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의 조건이란?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 구양수(歐陽脩)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가르침니다. 이른바 삼다설(三多說)입니다. 좋은 글을 쓰는데는 별다른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남이 쓴 글을 찾아 널리 읽고, 폭 넓고 깊은 사색(思索)을 하면서 많이 써보는 가운데서 자연히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주장(主張)입니다. 상술한 견해(見解)는 글쓰기에 관한 고전적인 발언(發言)이므로, 오늘날 우리가 진지(眞摯)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글은 어떤 것인가? 해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내용이 진실(眞實)하고 알차며, 읽기에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면 다 좋은 글입니다. 여기서 좋은 글의 요건(要件)으로 짐작(斟酌)되는 12개의 기준(基準)을 마련하고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봅시다. 1. 충실성 글은 우선 내용이 충실(忠實)해야 합니다. 부질없이 길기만 하고 담긴 내용이 알차지 못하고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글의 내용이 알차서 밀도(密度)있는 것을 충실성이라 합니다. 말할 것이 없으면 하지 말라. 좋은 글에는 '어떻게'에 못지 않게 "무엇"이 중요(重要)합니다. 충실성에 대한 두 가지 충고(忠告)입니다. 내용과 기교(技巧)가 하나가 되어 조화(調和)를 이룬 곳에서 좋은 글은 생겨납니다. 그리고 내용이 빈약(貧弱)하면서 기교에 빠진 글보다는 기교는 서투르더라도 내용이 충실한 글이 더 나을 것입니다. 내용이 충실한 글은 기교가 다소 부족(不足)하여도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러한 글은 필요하고 알맹이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내용이 알차지 못 한 글은 읽는 이를 공허(空虛)하게 합니다. 2. 방법과 기교 기교에 치우쳐 내용이 부실(不實)한 글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절(適切)한 기교나 방법은 좋은 글의 필요 조건(條件)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說明)의 방법 중 정의를 내려야 할 대목이 있고, 분석(分析)이나 비교, 대조(對照)의 방법으로 설명, 논증(論證)해야 글의 효능(效能)이 높아질 경우가 있습니다. 비유(比喩)나 상징(象徵)의 기교를 써서 생각의 깊이와 폭과 높이를 가늠하기도 하고, 열거(列擧)와 예증(例證), 반복(反復), 인용(引用)의 방법으로 글을 더 구체화(具體化)하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기교와 방법들을 글의 기법(技法)이라 합니다. 3. 정확성 정확한 글이란 우선 정서법(正書法), 띄어쓰기, 구두점 찍기 등 문법(文法), 맞춤법에 맞도록 쓴 것이야 합니다. 글은 적합(適合)한 어휘로써 어법(語法)과 기타 부대조건에 맞도록 써야 합니다. 이 경우에 요청(要請)되는 것이 정확성(正確性)입니다. 실제 언어의 사용에 있어 바름과 그름의 절대적 기준(基準)은 없습니다.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 현상 모두가 긍정적인 것으로 용납(容納)되는 것입니다. 표준어의 입장에서는 욕설(辱說)이라고 여기는 말도 가까운 친구 사이에는 더없이 따뜻한 정감(情感)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의 초보자는 일정한 표준어법, 구문(構文)의 원리 등에 맞도록 쓰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모방(模倣)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실수에는 단락을 구분 없이 나열(羅列)하는 경우, 구두점(句讀點)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4. 경제성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경제의 원리(原理)는 글에도 적용됩니다.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말만 쓰는 것이 글의 경제성입니다. 말이 많으면 화제(話題)를 장황(張皇)하게 늘여 전달(傳達)의 효과를 낮춥니다. 물론, 말이 많다는 것이 꼭 길이의 장단(長短)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최소한의 필요한 말로 화제(話題)를 전개(展開)한 것인가에 있습니다. 5. 정직성 정직성(正直性)이란 자기가 독창(獨創)적으로 쓴 글인가, 남이 쓴 글의 일부를 따왔는가, 개념(槪念)을 인용했는가를 쓰는 이가 분명히 밝히는 것을 뜻합니다. 직접 따오는 명인(明引)뿐 아니라 개념을 취하거나 부분을 녹여 따오는 암인(暗引)까지도 그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글을 쓸 때 다음 세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出處)를 밝혀야 합니다. 첫째, 다른 이가 실제로 사용한 어구를 따다 쓴 경우 둘째, 다른 이의 착상(着想), 견해, 이론을 끌어다가 쓴 경우 셋째, 사실, 통계(統計), 예증을 끌어 온 경우 그러나 표절(剽竊)과 보편적인 직관(直觀)에 따른 유사(類似)한 표현은 구별(區別)되어야 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브라우닝의 '사랑의 한 길'이나 예이츠의 '하늘나라의 장옷' 은 그 시상과 표현(表現)이 비슷하지만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두 시를 본다면 우리는 창조적 직관의 우연한 조응(照應)임을 알 것입니다. 아무튼 글은 인격과 양심의 거울임을 명심(銘心)하여 글 쓰는 이는 정직(正直)하게 자기다운 글 을 써야겠습니다. 6. 성실성 성실성(誠實性)은 자기다운 글을 정성들여 쓰는 것을 뜻합니다. 글쓰기에 미숙(未熟)하고 솔직(率直)하지 못한 사람은 글을 쓸 때 '일정한 과제(課題)에 대하여 자기가 실제로 생각하는 것'을 쓰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 것'을 쓰려고 합니다. 그 결과 마음에도 없는 글, 자신의 글이 아닌 설익은 문장으로 자기의 교양(敎養) 있음, 유식(有識)함, 사려(思慮) 깊음을 과시하고 허세(虛勢)를 부리게 됩니다. 따라서, 성실하지 않은 글 쓰는 태도를 고쳐져야 합니다. 7. 명료성 좋은 글의 '선명(鮮明)한 뜻'을 명료성이라 합니다. 무엇을 쓰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쓴 글이라야 잘 쓴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료성은 주로 설명문(說明文), 논증(論證)문 등 지적인 글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명료성과 지나친 단순성(單純性)을 구분(區分)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시인의 직관과 철학자의 깊고 원대한 사유(思惟)의 세계가 늘 일반 독자에게만 이해 되도록 평이(平易)한 환담(歡談) 정도에 국한(局限)되지는 않습니다. 어느 글의 뜻이 불명료한 까닭은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서술의 특수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둘째, 잘못된 구성(構成)에 그 까닭이 있습니다. 8. 일관성 일관성은 글의 시점(時點), 난해도(難解), 형식적 요건 - 어조, 문체, 내용 등이 일률적인 것을 뜻합니다. 글의 중도에서 이를 변화(變化)시킬 필요가 있으면, 독자가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을 여유를 얻도록 하는 등 글을 쓰는 이는 신중(愼重)을 기하여야 합니다. 글에서 이러한 일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문맥의 호응(呼應)과 내용의 일관성이 지켜져야 합니다. 9. 완결성 글은 본디 의도한 감정과 뜻을 온전하게 표현, 전달해야 합니다. 주제 또는 중심사상을 담은 부분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한 편의 글은 완결(完結)됩니다. 글의 이러한 속성(屬性)을 수사학에서는 완결성이라 합니다. 글의 완결성은 작게는 문장에서, 나아가서는 문단과 한 편의 글 전체에서 요청(要請)되는 특성입니다. 10. 독창성 창조된 모든 것에 독창성이 있듯이, 새로 쓴 글에도 독창성이 있어야 합니다. 글에 나타난 참신(嶄新)하고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우며 창조적인 특성을 여기서는 독창성(獨創性)이라 합니다. 글은 특정한 개인이 쓰므로, 그 개인의 경험과 지식 및 상상력이 그의 인성에 작용하여 표현되는 언어 능력의 창조적인 실현이 곧 글을 쓰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글의 독창성이란 '개성(個性)적'이라는 말과도 통하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창작을 가리켜 '낯설게 하기'라 하였습니다. 독창성, 곧 창의(創意)성은 사물을 새롭게 본다는 관점에서 시작되며, 참신성을 위한 노력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단지 표현의 참신성만이 아니라, 소재(素材), 제재(題材), 주제(主題), 구성(構成), 문체(文體)가 모두 독창적이고 참신한 것이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재나 제재가 평범하거나 진부(陳腐)하더라도 구성과 문체 및 주제가 참신하여 독창성을 얻은 글을 쓰는 일 또한 값진 것입니다. 11. 타당성 앞에서 우리는 정확성을 강조하였으나, 필경에는 독단(獨斷)적일 수도 있는 작문 교과서의 규칙(規則)보다 문맥(文脈)상 타당(妥當)성이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글이 시점, 독자, 목적 등에 맞도록 씌어야 한다고 주장(主張)할 때, 이들 기준(基準)에 맞는 글의 성질을 타당성이라 합니다. 타당성의 관용(寬容)상 규준(規準)은 형식적인 글, 비형식적인 글, 통속(通俗) 어법(語法), 문체(文體), 어조(語調)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12. 자연스러움 글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자연스러움은 글의 흐름이 순탄한 동시에 거슬리는 어구(語句)가 없어 이해하기에 순조(順調)로운 것을 뜻합니다. 지나치게 기교(技巧)를 부리거나 현학(衒學)적인 냄새를 풍기려다가는 부자연스러운 글을 써내기 쉽습니다. 쉽게 말하여 '자연스러움'이란 '가식(假飾)이 없음'입니다. 억지로 꾸며 돋보이려 할 때, 그것은 부자연스럽고 또 사실이 아닌 가짜라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岳岩 整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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