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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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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3부


21. 하나 둘 셋 넷 봉우리(一峰二峰三四峰)


명종(明宗) 때의 명필(名筆)이요 풍류객(風流客)이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수십 질 높이의 암벽(岩壁)에 새겼다는 ‘만폭동(萬瀑洞)’ 세 글자를 바라보며 일만 이천 봉우리 중에서 47개의 봉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게성루(偈惺樓)가 여기에서 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금강산의 참된 면목을 알려거든 석양 무렵에 게성루에 올라 보라(欲識金剛眞面目 夕陽須上偈惺樓)“는 옛 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사암(藥師庵), 백운암(白雲庵), 도솔암(兜率庵), 가엽암(迦葉庵) 등 수없이 많은 암자(庵子)를 지나 드디어 게성루(偈惺樓)에 올랐다.


남쪽으로 보이는 것은 릉허봉(凌虛峰)과 영랑봉(永郞峰)이요, 동쪽으로 보이는 것은 일출봉(日出峰)과 월출봉(月出峰), 북쪽으로는 백옥봉(白玉峰)과 옥선봉(玉仙峰), 과연 장관(壯觀)이었다. 처음에는 높은 산봉우리 몇 개 인줄 알았는데 짙은 안개 속에서 높은 봉우리 사이사이로 무수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봉우리들을 세어보던 김삿갓은 시흥에 겨워 즉흥시(卽興詩) 한 수를 이렇게 읊었다.


      하나 둘 셋 넷 봉우리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봉우리

      삽시간에 천만 봉이 새로 생겨나

      구만리장천이 모두 산봉우리로구나.


      一峰二峰三四峰

      五峰六峰七八峰

      須臾更作千萬峰

      九萬長天都是峰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산봉우리만이 아니었다. 북쪽은 산에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지만 동쪽은 산과 산 사이로 동해바다의 만경창파(萬頃蒼波)가 한눈에 바라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김삿갓은 또 한수를 읊었다.


     태산이 뒤를 가려 북쪽은 하늘이 없고

     눈앞이 바다여서 동쪽은 땅의 끝이네.

     다리 아래 길은 사방으로 통해 있고

     일만 이천 봉이 지팡이 끝에 솟아 있네.


     泰山在後天無北

     大海當前地盡東

     橋下東西南北路

     杖頭一萬二千峰 


22. 푸른 산길 더듬어 구름 속에 들어오니(綠靑碧路入雲中)


게성루(偈惺樓) 위에서 바라보이는 길들은 아득히 구름 속으로 이어져 있는데 어디선가 폭포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울울창창(鬱鬱蒼蒼)한 송림 사이에서는 학의 무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도 황홀하여 잠시 무아경(無我境)에 잠겨 있는데 홀연 어느 암자에서 한낮의 종을 요란스럽게 쳐 대어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김삿갓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활짝 뜨고 즉흥시 한 수를 다시 읊었다.


     푸른 산길 더듬어 구름 속에 들어오니 

     다락이 좋아 시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네.

     용의 조화로 눈 날리는 폭포소리 머금게 하고

     칼의 신령은 산을 깎아 이 하늘에 꽂았구나.


      綠靑碧路入雲中

      樓使能詩客住笻 

      龍造化含飛雪瀑

      劍精神削揷天峰


     날아가는 저 학들은 몇 천 년 살았을꼬.

     물가의 푸른 소나무 삼백 길이 넘는구나.

     졸고 있던 이 내 심사 스님이 알길 없어

     한낮에 종을 쳐서 사람을 놀라게 하네.


     仙禽白幾千年鶴

     澗樹靑三百丈松

     僧不知吾春睡惱

     忽無心打日邊鐘


게성루(偈惺樓) 다락 위에서 바라보이는 만폭동(萬瀑洞) 풍경은 모두가 살아 있는 ‘詩’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더구나 석양 무렵 계곡(溪谷)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차라리 미치도록 황홀케 하였다. 얼빠진 사람처럼 한나절을 다락 위에서 몽롱(朦朧)하게 보낸 김삿갓은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산 밑에 있는 백운암(白雲庵)으로 내려 왔다.  


23. 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百尺丹岩桂樹下)


김삿갓은 장안사(長安寺)에 잠시 들렀다가 불영암(佛影庵)부터 찾아 나섰다. ‘괴짜중’이라고 알려진 공허(空虛)스님부터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불영암(佛影庵)은 장안사의 뒷산을 5리쯤 올라가서 있었다.


김삿갓을 반갑게 맞은 공허스님은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선생은 시를 잘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나하고 시 짓기 내기를 한번 해 보실까요?' 하는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만나는 댓바람에 시 짖기 내기를 하자고 하니 이것은 보통 수작이 아니었다.


"만나 뵙자마자 무슨 시 짖기 내기를 하자는 것이옵니까?' 하고 짐짓 놀라는 듯 해 보였지만 내심으로는 이를 마다할 김삿갓이 아니었다.


공허(空虛) 또한 통쾌하게 웃으면서 "나는 시라면 자신이 있는데 선생이 시선(詩仙)이라고 하니 우리 두 사람이 자웅(雌雄)을 겨뤄 봐야할 것 아니오니까? 아무튼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한 수 지어 보십시다." 하고는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높고도 붉은 바위 계수나무 그늘에서

     사립문 굳게 닫고 열어 본지 오래건만 

     오늘은 홀연히 지나가는 시선을 만났으니

     학을 불러 암자 보게 하고 시 한 수 빌어 와야겠네.


     百尺丹岩桂樹下

     柴門久不向入開

     今朝忽遇詩仙過

     喚鶴看庵乞句來


김삿갓은 공허스님의 시를 읽어보고 빙그레 웃었다. "스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천재시인 매월당(梅月堂)도 금강산에 와서는 시를 한 수도 짓지 못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 같은 풋내기 시인이 어찌 감히 금강산(金剛山)에 대한 시를 지을 수 있사오리까?


공허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풋내기 시인이라니 무슨 말씀을, 소승은 선생의 시를 이미 여러 편 읽었소이다. 모두 걸작이었어요. 금강산이 너무 좋아서 매월당처럼 시를 지을 수 없다면 시를 지을 수 없는 그 심정을 시로 표현(表現)할 수도 있을 것 아니오이까." 한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파안대소(破顔大笑) 하면서 "스님께서 추궁(追窮)이 대단하심이다 그려. 그처럼 말씀하시니 한 수 읊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즉석(卽席)에서 다음과 같이 한 수를 일필휘지(一筆揮之) 했다.


      우뚝우뚝 뾰쪽뾰쪽 기묘하고 괴이하니

      사람인가 신선인가 귀신인가 부처인가

      내 평생 금강 위해 시 짖기를 아꼈건만

      정작 금강을 보고 나니 감히 붓을 못 들겠소.


      矗矗尖尖怪怪奇 

      人仙神佛共堪疑

      平生詩爲金剛惜

      及到金剛不敢詩     


공허스님은 무릎을 치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과연 삿갓선생은 시선임이 분명하오. 금강산이 너무 좋아 시를 못 짖겠다는 그 시가 금강산에 대한 어느 시보다도 탁월하니 그 어찌 시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소." 하면서 새삼스레 머리를 숙여 보이는 것이었다.


* 이 시는 이응수(李應洙)가 편집한 ‘김립시집(金笠詩集)’에 들어 있는 시인데 일설(一說)에는 김립보다 7년 연장이었던 신좌모(申佐模)의 시라고도 한다. 


24.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밑에 일고(朝登立石雲生足)


금강산을 찬미하는 시 한 수씩을 주고받은 공허(空虛)스님과 김삿갓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백년지기(百年知己)를 만난 듯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사이가 되었다. 


두 분은 모두 선경(仙境)에 노니는 시선(詩仙)이면서 대주가(大酒家)이기도 했다.


연일 곡차(穀茶) 대접을 받으며 공허(空虛)와 더불어 영풍농월(詠風弄月)하던 김삿갓은 어느 날 공허스님의 뒤를 따라 입석봉(立石峰)에 올랐다. 봉우리에 오르자마자 공허스님은 경관에 취하여 시흥이 절로 솟아오르는지  또 다시 시 짖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提案)한다.


이번에는 시를 한 수씩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한 줄 읊거든 그 시에 대조(對照)되는 시를 한 줄씩 대구(對句)를 채우라는 것이었다. '제가 어찌 감히 스님의 시에 대를...' 하면서 겉으로는 겸손(謙遜)해 하지만 속으로는 얼씨구나 하고 쾌재(快哉)를 부르는 김삿갓이었다.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니 구름이 발밑에 일고


     朝登立石雲生足


공허스님은 산 밑에 떠도는 구름을 그윽이 굽어보다가 이렇게 읊었다. 참으로 실감 나는 즉흥시였다. 대구를 찾는 김삿갓은 입석봉(立石峰)에 오르는 도중산 밑에 황천담((黃泉潭)이 있던 것을 머리에 떠 올렸다.


     저녁에 황천담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린다.


     暮飮黃泉月掛唇


하고 화답하였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대구라" 고 칭찬하면서 공허(空虛)는 다시 시야를 둘러보고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골짜기 소나무가 남으로 누었으니 북풍임을 알겠고


     澗松南臥知北風


김삿갓이 다시 화답한다. 


     난간의 대나무 그림자 동으로 기우니 해지는 줄 알겠네.


     軒竹東傾覺日西


공허스님이 또 읊는다.

     

     절벽이 위태로워도 꽃은 웃는 듯 피어 있고


     絶壁雖危花笑立


김삿갓의 화답.


     봄은 더 없이 좋아도 새는 울며 돌아가네.


     陽春最好鳥啼歸


공허스님이 무릎을 치며 또 다시 읊는다.


     하늘 위의 흰 구름은 내일의 비가 되고 


     天上白雲明日雨


김삿갓이 응구첩대(應口輒對)로 다시 화답한다.


     바위틈의 낙엽은 지난해 가을 것이로다.


     岩間落葉去年秋


‘천상백운(天上白雲)’과 ‘암간낙엽(岩間落葉)’은 하늘과 땅을 말한 좋은 대조려니와, ‘명일우(明日雨)’와 ‘거년추(去年秋)’는 더욱 멋들어진 대조가 아닐 수 없었다. 공허스님은 그럴수록 시흥(詩興)이 도도해 오는지, 얼굴에 환희의 빛이 넘쳐 올랐다. 


25.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影浸綠水衣無濕)


입석봉(立石峰)에서의 시 짖기 내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공허(空虛)스님은 김삿갓을 환희에 넘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


      影浸綠水衣無濕


공허스님의 시에는 선미(禪味)가 넘쳐흘렀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얼마나 기발한 시상(詩想)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에 못지않게 멋이 들었다.


     꿈에 청산을 누볐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夢踏靑山脚不苦


말이 떨어지자마자 척척 받아 넘기는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공허스님은 삼탄사탄(三歎四歎)을 마지않으며 또 한 수를 읊는다.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은 셈이고


     靑山買得雲空得


김삿갓의 거침없는 화답.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 오네.


     白水臨來魚自來


공허스님은 돌 한 덩어리를 굴리며 다시 읊는다.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년 만에야 땅에 닿겠고


     石轉千年方到地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구한다.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으리.


     峰高一尺敢摩天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감흥(感興)을 억제할 길 없는지 김삿갓의 손을 덥석 잡는다. "삿갓선생! 우리가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늦었어요. 허나 내 오늘 이런 기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술을 좀 준비해 가지고 왔소이다." 하면서 바랑 속에서 술과 안주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김삿갓은 입석봉(立石峰) 상상봉(上上峰)에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굽어보며 뜻하지 못했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몇 잔을 거듭 마신 김삿갓은 흥에 겨워 고시(古詩) 한 수를 읊었다.


     장부는 반드시 지기를 만나게 되는 법

     한 세상 유유히 군말 없이 살고 지고.


    丈夫會應有知己

    世上悠悠安足論


이 시는 옛날 시인 장위(張謂)가 교림선사(喬林禪師)라는 고승(高僧)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한 시였다. 공허스님은 그 시의 뜻을 대뜸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행운유수(行雲流水)와 같은 김삿갓의 인생행각(人生行脚)이 오히려 부러운 듯 그 역시 장위(張謂)의 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는 것이었다.


      술이 있으면 얼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돈이 없어도 근심 안 하는 그대가 부럽소.


      羨君有酒能便醉

      羨君無錢能不憂


그야말로 변죽을 두드리면 복판이 울리는 수작(酬酌)이었다. 이날 밤, 그들은 달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26.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月白雪白天地白)


공허스님과 김삿갓의 술 마시기와 글 짖기는 밤늦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공허스님은 취중에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다시 읊는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희고


     月白雪白天地白


김삿갓이 이에 화답한다.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시름도 깊구나.


     山深夜深客愁深


공허스님이 또 흥얼거린다.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낮과 밤이 갈리고


     燈前燈後分晝夜


김삿갓이 또 화답한다.


     산의 남과 북을 봄으로써 음지와 양지를 헤아린다.


     山南山北判陰陽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산을 내려오다가 초동(樵童)을 만났다. 공허스님은 장난기가 동하여 또 한 번 도전을 한다.


     구름은 초동의 머리 위에 피어나고


     雲從樵兒頭上起


김삿갓이 대구를 찾으려는데 마침 냇가에서 아낙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산은 아낙네의 빨래소리로 울리네.


      山入漂娥手裏鳴


마치 천진난만(天眞爛漫)하기 짝이 없는 소년 같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에는 시정(詩情)이 한껏 무르녹아 있었다. 이 후 김삿갓은 공허스님의 안내(案內)를 받으며 금강산을 두루 살펴보았다. 유점사(楡岾寺)나 신계사(神溪寺) 같은 사찰들은 물론, 구룡연(九龍淵), 만물상(萬物相) 등의 명소들도 빼지 않고 다 보았다. 보아도보아도 신비(神祕)스럽기만 한 금강산(金剛山)이었다.


공허스님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진리를 배운다고 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도 진리요,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도 진리이고,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진리를 깨닫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설암선사(雪岩禪師)의 게송(偈頌) 한수를 들여 주는 것이었다.


     냇물소리 이것이 바로 설법이거니

     팔만대장경을 모두 흘려버리네.

     우습다 서역 땅의 늙은 부처님

     사십 구 년 동안 헛수고 하셨네.


     溪聲自是長廣舌

     八萬眞經俱漏洩

     可笑西天老釋迦

     徒勞四十九年說


불교의 진리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속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눈과 귀를 가지면 흘러가는 물소리에서도 우주의 섭리(宇宙攝理)를 인식할 수 있다는 그 초탈(超脫)한 시상(詩想)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27. 일만 이천 봉 두루두루 노닐며(萬二千峰歷歷遊)


김삿갓은 오래도록 불영암(佛影庵)에 머물면서 금강산을 속속들이 탐승(探勝)했다. 대개는 공허스님과 동행(同行)했으나 때로는 혼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공허스님과 동행할 때는 옛날 고승들의 게송(偈頌)과 일화(逸話)를 듣는 것이 다시없는 즐거움 이었으나 혼자 다닐 때는 시흥(詩興)이 새삼스러이 솟아올라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욕심 없는 마음으로 자연 속을 거니노라면 그 날 그 날이 항상 즐거운 날(日日是好日)이다. 그래서 김삿갓은 혼자 다닐 때에도 금강산(金剛山)에 대한 시를 여러 수 남겼다.


     일만 이천 봉 두루두루 노닐며

     봄바람에 이끌려 다락 위에 홀로 오르니

     바다 위의 해와 달은 거울처럼 둥글고

     하늘땅은 작고 작아 엎어 놓은 배 같네.


     萬二千峰歷歷遊

     春風獨上衆樓隅

     照海日月圓如鏡

     覆載乾坤小似舟


     동쪽은 넓은 바다 삼신산이 가까운 듯 

     북쪽은 산이 높아 여섯 자라 떠 있는 듯 

     어느 때 생겼는지 그 세월 알 길 없고 

     태고 적 산의 모습 늙고 늙어 머리가 희었구나


     東庄天洋三島近

     北撑高沃六鰲浮

     不知無極何年闢

     太古山形白老頭


촉대봉(燭臺峰)의 촉대루(燭臺樓)에서 동해바다를 굽어보며 읊은 시이다. "어느 때 생겼는지 그 세월 알 길 없고, 태고 적 산의 모습 늙고 늙어 머리가 희었구나(不知無極何年闢 太古山形白老頭)" 참으로 음미(吟味)하면 음미할수록 감칠맛이 나는 시이다.  



28. 금강산에서 경치를 빼 놓는다면(若捨金剛景)


김삿갓이 혼자서 만물상(萬物相) 구경을 갔을 때는 기기괴괴(奇奇怪怪)한 경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금강산에서 경치를 빼 놓는다면 

      청산은 모두 뼈대만 남을 것이니

      그 후엔 나귀 탄 길손들 

      흥이 없어 주저하겠네.


      若捨金剛景

      靑山皆骨餘

      其後騎驢客

      無興但躊躇


어느 가을날 석양 무렵에 한 누각(樓閣)에 올라서는 저물어 가는 가을 경치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긴 여름 다 지나고 가을이 가까운데

      삿갓 버선 벗어 놓고 다락에 다가오니

      물소리는 들을 지나 담 밑으로 흘러가고

      노을빛 물안개 자옥하여 인가를 둘러싸네.


      長夏居然近素秋

      脫巾抛襪步行樓

      波聲通野巡墻滴

      靄色和烟繞屋浮


      술 항아리 바닥나고 목은 상기 타는데

      시는 좀처럼 되지 않아 이맛살을 찌푸리오.

      그대여 비가와도 이대로 헤어지세

      집에 가 잠이 들면 꿈만은 그윽하리.


      酒到空壺生肺渴

      詩猶餘債上眉愁

      與君分手芭蕉雨

      應相歸家一夢幽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금강산 절경(絶景)이 너무도 감격(感激)스러워 시를 한 수도 짖지 못했다고 했으나, 김삿갓은 절경을 대할 때마다 시를 짓지 못하는 심경을 시로써 읊어 나갔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삿갓이야말로 천품적(天稟的)으로 시혼(詩魂)을 타고 났던 시인이었는지 모른다. 


29. 방랑객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浪客去兮不復還) 


김삿갓은 공허(空虛)스님에게 너무도 오랫동안 신세를 지기가 미안해서 이제 그만 불영암(佛影庵)을 떠날 생각이었으나 공허스님이 쉽게 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 해금강(海金剛)을 며칠간 다녀오겠노라고 넌지시 운을 떼 보았다. 


공허스님도 김삿갓의 그런 심정을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지 ‘불영암(佛影庵)은 언제든지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니 편히 다녀오도록 하시오’하고 순순히 응낙(應諾)을 한다. 


김삿갓은 작별인사를 하면서도 불영암(佛影庵)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었다. 공허스님도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하며 문득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는다. 


      쓸쓸한 바람이여 산수가 차갑도다. 

      방랑객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風蕭蕭兮山水寒 

      浪客去兮不復還 


공허스님은 별이(別離)를 이미 각오한 모양이었고, 김삿갓은 그 시를 듣자 가슴이 뭉클해 와서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화답시(和答詩)를 읊었다. 


      고요한 암자에 이 내 몸 의탁하여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모두 님께 맡겼더니 

      외로운 봉우리에 안개 개고 초승달이 떠올라 

      늙은 나무 꽃이 필 때 늦봄이 오네. 


      靜處門扉着我身 

      賞心喜事任淸眞 

      孤峰罷霧擎初月 

      老樹開花作晩春 


      친구 만나 술을 드니 흥취가 무량했고 

      명산에서 시를 읊어 마냥 신기로웠소. 

      선경이 따로 있나 다른 데서 찾지 마오. 

      한가롭게 사는 분네 그가 바로 신선이라오. 


      酒逢好友惟無量 

      詩到名山輒有神 

      靈境不須求外物 

      仙人自是小閑人


공허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배례하며 ‘만유무상(萬有無常), 회자정이(會者定離),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觀世音菩薩)’할 뿐이었다. 김삿갓은 가슴이 메어져 와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영원한 이별이었던 것이다.


30.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고 모두가 희어(沙白鷗白兩白白)


김삿갓은 공허스님과 작별하고 해금강(海金剛)으로 오면서도 이별의 서글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인정(人情) 같은 것은 깨끗이 떨쳐 버렸노라고 자부(自負)해 왔던 그였건만 정작 뜻에 맞는 사람과 헤어지고 보니 마음이 서글퍼 오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던지 문득 백낙천(白樂天)의 시 한 구절을 머리에 떠 올렸다.


     사람은 목석이 아니고 누구나 정이 있는 것

     미인은 차라리 만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을.....


     人非木石皆有情

     不可不遇傾國色


미인과 헤어지는 것도 어려운 것이겠지만 뜻 맞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진정 서글픔이 아닐 수 없었다. 김삿갓은 이별의 서글픔에 시달리며 묵묵히 걸어오다가 하늘을 우러러 통쾌(痛快)하게 웃으며 스스로를 이렇게 꾸짖었다. ‘어리석은 김삿갓아! 천애(天涯)의 방랑객(放浪客)으로 자처하는 네가 왜 이리도 지지리 못난 꼴이란 말이냐. 만나고 헤어짐은 인생의 항다반사(恒茶飯事)가 아니었더냐.’


이윽고 해금강(海金剛)에 당도해 보니 겨울 바다는 쓸쓸하기 그지없고 눈앞에 전개되는 풍경(風景)은 오직 만경창파(萬頃蒼波)뿐인데 하얀 모레 밭에서는 흰 갈매기들만이 무심히 노닐고 있다가 어부의 뱃 노래에 놀란 듯 활짝 공중으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김삿갓이 시 한 수가 없을 수 없었다.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고 모두가 희어

      모래와 갈매기 구별조차 어려운데

      어부의 노래 듣고 갈매기 날아가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갈매기로구나.


      沙白鷗白兩白白

      不辨白沙與白鷗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바닷가에는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어차피 정처 없이 나선 길이니 이왕이면 함경도(咸鏡道)로 발을 뻗어 보고 싶었다. 악암(岳岩)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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