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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岩漢字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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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전기(金笠傳記) 4부


31. 하늘은 높아 잡을 수 없고 (天長去無執)


‘관북천리(關北千里)’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안변(安邊) 석왕사(釋王寺)는 이태조(李太祖)의 건국설화(建國說話)가 서려 있는 명소요, 길주(吉州), 명천(明川)은 수많은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유배(流配)를 갔던 역사의 고장이 아니던가. 그러나 당장 시급(時急)한 문제는 우선 오늘밤 잠자리였다. 


불영암(佛影庵)에 유숙할 때는 잠자리 걱정도, 끼니 걱정도 없었다. 그러나 공허(空虛)스님과 헤어진 오늘부터는 모든 것을 그날그날의 운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날은 저문 데 깊은 산속에 오막살이 한 채가 나온다. 사립문도 없는 단칸 두옥(斗屋)이다.


다행이 혼자 사는 노파가 반갑게 맞아 주면서 화로에 불을 피워 들여오고, 저녁 걱정을 하며 부엌으로 나간다. 


방안을 둘러보니 천장에는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고, 화로에서는 겻불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여기에서 또 희시(戱詩) 한 수를 읊는다.


      하늘은 높아 잡을 수 없고

      꽃은 늙어 나비가 오지 않네.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천정에 거미집)

      花老蝶不來(화로접불내=화로에 겻불내=냄새))


천장의 거미줄과 화로의 겻불 냄새를 비슷한 한문글자에 맞춰 보니 제법 그럴듯한 시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 회심(會心)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노파가 소반에 국수 한 사발과 지령(간장) 반 종지를 놓아 가지고 들어와서 먹기를 권한다. 김삿갓의 장난기 어린 시재(詩才)가 다시 이어진다.


      국화꽃이 찬 모래 밭에 피어

      그림자가 연못에 반쯤 비치네.


      菊樹寒沙發(국수한사발)

      枝影半從池(지령반종지= 지랑 반종지)


국수를 먹고 나니 노파는 산 너머 김부잣 집에서 잔치음식을 가져왔다면서 소반(小盤) 위에 귀한 음식을 담아 내온다. 


소반에는 강정, 빙사과(油蜜菓), 대추, 복숭아 등이 놓여 있다. 음식 이름을 그대로 주워 맞추니 또 한 수의 시가 된다.


       가난한 선비가 정자 옆을 지나다가 

       술에 취하여 소나무 아래 엎드렸소.


       江亭貧士過(강정빙사과=강정에 빈사과)

       大醉伏松下(대추복송아=대추에 복숭아)


음식을 먹고 나자 노파는 개를 불러 과줄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다. 개는 지금까지 뒷간에서 똥이라도 먹다 왔는지 몸에서 구린내가 풍겨 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이를 바라보다가 또 한 수의 희시(戱詩)를 생각해 냈다.


      달이 옮겨 가니 산 그림자 바뀌고

      사람은 장거리에서 돈을 벌어 오네.


      月移山影改(월이사녕개=워리워리 사냥개)

      通市求利來(통쉬구리내=통쉬에 구린내)


통쉬란 뒷간의 사투리이다. 아무튼 그처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모두 시로 바꾸어 놓고 보니 보고 느끼는 것이 그렇게도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세상(世上)이란 본시 각박(刻薄)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론(理論)에 치우치면 모가 생기고, 정에 약하면 흘러가 버리고, 고집(固執)이 세면 살기가 거북스러운 것이다.


32. 계곡 따라 종일 가도 사람 하나 못 보더니(終日綠溪不見人)


김삿갓은 노파와 작별하고 다시 나그네의 길에 올랐다. 안변(安邊)은 관동과 관북의 접경지대다. 관동(關東)에서 관북 땅으로 접어드니 산세가 더욱 험준(險峻)하고 인가도 점점 희소하였다. 배가 고프면 솔잎을 따 먹기도 하고 칡뿌리를 캐 먹기도 하면서 토굴신세를 져 오다가 사흘 만에 처음으로 인가(人家)를 만났다.


오막살이 주인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지만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집은 창호지는 언제 발랐는지 새까맣고, 방안에는 먼지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대접한답시고 지어온 보리밥은 몇 년이나 묵은 보리쌀인지 발갛게 절어 있었다. 김삿갓은 하룻밤 신세를 지고 그 집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계곡 따라 종일 가도 사람 하나 못 보더니

     겨우겨우 강가에 초막 한 채를 찾았소.

     문에 바른 창호지는 여와씨 때의 종이요

     비를 들어 방을 쓰니 천황씨 때의 먼지로다.


     終日綠溪不見人

     辛尋斗屋半江濱

     門塗女와元年紙

     房掃天皇甲子塵    


     새까만 그릇들은 우나라 대 구운 건가

     새빨간 보리밥은 한나라 때 곡식인가

     떠날 때 주인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간밤 일 생각하면 암만해도 입맛 쓰네.


     光黑器皿禹陶出

     色紅麥飯漢倉陳

     平明謝主登前途

     若思經宵口味辛


그 어려움 속에서 생면부지(生面不知) 길손을 먹여 주고 재워 준 인정에 감사(感謝)하면서도 그토록 처참한 삶을 이어 가는 산골 백성이 불쌍하고 서글펐다. 그래서 그는 익살스러운 시로써 속으로 울며 저린 가슴을 달래는 것이었다.


33. 묻노니 이 다락 누가 세웠던고(試問何人始起樓) 


김삿갓은 관북으로 들어선지 열흘 만에 가학루(駕鶴樓)라는 유명한 정자에 도달하였다. 안변(安邊)고을의 진산(鎭山)은 학성산(鶴城山)이다. 가학루는 학성산 동쪽 언덕 위에 동해를 멀리 굽어보며 날아갈 듯이 솟아 있는 정자(亭子)다. 


가학루(駕鶴樓)의 도리에는 시인묵객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詩’가 현판으로 걸려 있었다. 김삿갓은 고려조의 충신이었던 정몽주(鄭夢周)의 시에 유난히 시선이 끌렸다. 


      묻노니 이 다락 누가 세웠던고

      내 이제 다락에 올라 오래 머무노라

      십 년 세월 헛되이 모든 일 잊었다가 

      옛 싸움터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솟네.


      試問何人始起樓

      臨登聊復爲淹留

      十年徒勞負心事

      白戰山河堪淚流


정몽주(鄭夢周)는 만고의 충신(忠臣)인지라 옛날의 싸움터만 보아도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옆에는 조선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鄭道傳)의 시가 걸려 있는데 그 시의 내용은 정몽주(鄭夢周)의 그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영의정께서 가학루에 오르시어 

      보고 느끼신 시를 현판에 남기셨다

      강산이 아무리 좋아도 내 땅은 아니니

      세월만 덧없이 물 따라 흘러가네.


      上相登臨駕鶴樓

      眼前詩句壁間留

      江山信美非吾土

      歲月無情逐水流


정도전(鄭道傳)이 정몽주(鄭夢周)의 시를 읽고서 지은 것인지? 영의정(上相)이라는 칭호가 정몽주를 지칭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정몽주(鄭夢周)는 자나 깨나 나라의 운명(運命)을 걱정하고 있었고, 정도전(鄭道傳)은 ‘강산이 아무리 좋아도 내 땅은 아니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진작부터 새 나라를 일으킬 야망(野望)을 품고 있었던 듯 했다


34. 안변 땅 두루 돌다 좋은 정자 만나니 (一城踏罷有高樓)


학성산(鶴城山) 서쪽에는 표표연정(飄飄然亭)이라는 또 하나의 정자가 있어 동쪽의 가학루(駕鶴樓)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삼방계곡(溪谷)의 맑은 물이 흐르고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물결이 일렁거리는 용당(龍塘)여울을 이루는데 그 앞으로 쭉 뻗어 나온 학성산의 한 줄기 산마루 끝에 정자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아마도 표표연정(飄飄然亭)이라는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풍표표이취의(風飄飄而吹衣; 바람은 솔솔 옷자락에 분다)라는 시구에서 따 온 듯하였다. 주위에는 고목이 울창하여 꾀꼬리가 날아들고,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남대천(南大川) 물가에는 갈매기가 날고 있으니 이 풍광을 바라보는 김삿갓이 어찌 시 한 수가 없을 수 있겠는가.


       안변 땅 두루 돌다 좋은 정자 만나니

       술을 찾고 시를 쓰며 물갈래를 묻노라

       고목은 정이 많아 꾀꼬리 모여들고

       강물은 거침이 없어 갈매기 나네.


       一城踏罷有高樓

       覓酒題詩問幾流

       古木多情黃鳥至

       大江無恙白鷗飛


김삿갓은 시를 한 수 읊고 나자 불현듯 가학루에 걸려 있던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들은 정치색이 농후(濃厚)한 영웅호걸들이어서 그들의 시에는 무언중에 풍운미(風雲味)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아닌가?


      영웅은 가고 세상은 조용하여

      길손은 다락 위에 한가롭게 앉았노라

      관동 땅 아직 두루 보지 못했으니

      기러기를 따라서 장주로 내려가리.


      英雄過去風煙盡

      客子登臨歲月悠

      宿債關東猶未了

      欲隨征雁下長洲 


      *장주(長洲)는 정평(定平)의 옛 이름


김삿갓은 자기 자신을 아무 욕심(慾心)도 없는 순수한 시인으로 자처(自處)하는 동시에, 세태변화(世態變化)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한 세상을 숨 가쁘게 살았던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같은 영웅들을 은연중에 비꼬고 있었다.  


35. 학은 가고 빈 다락에 잡새만 우짖누나(鶴去樓空鳥獨啼)


표표연정(飄飄然亭)이라는 정자 이름의 출전(出典)이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일 것이라는 김삿갓의 추측(推測)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먼 옛날에 신선이 여기에서 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갔는데 그 자리에 정자를 짓고 ‘신선이 바람처럼 가볍게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는 뜻에서 표표연정(飄飄然亭)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설(傳說)이란 덮어놓고 그저 믿으면 그만이지 미주알고주알 따져서 무엇하랴. 어느덧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는 놀이 붉게 물들었고, 산기슭에서는 저녁연기가 아련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신선(神仙)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광경(光景)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다시 시 한 수를 읊는다.


      기나긴 방축 끝에 솟아 있는 표연정아

      학은 가고 빈 다락에 잡새만 우짖누나.

      십리 벌판 다리 위아래 안개가 자욱하니

      하루의 풍월이 물의 동서로 갈리네.


      飄然亭子出長堤

      鶴去樓空鳥獨啼

      十里煙霞橋上下

      一天風月水東西


      신선이 가신 자취 구름 속에 아득하여

      나그네의 회포가 세모에 그윽하다.

      우화문 앞에서 물어볼 길 없으니

      봉래선인 그 소식 꿈속에 희미하네.


      神仙蹤迹雲過杳

      遠客襟懷歲暮幽

      羽化門前無問處

      蓬萊消息夢中迷


안변(安邊)의 진산(鎭山)인 학성산(鶴城山)의 동서(東西)에 각각 자리하고 있는 가학루(駕鶴樓)와 표표연정(飄飄然亭)은 비길 데 없는 그 경치도 가히 일품이거니와 가학루에 걸려 있던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의 풍운미(風雲味) 넘치는 시구(詩句)와 표표연정의 한가로운 신선전설이 대조를 이루면서 학성산(鶴城山)을 떠나는 방랑시인의 가슴에는 더욱 많은 감회(感懷)가 감돌고 있었다.  


36. 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花樹花花立)


표표연정(飄飄然亭)에서 석왕사(釋王寺)까지는 산길로 100여 리, 표표연정(飄飄然亭)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석왕사에 당도한 김삿갓은 먼저 반월행자(半月行者)를 찾았다. 그는 공허(空虛)스님의 말씀대로 좀 모자라기는 하지만 인품만은 선량한 사람이었다.


30세 쯤 되어 보이는 반월행자(半月行者)는 자기의 스승이신 공허 큰스님으로부터 삿갓선생의 말씀을 익히 들었다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본시 글재주도 조금은 있는 편이어서 스님이나 선비를 만나면 괴이(怪異)한 글을 써놓고 뜻을 풀어 보라고 하는 '글풀이내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김삿갓을 만나 겨우 인사(人事)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나자 예외 없이 글풀이내기를 제안(提案)하는 것이었다. 선비가 글짓기 내기라면 또 모를까 유치(幼稚)하게 글풀이내기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김삿갓으로서는 회피(回避)할 처지도 아니었다.


     花樹花花立

     松風松松吹


이렇게 써 놓고 반월행자는 의기양양(意氣揚揚)하여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고 묻는다. 자기도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부고를 장난삼아 유유화화(柳柳花花;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 졌다)라고 쓴 적이 있는 김삿갓이고 보면 그것을 모를 이가 없었다.


      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 (花樹花花立)

      솔바람은 솔솔 불어 온다 (松風松松吹)


김삿갓이 선뜻 풀이를 하자 반월행자(半月行者)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문제를 낸다. 반월행자가 한문으로 쓰면 김삿갓이 우리말로 풀이하는 문답(問答)을 밤이 이슥하도록 아래와 같이 계속 하였다.


   春折秋  봄에 갈(葦)을 꺾고

   晝摘夜  낮에 밤(栗)을 딴다. 


   芹有叔而無姪

   미나리아재비라는 풀은 있어도 미나리조카라는 풀은 없고

   鼠有婦而無姑

   쥐며느리라는 벌레는 있어도 쥐시어미라는 벌레는 없다.


   家貧雙月少  집이 가난하니 벗이 적고 (雙月=朋)

   衣弊半風多  옷이 해어지니 이가 많아진다. (風자의 반쪽은 ?(이슬)

                                                       

   鳥去枝二月  새가 날아가니 나뭇가지가 한달 한달 (二月=한달+한달)

   風來葉八分  바람이 불어오니 나뭇잎이 너풀 너풀 (八分=너푼+너푼)


   人皆以三十日爲一月  남들은 세 십일을 한달이라 하지만 (10일x3)

   吾獨二十五日爲一月  나는 두 십오일을 한달이라 한다. (15일x2)


   世皆以虧月爲半月  세상 사람들은 이지러진 달을 반달이라 하지만

   吾獨以滿月爲半月  나는 둥근 달을 보고 반달이 됐다고 한다. (십오야)


반월행자(半月行者)도 어디서 그렇게 괴이한 문구들을 주워 모았는지 모르지만 김삿갓의 풀이솜씨가 참으로 대단하다. 풀어 놓고 보니 그럴 듯하지만 한문만 보고서야 어찌 해석(解釋)할 엄두나 내겠는가. 이후 반월(半月)이 김삿갓을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37. 석왕사(釋王寺)와 이성계(李成桂)


설봉산(雪峰山) 석왕사(釋王寺)는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李成桂)가 아직 영흥(永興)에 살면서 무예(武藝)를 닦고 있던 시절, 무학대사(舞鶴大師)를 처음 만나 장차 王이 될 것이라는 꿈 풀이를 듣고 대망(大望)을 품었으며, 후일 뜻을 이룬 후에 이를 기념하여 세운 절이라는 전설(傳說)이 무성한 곳이다.


반월행자(半月行者)는 직접 보기라도 한 듯 신바람이 나서 김삿갓에게 석왕사의 유래를 설명한다. 무학대사(舞鶴大師)가 이곳의 한 토굴에서 수도(修道)하고 있을 때 파자점(破字占)을 잘 치기로 유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성계(李成桂)가 그를 찾았다.


그런데 먼저 점을 치러 온 사람이 있었고, 이성계(李成桂)는 등 뒤에서 호기심(好奇心)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무학(舞鶴)은 그 사람에게 아무 글자나 당신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한 자만 쓰라고 했고 그는 ‘問’자를 써서 내밀었다.


‘간(問)’자를 받아 든 무학은 잠시 묵상(默想)을 하더니 ‘평생 거지가 될 팔자’라고 했고, 옷차림도 깨끗하고 얼굴도 멀끔한 그는 내가 왜 거지냐고 항변(抗辯) 했지만 무학은 간(問)자는 문(門)에 입(口)이 달렸으니 그대는 거지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를 듣고 실망한 그는 “나는 거지신세를 면해 볼까 해서 새 옷까지 빌려 입고 점을 치러 왔건만 암만해도 팔자도망은 못하는가 보다”고 한탄하면서 총총히 살아졌다. 이를 본 이성계(李成桂)는 도사를 곯려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 자기도 ‘問’자를 써서 내 밀어 보았다.


한참동안 명상에 잠겨 있던 무학(舞鶴)은 별안간 자세를 가다듬고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되실 분께서 왕림해 주셨으니 황공하옵니다.”하면서 합장배례(合掌拜禮)를 한다. 귀를 의심한 이성계는 같은 글자를 가지고 그렇게도 상반된 해석을 하느냐고 물었고,


무학은 같은 글자라도 그 사람의 심지(心志) 품성(稟性) 기상(氣象)에 따라 점괘(占卦)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같은 ‘問’자라도 귀공께서 내 놓은 ‘問’자는 좌로 보아도 ‘君’자요 우로 보아도 ‘자’이니 이 어찌 장차 이 나라의 임금이 되실 분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에 호기심(好奇心)이 동한 이성계(李成桂)는 다시 꿈 풀이를 부탁했다. 


어느 헌집에서 잠을 자는데 별안간 모든 집에서 닭들이 요란하게 울어 대고, 집이 무너져서 급히 빠져 나오는 데 서가래 세 개가 등에 얹혔으며, 뜰에 피어 있던 꽃이 별안간 다 떨어지고, 난데없이 큰 거울이 깨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으니 흉몽(凶夢)이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무학(舞鶴)의 해몽(解夢)은 이랬다. 닭들이 ‘꼬끼요’하고 울었으니 이는 ‘고귀위(高貴位)’가 오실 것을 알리는 것이요, 서가래 세 개를 등에 젖으니 이는 ‘王’자가 분명하고, 꽃이 떨어졌으니 열매가 맺을 것이며, 요란한 소리가 났으니 천하를 호령(號令)할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한 반월행자(半月行者)는 이성계(李成桂)의 시 한 수를 외우면서 무학대사(舞鶴大師)의 예언에 고무된 그가 웅지(雄志)를 품고 산을 내려오면서 천산만봉(千山萬峰)을 굽어보고 읊은 것이라 했다.


    칡덩굴 움켜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조그만 암자 하나 구름 속에 누었구나. 

    눈에 보이는 산천이 모두 내 땅이 된다면 

    초월 강남인들 어찌 용납하지 못하랴.


    引手攀蘿登碧峰

    一庵高臥白雲中

    若將眼界爲吾土

    楚越江南豈不容


김삿갓은 무인 이성계(李成桂)가 시를 읊었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멀리 중원(中原) 땅까지 넘보는 그 웅장(雄壯)한 기상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이성계(李成桂)는 큰 뜻을 이루어 냈고, 무학대사(舞鶴大師)가 ‘王’자 꿈 풀이를 해 주었던 그 토굴 자리에 절을 지어 석왕사(釋王寺)라 이름 했다고 한다.


38.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不知汝姓不知名)


석왕사(釋王寺)에서 아직도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반월행자(半月行者)와 작별한 김삿갓은 자세히 보니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어도 썩어가는 시체에는 파리 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시체(屍體) 옆에는 쌀이 조금 들어 있는 뒤웅박과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시체의 주인공(主人公)은 거지임에 틀림없었다. 


김삿갓은 눈앞의 시체(屍體)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세상인심이 야박(野薄)도 하지, 시체가 썩어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는 않았을 터인데 흙 한줌 끼얹어 줄 인심(人心)도 없었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두루마기를 벗어부치고 시체(屍體)를 오목한 곳으로 끌어다 놓고 연장도 없이 손으로 흙을 모아 조그만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제사(祭祀)를 지내 주어야 하겠는데 젯메를 마련할 수가 없으니 시 한 수로 대신(代身)할 밖에 없었다. 


김삿갓은 무덤 앞에 머리 숙여 다음과 같은 시를 소리 내어 읊었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어느 곳 청산이 그대 고향이던고.

     아침나절엔 썩은 몸에 파리가 들끓더니

     헤질 녘에는 까마귀가 고혼을 불러 울어 주네.


     不知汝姓不知名

     何處靑山子故鄕

     蠅侵腐肉喧朝日

     烏喚孤魂弔夕陽


     한 자 막대기 그대의 유물이요

     몇 되 남은 쌀은 구걸한 양식인가

     앞마을 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보소.

     흙 한 줌 날라다가 풍상이나 가려 주게.


     一尺短笻身後物

     數升殘米乞時糧 

     寄語前村諸子輩

     携來一簀掩風霜


제사(祭祀)를 지내 주고 나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날은 자꾸만 저물어 오는데 아무리가도 인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밤도 토굴신세를 져야 한단 말인가. 비록, 토굴 속에 자는 한이 있더라도 거지의 시체를 매장(埋葬)해 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인정이라도 없다면 인생(人生)을 무슨 보람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39. 잔치를 벌이고서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니니(設宴逐客非人事)


오늘도 토굴신세를 면 치 못할 것으로 알았던 김삿갓은 고개 너머 김참봉(金參奉)댁의 회갑잔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거지행색의 그를 그 집 청지기는 문간에서 내쫓으려 했다. 할 수 없이 김삿갓은 시를 한 수 휘갈겨서 주인에게 전하라 하고 뒤 돌아 나오고 있었다.

 

       잔치를 벌이고서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니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 못하구나.


       設宴逐客非人事

       主人人事難爲人


글줄이나 읽은 김참봉(金參奉)은 청지기로부터 시를 받아 보고 항간(巷間)에 온갖 소문이 떠도는 김삿갓이 자기 집에 온 것임을 직감으로 느꼈다. 그래서 황급히 내려가 결례(缺禮)를 사과하고 노인들이 모인 자리로 안내하여 주효(酒肴)를 대접한 후에 시 한 수를 청했다.


이윽고, 김삿갓은 붓을 들어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데 필적은 장강유수와 같이 활달했으나 그 내용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어서 좌중은 물론, 김창봉(金參奉)과 그의 아들 칠형제가 경악(驚愕)하다 못해 분노의 빛을 노골적(露骨的)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저기 앉아 있는 저 노인은 사람 같지가 않네


       彼坐老人不似人


그러나 김삿갓은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자약(泰然自若)한 태도로 다음구절을 써 내려 간다.


      혹여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선이 아니신지?


      疑是天上降神仙


두 번째 구절을 보고 난 노인들은 모두 제 각기 감탄(感歎)을 마지않는다. 기구(起句)를 보고서 지극히 모욕감(侮辱感)을 느꼈던 김참봉(金參奉)도 승구(承句)를 보고서는 일약 신선으로 둔갑한 바람에 입이 찢어지도록 기뻐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주변의 일희일비(一喜一悲)를 아는 체 아니 하고 전구(轉句)를 다음과 같이 써 갈긴다.

 

     슬하의 일곱 아들은 모두가 도둑놈


     膝下七子皆爲盜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모조리 도둑놈으로 몰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모처럼 환희(歡喜)에 넘쳤던 분위기가 또다시 송두리째 뒤집히고 말았다. 모두가 불안스런 눈초리로 다음 결구(結句)를 어떻게 맺는가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봉숭아를 훔쳐다가 수연을 올리는구나.


     偸得天桃獻壽宴

 

      *하늘에만 있는 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2천년을 산다는 전설이 있음.


김삿갓이 마지막 구절을 휘갈기고 붓을 던지자 좌중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사람 같지 않다던 노인은 신선이 되고, 도둑놈이라던 아들들은 모두 효자가 되었으니 김삿갓의 글재주야 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하는 신기(神技)라 아니할 수 없었다.


40. 이(虱)


김삿갓이 산하를 주유(周遊)하면서 때로는 시와 풍류를 아는 선비를 만나거나 후덕(厚德)한 주인을 만나 융숭(隆崇)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대개는 초막(草幕)이나 토굴(土窟)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이, 벼룩, 빈대 등의 기생충(寄生蟲)에게 항상 시달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허리춤을 더듬어 이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읊었다.


         배고프면 피를 빨고 배부르면 물러가는

         삼백 곤충 중에서도 가장 못난 네놈아

         나그네의 품속에서 낮잠이나 방해하고

         새벽이면 주린 배의 쪼르륵 소리를 듣는구나.


         飢而吮血飽而撸   

         三百昆蟲最下才

         遠客懷中愁午日

         窮人腹上聽晨雷


         꼴은 보리알 같아도 누룩은 될 수 없고

         바람풍자 되다 말아 매화도 못 떨군다. 

         묻노니 너는 신선도 괴롭힐 수 있느냐

         천태산 마고할미 머리 긁는 것도 네 탓이니라.


         形雖以麥難爲麯 

         字不成風未落梅

         問爾能侵仙骨否

         麻姑搔首坐天台 악암(岳岩)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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