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岳岩漢字屋

甲辰年 새해 하시는 일들이 日就月將하시고 乘勝長驅.하시고 萬事亨通 하세요!!!

반응형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오매에도 그리던 그녀를 만났다. 운명의 작난인지는 몰라도 40년 만에 보는 그녀가 서먹하면서도 무척 반가웠다. 달려가 꼭 안아주고 싶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결에 손을 잡아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서로 마주보며 침묵을 흘렸다.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뭐라고 말할까? 뭐라고 말해야 그녀가 알가? 지금의 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그녀가 이해를 할까? 그렇게 시간이 자꾸 흘렀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가 영 조마조마했다.

10대 후반에 부푼 꿈과 미래에 대한 “웅대한 포부”를 품고 그녀를 떠났는데 다 잃고 다 던지고 찬바람이 휭휭 부는 가슴을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만날 줄이야.

귀가 있고 입이 있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가보다. 이미 많은걸 포기하고 체념한 뒤라 맘대로 생각하고 맘대로 되라는 배짱이었다. 이제 나는 남들의 말 같은 것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말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내가 왜 고향을 떠났는지, 왜 다시 돌아왔는지, 그동안 어디서 뭘 하다가 왔는지 다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아직 40년의 내 인생행로를 차근차근 설명할 수도 또 요약해 설명할 용기도 없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내 고민은 순간에 깊어갔고 아무리 고민을 해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오늘 그녀와 정면으로 딱 부딪쳤다. 그녀는 버스터미널로 들어오고 나는 나가려는 찰나였다. 어디로 숨어버릴 수도 없는 찰나였다.

그런데 그녀가 사십여 년이나 못 본 나를 마치 어제 본 듯이, 아니 매일 본 듯이 단번에 알아보는 것이었다. 나도 얼결에 그녀를 알아봤다.

수 천 수 만 마디의 말보다 미세한 하나하나의 행동이 나를 목이 메게 하고 가슴 따뜻하게 할 줄 몰랐다. 내가 속으로 끙끙 앓던 일이 이렇게 한방에 쉽게 해결될 줄 몰랐다.

그녀가 뭐라 말을 한다. 너무 큰 긴장감에 그녀의 말뜻을 잘 몰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아 참, 이래서 눈을 마음의 창문이라고 하는구나. 그녀의 눈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오래만이다, 반갑다, 어디 갔다 인제 왔니…

이 큰 버스터미널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한테 확실하게 환영의 표시를 한건 그 녀뿐이다. 비록 간단히 인사를 했지만 나는 그녀의 눈에서 따뜻한 정을 충분히 읽었다. 그래, 정을 읽는다는 것이 이렇게 간단하구나. 그런데 난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했을까? 나는 구경 그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겉으로는 말 많은 세상에서 말하지 않는 즐거움을 즐긴다고 했지만 사실 난 아직도 말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있다. 아직도 그녀가 내 마음을 몰라줄 가봐 오해할 가봐 전전긍긍하면서 급급히 해석하려 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지껄이고 표현하는데 길들여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답답한 것이다. 하긴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도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도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도 한다. 마음에 없는 말은 그렇다 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일지라도 상대에게 진실 되게 전달되는 말들이 얼마나 될까? 많은 말들이 얼마 후면 불필요한 말, 부질없는 말, 금방 후회할 말이 된다.

사람들은 진심을 터놓으면 이해하고, 마음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사람을 믿었고 진실하면 벽을 허물 수 있다고 천진하게 생각했던 나는 바닥까지 다 보여주고 모든 진실을 아낌없이 다 털어놓았다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팠고 그로 인해 많은 아픔과 후회를 남겼다.

진심으로 터놓고 한 말이 자기 좋게 해석이 되고 별별 거짓말이 다 보태져 순간에 사람이 우스워지고 그것이 독살이 되여 나한테 날아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말을 해도 상처가 되고 말을 들어도 상처가 됐기에 아예 입을 다물었고 아예 귀를 막아버렸다. 이 세상엔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지만 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얼마나 많은가를 그때 알았다. 뭐라고 설명하고 대꾸를 하기보단 시간이 흘러가고 말들이 묻히고 사람들이 나를 잊어주기를 바랐다.

오늘 그녀와 인사를 하고나서 나는 새삼 말의 무게를 절실하게 느꼈고 소리 내여 말을 안 하는 그녀한테 더더욱 믿음이 갔다.

나는 나름대로 그녀의 뜻을 짐작하고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을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녀의 진심을 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읽는다. 그녀의 진심은 말을 통하지 않고도 나한테 전해져 감동으로 내 마음을 적신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데 새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서 배웠다. 뜻이 통했는데, 그녀의 생각, 그녀의 마음을 아는데 새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악암(岳岩)

반응형

'일상기록 --- 自作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 오늘, 내일  (0) 2018.09.17
‘주변의 고통에 침묵 말아야’  (0) 2018.09.17
많은 생각을 남기는 말  (0) 2018.09.17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