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 등 격전지에서 공세를 펼쳤던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 반란이 전황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바그너 반란이 즉각적으로 러시아군에 변화를 초래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26일(현지시각) 러시아 국방부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 군부대를 방문해 보고를 듣는 장면을 공개했다. 바그너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처벌을 요구했던 쇼이구 장관은 바그너 반란이 끝난 뒤 처음으로 모습으로 드러냈다. 다만 영상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쇼이구 장관이 방문한 부대가 위치한 장소 및 정확한 방문 일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의 롭 리 선임연구원은 바그너 반란이 전황에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바그너는 지난달 바흐무트 점령 선언 뒤 이미 우크라이나전에서 한 발 물러선 상태고 우크라이나가 반격을 시작하며 러시아군이 방어 위주로 대형을 짠 상태에서 공격 위주의 집단인 바그너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흐무트 장악 등 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둬 온 바그너의 이탈은 우크라이나에 기회로 포착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안드리 체르냐크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 대변인이 바그너 반란을 정치, 정보, 군사 영역에서 "최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바그너가 모스크바로 진격 중이었던 24일 우크라이나군이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공세를 시작"했고 "모든 방향에서 진전이 있다"고 밝혔다. 매체는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헤르손에서 러시아 점령지로 진입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AP> 통신은 미국 싱크탱크 CAN의 러시아 연구 책임자 마이클 코프만이 개인 방송에서 "지난 3주 간 우크라이나의 반격보다 최근 바그너가 (반란을 통해) 러시아군에 더 많은 타격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유럽연합(EU) 고위 관리는 러시아의 내분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반격"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평가하기도 했다.
더구나 프리고진은 반란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명분을 흔들기까지 했다. 그는 23일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한 영상을 통해 전쟁이 국방부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함께 러시아를 공격할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속이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의 개인적 명예를 위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남부 자포리자와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에 밀려 퇴각하고 있다고 주장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막아내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앞선 발언을 부정하기도 했다. 프리고진이 하루 만에 1000km를 이동하며 거침 없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한 것 자체가 러시아군의 능력 및 충성심에 의문을 가져온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러시아 쪽도 이번 반란으로 단기적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리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군이 이번 주에 영토를 잃는다면 바그너 탓을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바그너 비난은 어느 정도 효과적인 선전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벨라루스로 망명한 프리고진이 벨라루스 방면에서 우크라이나에 위협을 제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리처드 다낫 전 영국 육군참모총장은 "얼마나 많은 용병들이 프리고진과 함께 갔는지"가 중요하다며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전투력을 유지한다면 "또 다시 우크라이나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지적했다.
26일 <로이터> 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과 통화하며 바그너 반란에 대해 논의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6일 기자들에게 바그너 반란이 우크라이나전에서 푸틴 대통령의 "큰 전략적 실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