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활 속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생산도구인 글쓰기 열풍(熱風)이 세차게 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왜 글을 써야 할까요? 시대의 요구이자 생활의 수요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쓰기만큼 일상적이면서도 부담(負擔)을 주는 작업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죄다 감안해서인지 글쓰기가 다시 큰 인기(人氣)를 얻고 있습니다.
각종 취미생활(趣味生活) 속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쓰기는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소일거리가 됩니다. 더군다나 실력(實力) 있는 사람에게는 꽤나 짭짤한 수익(受益)을 낼 수 있는 전문적 혹은 여가적인 돈벌이수단으로 블로그와 지속적으로 호흡(呼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 열풍이 세차게 불고 있으며 글짓기에 관한 글들도 뚝 터진 홍수마냥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글쓰기는 부담을 주는 존재(存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쓰기의 경우 취미와 다르게 모순(矛盾)된 존재이기도 합니다. 한국어에 익숙한 우리가 굳이 글쓰기를 배워야 하나 싶다가도 막상 글을 쓰려면 많은 부담이 듭니다. 참 글쓰기만큼 평범(平凡)하면서도 부담을 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분들도 꽤나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말이지 굳이 글을 못 써도 사는데 큰 지장(支障)은 없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훈련(訓練)이 되어야 하고 중요한 행동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의문(疑問)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글을 써야 할까요? 또 누구를 위한 글일까요? 그리고 글을 쓰면 수익이 발생할까요?
하여튼 글을 잘 쓰고 싶지만 잘 써지지 않아 막막하신 분, 글을 잘 쓰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궁금하신 분, 글을 써 볼까라는 고민이 되시는 분, 저도 여기에 포함(包含)되는 사람들에게 추천(推薦)을 드립니다. 글쓰기 열풍 속의 글쓰기 경쟁에서 부담을 덜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드립니다.
저는 글을 쓴 지 꽤 오래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태껏 변변한 글 한 편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고민(苦悶)을 많이 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이 글을 작성(作成)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함께 나누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글은 우리의 일상 속 깊이 녹아 있습니다. 글쓰기는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 일상적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서 인지(認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직장인(職場人)의 경우만 봐도 기획서나 보고서, 메일이 그렇습니다. 신입사원이라면 더더욱 두서가 잡히지 않아 당황하고 혼란스러울 겁니다.
따라서 개인사업자(個人事業者)의 경우 온라인 마케팅과 밀접하게 연관(聯關)되어 있습니다. 글쓰기 아닌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쇼핑몰, 상품 상세 페이지, 공지사항, 블로그 등 온통 글쓰기가 많습니다. 글쓰기 실력에 따라 매출효과도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 외에는 SNS나 문자, 개인 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쓰기로 전달(傳達)합니다. 특히 요즘 일상은 전화 통화도 부담스러워하며 오히려 문자로 소통(疏通)하는 것을 선호하기에 짧은 글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적절한 문자로 정확히 정보를 전달한다는데 그 초점(焦點)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글의 미세한 온도(溫度)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 글들로 신입사원들을 정확한 판단(判斷)을 내리게 만듭니다. 회사 생활에서의 글쓰기는 상사(上司)나 동료(同僚)들이 후배들을 생각하는 평가의 척도(尺度)가 될 것이며 개인사업의 경우 매출(賣出)로 직결됩니다. 그 외 일상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텍스트로 판단하게 됩니다.
책읽기는 이외로 사람을 풍요(豐饒)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精巧)하게 만듭니다. 글은 비용이 들지 않는 나만의 생산물(生産物)입니다. 글쓰기는 나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 비용이 들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노력 하나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노력(努力) 없는 성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잘 알아두기 바랍니다.
글쓰기의 역사를 문자 혹은 글의 유통(流通)으로 유의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초기문자는 서민의 것이 아닌 상위층과 지식인의 전유물(專有物)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교육의 평등이 서서히 커지게 되며 글이 일반화로 사용하기 시작되었습니다. 글의 유통의 역사는 짧습니다. 길게 봐야 10년입니다. 글의 유통은 인터넷의 공(功)이 큽니다. 인터넷이 발달됨에 따라 사람들은 글을 유통하기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기계문명의 혜택(惠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동영상 등 콘텐츠를 담는 그릇들이 보다 풍부(豐富)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만큼 비용이 들지 않는 생산 활동은 없습니다. 글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글을 써서 자신만의 운율(韻律)과 호흡이 생길 때면 여러분들의 글에 팬들이 생깁니다. 그렇게 글이 쌓이면 내가 어떤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탐구(探求)하고 싶은지 판단이 생깁니다. 이 단계는 글을 어느 정도 작성을 하며 경험을 하게 되는 아주 좋은 단계(段階)입니다.
이때부터는 여러분의 브랜드를 만들어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은 현재 직업 유무를 떠나 결국 자발적(自發的), 비자발적 퇴사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취미활동을 통해 생각지 못한 인생의 전성기(全盛期)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순간의 계기에서 숨은 일등공신(一等功臣)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該當)하지는 않습니다.
은은한 글의 향기(香氣)를 만든 사람들은 보다 수월하게 자신만의 콘텐츠에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책 출간(出刊)입니다. 특히 요즘 책 출간은 꾸준한 개인 플랫폼에서 쌓아온 매력 있는 콘텐츠를 보고 출판사가 발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판사(出版社)가 간과할 수 없는 흥행(興行)을 보장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를 일컬어 책 난독증(難讀症)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은 일상 속 단어에 대한 정의를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게 될 때에는 단어에 대한 정의(定義)를 국어사전으로 찾아가며 국어 자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집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보일 글을 쓴다는 압박감(壓迫感)과 글이 잘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장구성에 신경 쓰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양질(良質)의 글을 많이 읽게 됩니다.
글쓰기를 통해 실질 문맹(文盲)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글쓰기가 어려운 건 나의 탓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아리송한 의문(疑問)이 생깁니다. 글쓰기가 이렇게 중요(重要)하고 또 오랜 기간 글을 써 왔는데 글쓰기는 왜 점점 어려울까. 여기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꼈다면 당연 고민(苦悶)은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글쓰기 훈련(訓練)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누구와 상론(相論)하는 게 좋을지 등입니다.
무엇 무엇해도 글의 유통은 지배적인 심상(心象)으로 떠올리는 것은 대중적 글쓰기입니다. 대중적 글쓰기는 어려운 전문 용어와 한자, 논리의 구조물(構造物)을 해체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속에 생각이 잘 용해된 쉬운 글, 독특한 예시와 문체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쓰기를 의미합니다. 이 대중적 글쓰기의 순기능(順機能)은 학계의 전문 지식과 대중의 접촉 포인트를 대폭 늘려 학문적 성찰성(省察性)과 깊이 있는 지식의 토대 위에 우리의 삶을 위치시킬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철학・한문학 등 고사 직전에 처한 순수학문의 위상(位相)을 되살려 낸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실용적인 측면 말고도 대중적 글쓰기가 원론적으로 함축(含蓄)하고 있는 중대한 기능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학문을 하는 목적이나 방법론(方法論)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선 근대적 학문이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특수한 보편성'이라는 형용모순(形容矛盾)에 기초해 있어 횡단성(橫斷性)과 1인2역이 중요시되는 오늘날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분과학문이 자신이 근거한 특수영역(特殊領域)을 넘어설 때는 매우 기형적(畸形的)인 것이 아니면 유아적(幼兒的)인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에 대한 자각인 셈입니다. 따라서 대상을 궁리하는 일 자체가 보편적인 청중(聽衆)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때에만 통언어적인 학문이 가능하다는 게 대중적 글쓰기의 실천개념(實踐槪念)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지식대중화(知識大衆化)'의 다양한 실천들은 교양서적(敎養書籍)의 범람에서 그 존재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단 양적이고 외형적인 측면에서 학계의 엄숙주의, 전문가주의, 논문중심주의(論文中心主義)를 경계하는 균형추역할(均衡錘役割)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오늘날 지식 대중화 현상이 과연 앞에서 언급한 실용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忠實)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호(口號)에 가려 보이지 않는 허점과 맹목적인 관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중이라는 마술에 기대는 정도에 따라 손해위험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質問)이 생깁니다.
지식의 대중화는 지식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창조적 파괴를 동반(同伴)하는 매우 묵직한 과정입니다. 그것은 생각하기와 말하기의 관행(慣行)을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문이 고도의 추상화작업(抽象化作業)으로 철학의 깊이를 획득한다면 반대로 고도의 구상화작업(構想化作業)으로 그 구체성의 세계를 획득(獲得)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대중화에 이런 구상화(構想化)가 담보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 그 작업이 주제나 사유차원(思惟次元)에서 일어나기보다는 소재나 관점이 글쓰기 차원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미시사(微視史)와 생활사의 열풍이 그 일단을 엿보게 해줍니다.
이상은 글쓰기 열풍 속의 글쓰기 경쟁에서 부담을 덜고 위기를 극복(克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인 깊이를 헤아린다 하더라도 글쓰기는 실전(實戰)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기정사실(旣定事實)입니다. 때문에 남들의 훌륭한 문장을 배우는 가운데서 글쓰기 요령을 터득(攄得)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치열한 경쟁(競爭)에서 부담을 덜고 위기를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면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