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의 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천고의 풍류인물들은 그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중국역사에서 수많은 빛나는 영웅인물들이 나타난 바 있다. 그들중에서 일부 인물은 어린 나이에 명성을 떨친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나이에 진흙을 가지고 놀고 있을때, 그들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주 짧은 시간만에 다른 사람은 평생을 쏟아부어도 얻기 힘든 성취를 거두었으나, 하늘이 재주를 질투하였는지, 한창 나이에 요절해버리고 말아,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예를 들면 아래의 세 사람이다. 이들은 중국고대에 공인된 신동들이다. 지혜가 남들보다 뛰어났지만, 모두 단명했다. 누구도 18살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항탁(項橐)
<삼자경(三字經)>에 이런 말이 있다: 석중니(昔仲尼), 사항탁(師項橐), 고성현(古聖賢), 상근학(尙勤學). 중니는 공자(孔子)의 자(字)이다. 즉 공자가 항탁이라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공자가 스승으로 모셨다는 이 항탁은 어린아이이다. 당시 공자와 제자가 동쪽으로 유람을 떠나 비곽(碑廓)에 도착했고, 산천이 수려한 것을 보고, 말을 타고 동쪽으로 가면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멀리서 그들의 마차를 보고 한켠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오직 한 아이만이 도로의 가운데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아이가 바로 항탁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는 그 모습을 보고 수레를 멈추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항탁은 꼼짝하지 않는다. 공자는 호기심으로 그를 향해 왜 그런지 물어본다. 항탁은 그의 말이 불손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약간 불쾌해 한다. 그래서 이들을 놀려주려고 생각한다. 서로 말이 오고 갔고, 공자가 일련의 문제를 낸다. 그러나 항탁이 모조리 풀어버린다. 공자는 이 아이의 지식이 넓고 깊어서, 자신이 말로는 상대가 되지 않겠다고 여긴다. 그래서 졌다고 하면서 항탁에게 말한다: "후생가외(後生可畏)로다. 내가 너를 스승으로 모시겠다."
항탁이 공자를 세번이나 곤란하게 만든 이야기가 널리 퍼진 후, 제후와 국군 그리고 주천자는 이 아이가 나중에 성장하여 어느 제후를 보좌하게 되면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하여 앞다투어 무사를 보내어 항탁을 데려가고자 한다. 그러나 항탁은 그들의 요청을 모조리 거절한다. 자신은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나라에서 온 무사는 며칠간 설득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져온 건량이 바닥나자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기 전에 항탁이 다른 나라를 위해 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죽여버린다. 총명한 항탁은 제후들간의 다툼에 희생된다. 그의 나이 12살때였다.
감라(甘羅)
항탁은 공자를 이겼지만, 감라의 성취는 그보다 더욱 컸다. 감라는 진(秦)나라의 좌승상 감무(甘茂)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12살때 여불위(呂不韋)의 아래에서 일했고, 자진하여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보내는 사신으로 간다. 그는 자신의 총명함으로 조나라를 설득하여, 조나라와 맹약을 맺는다. 진나라의 태자단을 돌려보내고, 조나라는 연나라를 공격하게 되고, 조나라는 5개의 성읍을 진나라에 넘겨준다.
진나라는 그의 외교노력으로 5개의 성을 얻었으니 이런 공적은 세우기 힘든 것이다. 1개의 성도 빼앗으려면 매우 어려운 것이기 떄문이다. 그래서 감라는 12살때 진왕에 의해 상경(上卿, 승상에 해당함)의 직위를 받는다. 나이 어린 그가 이런 성과를 거두다니 나중에 나이가 들면 더욱 큰 성취를 이룰 터였다. 그러나 감라는 역사서에서 사라진다. 아마도 항탁과 마찬가지로 질투하는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일 것이다.
조충(曹冲)
조충도 마찬가지로 고대에 비교적 안타까운 신동중 하나이다. 그는 조조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인애하기로 유명했다. <삼국지>의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러하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5,6살에 그의 지적능력은 성인과 같았다." 즉 그는 5,6살때의 지적능력이 어른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충칭상(曹冲秤象)의 이야기도 남겼다. 모두 알다시피 조조는 인재를 아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총명하니 자연히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조조는 심지어 자신의 지위를 넘겨줄 생각까지 한다.
만일 조충이 젊은 나이로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조조의 지위를 누가 물려받았을지 알 수가 없다. 조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8년(건안13년), 조충은 중병으로 요절한다. 죽을 때 그의 나이 13살이었다. 조조는 그의 병중에 여러번 하늘에 기도를 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는 애통해 마지 않았다. 매번 이 아들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눈물을 흘렸다. 특별히 견황후의 일족에서 죽은 여자를 그와 합장시켜주기도 했다.
언급할만한 점은 조충의 요절이 또 다른 신동의 사망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주불의(周不疑)이다. 이 두 신동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조조는 두 사람이 교류하는 것에 찬성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친구였기 때문에 주불의까지 목숨을 잃게 된다. 조충이 죽은 후, 조조는 주불의가 총명하다는 것을 꺼려서 사람을 시켜 그를 죽여버린다. 조충이 죽은 후에 손을 쓴 것은 그의 생각에 조충이라면 주불의를 콘트롤할 수 있지만, 조비는 아마도 주불의를 콘트롤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