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라디오' 통신에서 ‘침묵의 라디오’라고 하면 그 의미는 아주 직설적(直說的)이다. 그냥 그대로 의미를 해석(解釋)하면 된다. 즉 radio는 라디오, 무선, 무전, 무선 통신장치이고 silence는 침묵, 고요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radio silence라고 하면 무선 장치가 아무런 신호나 통신을 전달(傳達)하지 않고 조용하게 침묵(沈默)하는 현상이나 기간을 의미한다.
군사작전(軍事作戰)에서도 ‘침묵의 라디오’의 의미는 비슷하다. 무선 침묵(無線沈默)이라고 하는데 통신이 적군에게 도청(盜聽)당하고 있다는 의심 때문에 위에서 내려온 명령으로 통신을 중단(中斷)하거나 적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다가가기 위해 통신, 신호 등을 고의적(故意的)으로 중단하거나 아니면 무선통신사가 조난 신호(遭難信號)의 진위 여부를 구분하기 위해 통신장치(通信裝置)를 끄는 일 등, 안전, 보안 등의 이유로 무선 통신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약간 군사적(軍事的)인 느낌이 물씬 나던 ‘침묵의 라디오’라는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일상생활 속에 녹아들어온다. 이는 많은 언어적 표현(言語的表現)들이 그러하듯 radio silence라는 표현의 뜻이 단순히 무선통신 분야(無線通信分野)에 국한되지 않고 점점 더 넓어졌다는데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기술(科學技術)의 발전으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수단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무전기나 무선 통신 기기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전화 잡지같이 일상적인 소통 도구(疏通道具)가 되었고 무전기 양쪽에 앉아있던 적군이나 아군은 정보를 가진 사람과 정보를 듣기 원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침묵”하는 “라디오”를 사이에 두고 대화 양쪽 끈을 잡은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일반 대중과 유명인(有名人)이 되기 십상이었고 “침묵하는 라디오”를 하는 쪽은 유명인 당하는 쪽은 일반 대중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참고로 유명인이 단순히 특정 주제(特定主題)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소위 잠수(潛水)를 타는 경우도 ‘침묵의 라디오’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대중이 원하는 소식 중에는 아무래도 유명인 본인의 사생활(私生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혁신적(革新的)인 소통 수단이 등장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사람들은 예전 같이 전화를 받기 위해 전화기(電話機) 옆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되었고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날리고 메일을 확인(確認)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스마트폰을 사용한 소통 행위(疏通行爲) 중에서 가장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건 SNS, 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과 연계된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사진, 동영상, 문자 등을 주고받으며 쉬지 않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꼭 쓸모 있거나 필요한 정보(情報)일 필요도 없다. SNS는 사람들이 정말 별 쓸 데 없는 잡담(雜談)이나 생각까지 분 단위로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통신 수단(通信手段)에 혁신이 일어난 만큼 ‘침묵의 라디오’의 뜻도 광범위해졌다. 이제 radio silence는 단순히 공인이 공식적(公式的)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모습을 표현하는데 사용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전화, 문자, 이메일, SNS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의견을 주지 않거나 답변(答辯)을 하지 않는 것을 표현(表現)하는 말이 되었다.
미중관계가 악화(惡化)된 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바이다. 그러나 미중관계가 어느 정도로 나쁜지에 대하여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한다.
중국의 주미대사 추이텐카이(崔天凱)는 이렇게 말했다. "대화조차 없다. 비정상이다." 중국외교부장 왕이(王毅), 국무위원 양제츠(杨洁篪), 외교부대변인은 계속하여 미국과 대화(對話)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8월 12일 중국 외교부 부부장 웨위청(樂玉成)은 관찰자망(觀察者網)과의 인터뷰에서 미중관계에 대하여 얘기한다. 그 후 인터뷰 전문을 외교부의 웹사이트에 올렸다. 마지막 글은 이러하다: "먼저 대화 소통(疏通)해야 한다. 대화는 중단(中斷)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양국외교부서는 '무선침묵(Radio Silence)'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미국이 펼치는 "무선침묵" 전략과 중국의 태도 미중외교부서가 "무선침묵(無線沈默)"상태에 빠졌다고 표현한 것은 중국외교부가 아주 생동감(生動感) 있게 현 사태를 인정한 것이다.
'무선침묵(無線沈默)'은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신비롭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크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중 외교부서간에 대화가 없고 약간의 연락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미국주중대사관(美國駐中大使館)은 휘장도 바꾸면서 '중국'이라는 두 글자를 삭제(削除)해 버렸다. 이제는 '미국주화대사관-북경'이 되어 버렸다. 설사 미국대사관의 이런 조치를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설득력(說得力)은 없을 것이다.
미국 국무부의 '무선침묵(無線沈默)'이라는 외교적 대사는 폼페이오도 결정할 권한이 없다. 자연히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동의를 받은 것이다. 당연히 이상할 것도 없다. 트럼프는 얼마 전에 시진핑(習近平)의 대화채널을 끊었다고 다시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국무부도 대통령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순리적(順理的)인 일일 것이다.
미국이 선택한 "무선침묵" 전략 진면목
미국의 "무선침묵"은 예의 없는 행동으로 보는 중공 시각 겉으로 보기에는 무례한 듯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의 교류에서 관계가 얼마나 나빠지면 "무선침묵(無線沈默)"의 상태로 들어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무례한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중관계(美中關係)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미국인은 왜 이렇게 무례(無禮)할까? 중국외교부 부부장 웨위청(樂玉成)의 말을 읽어보면 아마도 이해(理解)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웨위청(樂玉成)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일부 정치가들의 행위방식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둘째, 위법은 다반사(茶飯事)로 벌인다."
구체적(具體的)인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 누가 말을 섞고 싶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저 말을 중공(中共)에게 해준다면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위청(樂玉成)의 다음 말은 더욱 악랄(惡辣)하다. 그는 미국의 반공을 얘기하면서 돌연 이런 말을 한다. "옛날 히틀러의 파시스트가 바로 반공과 유태인박해(犹太人迫害)로 일어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敎訓)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을 웨위청(樂玉成)은 '파시스트'라고 불렀다. 독재정권(獨裁政權)이 민주국가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다니 듣기에 웃기는 말인 것 같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민주국가의 정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계속 얘기를 하고 싶을까?
웨위청(樂玉成)의 또 다른 견해도 아주 웃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대량으로 백신을 매점매석(買占賣惜)하여 독점하려 한다" "이기적이다"
중공은 이전에 백신연구개발에서 가장 앞섰다고 하지 않았던가? 개발시간으로 보면 중공은 작년부터 백신을 연구 개발(硏究開發)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앞서지 못했단 말인가? 미국의 기술을 훔치는 것도 안 되다보니 중공은 화가 나서 아마도 사실을 얘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혼자 쓰지 말고 우리와 나눠쓰자고 했다. 중공은 미국기술(美國技術)을 훔치는데 이골이 나 있었는데 이젠 훔칠 수 없게 되니 남을 욕하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 웨위청(樂玉成)은 중국시장이 아주 크고 중국시장으로 들어오려면 기술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백신은 아마도 가장 먼저 대량생산에 들어갈 것이고 아직은 그 다음 단계까지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아직까지 최종임상을 통과한 것이 아니고 결과도 미지수(未知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공의 이런 태도를 보고 미국은 정말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생각이 들까? 아니면 '무선침묵(無線沈默)'을 택할까?
중공은 미국 변화 이해의 미지수 웨위청(樂玉成)은 짐짓 모르는 척 이런 말을 한다. 미국 정치가의 중국에 대한 적의(敵意)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닉슨이 태평양(太平洋)을 건너 악수(握手)한 것은 중공지도자(中共指導者)이다. 미국과 미중공동성명에 합의한 것도 중공지도자이다. 미국 백악관(白堊館)과 국무부관리는 거의 매일 중공당원과 교류하고 있다. 그런데 돌연 중공이 미국의 위협과 도전(挑戰)이 되었단 말인가?
웨위청(樂玉成)은 견식이 부족하다. 냉전시기의 미국정부는 중공지도자와 교류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부득이 공산진영(共産陣營)의 배신자와 교류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냉전에서 이를 통해 공산진영을 성공적으로 분열(分裂)시켰고 냉전이후 미국정부가 계속 교류(交流)한 것은 중공이 바뀌기를 선의(善意)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웨위청(樂玉成)은 스스로 답안을 내놓았다. "중공은 바뀌지 않았다. 이는 문제가 역시 미국 정치가(美國政治家)에게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미국과 중국 간에 드디어 하나의 컨센서스가 이루어졌다. 중공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은 그래서 전략을 바꾼 것이다. 미국정부는 솔직(率直)하게 인정했다. 원래의 전략은 실패했다. 중공을 변화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공을 키워주었다. 이는 자신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威脅)이 된다. 미국은 현재 전략을 바꾸었다. 새로운 전략은 중국에 대한 제승전략(制勝戰略)이다.
중공은 여전히 그래봐야 세력이 균등(均等)하게 나뉘는 냉전(冷戰)이라고 여긴다. 중공은 여전히 스스로의 역량을 모르고 있다. 차이가 현격(懸隔)하다. 미국은 중공과 무슨 냉전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중공을 궤멸(潰滅)시킬 뿐이다.
미중 간 ‘선제공격을 않겠다’와 ‘막다른 골목’이란 엇갈린 주장 웨위청(樂玉成)은 현재 무성하게 떠도는 소문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항상 후발제인(後發制人)할 것이다."
중공은 확실히 결정을 했다. 군대도 선제공격(先制攻擊)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이 그저 수동적(受動的)으로 대응만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공은 전략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전략(戰略)도 없다.
마지막으로 웨위청(樂玉成)은 양국 외교부서가 '무선침묵(無線沈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기에 미국 국무부의 '무선침묵(無線沈默)'은 중공정권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것 같다. 베이다이허회의(北戴河會議)는 아마도 어떻게 이런 '무선침묵'을 타파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폼페이오는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중공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반드시 먼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확인(確因)해야 한다."
폼페이오는 이런 말도 했다. "중국공산당의 행위를 변화시키는 것은 중국인민 자신의 사명(使命)일 뿐 아니라 자유국가에서 해야 할 것도 있다. 자유를 옹호(擁護)해야 한다."
베이다이허회의(北戴河會議)에서는 변화할지 말지 어떻게 변화할지를 토론했을 것이다. 중공은 미국의 요구대로 변화(變化)할 것인가?
중공은 이미 여러 번 말했다. 중공은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壯談)했다. 그렇다면 중공의 일체의 거짓된 스스로 모순(矛盾)되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중공이 바뀌지 않으면 미국 국무부의 '무선침묵(無線沈默)'은 계속될 것이다. 중공이 일방적으로 꿈꾸는 대화는 계속 물거품이 될 것이다.
중공은 바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긴밀(緊密)하게 행동하여 중공을 변화시키려 한다.
변화는 폼페이오의 외교언사(外交言辭)이다. 이전에 미국도 중공이 바뀌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았다. 미국은 더 이상 중공이 스스로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폼페이오는 정식으로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할 수는 없다. 그가 현재 말하는 것은 변화이다. 실제로는 중공의 해체이다. 혹은 미국이 ‘동맹국(同盟國)’인 중국인민과 함께 중공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중공은 아마도 아직 '인류운명공동체(人類運命共同體)'같은 환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 운명에서 더 이상 중공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