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앙군사위부주석 쉬차이허우(徐才厚)의 부정부패는 얼마나 심했을까?
글: 왕우군(王友群)
2014년 3월 15일, 전 중공정치국위원, 중앙군사위부주석 쉬차이허우가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쉬차이허우는 백년중공역사상 수사받은 최고위급 장군중 하나이다.
쉬차이허우는 베이징301병원의 병상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해 6월 30일, 당적이 박탈되고, 7월 30일 군적이 박탈되었으며, 상장(上將)계급도 박탈당한다. 10월 27일, 군사법원에 기소되고, 2015년 3월 15일, 재판전에 방광암으로 사망한다.
쉬차이허우 궈보슝(郭伯雄)은 전 중공독재자 장쩌민(江澤民)이 발탁하여 중용한 두 명의 군사위 부주석이다. 장쩌민이 명목상 중앙군사위주석에서 물러난 후, 장쩌민을 대리하여 '총잡이'를 장악관리한 두 명이 심복이다. 그들은 장쩌민의 조종하에 중앙군사위주석 후진타오(胡錦濤)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군사위의 대권을 좌지우지했으며, 장쩌민, 쉬차이허우, 궈보슝의 '철삼각'을 구성해서 군대내에서 무법무천으로 온갖 나쁜 짓은 다했다.
시진핑(習近平)이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중앙군사위 주석에 오른 후, 쉬차이허우는 시진핑을 전혀 눈아래 두지 않았다. 홍콩의 <명보>가 2015년 3월 14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번은 다수가 참가한 군대의 반공개회의에서 당시 군사위 부주석을 맡고 있던 쉬차이허우는 또 다른 군사위주석 궈보슝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시진핑을 가리킴)에게 5년하라고 하고나서 쫓아내지 뭐!"
쉬차이허우는 도대체 얼마나 부정부패를 많이 저질렀을까? 군사검찰원의 기소장을 보면, 쉬차이허우는 직무상의 편의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승진에 도움을 주면서 직접 혹은 가족을 통해 뇌물을 수수했는데, 금액이 특별히 컸다. 직무영향력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이익을 챙기게 해주었고, 그와 가족들은 그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받는데 그 금액도 특별히 컸다.
쉬차이허우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는가. 중국당국은 구체적인 숫자를 내놓지는 않았다. 아마도 일단 진실된 숫자를 공표하게 되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1억위안은 훨씬 넘어설 것이다.
쉬차이허우의 매관매직
2015년 3월, 중국의 소장 양춘창(楊春長)은 봉황위성TV와의 기자인터뷰때 이런 말을 한다: "쉬차이허우등의 사건이 터진 후,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한 대군구사령관은 그에게 1천만을 보냈다. 또 다른 사령관은 2천만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가 1천만은 필요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물었다: "그럼 이 군대가 그들 집안의 것이나 같지 않은가?" 양춘창은 말한다: "바로 그렇다. 그들 집안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당시 군사위주석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렸다."
중국당국의 관방통보에 따르면, 쉬차이허우의 첫번째 죄상은 매관매직이다. 쉬차이허우가 중앙군사위 총정치부주임, 중앙서기처서기, 중공정치국위원, 중앙군사위부주석을 지내는 10년동안, 수백만군대와 무경부대의 고위장군의 인사임면 및 배치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쉬차이허우가 체포된 후, 한 '군대관련 원로매체인'이라고 자칭하는 인물은 이렇게 글을 썼다: "쉬차이허우는 군사위부주석의 신분으로 군대를 종파산두주의의 '서가장(徐家莊)'으로 만들었다. 한 무리의 욕심이 많고, 사치스러우며, 바람부는대로 키를 잡고, 아부를 잘하고, 기회를 노리는 악인들을 배양했다. 그들이 전군의 각 부서에 배치되면서 발언권, 승진권을 가졌다. 당위는 그들이 이익을 획득하는 기구로 전락했고, 계속하여 극작가도 써내기 어려울 정치적으로 추악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2016년 7월 6일, 국방대학 이론학습좌담회에서 중국의 상장 류야저우(劉亞洲)는 이런 말을 했다: "쉬차이허우는 임종때 두 마디 말을 했다. 이는 사건담당인원에게서 들은 것이어서 아주 정확하다. 첫번째는 '궈보슝의 문제가 나보다 심각하다' 두번째 말은 '대구(大區) 정직(正職)의 장군들 중에서 나에게 돈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단 두명이다.'"
쉬차이허우의 돈과 재물
2014년 제32기 <봉황주간>보도에 따르면, 2014년 3월 15일 저녁, 군사검찰원의 수사관이 베이징 푸청로에 있는 쉬차이허우의 호화주택중 하나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결과 경험이 많던 사건담당관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 "원래 사회에서 쉬차이허우가 부정부패에 심하게 관련되었다는 소문이 있었고, 구쥔산(谷俊山)사건이 발생한 후 지금까지 이년여가 지났다. 쉬차이허우가 부정부패를 했더라도, 재물은 일찌감치 옮겨놓았을 것이라고 여겨서, 집안에는 무슨 돈이나 재물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쉬차이허우의 이 2000여평방미터규모의 호화주택의 지하실을 연 후, 사건담당자들은 깜짝 놀란다. 도처에 현금이 쌓여 있는데, 달러, 유로, 인민페가 골고루 있었다. 사건담당자들이 일일이 셀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저울로 무게를 재었고, 다시 봉조(封條)를 붙였다. 압수수색된 현금은 무게가 1톤이나 나갔다. 어떤 것은 봉투에 들어 있는데 열지도 않았다. 각종 금은보석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100여킬로그램, 200여킬로그램의 허텐옥(和田玉), 각종 귀한 경복(硬木)과 진귀한 비취제품도 한 무더기였다. 가득 쌓여 있는 허텐옥은 대부분 원래 그대로였고, 어떤 것은 옥석의 외피만 한겹 벗겨서 안의 색깔정도가 노출된 것도 있었다. 그리고 당, 송, 원, 명의 골동품과 서화도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호화주택 한 곳에서 압수수색한 현금과 재물만 산더미처럼 쌓였다. 사건담당자들은 할 수 없이 십여대의 트럭을 불러서 모조리 운반해야 했다.
쉬차이허우의 군사위건물지하에도 비밀보관실이 있었다. 그 안에도 현금이 가득 쌓여 있었고, 그의 비서와 1명이 여군이 관리했다. 쉬차이허우는 이 여군과 관계를 가진 후에 그녀가 '대학을 다니고, 승진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끝까지 약속을 지키진 못했다. 쉬차이허우가 은퇴한 후, 이 여군은 절망했다. 하루는 산둥의 고향에서 멘빠오차(빵차)를 한대 끌고와서 보관실에 있던 현금을 차 안에 가득 넣고 실종되어 버린다. 쉬차이허우는 그 보고를 받고도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감히 그녀를 추적하거나 조사하라고 할 수가 없었다.
2014년 3월 6일, <법광>은 이렇게 보도한다. 중국당국은 쉬차이허우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당내의 어느 정도 직급이상의 사람들에게 통보했다. 이 통보에 따르면, 쉬차이허우와 가족이 구쥔산에게 받은 현금이 약 4천만위안이라고 했다.
2014년 3월 20일, <빈과일보>는 이렇게 보도한다. 22세의 여자 자오단나(趙丹娜)는 홍콩의 여러 은행에 8개의 계좌를 열어 쉬차이허우의 가족이 100억홍콩달러를 돈세탁하는 것을 도와주다가 ,홍콩당국에 조사를 받는다. 2014년초, 자오단나는 쉬차이허우의 딸이 도와주어 3천만홍콩달러의 보석금을 포기하고 도주해버린다.
쉬차이허우의 호화주택
<봉황주간>에서 언급한 쉬차이허우의 베이징 푸청로의 호화주택은 "조어대6호원"이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12동의 호화주택중에서 가장 큰 단독빌라였다. "조어대6호원"과 그 서쪽에 있는 "조어대1호원"은 모두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의 부부장 구쥔산이 책임지고 개발한 호화부동산프로젝트이다. "조어대1호원"의 호와주택은 평방미터당 35만위안에 팔렸다. 쉬차이허우의 이 집은 도대체 얼마나 할까?
<봉황주간>의 보도에 따르면, 쉬차이허우가 조사를 받기 전에, 외부에서는 쉬차이허우가 상하이에 4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쉬차이허우는 거짓말이라고 하고, 누군가 모함하는 것이라며 크게 화를 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군대의 고위직에 전화를 걸어서 사람을 보내서 조사해보라고 요구한다. 결백을 증명하겠다고. 군사위 기율검사위에서 다시 조사확인후, 그 부동산은 확실히 쉬차이허우의 명의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부동산의 소유자는 쉬차이허우의 아직 어린 외손자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쉬차이허우의 처인 자오리(趙黎)은 이번 수뢰사건의 실제주인공이다. 뇌물을 제공한 사람에 따르면 자오리를 찾아가서 뜻을 얘기했더니, 자오리는 그냥 상하이의 보통부동산인줄 알고 거절한다. 그러나, 상대가 그녀를 상하이로 데려가서 한번 실물을 보여주었는데, 4채가 하나로 연결된 사단장급 장군에게 분배되는 주택이었고, 인테이러도 호화스러웠고, 위치도 좋았다. 자오리는 이를 살펴본 후 기꺼이 받았다. 나중에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4채의 부동산은 구쥔산의 남동생이 쉬차이허우에게 바친 것이었다고 한다.
쉬차이허우는 쓰촨 청두에도 호화별장이 있다. 실제로 받은 인물은 역시 자오리이다. 자오리는 청두로 가서 이 빌라를 본 후에 작다고 싫어한다. 상대방은 그리하여 대거 확장공사를 하고, 점유면적도 수무(畝)로 늘인다. 자오리는 그제서야 받아주었다.
쉬차이허우의 음란
중국상장 류야저우는 군대 총후근부 부부장 구쥔산이 쉬차이허우에게 미녀를 바친 에피소드도 얘기했다: "그는 쉬차이허우에게 여가수를 바치고, 여배우를 바치고, 여자웨이트리스도 바쳤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딸까지도 쉬차이허우에게 바친다. 더욱 내가 감탄한 점은 쉬차이허우와 그의 딸이 안에서 성관계를 가질 때 구쥔산은 밖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2015년 6월, 해방군TV선전센터의 일부 사람들이 시진핑의 공개서신을 발표했는데, 그 센터의 <군사보도>의 아나운서인 펑린(馮琳), 예명 하이린(海琳)이 쉬차이허우의 정부였다는 것이다. 쉬차이후은 센터의 주임으로 하여금 펑린이 특별프로그램부의 부주임을 맡도록 지시했으며, 그녀로 하여금 전국정협위원이 되도록 어레인지했다. 쉬차이허우가 낙마한 후, 펑린은 기율검사무서에서 여러번 조사를 받았고, <군사보도>의 아나운서자격도 잃는다. 할 수 없이 전직해야만 했다.
홍콩의 <동향>잡지가 2016년 7월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공내부의 사람이 토로했는데, 쉬차이허우는 방광암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중공내부에서 공표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1월에서 2012년 9월까지 쉬차이허우는 직권을 이용하여 위법하게 80여명의 여성을 국방, 군사부문에 취직시킨다. 그중 적지 않은 여성은 쉬차이허우와 부정당한 남녀관계가 있었다.
2012년 12월에서 2013년 5월까지, 쉬차이허우는 15명의 예전에 관계를 가지며 약속했던 여성들에게 2억2천여만위안의 현금과 부동산을 제공한다.
결론
쉬차이허우가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탐하며 대거 매관매직을 벌인 것은 그의 뒷배경이자 그를 발탁중용한 사람이 장쩌민이기 때문이고, 장쩌민이야말로 당정군 최고위층의 부정부패의 최대 뒷배경이다.
당시 중앙군사위부주석으로 있던 쉬차이허우와 궈보슝은 전체 군대를 부패시켰다. 2013년 시진핑이 반부타호를 시작했을 때 조사처벌받은 장군이 160여명에 달하여, 1927년 건군이래 내전외전문혁때 낙마한 장군의 총합계를 넘어섰다.
중국상장 류야저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십년간 우리는 모두 군대에 있었다. 군대가 어떻게 되었는가? 군대가 큰 슈퍼마켓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상대한 것은 전쟁터가 아니라, 우리가 상대한 것은 시장이었다. 심지어 시장도 아니었다. 우리가 상대한 것은 그저 매장이었다. 뭐든지 가격을 붙여 팔았다. 뭐든지 가격을 붙였다. 그들이 장악하면서 군대는 엉망진창의 진흙탕이 되었다. 이런 진흙탕은 적군이 들어와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가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런 것이다."
쉬차이허우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2015년 1월 16일, 당시 난징군구사령관을 맡고 있던 차이잉팅(蔡英挺)은 한 보고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쉬차이허우가 한 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경보(慶父), 백비(伯嚭), 조고(趙高), 동탁(董卓), 이임보(李林甫), 채경(蔡京), 진회(秦檜), 엄숭(嚴嵩), 위충현(魏忠賢), 화신(和珅)등 '10대간신'과 놀랄 정도로 닮은 점이 있다. 즉 "간(奸)"으로 덕이나 인품은 없으며, 대간사충(大奸似忠)하다는 것이고, "탐(貪)"으로 탐욕에 끝이 없고, 재물을 탐하면서 법을 마음대로 어겼다; "패(覇)"로 무법무천에 전횡패도했다. "가(假)"로 말과 행동이 달랐으며, '양면인'이었다. "사(私)"로 일당을 모아서 사리를 꾀하고, 소집단을 만드었다. 이러한 평가가 전혀 지나치지 않다.
前中央軍委副主席徐才厚的腐敗現象有多嚴重?
文章:王友羣
2014年3月15日,前中共政治局委員、中央軍委副主席徐才厚開始接受調查。 徐才厚是百年中共歷史上受查的最高級將軍之一。
徐才厚在北京301醫院的病牀上被捕。 同年6月30日,黨籍被剝奪,7月30日軍籍被剝奪,上將軍銜也被剝奪。 10月27日被軍事法院起訴,2015年3月15日,在審判前因膀胱癌死亡。
徐才厚是前中共獨裁者江澤民提拔並重用的兩名軍委副主席。 江澤民名義上卸任中央軍委主席後,代理江澤民掌握"槍手"的兩人是親信。 他們在江澤民的操縱下,把中央軍委主席胡錦濤變成稻草人,左右軍委的大權,組成江澤民、徐才厚、郭伯雄的"鐵三角",在軍隊內無法無天,做了各種壞事。
習近平接替胡錦濤成爲中央軍委主席後,徐才厚完全不把習近平放在眼裏。 據香港《明報》2015年3月14日報道,有一次,在多數人蔘加的軍隊半公開會議上,時任軍委副主席的徐才厚對另一位軍委主席郭伯雄說 : " 讓他(指習近平)五年,你就把他趕出去吧!"
徐才厚究竟犯下了多少腐敗? 從軍事檢察院的起訴書來看,徐才厚利用職務上的便利,幫助他人晉升,直接或通過家人收受賄賂,金額特別大。 利用職務影響力爲他人謀取利益,他和家人收受他人賄賂,其金額也特別巨大。
徐才厚到底收了多少錢? 中國當局沒有給出具體的數字。 因爲一旦公佈真實數字,軍人就會發動叛亂。 肯定會超過1億元。
徐才厚賣官賣職
2015年3月,中國小將楊春長在接受鳳凰衛視記者採訪時說 : " 徐才厚等人事件發生後,身邊的人都說他們的權力太大。 一個大軍區司令給他送了一千萬。 另一名司令官寄出了兩千萬。 結果他說不需要1000萬。"
記者問道:"那這軍隊不就是他們家的嗎?"楊春昌說:"就是那樣。 成了他們家的東西。 而且,當時以軍事爲主的主席也變成了稻草人。"
據中國官方通報,徐才厚的第一個罪狀是賣官賣職。 徐才厚擔任中央軍委總政治部主任、中央書記處書記、中共政治局委員、中央軍委副主席的10年間,擁有數百萬軍隊和武警部隊高層將軍的人事任免和安排權限。
徐才厚被捕後,一位自稱"涉軍元老媒體"的人物這樣寫道 : " 徐才厚以軍委副主席的身份,把軍隊變成了宗派散頭主義的'徐家莊'。 培養了一批貪婪、奢侈、隨風打舵、拍馬屁、伺機施展的惡人。 他們被分配到全軍各部門,擁有發言權、晉升權。 黨委淪爲他們謀利的機構,接連發生了劇作家都難以寫出來的政治醜惡事件。"
2016年7月6日,在國防大學理論學習座談會上,中國上將劉亞洲說過這樣的話 : " 徐才厚臨終時說了兩句話。 這是從負責案件的人員那裏聽到的,所以非常正確。 第一句話是"郭伯雄的問題比我嚴重",第二句話是"大邱正職將軍中,沒有給我送錢的人只有兩人。'"
徐才厚的錢財
據2014年第32期《鳳凰週刊》報道,2014年3月15日晚,軍事檢察院刑偵官對位於北京阜城路的徐才厚豪宅進行搜查。 扣押搜查結果大大出乎經驗豐富的事件負責官們的預料。 "本來社會上就有徐才厚嚴重涉黑的傳聞,谷俊山事件發生至今已經過了兩年。 徐才厚認爲,即使腐敗了,財物也早就搬走了,家裏也不會有什麼錢和財物。"
只是徐才厚打開這棟2000多平方米的豪宅地下室後,辦案人員大吃一驚。 到處是現金,美元、歐元、人民幣等一應俱全。 由於事件負責人無法一一數清,只好用秤稱重,並重新加上了封條。 被扣押搜查的現金重達1噸。 有的裝在信封裏,但沒打開。 各種金銀珠寶數不勝數。
還有100多公斤、200多公斤的和田玉、各種珍貴的硬木和珍貴的翡翠製品。 堆滿的賀天玉大部分還是原來的樣子,有的只是玉石的外皮脫了一層,裏面的顏色也暴露了出來。 而且唐、宋、元、明義的古董和書畫也隨處可見。
在一處豪華住宅里扣押搜查的現金和財物堆積如山。 辦案人員不得不叫來十幾輛卡車運完。
徐才厚軍委大樓地下也有祕密保管室。 裏面也堆滿了現金,她的祕書和一名女軍人管理。 徐才厚與這名女兵發生關係後,答應幫助她"上大學、升職 " , 但始終未能兌現諾言。 徐才厚退役後,這個女兵絕望了。 一天,他從山東的故鄉拉來一輛麪包車,將保管室裏的現金裝滿車後失蹤。 徐才厚在接到報告後,只能成爲"吃蜜的啞巴",不敢讓她追蹤或調查。
2014年3月6日 , 《 法廣》這樣報道。 中國當局將徐才厚事件相關內容通報給了黨內一定級別以上的人。 據通報,徐才厚及其家人從顧俊山那裏收到的現金約4000萬元。
2014年3月20日 , 《 蘋果日報》這樣報道。 22歲的女子趙丹娜在香港多家銀行開設8個賬戶,幫助徐才厚一家洗錢100億港元,結果被香港當局調查。 2014年初,趙丹娜在徐才厚女兒的幫助下,放棄3000萬港元的保釋金逃走。
徐才厚豪宅
《鳳凰週刊》中提及的徐才厚位於北京富城路的豪宅是"趙魚臺6號院"所在地的12棟豪宅中最大的豪宅。 "潮魚臺6號院"及其西側的"潮魚臺1號院"都是中國人民解放軍總後勤部副部長顧俊山負責開發的豪華房地產項目。 "潮魚臺一號院"的豪宅以每平方米35萬元的價格售出。 徐才厚這所房子到底要多少?
據《鳳凰週刊》報道,徐才厚在接受調查之前,外界曾傳言徐才厚在上海有4套房產。 徐才厚大發雷霆說:"這是謊言,有人在誣陷。" 於是,他主動打電話給軍隊高層,要求派人去調查。 我要證明自己的清白。 經軍委紀檢委再次覈實,發現該房產確實不在徐才厚名下。 房產的所有者是以徐才厚還年幼的外孫的名義。
徐才厚的妻子趙黎是此次受賄事件的實際主人公。 據行賄人稱,找到趙麗談了意向,趙麗以爲只是上海的普通房產,拒絕了。 但是,對方帶她到上海展示了一下實物,四棟房子被分配給連成一體的師長級將軍,裝修機也很豪華,位置也很不錯。 趙麗察看後欣然接受了。 後來經調查確認,這4套房產是顧俊山的弟弟獻給徐才厚。
徐才厚在四川成都也有豪華別墅。 實際接受的人還是趙莉。 趙莉到成都看了這幢別墅後嫌小。 對方因此大舉進行擴建工程,佔有面積也將增加到數畝。 趙莉這才答應。
徐才厚淫亂
中國上將劉亞洲還講述了軍隊總後勤部副部長顧俊山爲徐才厚獻上美女的趣事:"他獻給徐才厚女歌手,獻上女演員,獻上女服務員。 不僅如此。 他把自己的女兒也獻給徐才厚。 更令我感嘆的是,徐才厚和他的女兒在裏面發生性關係時,顧俊山坐在外面。"
2015年6月,解放軍電視宣傳中心的一部分人發表了習近平的公開信,該中心《軍事報道》的主播馮琳、藝名海琳是徐才厚的政府。 徐才厚指示中心主任馮琳擔任專題部副主任,並使她成爲全國政協委員。 徐才厚落馬後,馮琳多次到紀檢辦公室接受調查,也失去了《軍事報道》主播資格。 無奈之下,只好轉業。
據香港《動向》雜誌2016年7月報道,中共內部人士透露,徐才厚並非死於膀胱癌。 他死於艾滋病。 據報道,中共內部公佈的資料顯示,2000年11月至2012年9月,徐才厚利用職權違法將80多名女性安排到國防、軍事部門工作。 其中不少女性與徐才厚有過不正當的男女關係。
2012年12月至2013年5月,徐才厚爲15名以前有關係的女性提供2.2億餘元現金和房產。
結論
徐才厚貪財、貪女色,大舉賣官賣職,是因爲他的背後,也是提拔重用他的人就是江澤民,江澤民纔是黨政軍最高層腐敗的最大幕後背景。
時任中央軍委副主席的徐才厚和郭伯雄腐敗了整個軍隊。 2013年習近平開始反不打號時,受到調查處罰的將軍達160多人,超過了1927年建軍以來內戰外戰文革時落馬的將軍的總和。
中國上將劉亞洲這樣說 : " 20年來我們都當過兵。 軍隊怎麼樣了? 軍隊成了大超市。 我們面對的不是戰場,而是市場。 甚至也不是市場。 我們面對的只是賣場。 什麼都加價出售。 什麼都加價了。 他們控制着軍隊,軍隊變得一團糟。 這種泥漿不是敵人進不去,而是我們進不去。"
該如何評價徐才厚? 2015年1月16日,當時擔任南京軍區司令的蔡英挺在一次報告會上這樣說道:徐才厚所做的事情,在韓國曆史上有慶父、伯丕、趙高、董卓、李林甫、蔡京、秦檜、嚴嵩、魏忠賢、魏忠賢等令人吃驚的優點。 即"奸"無德無德,人品如大奸士忠,因"貪"貪婪無止境,貪財肆意違法,以"霸"專橫無天。 "假",言行不一,是"兩面人"。 他們以"私"聚攏一夥,謀取私利,組建了集結團。 這樣的評價一點也不過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