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염(章太炎)의 공개구혼
장태염(章太炎)의 공개구혼 글: 월초(越楚) 신해혁명후에 당시에 영향력이 비교적 큰 에 가 실렸다. 이를 실은 사람은 대명이 자자한 장태염이었다. 그 내용은 개략 다섯 가지였는데, (1) 악녀(鄂女, 호북성출신여성)에 한함 (2) 대가집 규수일 것 (3) 문리(文理)를 통했을 것 (4) 학교에서 평등자유의 악습에 물들지 않았을 것 (5) 남편을 따르는 미덕이 있을 것 이 공개구혼이 실리자, 사회의 여론이 비등했다. 하나는 장태염이 아마도 가장 먼저 신문에 공개구혼을 낸 사회명사라는 것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태염이 악녀(호북여자)만을 처로 삼겠다고 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연유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장태염은 중국근대사상 두번째로 "미치광이"로 이름을 날린 명사이다(또 다른 한명은 양정분(梁鼎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