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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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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정하여 시내암이 송강을 급사시켰다면 누가 양산박의 두목이 될까

图片信息 洪应明 交市人不如友山翁, 谒朱门不如亲白屋; 听街谈巷語...


소설(小說)은 현실의 인생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허구적(虛構的)으로 서술한 산문체(散文體)의 문학양식 또는 서사문학이다. 

소설이라는 명칭은 원래 동양의 경우는 오늘날의 서사학적 개념과는 다소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동양 기록에 나타난 것은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과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등에서였다. 이들 기록을 보면 소설이라는 말은 본래 대도(大道)와 거리가 먼 꾸민 말로서 명예를 구하는 속된 말 나부랭이 또는 패(稗), 즉 세미(細米)와 같은 가담항어(街談巷語)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즉, 패관(稗官)들에 의하여 채집(採集)되어 제왕이나 통치자(統治者)의 참고자료가 되는 시정이나 길거리에서 얻어들은 말이나 이야기와 같은 소도(小道) 및 잔총소어(殘叢小語)의 뜻이다.

여기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과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이용하는 역사와 소설의 상동성과 상이성이 연유된다. 역사는 역사성(歷史性)과 사실성에 근거한 서사체(敍事體)이며 소설은 허구성(虛構)에 근거한 서사체인 것이다. 요컨대 사가인 사씨(史氏)나 태사씨(太史氏)와는 달리 패관은 소설가의 원형(原形)이다.

또한 우리는 전통적(傳統的)으로 소설을 ‘이야기’라 일컫고 또 소설책을 ‘이야기책’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인식(認識) 속에도 역시 두 개의 뜻이 내재(內在)되어 있는데 서사성(敍事性)과 허구성(虛構性)이 곧 그것이다. 서사성이란 사건의 서술이라는 뜻이며 허구성이란 사실의 전달과는 달리 상상력(想像力)에 의하여 사실처럼 꾸민 것임을 뜻한다.

그렇다면 하늘의 풍운은 예측이 힘들다. 만일 양산박(梁山泊)에 돌연 고구려 또는 여진의 폭도(暴徒)가 숨어 들어와서 송강(宋江) 두목을 죽여 버렸다고 치자. 그렇다면 왕륜(王倫), 조개(晁蓋), 송강(宋江)의 뒤를 이어 누가 양산박의 제4대 두목(頭目)이 되었을까?

어떤 사람은 노준의(盧俊義), 시진(柴進), 임충(林沖), 무송(武松) 등등을 얘기 할지 모른다. 무예(武藝), 위망(威望), 명성(名聲), 집안...과연 모두 각자의 장점(長點)이 있다. 필자 개인 생각으로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위의 네 사람이 모두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양산박의 후계자(後繼者)는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이다.

노지심(魯智深)은 스스로 이전에 "관서오로염방사(關西五路廉訪使, 아마도 오해일 것이다. 실제로는 대대장급의 소령계급수준이 될 것이다)"를 지낸 바 있다고 했고 북송의 최정예부대인 서군(西軍) 출신이다. 이 출신은 군인들에게는 자랑이고 현재로 비유(比喩)하자면 미국의 군대 내에서 101공수사단 출신이라고 하는 것이나 중국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軍)에서 38군 출신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후 노지심(魯智深)은 오랫동안 강호에서 생활하고 삼산오악(三山五岳)의 인물들과 승속(僧俗)의 모든 사람과 교유하며 이룡산(二龍山) 산채의 채주(寨主)를 지냈다. 노지심(魯智深)은 양산에서 드문 흑백양도에 모두 걸쳐 있고 흑백양도(黑白兩道)에서 모두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양산박에서 송강(宋江)도 "나의 스승"이라고 존칭한다. 영향력(影響力)에서 보자면 양산박에서 노지심대사(魯智深大師)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수호전(水滸傳)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협의(俠義)"의 두 글자이다. 그래서 흑삼랑(黑三郞) 송강은 재능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급시우(及時雨)라는 명성에 의거하여 산채의 주인이 되었다. 노지심(魯智深)은 협(俠)의 측면으로는 금취련(金翠蓮)을 구해주었고 술에 취해 도화장(桃花莊)을 부수기도 하였다. 의(義)의 측념으로는 야저림(野猪林)에서 임충(林沖) 교두를 구해주고 공량(孔亮)의 청을 받아 청주(靑州)를 치기도 하였으며 약자나 곤란한 사람을 구해주었고 의로운 일이라면 감히 나서서 행하였으니 그의 명성이 절대 송강(宋江)에 뒤쳐지지 않는다.

성격적으로 보더라도 노지심(魯智深)은 거칠면서도 세심하며 인정미(人情味)가 넘친다. 그래서 사귀는 친구들이 모두 시종일관(始終一貫)한다. 표면적으로는 성격이 불과 같지만 자세히 책을 다 읽어보면 노지심(魯智深)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전혀 없고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친구(親舊)만 있지 원수(怨讎)가 하나도 없다. 그는 본질적(本質的)으로 아주 성숙한 사람이고 양산박의 형제들의 신뢰(信賴)를 얻기에 충분하다.

노지심(魯智深)은 송강(宋江)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 또 있다. 그것은 일신에 적수가 드문 좋은 무예(武藝)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량(酒量)이 대단하다. 이는 거친 사나이들의 지지(支持)를 받는데 아주 유리한 조건이다.

당연히 양산박(梁山泊)의 두목이 되려면 위명(威名)이나 명성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건은 인맥(人脈)이 어떤지를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자가 양산박에 오더라도 두목(頭目)이 될 수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만두탕이나 도삭면이 되어버릴 것이다. 노지심(魯智深)의 인맥은 아주 심후(深厚)하여 다른 두령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이다.

임충(林沖)은 노지심(魯智深)과 생사지교(生死至交)이다. 그래서 임충(林沖) 임교두는 당연히 노지심의 핵심지지자(核心支持者)이다. 노지심이 원래 이룡산(二龍山) 산채의 채주(寨主)였고 세 개의 산채가 합쳐서 청주(靑州)를 칠 때는 도화산(桃花山), 백호산(白虎山)도 모두 그의 지휘를 받았다. 이 세 개의 산채의 사람들은 노지심(魯智深)의 기본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소화산(少華山)의 사진(史進)은 노지심(魯智深)과 깊이 사귄 좋은 친구이다. 만일 두령을 투표(投票)한다면 소화산(少華山)도 노지심의 표밭이다.

이렇게 하면 노지심(魯智深)의 편에는 이미 임충(林沖), 무송(武松), 양지(楊志), 사진(史進), 주무(朱武), 조정(曹正), 시은(施恩), 장청(張靑), 손이낭(孫二娘), 이충(李忠), 주통(周通), 공명(孔明), 공량(孔亮), 진달(陳達), 양춘(楊春)의 열여섯 명의 두령이 포함된다. 이러한 두터운 인맥(人脈)은 다른 사람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호전(水滸傳)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들이다. 만일 약간의 추론과 평화(評話)를 참고한다면 노지심(魯智深)의 숨은 일파는 더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지심(魯智深)은 서군출신(西軍出身)인데 사진(史進)의 사부인 왕진(王進)도 서군출신이다. 여기에서도 그의 인맥을 빛을 발한다. 서군출신들을 살펴보면 한 명의 두령이 노지심(魯智深)과 연원이 깊다. 바로 금전표자(金錢豹子) 탕륭(湯隆)이다. 탕륭은 서군장교(부친은 延安知寨임)의 후예이다. 그의 사촌형인 서녕(徐寧)은 또한 임충(林沖)의 좋은 친구이다. 이 두 사람도 '노지심파(魯智深派)'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 하면 18명이 된다. 양산박(梁山泊)에서 노지심(魯智深)의 가장 큰 숨은 세력은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이다. 아마 여러분은 이상하게 느낄 것이다. 노준의(盧俊義)는 노지심(魯智深)과 같은 고향도 아니고 같은 출신도 아닌데 어떻게 지지한단 말인가? 원인은 ‘악비전(岳飛傳)’과 ‘무송연의(武松演義)’에 적혀 있다. 즉 악비(岳飛)는 주동(周同)의 마지막 제자이다. 주동(周同)에게는 또 다른 세 명의 제자가 있는데 바로 노준의(盧俊義), 임충(林沖) 그리고 무송(武松)이다. 이처럼 임충(林沖)과 무송(武松)이 모두 노지심파(魯智深派)인데 양산박(梁山泊)에서 외로운 위치인 노준의(盧俊義)가 이쪽 편에 서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노준의(盧俊義)가 이편으로 온다면 또 다른 세 명의 두령을 데려올 수 있다. 하나는 연청(燕靑)으로 노준의(盧俊義)의 유일한 심복이니 당연히 그의 말을 들을 것이다. 채복(蔡福), 채경(蔡慶)은 대명부(大名府)를 불로 태울 때 채복형제(蔡福兄弟)는 노준의(盧俊義)를 청하여 불을 꺼서 백성을 구한 적이 있으므로 노준의(盧俊義)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노지심파(魯智深派)는 22명으로 늘어난다. 이 라인을 따라 계속 올라가보면 또 하나의 대어가 노지심파(魯智深派)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손립(孫立)과 그의 등주(登州)출신 인맥이다. 원인은 무엇이냐고? 왜냐하면 평서(評書)에서 손립(孫立)은 주동(周同)의 사제(師弟)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노준의(盧俊義), 임충(林沖), 무송(武松)의 사숙(師叔)이 된다는 것이다. 소주평화에서는 손립(孫立)과 손이랑(孫二娘)을 친척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인맥라인이다. 그러나 약간은 견강부회(牽强附會)적인 면이 있어 여기에서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 만일 노지심(魯智深)이 손립(孫立)의 지지를 얻으면 바로 등주출신의 8명의 호한(好漢, 사나이)을 얻게 된다. 손립(孫立), 손신(孫新), 해진(解珍), 해보(解寶), 고대수(顧大嫂), 추윤(鄒潤), 추연(鄒淵)이 그들이다. 고대수(顧大嫂)를 통하면 또 다른 세장의 표를 낚아올 수 있다. 바로 금표자(錦豹子) 양림(楊林)과 화안산예(火眼狻猊) 등비(鄧飛), 석장군(石將軍) 석용(石勇)이 그들이다. 이들은 고대수(顧大嫂)와 양산박(梁山泊)에 오기 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소주평화 ‘무송연의(武松演義)의 기재에 따르면 무송(武松)은 맹주(孟州)에서 일찌기 설빙(薛氷)과 결의형제(結義兄弟)를 맺은 적이 있고 두 사람은 교분(交分)이 깊었다고 한다. 또 한 명이 늘어난다.

이제 노지심파(魯智深派)는 34명으로 늘어났다. 거의 양산호한(梁山好漢)의 3분의 1에 이른다. 여기에는 양림(楊林), 등비(鄧飛)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사람 예를 들어 배선(裴宣), 맹강(孟康)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일부 인물은 완전히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어도 노지심(魯智深)에 기울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호삼랑(扈三娘)이다. 호삼랑(扈三娘)의 오빠인 호성(扈成)은 서군에서 군관을 지냈으니 서군일파이다. 그리고 노지심(魯智深)은 호가장(扈家莊)을 도살한 송강 일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호삼랑(扈三娘)이 만일 노지심(魯智深)의 편에 선다면 왕영(王英)은 공처가(恐妻家)이므로 자연히 넘어오게 된다.

호연작(呼延灼)계통이 있다. 호연작(呼延灼)은 사람됨이 진중하고 원만하다. 노지심(魯智深)이 만일 산채의 두령이 된다면 같은 군관출신이므로 다른 무지랭이들보다는 낫다. 동시에 호연씨집안과 양씨집안은 대대로 교분(交分)이 있는데 양지(楊志)도 노지심(魯智深)의 일당이므로 그를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도(韓韜), 팽사(彭祀), 능진(凌振)을 노지심(魯智深)의 일파로 끌어들이는 라인이 될 수 있다.

관승(關勝)계통도 있다. 관대도도 포동군관 출신이며 역시 서군의 범위에 속한다. 서로 통하는 점이 있을 것이다.

노지심(魯智深)과 이런저런 관계에 있는 두령들 중에서 군관에서 배신(背信)하고 양산박에 들어온 장수들은 노지심(魯智深)과 출신성분이 비슷하므로 그가 산채의 두령(頭領)이 되는데 적어도 선의의 중립(中立)은 지킬 것이다. 녹림출신(綠林出身)의 대도들은 아마도 노지심(魯智深)이 초안(招安, 정부에 귀순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안심을 할 것이다.

만일 송강(宋江)이 갑자기 죽으면 자세히 생각해보자. 산채 내에서 노지심(魯智深)과 경쟁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거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네 사람 중에서 노준의와 임충은 스스로 세력이 약하므로 노지심(魯智深)과 합작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기의 약한 세력으로는 반향을 기대하기 힘들다. 무송은 외로운 영웅이다. 그리고 사람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다. 그리고 계속하여 노지심(魯智深)의 산채에서 지냈다. 시진(柴進)은 비록 고귀한 출신이지만 스스로 고고하여 녹림의 인물들과 동질감(同質感)이 형성되지 못했다. 노지심(魯智深)을 진정으로 위협할 만한 인물이라면 아마도 대종(戴宗)을 위시한 송강(宋江)의 심복들과 공손승(公孫勝)을 위시한 도교세력의 결합이다. 오용(吳用)은 계속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력은 뚜렷한 두령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단점(短點)이다. 그리고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불교와 도교간의 싸움에서 불교는 항상 우위에 있었다. 이 싸움에서도 도교일파(道敎一派)가 불교일파(佛敎一派)를 당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군인이었던 사람이므로 군인표(軍人票)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산적(山賊)을 지내본 사람이 강도들의 표를 얻을 것이다. 중이었으므로 불교도(佛敎徒)의 표를 얻을 수 있고 여자를 구해준 바 있으므로 여인들 표도 얻을 것이다. 경사(京師, 수도)에 가본 적이 있으므로 상층부(上層部)의 표도 얻을 수 있고 의(義)로 이름을 날렸으므로 군중표도 얻을 수 있다. 송강(宋江)이 죽는다면 차가의 두령은 노지심(魯智深) 대사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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