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왕벚나무 원조 논쟁 110년만에 결론, 그 이후...
한·일 왕벚나무 원조 논쟁 110년만에 결론, 그 이후... 서울에도 벚꽃이 만개했다. 도심에 흔한 화려한 벚나무는 대부분 왕벚나무다. 여의도 벚꽃들도 마찬가지다. 왕벚나무는 다른 벚나무에 비해 꽃이 크고 꽃자루와 암술대에 털이 있는 것이 식별포인트다. 이 왕벚나무의 원산지를 놓고 한일간에 100년 이상 논쟁을 벌였다. 일본은 왕벚나무의 원조는 당연히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1901년 마츠무라 교수가 왕벚나무에 학명(Prunus yedoensis Matsumura)을 붙일 때 종소명에 에도(江戶·도쿄)를 넣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에밀 타케 신부(프랑스 출신으로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선교사이자 식물학자)가 1908년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서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발견했다. 그후 한국 학자들은 왕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