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한문 혼용체로 표시된 전통문화와 민족문화를 계승발전하려면 한자 교육의 중요성과 한자 중요성을 인식
글: 고문현 우리 대한민국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상 인접국인 중국, 일본 등과 문화적·경제적 교류를 해왔었는데 3개국의 공통분모는 유교와 한자이다. 옛날 고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한자를 통해 중국과 긴밀한 교류를 해왔으며 한자를 차용하고 있는 일본과도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중국이나 대만 또는 일본 등에서 행해지는 학술행사에 참가하거나 해당 국가들을 여행하다 거리의 도로명이나 가게의 상호를 보게 되면 한자 표현으로 인해 필자는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며칠 전 필자는 대만에 연구출장을 다녀왔는데 그때 만난 진신민 전 대법관도 대만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할 때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을 방문할 때보다 일본을 방문할 때가 더 편안하게 느낀다고 했다. 수년 전에 국립 대만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일행을 만났을 때도 같은 대답이어서 이번에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우리는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고 경제 성장도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위의 진신민 전 대법관 말의 의미를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자가 주는 위의 친근성 이외에도 필자가 헌법을 가르치면서 느낀 한자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이하 '헌법'이라 약칭)은 우리나라의 기본법이다. 이 기본법인 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되었다. 그 이후 9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국회에서 제10차 헌법개정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필자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헌법은 1948년 제정 당시부터 국한문 혼용체로 표시되어 있으며 전문, 제1장 총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3장 국회, 제4장 정부, 제5장 법원, 제6장 헌법재판소, 제7장 선거관리, 제8장 지방자치, 제9장 경제, 제10장 헌법개정, 부칙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라고 밝히고 있고 총강에서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9조)고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족문화를 제대로 알고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선현들의 눈부신 성과물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원효 대사의 '대승기신론소'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팔만대장경'이나 '조선왕조실록' 등은 모두 한자로 되어 있다.
수많은 고문헌에 담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면 아무리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부르짖어도 그것은 공연한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문 전공자를 양성하면 된다고 하지만 한자를 공부한 저변 인구조차 없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한문 전공자를 양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자로 된 고문헌 연구는 전문가의 몫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어를 보다 정확히 사용하기 위해서도 한자에 대한 소양이 필요하다. 위에서 소개한 '대승기신론소'와 같이 수준 높은 정신문화를 꽃피운 선현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한자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기 때문에 헌법에 나오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헌법을 강의할 때 구두로만 말하거나 한글로만 칠판에 쓰면 동일한 표현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한자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용어가 많이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 헌법은 제1장 총강 앞에 전문이 있는데 이것을 한자로 표시하지 않고 한글로만 표시하면 전문(前文)을 포함한 헌법 전체를 의미하는 헌법 전문(全文)인지 아니면 총강 앞에 있는 전문(前文)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헌법 전문을 읽으라고 구두로 말하면 어느 부분을 말하는지 애매한데 이러한 경우에 한자로 표현하면 단순 명료하게 해결된다. 또한 헌법 제5장의 제목이 법원인데 이것을 한글로만 표시하면 법학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로서 법의 존재 형식을 의미하는 법원(法源)을 지칭하는지 아니면 재판하는 곳인 법원(法院)을 지칭하는지 여부가 매우 불분명하다. 이러한 경우에 한자로 법원(法院)이라고 표현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10장에 헌법 개정이 나오는데 이것을 한글로 표시하면 헌법을 나쁘게 바꾸어도 된다는 의미의 헌법 개정(改訂)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만 현재의 헌법과 기본적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보다 나은 상태로 발전시킨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헌법 개정(改正)이라고 하는데 학생들도 무심히 지나가면 이 용어에 대한 한자 표기를 혼동하기 쉽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고유의 문자를 만드신 것은 매우 자랑스러우며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외솔 최현배 선생님이 한글사랑운동을 펼치신 것은 자못 의미가 크다. 그러나 한글만 사랑하여 이것만 계속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선현들의 사상을 현대로 계승·발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국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번영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잘 이어받아 '온고이지신'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결고리의 중심에 한자가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우리의 문자인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발음기호로 읽어야 하는 영어와 비교해보아도 한글은 발음기호의 필요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로 미루어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문자인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한글과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문화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한자를 적절히 혼합하여 효과적으로 교육한다면 현대사회에 요구되는 융합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인재들을 많이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 체계가 내실화되고 축적된다면 머지않아 한자에 조예가 깊은 노벨상 수상자, 제2의 원효와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
하나의 예로 최근 두 가지의 원유대란으로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한 원유는 기름이고 다른 원유는 우유다. 원유(原油)와 원유(原乳)의 차이인데 한글 ‘원유’로 놓고 보면 문장 속의 맥락이 아니면 구분하기 어렵다. 나아가 원유의 뜻을 기름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은 ‘원유대란으로 우유 구매가 초비상’이란 뉴스를 접하며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거두절미하고 한자 없는 국어는 좌우 양쪽 중 한쪽 날개만 달고 있는 비행기나 다름없다. 결코 날 수 없는 것이다.
혹자는 한자의 원산지인 중국에서조차 글자가 너무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간자(簡字)를 만들어 쓰고, 일본도 약자라는 것을 따로 만들어 동양 3국이 서로 다른 한자를 쓰는 실정인데 한자 교육을 제대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한자 사대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이는 한자의 역할을 중국어와 중국문자로만 한정하는 좁은 시각만 가지고 있어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한자는 중국의 문자라는 인식을 벗어나 범아시아, 동양문화권의 기반이 되는 주춧돌 문자라고 봐야 한다. 올 10월이면 세계 인구가 70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언론 기사를 얼마 전에 봤다. 아마도 그 중에 어림잡아 50% 내외의 인구가 한자문화권에서 살고 있다.
만국 공통어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활동과 규모가 커질수록 이들 나라와의 교류를 위한 한자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아가 외국어 습득을 잘하려면 먼저 자신의 모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은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에겐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엔 국어를 잘하기 위한 전제가 바로 한자에 대한 이해다. 밥을 담는 도시락과 음악 밴드의 도시락(樂, rock) 페스티발, 지자체의 도시락(都市樂) 프로젝트,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는 여행과 여자가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다는 지자체의 여행(女幸) 캠페인, 화장품 회사의 ‘女보세요’라는 광고 카피는 물론이고 ‘외국인, 雨울한 한국관광’ 이라는 신문기사 제목에 이르기까지 의미의 다양한 표현과 단어의 활용은 한자를 모르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자를 초등학교부터 정규과목으로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차후의 문제다. 한자문화권 나라들의 경제전성시대에 그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주춧돌로서 필수라는 것, 중국문자가 아닌 국어교육의 연장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이웃 나라 일본이 유치원에서 당나라 시 100편을 원문대로 외우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