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강성(天罡星)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 노준의(盧俊義)는 소설 수호전(水滸傳)에서 양산박의 총병도두령 역할을 하던 인물로 천강성(天罡星)36인 중 천강성(天罡星)이다. 외모와 성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여 옥기린(玉麒麟)이라 불렸다.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는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인물로써 양산박(梁山泊)의 부두령(副頭領)이다. 봉술(棒術), 창술(槍術), 박도술(朴刀術)의 달인이며 임충(林冲), 관승(關勝), 노지심(魯智深), 호연작(呼延灼), 무송(武松) 등 쟁쟁한 유명인사(有名人士)들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상 수호전 등장인물 중에서도 최강자(最强者) 중 한 명이다. 부두령의 위치상 다른 장수(將帥)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싸우는 경우가 많지는 않..
수호지 양박산 두령 천괴성(天魁星) 호보의(呼保義) 송강(宋江) 송강(宋江)은 북송 사람으로 1121년에 현재의 산동성(山東省)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주인공이다. 산동 운성현 송가촌 출신이며 양산박(梁山泊)에 들어오기 전에는 운성현의 압사(押司)였었다. 모티브는 송강 항목의 도적 송강과 장군 송강이나 도적(義賊) 송강의 면모가 더 강하다. 둘이 동일인물 인지는 사실 미지수(未知數)이다. 주인공답게 36천강 72지살 중 상응하는 전기는 천괴성(天魁星)이다. 동생으로 송청(宋淸)이 있다. 주로 불리는 별호는 '급시우(及時雨; 가뭄에 때맞추어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송강(宋江)의 어진 성품을 보여주는 별칭으로 다른 별호인 호보의(呼保義..
제갈량이 유비에게 추천한 군사후계자에 대한 엉터리계책 서서(徐庶)는 언제 제갈량(諸葛亮)을 유비(劉備)에게 추천하였는가? 제갈량(諸葛亮)이 출도하기 전에 유비에 관한 멋진 장면은 당연히 서서가 조조군을 격파(擊破)한 것이다. 명사 서서는 선복(單福)이라는 가명으로 스스로 유비(劉備)를 찾아온다. 그리고 유비의 군사참모(軍事參謀)가 되어 조조군에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둔다. 그리하여 조조(曹操)가 그를 주목하게 되고 서서의 진실한 신분을 알아내고 나서 서서의 모친을 인질(人質)로 잡아 서서를 조조군영으로 오도록 만든다. 유비(劉備)는 겨우 쓸 만한 모사(謀士)를 한명 구했는데 부득이 조조군영으로 보내야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안타까운 심경(心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보내는 것을 아쉬워했다. 서서(徐庶)가..
인재 발굴과 등용 면에서의 사마의와 제갈량의 현저한 차이점 1. 들어가는 말 한때 인기리에 방영된 ‘대군사 사마의의 군사연맹’은 다시 한 번 사마의(司馬懿)와 제갈량(諸葛亮) 중 누가 더 대단한지에 관한 논쟁(論爭)에 불을 붙였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는 두 명의 경쟁자(競爭者)가 있다. 한 명은 제갈량이고, 다른 한 명은 사마의이다. 두 경쟁대상(競爭對象)이 맞장 뜨면 도대체 누가 더 대단할까?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에 관해서 줄줄이 말을 늘어놓으면서 얼굴을 붉히고 목에 힘을 주기까지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제갈량(諸葛亮)은 "다지이근신(多智而近神)" 즉 지혜(知慧)가 많고 거의 신격인 존재인 비범(非凡)한 인물이다. 민간에서는 그를 "지성(智聖)"이라고 부른다. 그..
방통과 제갈량은 똑같은 명성을 가졌지만 삼국지는 왜 방통을 저평가했는가? 형주(荊州)의 상황에 대한 판단은 제갈량과 방통 중 누가 정확했을까? 제갈량(諸葛亮)의 융중대(隆中對)에서는 형주(荊州)에 대하여 "북거한면(北據漢沔), 이진남해(利盡南海)"라고 하면서 그 땅의 주인인 유표(劉表)는 지킬 능력이 없어 하늘이 유비(劉備)에게 준 자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방통(龐統)은 이렇게 말한다. "형주황잔(荊州荒殘)" 이미 이곳을 차지한다고 하여 정족지세(鼎足之勢)를 만들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누군가 이를 근거로 방통(龐統)이 형주를 더욱 정확하게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형주는 도대체 부유(富裕)한 땅인가 아니면 황량한 땅인가? 혹은 방통과 제갈량 중 누구의 말이 더 맞았을까? 한 사람이 한 말이 정확한지..
삼국시대 제갈량의 무덤과 가족들 그리고 4명의 자녀에 대한 내력 제갈량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제갈량(諸葛亮)의 북벌은 삼국시기 촉한승상(蜀漢丞相)으로 광부한실(匡扶漢室)로 천하통일을 위하여 228년 봄부터 234년 겨울까지 전후로 한중(漢中)을 출발하여 조위(曹魏)에 일으킨 5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제갈량의 북벌(北伐)에 대하여 결국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마침내 피로가 누적(累積)되어 병이 되었고 촉 건흥12년(234년) 오장원(五丈原; 지금의 섬서성 보계 기산경내)에서 병사한다. 향년 54세이다. ‘삼국지(三國志)’ 등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제갈량은 유언(遺言)으로 부하에게 자신을 한중의 정군산(定軍山)에 묻으라고 했다고 한다. 거기에 산사에 의존하여 분묘(墳墓)를 만들고 묘혈(墓穴)은 단..
궁경농무 출신인 제갈량이 관직에 오른 후 황제 꿈을 가진 적 있었는가? 제갈량은 관직에 나가기 전에 농사를 지었을까? 제갈량을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중국에서는 ‘三顧茅廬’라 한다)로 관직에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초려(草廬, 중국에서는 ‘茅廬’)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印象)은 바로 농촌의 초가집이다. 그렇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당연히 농민이다. 사서(史書)에서도 제갈량은 남양(南陽)에서 "궁경농무(躬耕隴畝)"했다고 하고 제갈량도 스스로 자기는 원래 "포의(布衣)"라고 말해서 더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제갈량(諸葛亮)은 관직에 나오기 전에 농사를 지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러했을까? 제갈량은 낭야 양도(琅邪陽都) 사람이다. 조상은..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인 고전소설 '삼국지연의' 역사배경 분석 (4) 또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따르면 대략 임진왜란(壬辰倭亂) 7년 전쟁 막바지였던 무술년(戊戌年)에 명나라 수군도독(水軍都督)인 진린(陳璘)이 조선수군 수영에 온 뒤 이순신(李舜臣)의 인품에 감화된 일화(逸話) 중 하나가 전해진다. 어느 날 진린이 천문(天文)을 봐서 장군성이 흔들리니 이를 이순신 장군의 별이 흔들리는 봐 다가올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이 크게 다치거나 전사할 위험에 대한 조짐이니 이순신에게 제갈무후(諸葛武侯)의 고사를 들며 이순신에게도 기도(祈禱)를 할 것을 건의했으나 이순신 장군은 본인의 능력과 업적(業績)은 무후만도 못할진대 어찌 감히 무후처럼 기도를 올리겠냐며 정중히 사양(辭讓)하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일화를 ..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인 고전소설 '삼국지연의' 역사배경 분석 (3) 조조(曹操)가 백사 일가(伯奢一家) 사람들을 죽인 것은 실수였으므로 양해해줄 수 도 있다. 그러나 백사까지 죽이는 데 이르러서는 그 악독(惡毒)함은 극에 달했다. 그래놓고서는 다시 "차라리 내가 남을 배반(背反)할지언정 남이 나를 배반하지는 못하도록 하겠다"고까지 말하는데 독자들은 이에 이르러서는 그를 나무라고 욕하면서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조조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라는 사실(事實)은 알지 못한다. 시험 삼아 천하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감히 입을 열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도덕(道德)과 학문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일단 ..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인 고전소설 '삼국지연의' 역사배경 분석 (2) 일단 실제 역사서(歷史書)와 비교해 봤을 때 촉한(蜀漢)의 인물들에게 많은 비중을 할애(割愛)하고 있으며 이들의 행동을 미화(美化)하거나 업적을 날조(捏造) 부풀리는 대목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교의 기준을 정사에 맞춘다면 연의는 다분히 촉빠적인 성향(性向)을 띠고 있으며 이 사실은 반박(反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교의 대상을 원대 이전 시대의 삼국지 관련 창작물(創作物), 단적으로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와 비교한다면 연의는 상당히 발전한 점이 많은 작품으로서 상대적으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세 세력을 균형(均衡)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국지연의는 단순히 유, 관, 장(劉關張) 중심의 통속적인 영웅인물이던 삼국지..
중국 사대기서 중 하나인 고전소설 '삼국지연의' 역사배경 분석 (1) 14세기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이 저술한 역사 소설이다. 중국의 서적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적 중 하나이며 이른바 중국사대기서(中國四大奇書)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동아시아권(東亞細亞圈)에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고전소설(古典小說)이다. 황건적의 난, 도원결의(1회~2회) 후한 말 십상시(十常侍)의 부정부패(不正腐敗)가 극에 달하며 기강이 문란해지자 백성들은 점점 불만을 품기 시작하며 전국은 극도로 혼란(混亂)해졌다. 이런 가운데 태평도의 교주 장각(張角)이 이끄는 황건적(黃巾賊)의 난이라는 대규모 농민 반란(農民反亂)이 발생한다. 황실의 먼 후손인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형제..
조선왕실 연례의 꽃인 궁중 여악의 존폐와 명분 그리고 해악 조선왕실의 여악(女樂)은 성군(星君) 세종도, 개혁가 조광조(趙光祖)도 풀지 못했던 500년의 숙제이다. “선정적(煽情的)이며 퇴폐적이고 천박(淺薄)한 망국적인 음란물(淫亂物)”을 조선시대 내내 유지(維持)해야 했던 ‘불편한 진실’의 실체(實體)를 파헤쳐본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대중음악계(大衆音樂系)는 걸그룹의 열기로 자못 뜨겁다. 고난도의 현란한 그룹 댄스와 안정된 가창력(歌唱力을) 지닌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애프터스쿨’ 같은 걸그룹의 매력(魅力)은 청순함, 발랄함, 상큼함, 귀여움, 섹시함 등으로 빛을 발한다. 그들의 주요 고객(主要顧客)은 단순히 10~20대에 그치지 않고 거의 모든 연령층(年齡層)을 아우른다. 특히 40대 삼촌팬들..
강정한 성격, 목적달성 위해 포기를 모르는 사마광의 완벽한 일생 사마광(司馬光, 1019년 ~ 1086년)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역사가, 정치가이다. 자는 군실(君實)이고 섬주 하현(陝州 夏縣, 지금의 산시 성) 출신이다. 호는 우수(迂叟)이며 또는 속수선생(涑水先生)이라고 불렸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온국공(溫國公)의 작위를 하사받아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선조는 사마의(司馬懿)의 동생 사마부라고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로서 유명하다. 신법(新法)과 구법(舊法)의 다툼에서 구법파의 영수로서 왕안석(王安石)과 논쟁을 벌였다. 1038년에 진사(進士)가 된다. 부친도, 조부도 진사였다. 1067년에 신종이 즉위하고 왕안석을 기용(起用)하여 신법을 단행했다. 당시 한림학사(翰林学士..
세계 4대성인이자 안회의 스승인 공자의 지혜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史書)의 하나이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編纂)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일관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서술(敍述)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언행(言行)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타의 경전(經典)들과는 달리 격언이나 금언을 모아 놓은 성격을 띤다. 공자가 제자 및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 '논(論)'이고 제자들에게 전해준 가르침을 '어(語)'라고 부른다. 공자의 삶과 행동과 사상을 이해(理解)하기 위해 가장 널리 읽어온 책이 “논어”다. 정확히 누가 언제 이 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
황진이, 서경덕을 배출한 개성에 살았던 기인 도술가 전우치 환술과 도술에 능했던 실존 인물 전우치(田禹治) 전우치(田禹治)는 16세기 명종 연간에 황진이(黃眞伊)와 서경덕(徐敬德)을 배출한 도시 송도, 즉 개성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던 기인이자 도술가(道術家)였다. “지봉유설(芝峰類說)”이나 “대동기문(大東奇聞)” 같은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에는 전우치가 "환술(幻術, 변신술, 둔갑술)과 기예(技藝)에 능하고 귀신을 잘 부렸다"거나 "밥을 내뿜어 흰나비를 만들고 하늘에서 천도(天桃)를 따 왔다", "옥에 갇혀 죽은 후 친척들이 이장(移葬)하려고 무덤을 파니 시체는 없고 빈 관만 남아 있었다"는 등 그에 관한 신비한 행적(行蹟)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다. “어우야담(於于野談)”의 다음 기록은 전우치의 행적을 ..
중국 법가의 대표자이자 선진 시기 최후의 대사상가인 한비자 (2)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기 위하여 의존할 것은 두 개의 권병(權柄)뿐이다. 두 개의 권병이란 형(刑)과 덕(德)이다. 무엇을 일컬어 형과 덕이라 하는가? 처벌하여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칭찬(稱讚)하여 상 주는 일을 ‘덕’이라 한다. 신하 된 자는 처벌을 두려워하고 상 받는 것을 이득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군주(君主)가 직접 형을 집행하고 덕을 베푼다면 신하들은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이득을 얻는 쪽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권병(權柄)이란 ‘권력의 수단’을 의미한다. 한비자(韓非子)가 ‘덕’의 의미를 “칭찬하여 상 주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데서 우리는 그의 ‘덕’ 개념이 이미 유가적인 ‘내면으로부터 발현되는 도덕 의지’의 범..
중국 법가의 대표자이자 선진 시기 최후의 대사상가인 한비자 (1) 1. 해제: 한비자와 “한비자” 한비자(韓非子)는 법가의 대표자이자 선진(先秦) 시기 최후의 대 사상가이다. 한(韓)은 그의 성, 비(非)는 이름, 그리고 자(子)는 위대한 스승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한비자는 B.C. 280년경에 한(韓)나라의 공자로 태어나, 이사(李斯)와 더불어 순자(荀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한나라는 본래 주(周) 왕실과 동성(姬氏)으로 한원(韓原) 지역에 제후로 봉해졌기에 후손들은 한 씨로 성을 삼았다. 한은 원래는 진(晉)에 속했으나, 훗날 진이 한(韓), 위(魏), 조(趙)로 분할됨에 따라 독립 국가로 성립하게 되었다. 전국 시대 말기에 들어 한은 비록 7웅(齊, 楚, 燕, 趙, 韓, 魏, 秦)에 들기는 하였지..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오제와 십팔사략에 나오는 농업의 신 염제신농씨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들로 세 명의 황(皇)과 다섯 명의 제(帝)를 말한다. 이들 여덟 명의 제왕은 중국 문명의 시조로 추앙(推仰)되며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 추앙되었다. 현대의 역사학계에서는 삼황오제 신화(神話)가 후대에 창조되고 부풀려진 신화이며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판단(判斷)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중국은 중화민족주의에 입각(立脚)하여 국가 차원의 개입을 통해 삼황오제를 실존 인물로 격상(格上)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학계의 우려(憂慮)를 낳고 있다. 삼황오제 신화의 기본 틀이 되는 상고대(上古代) 시조 설화(說話)의 원형은 상나라 무렵부터 이어져..
중국 4대 명작 신화소설 서유기의 원형인 당나라 저명한 불교승려 현장 중국의 4대명작중의 하나인 신화소설 “서유기(西遊記)”는 불가제자 넷이서 천신만고(千辛萬苦)를 겪으면서 무수한 요귀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서천에 가서 불경(佛經)을 가져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중의 한사람인 당승(唐僧)의 원형이 바로 중국 당나라의 저명한 불교승려인 현장(玄奘)이다. 현장은 당나라의 승려로서 기원 600년에 하남성(河南省)에서 출생하였다. 현장은 어릴 때부터 아주 총명하였고 당시 풍미(風味)하였던 불교학설에 대해 특별한 흥취를 가졌다. 11살이 나던 해에 현장은 벌써 불경을 읽을 수 있었고 13살에 출가하여 중국의 문화중심지인 낙양의 정토사(淨土寺)에서 경론을 공부하였다. 그 후로는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면서 ..
중국 삼국시대 유명한 참모 제갈량과 의기투합 다재다능한 아내 황월영 중국 삼국 시대의 유명한 참모 제갈량(諸葛亮)은 풍채도 당당하고 씩씩한 남자였다. 하지만 아내의 추함은 역사서에 기록(記錄)될 정도였다. 제갈량 아내 황씨는 제갈량의 은사 황승언(黃承彦)의 딸로서 이 둘의 결혼은 당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심지어 제갈량의 고향(故鄕)에서는 “제갈량처럼 신부(新婦)를 고르지 마라, 아승(阿承-황승언)의 못난 딸을 얻을 것이니”라는 속담(俗談)이 유행했다. 황씨는 피부가 검고 머리칼은 붉은 보기 드문 흉한 여자였지만 기인 제갈량과는 궁합(宮合)은 좋았다. 제갈량(諸葛亮)이 처음 황씨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천재성(天才性)이 드러났다. 어느 날 제갈량은 인사차 황승언(黃承彦)의 집을 방문했다. 문을 연 ..
천년의 논쟁을 불러온 만고의 걸작인 유종원(柳宗元)의 명시 ‘어옹(漁翁)’ 어옹(漁翁) 어옹야방서암숙(漁翁夜傍西巖宿), 효급청상연초족(曉汲淸湘燃楚竹) 연소일출불견인(煙銷日出不見人), 애내일성산수록(欸乃一聲山水綠) 회간천제하중류(回看天際下中流), 암상무심운상축(巖上無心雲相逐) - 유종원(柳宗元) 직역(直譯) 고기 잡는 늙은이가 밤에 배를 서산의 자락에 정박시키고 유숙한다. 날이 밝은 후에 그는 맑은 상수의 물을 마시고 초죽을 태운다. 해가 떠오르자 안개가 걷히고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애내가’가 청산녹수의 사이에서 흘러나올 뿐이다. 되돌아보니, 고깃배는 이미 하늘 끝에서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있다. 바위 위에는 무심한 구름이 서로 쫓아가고 있다. 논쟁(論爭) 유종원이 영주(永州)로..
찬찬하고 온화하게 달려달라며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네 곳의 길 충주호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옳을까? 최단 거리로 유도해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일 수 있지만,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경로 안내에 몰두하는 동안 운전을 통해 부가되는 우연한 경험과 소소한 기쁨은 조금씩 배재된다. 충주호를 알게 된 계기도 내비게이션의 부재에 따른 공교로운 과정 때문이었다. 내비게이션이 매립되지 않은 차를 타고 스마트폰에 의지한 채 월악산으로 향하던 길이었지만, 충주시로 접어드는 길에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고 말았다. 멀찌감치 보이는 봉우리의 기암을 향해 무작정 차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의 가파른 오르막을 거듭하고, 숲 사이로 소심하게 난 길을 통과하자 예정에 없던 전경이 나타났다. 그릇에 소담히..
황홀한 광경 혹은 파탄의 현장, 지구에 문신처럼 남아 지울 수 없는 흔적 24° 42’ 24.59” N 46° 40’ 16.79” E 리야드, 사우디 아라비아 높이 302.3미터의 킹덤 센터 Kingdom Center는 2002년 건립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다섯 번째로 순위가 밀려났다. 2022년에 완공 예정인 제다 타워 Jeddah Tower에 비하면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킹덤 센터를 세로로 세 번 쌓은 것보다 큰 제다 타워의 높이는 무려 1킬로미터다. 완공이 되면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가 보유 중인 기록을 깨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등재된다. 032° 59’ 57.66” N 118° 30’ 03.00” E 장쑤성 쉬이현, 중국 매년 수..
중국 고전소설 수호전에 나오는 무송과 노지심은 누구의 주량이 더 셀까? 수호전(水滸傳)은 중국의 장편 소설. 작가는 시내암(施耐庵) 또는 나관중이다. 북송(北宋) 선화(宣和) 연간에 송강을 수령으로 한 108명의 호걸이 양산박(梁山泊)에 모여 간악한 무리와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징벌한 후 조정에 귀순하여 요(遼)와 전호(田虎), 왕경(王慶)의 반란군을 정벌하며 큰 공을 세우나 호걸들은 점차 흩어지고 송강도 참언(讒言)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는 내용이다. 중국 사대 기서(四大奇書)의 하나이다. ‘수호전(水滸傳)’은 중국 최초의 백화문(白話文)으로 쓰여진 장회소설이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형성, 발전하였다. 남송 때 양산박(梁山泊)의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널리 유행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모두 즐겨..
황자들이 황위를 쟁탈하기 위해 무술(巫術)로 살인하는 주살법(呪殺法) 무사(巫士)는 도사의 일종으로, 방술 외에 무술(巫術)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이해득실(利害得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나, 의뢰(依賴)를 받아 누군가를 암살(暗殺)하는 술자도 있었던 듯하다. 이런 무사(巫士)는 무고(巫蠱)라는 무서운 술법을 자주 사용했다. 무고(巫蠱)의 고(蠱)는 '피 위에 벌레가 올랐다'는 문자로, 그대로 해석하면 벌레를 부리는 술법이다. 그러나 이 술법(術法)을 이용하면 벌레 외에 뱀, 개구리, 새, 개, 고양이를 조종(操縱)할 수도 있다. 도사(道士)의 소귀법(召鬼法)과 비슷하지만, 귀가 아니라 작은 동물을 사역하는 점이 다르다. 술자는 이들 동물을 사역(使役)해 재산을 얻거나, ..
모파상의 단편소설 “비곗덩어리”에서 고발한 ‘성상납’과 권력자의 위선 “불 드 쉬프는 조심스럽게 그들 쪽으로 걸어왔으나 그들은 일제히 얼굴을 돌렸다. 마치 그녀를 보지 못한 것처럼. 백작은 위엄을 보이며 아내의 팔을 잡고 불결한 것과의 접촉을 피하게 하려했다. 뚱뚱한 창부는 어이가 없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있는 용기를 다해 공장주인의 아내에게 다가서며 얌전하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부인’ 상대방은 머리만을 약간 숙여서 거만한 답례의 표시를 보였을 뿐 상처받은 미덕(美德)에 대해 노여움의 시선을 던졌다. 모두들 바쁜 것처럼 하며 이 창부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마치 이 여자가 스커스 속에 병균이라도 묻혀오기나 한 것처럼.…아무도 못 본 체 했으며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얼굴을 했다...
몽염(蒙恬)이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 충성한 대가는 결국 사약(死藥)인가? 몽염(蒙恬)은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관료이자 장군이다. 몽무(蒙武)의 장남이자 몽의(蒙毅)의 형으로, 전국통일 이후에 오르도스 일대의 흉노(匈奴)를 몰아내고 만리장성의 건축 및 북방의 수비를 감독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신임을 얻고 그의 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렸으나, 진시황제(秦始皇帝) 사후에 조고(趙高) 등에게 모함을 당하여 태자 부소(扶蘇)와 함께 자살(自殺)하였다. 몽씨 가문은 본래 제나라(齊)에 거주하였으나, 몽염(蒙恬)의 할아버지인 몽오가 진 소양왕(昭襄王)을 섬겨 장군이 되면서 진나라(秦)에 거주하게 되었다. 몽염(蒙恬)의 아버지인 몽무 또한 각기 진시황제시기(秦始皇帝時期)에 장군이 되어 왕전과 ..
주역(周易)에서 자연 진리(眞理)와 인간의 도리(道理)를 탐구 주역(周易)은 오경(五經)의 하나이다. 만상(萬象)을 음양 이원으로써 설명하여 그 으뜸을 태극(太極)이라 하였고 거기서 64괘를 만들었는데, 이에 맞추어 철학(哲學)ㆍ윤리(倫理)ㆍ정치상(政治上)의 해석(解釋)을 덧붙였다. 두루 주(周)자는 형부인 입(口)과 보조형부인 ‘멀 경(冂)’ 및 ‘흙 토(土)’라는 의미들이 모여 ‘두루(周)’라는 뜻이 된 회의자(會意字)이다. 그러니 주(周)자는 멀리(冂) 있는 흙(土)밭에 씨앗을 뿌릴 수 있게 입구(口)가 열리면 나가서 ‘두루(周)’ 미치는 ‘주위, 둘레(周)’라는 뜻이다. 주(周)자는 본디 ‘田’ 꼴 안의 네 공간에 각각 하나씩 점(丶)을 찍었다. 그 후 밑에 빗장을 건 대문(大門)의 꼴인 ‘멀 경..
단편소설 “할머니와 황금다리” 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전쟁에 대한 폭로작품 여류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나카라과의 문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位置)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은 다소 충격적(衝擊的)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주 이상한 ’할머니 일화‘를 많이 알고 있는 마누엘의 회상을 통하여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지만 아주 ‘용감한 여인‘인 할머니의 삶의 단면을 줄거리로 다양한 면모를 거친 전쟁연대(戰爭年代)를 살아내는 여성의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아래에 그녀의 단편소설 “할머니와 황금다리”의 줄거리와 그 내용에 대해 알아본다. 마누엘은 아주 이상했던 자기 할머니의 많은 일화(逸話)를 알고 있다. 그의 할머니는 황금다리에서 500미터 떨어진 오막살이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곳에 ..
모사 제갈량,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 제가 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한 책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고 또 제일 많이 읽은 책이 “삼국지연의”입니다. 아마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거의 오백 번 이상은 읽은 것 같습니다. 너무 뒤지고 만지다 보니 책은 그만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래서 찢어진 부분을 밥풀로 붙였는데 참 가관(可觀)이었습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는 저의 인생행로(人生行路)에 도움이 되는 양서(良書)라 생각되어 여기서 모사 제갈량과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特殊關係)에 대해 알아봅니다. 제갈 근(諸葛瑾, 174년 ~ 241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三國時代) 오(吳)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자유(子瑜)이며 서주 낭야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