, 그녀를 아주 신임한다. 그녀는 스스로 모범이 될 뿐아니라, 부녀들에게 덕을 교육해서, 후궁을 제대로 관리했다. 그리고 방직과 봉제를 발명하여 인류가 겨울옷으로 동물가죽을 입고, 여름옷으로 나무잎을 입는데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녀는 거울을 발명해서, 인류가 더 이상 물을 보며 화장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후세의 문인묵객들은 모모를 찬양하는 글을 적지 않게 썼다. 남북조이래, 역대조정은 모두 선농단(先農壇)을 두고 원고시대의 선농을 제사지내는데, 그중에 모모는 "선직(先織)"으로 제사를 받는다. 그녀는 황제의 원비(元妃) 누조(嫘祖, '선잠(先蠶)'으로 제사받는다)와 함께 황제와 백관의 제사를 받는다.
종리춘,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절구같은 머리에, 눈은 깊이 파였고, 손가락을 길고 마디가 크다. 파인 코에 목은 막혔으며, 이마는 두텁고 머리카락은 적다. 허리는 꺽였고, 가슴은 튀어 나왔으며 피부는 시커멓다. 마흔 살이 되도록 남편이 없었다. 그녀의 고향이 무염(無鹽, 지금의 산동성 동평현 동부)이어서, 그녀는 "무염"이라고도 불렸다. 그녀는 비록 용모가 추악했지만,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있었으며, 덕을 쌓고 일을 했으며 안목이 넓었다. 그래서 천하대사를 모두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남다른 용기로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臨淄)로 간다. 국왕에게 시집가야겠다는 이유로 제선왕 전벽강(田辟疆)을 만나 국제국내형세를 토론하며, 조정의 폐해를 지적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진, 초 두 나라가 제나라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런데 대왕은 토목공사나 크게 벌이며, 사치하고 돈을 마구 쓰며, 주색에 빠져 있다. 직언하는 신하를 미워하고, 아부하는 신하를 좋아하여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명하고 뛰어난 인재들은 조정을 떠나서 숨었고, 간사한 소인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안으로는 국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위기가 사방에 잠복되어 있다. 제나라가 위험하다. 전벽강은 깜짝 놀라서, 확 깨닫는다. 그리하여 명을 내려 누각과 건물을 짓는 것을 중지시키고, 여악대를 해산시켰다. 그리고 간신들을 몰아내고, 호화사치를 버리며, 나라를 다스리는데 전념했다. 이때부터 제나라는 다시 강대해진다. 종리춘도 정말 왕비가 된다.
맹광, 동한(東漢) 사람. 용모가 추악하고 시커멓다. 몸은 뚱뚱했다. 힘은 세서 돌절구를 들 수 있었다. 맹씨집안은 오랫동안 장사를 해와서, 집안은 넉넉했다. 그녀는 마음이 선량하고, 일을 잘 해서, 동네에 유명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청혼을 해왔으며, 그중에는 집안사정이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두 거절한다.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도 여전히 미혼상태였다. 그녀의 부친은 조급해졌다. 그녀에게 도대체 어떤 사람에게 시집가려는 것인지 물어본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양홍(梁鴻)같은 현명하고 훌륭하며 재능있는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 양홍은 맹광과 같은 고향사람이며, 관료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천하가 대란에 빠지고, 부친이 사망하며, 집안이 몰락한다. 그는 태학(太學)에 들어가 공부했고, 절개와 지조를 숭상했으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많은 책을 읽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의 고상한 품성과 재능은 이미 사방에 이름을 떨쳤다. 부귀한 집안에서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은거의 뜻이 있어서 모두 거절했다. 추녀 맹광이 양홍에게 시집가려 하다니 사람들은 모두 헛된 망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양홍은 그녀의 품행과 지향을 좋게 보았고, 그녀를 찾아가서 청혼한다. 맹광은 양홍에게 은거의 뜻이 있음을 듣고, 결혼예물로 단지 베옷과 삼베신발, 그리고 광주리와 방직도구를 원했다. 이를 가지고 은거하여 농사지을 때 쓰려는 것이다. 결혼후 맹광은 양홍을 따라 패릉의 산 속으로 들어가 은거하고, 농사짓고 길쌈하며 살았다. 나중에 양홍은 시를 지어 조정을 풍자했고, 조정에서 체포하도록 명한다. 맹광은 다시 양홍을 따라 제, 노, 오등의 나라를 떠돈다. 양홍은 경작할 땅이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쌀을 찧어주면서 생활했다. 다만 맹광은 아무런 원망의 말도 하지 않으며, 그를 세심하게 잘 보살펴 주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존경했다. 양홍이 매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식사를 준비해서, 식탁을 눈썹까지 들어올려 그의 앞에 내놓았다. "거안제미(擧案齊眉)"라는 고사는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맹광은 원래 성만 있고, 이름이 없었는데, 양홍이 그녀에게 "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덕요(德曜)"라는 자를 지어준다. 그녀의 품성과 덕망이 고상하여 해가 비치는 것같다는 의미이다.
완씨는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 허윤(許允)은 조정의 관리였다. 신혼날 밤, 허윤은 완씨의 용모가 너무 추한 것을 발견하고, 동방에서 도망쳐 나가서 다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나중에 친구들이 설득하여 마지못해 다시 동방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잠깐 앉아 있다가 다시 나가려고 하였다(이를 보면 그녀의 용모가 무서울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씨는 그의 소매를 잡고 만류한다. 그가 물었다: "여자에게는 사덕(四德)이 있는데, 당신에게는 몇 가지나 있는가?" 소위 '사덕'은 부덕(婦德), 부언(婦言), 부용(婦容), 부공(婦功)을 가리킨다. 완씨는 그가 자신이 못생긴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대답한다: "저에게는 용모(容)만 없습니다. 선비에게는 백행(百行)이 있다고 하는데, 당신은 그중 몇 가지나 가졌습니까?" 허윤이 말한다: "나는 다 갖추었다." 완씨가 말한다: "선비에게는 백행이 있고, 덕(德)이 가장 우선인데, 당신은 여색을 좋아하고 덕은 좋아하지 않는데, 어찌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허윤은 얼굴이 빨개진다. 원래 이 신부는 비범했던 것이다. 허윤은 그제서야 그녀를 가까이 하고 존경한다. 완씨는 단지 재능을 약간 드러낸 것일 뿐이다. 나중에 발생한 일련의 일은 그녀의 뛰어난 지혜와 판단능력을 보여준다. 허윤은 이부랑(吏部郞)으로, 그가 임명하는 지방관은 대부분 그의 고향사람이었다. 위명제는 그가 자신과 가까운 자들만 기용한다고 여겨서 그를 체포하여 심문한다. 그가 끌려갈 때, 완씨는 이렇게 당부한다: "심문을 받을 때 단지 도리로 설득하기만 하고, 용서를 구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놀라서 울고불고하는 가족들에게 말한다: "걱정할 것없다. 그는 곧 돌아올 것이다." 그후 죽을 끓여놓고 기다렸다. 허윤은 과연 금방 집으로 돌아온다. 원래, 허윤은 위명제에게 심문을 받을 때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위하여 인재를 선발하려면 사람을 잘 알아보고 알맞은 곳에 기용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고향사람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을 기용한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들을 살펴보십시오, 만일 직위에 부적합하다면 신이 죄를 받겠습니다. 위명제는 그들 관리들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았는데, 모두 제 역할에 맞는 직위에 임명되었다. 그래서 그를 풀어준 것이다. 나중에 허윤은 진북장군에 봉해진다. 그는 스스로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완씨가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이것이 화근의 시작일지 모른다. 어찌 걱정이 없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큰 화가 닥친다. 조정대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사(司馬師)는 허윤이 몰래 하후현(夏侯玄)을 자기 대신 보정(輔政)하게 하려는 것으로 의심해서 그를 죽벼버린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허윤의 가족들은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빨리 허윤의 두 아들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완씨는 침착하게 대응한다. 그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마사는 종회(鍾會)에게 밀명을 내린다. 허윤의 집으로 가서 허윤의 아들이 만일 부친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죽이라고 말한다. 완씨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조정의 일은 절대 묻지 말라. 종회가 묻지 않으면 너희는 말하지 말라. 너희가 비록 총명하지만 재능이 부족하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되니, 그를 겁낼 것없다." 종회가 이리저리 물은 후에 사마사에게 보고한다: 허윤의 아들들은 모두 평범합니다. 사마사는 그제서야 허윤의 아들들을 죽일 생각을 버린다.
제갈량의 처인 황월영(黃月英)도 추녀이다. <양양기(襄陽記)>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황승언(黃承言)은 고상개랑(高爽開朗)하여 면남(沔南)의 명사였다. 공명에게 말하기를 '듣기로 그대가 부인을 취하려 한다고 들었소. 나에게 못생긴 딸이 있는데, 머리카락은 누렇고, 얼굴은 검지만, 재능은 그대와 짝이 될만하오." 공명이 좋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가지고 우스개처럼 말한다 '공명이 처를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말라. 아승의 추녀를 얻었으니까." 그러나, 황월영은 박학다식하고 지혜가 뛰어났다. 그녀는 제갈량이 유비를 따라 남정북전할 때 집안 일을 잘 처리하며 자식들을 교육시켰을 뿐아니라, 발명가였다. 전해지는 바로는 그녀가 출가하기 전에 움직일 수 있는 목구(木狗), 목호(木虎)를 발명했고, 결혼후에는 쌓을 찧을 수 있는 목인(木人)과 맷돌을 돌리는 목려(木驢)를 만들었다고 한다. 제갈량의 육출기산때, 그녀는 다시 그를 위해 목우류마(木牛流馬)를 발명하여, 적군의 봉쇄선을 돌파했을 뿐아니라, 운수에 투입되는 병력을 줄일 수 있어, 대군의 양초운송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제갈량이 남중(南中)으로 출병하여, 맹획을 칠종칠금할 때는 마침 한여름이었다. 장기(瘴氣)를 피하기 위해, 장병들에게 '제갈행군산(諸葛行軍散)', '와룡단(臥龍丹)'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도 황월영이 제공한 배합비율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황월영과 제갈량의 이야기는 천년동안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사대추녀와 황월영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고, 그녀들의 이야기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널리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들 추녀들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덕(德), 지(智), 재(才)"의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름다움을 논한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덕은 보석에 비견할 수 있다. 그것은 소박한 배경이 뒤를 받쳐주어야 오히려 더욱 화려해진다.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으면서 단정하고 미덕이 있는 사람은 우리로 하여금 숙연하고 존경심을 들게 만든다." 이들 추녀는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재적인 아름다움이 있어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심이 들게 만든다. 베이컨은 이런 말도 했다: "형체의 아름다움은 색깔의 아름다움보다 낫다. 우아한 행위의 아름다움은 형체의 아름다움보다 낫다. 가장 높은 단계의 아름다움은 화가가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기묘한 아름다움이다." 모모에서 황월영까지, 그녀들의 심령의 아름다움은 화가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사대미녀를 보면, 모두가 다른 사람의 도구였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한 것은 바로 그녀들의 미모였다. 당현종이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아들의 품에서 빼앗아온 양옥환이었지만, 결국 나중에 병사들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녀를 마외파에서 목졸라 죽이고 말았다.
이상의 추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한 여인이 그녀의 외모가 얼마나 추하더라도, 그녀가 선량하고 총명하며, 심령이 강대하고, 지식이 광대하고, 견식이 탁월하다면, 설사 곁에 미녀를 가득 쌓아둔 제왕이라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하물며 관료나 성공인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씨춘추.우합편>에는 이런 글이 있다. 황제가 모모에게 한 말이다: "품덕을 계속 갈고 닦고, 마음의 올바름을 흐트리지 않는다면, 용모가 추하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