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00여 년 전 세계로 진출할 것 상해세계박람회 백 년 전 예견한 사람들 중국 국내에서 ‘홍루몽(紅樓夢)’ 최초의 운명은 매우 굴곡적(屈曲的)이었는바 일부 사람들은 "유행 바이러스"라고도 여겼다. 1793년 11월 23일, "인이호"로 불리는 화물선(貨物船)이 절강의 한 항만에서 출발해 20여 일간의 항해를 거쳐 12월9일 일본 나가사끼항에 도착했다. 당일 화물을 검사할 때 67종의 중국도서(中國圖書)를 발견했는데 그중 이름이 ‘신수전부수상 홍루몽’이고 총 9부 18조로 되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향후 전 세계를 풍미(風味)한 오늘날의 ‘홍루몽(紅樓夢)’이였으며 그때의 항로가 ‘홍루몽(紅樓夢)’이 해외로 진출한 최초 기록으로 남게 되였다. 19세기 일본, 조선을 풍미 : 문화적 연원(淵源)으로 말..
중국고전소설의 백미로 손꼽히는 홍루몽연구와 연구자들의 치열한 거촉(擧燭) 중국고전소설의 백미(白眉)로 손꼽히는 ‘홍루몽(紅樓夢)’은 창작 당시부터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구홍학에서 신홍학, 당대 홍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내놓은 서로 다른 목소리와 주장들은 ‘홍루몽(紅樓夢)’연구가 그 동안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되어 왔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홍루몽(紅樓夢)’은 치밀한 구성과 범상치 않은 스토리로 청춘남녀의 비극적인 사랑과 당시 사회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보여주며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으나 이와 함께 작품의 독특한 부호체계와 상징성 및 작품 외연의 문제 즉 작가의 생평과 판본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중국고전소설작품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해독하기 어려운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홍학(紅學)"은 본질상 정도(正道)에 어그러진 학문(學問)인 "위학(僞學)"인가 청나라 강희-옹정-건륭 삼대에 걸쳐 한 귀족 가문의 성쇠를 다룬 ‘홍루몽(紅樓夢)’은 전 세계에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소설이다. ‘홍학(紅學)’이라는 별도의 학문 분야가 형성될 정도다. 마오쩌둥(毛泽东)은 이 작품은 최소한 다섯 번은 읽어야 하며 ‘홍루몽(紅樓夢)’을 읽지 않으면 중국 봉건문화(封建文化)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했고 중국인들은 ‘홍루몽’을 만리장성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작품성이나 보편성의 잣대로 보자면 ‘서유기(西遊記)’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금병매(金甁梅)’ 등 중국 사대기서보다 훨씬 윗길에 오른 작품이 바로 ‘홍루몽(紅樓夢)’이다. 최근 홍학에 ..
홍학가들 홍루몽 후40회는 고리타분하고 재미가 없고 졸렬한 작품이라고 비판 이 글은 중국 청대의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이 쓴) 홍루몽에 대한 작품론을 전개(展開)하는 것을 기초로 하여 첫째, 작품배경(作品背景)이 된 청대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반봉건(反封建)’을 핵심으로 파악(把握)하는 견해와 둘째, 홍루몽을 연구하는 당대의 현실과의 관련선상에서 홍루몽(紅樓夢)의 현실관을 살피는 논의가 그것이다. 이 경향성(傾向性)은 대체로 역사성에 기초한 연구사들 내에서 착종(錯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가부(賈附)의 몰락과정을 서사의 중심선(中心線)으로 간주한 가운데 세부적으로 공명과 경제, 도덕, 그리고 혈연(血緣)의 연속성이라는 문제들을 주 쟁점으로 하여 홍루몽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
청나라 문학가 조설근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안았던 4대기서 ‘홍루몽’ 중국의 4대 기서(四大奇書)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수호전(水滸傳)''서유기(西遊記)''금병매(金甁梅)'를 꼽지만 '홍루몽(紅樓夢)'의 문학성을 이들보다 훨씬 높게 치는 게 일반적이다. 청 건륭제(乾隆帝)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장편소설 '홍루몽'은 원제가 '석두기(石頭記)'이며 '금옥연(金玉緣)''풍월보감(風月寶鑑)''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등의 별칭이 있다. 80회본의 판본(板本)은 조설근(曹雪芹)의 원작으로 필사본(筆寫本)이며 고악(高鶚)이 40회를 덧붙여 1791년 120회본을 내놓은 판본을 정갑본(程甲本)이라 한다. 금릉(남경)에 있는 가(賈)씨 집안을 무대로 500여 명의 등장인물(登場人物)이 등장하는 이 ..
100여 년간 지속된 홍학계 논쟁이 거센 홍루몽 최초 작자는 조설근이라는 견해 홍루몽(紅樓夢)의 최초작가에 대하여 홍학계(紅學界)에서는 논쟁이 매우 거세다. 청나라말기부터 논쟁(論爭)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약 100여 년간 계속되는 것이다. 홍루몽의 최초작가가 조설근(曹雪芹)이 아니라는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의 이유(理由)를 들고 있다. 첫째, 제1회에서 공공도인(空空道人)이 돌에서 베끼고 그 후에 석두기(石頭記)를 정승록(情僧錄)으로 바꾸었으며 나중에 동로(東魯)의 공매계(孔梅溪)가 풍월보감(風月寶鑑)으로 개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조설근(曹雪芹)이 10년 동안 피열(披閱)을 거쳐 5번에 걸쳐 증보 삭제(增补削除)하고 목록을 작성하며 장회를 나누고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로 ..
가정생활 애정 혼인문제 제재로 한 금병매 홍루몽은 현실사회 반영한 인정소설 홍루몽(紅樓夢)이 천고의 명저(名著)라고 얘기하면 거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서'로 악명 높은 금병매(金甁梅)를 명저라고 하거나 심지어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면 동의(同意)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금병매(金甁梅)에 대하여 강연하는 학자들 중에서 유세덕(劉世德) 선생이 금병매(金甁梅)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을 빼고 다른 학자들은 대부분 금병매(金甁梅)를 명저라는 정도로 인정(認定)한다. 시간적으로 보면 금병매(金甁梅)는 홍루몽(紅樓夢)보다 반세기 먼저 나타났다. 그리고 홍루몽(紅樓夢)이 세상에 나타나자마자 어떤 사람은 바로 홍루몽(紅樓夢)이 금병매(金甁梅)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금병매..
남녀 간 진정한 사랑 따진다면 홍루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한 쌍 누구일까 홍루몽(紅樓夢)에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다. 만일 남녀 간에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따진다면 사람 수는 더욱 적어진다. 주인공인 가보옥(賈寶玉), 임대옥(林黛玉), 설보채(薛寶釵)도 아니다. 그들 간에는 최소한 삼각관계(三角關係)이고 더구나 가보옥은 일찌기 진가경(秦可卿)과 꿈속에 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화습인(花襲人)과 함께 자기도 한며 금천(金釧), 오아(五兒)를 희롱한 바도 있으며 시녀인 청문(晴雯)에게 애틋한 연민(憐愍)의 정을 느낀 적도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임대옥(林黛玉)과 설보채(薛寶釵)에 대한 사랑이 순수(純粹)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우삼저(尤三姐)의 유상련(柳湘蓮)에 대한 사랑은 ..
임홍옥은 홍루몽에서 심계가 가장 깊은 시녀로 마침내 대관원의 주인이 되다 홍루몽(紅樓夢)에 나오는 시녀(侍女)들은 이치로 따지자면 모두 "착취(搾取)당하는 노비(奴婢)"에 속하는 "피압제자(被壓制者)"들이다. 어떤 여인은 대대로 노비로 지냈고 어떤 여인은 가정이 빈곤(貧困)하여 가씨집안에 팔려온 경우도 있었다. 가씨집안이라는 이 "사람잡아먹는" 감옥(監獄) 안에서 그녀들은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살았고 조금만 잘못되면 목숨이 위험했다. 금천(金釧)은 성희롱을 당하고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으며 청문(晴雯)은 쫓겨나서 목숨을 잃었다. 원앙(鴛鴦)은 핍박받아 목을 매어 자결(自決)했으며 서주는 무고하게 진씨를 위하여 순장(殉葬)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살아남은 시녀(侍女)들에게 있어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
홍루몽의 작가인 조설근이 바로 지연재(脂硯齋)라는 수수께끼의 비밀 홍루몽(紅樓夢)은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曹雪芹)이 쓴 고전소설이다. 등장인물만 700명에 달하며 등장인물(登場人物)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傑作小說)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古典)이 되었다. 많은 중국학자들도 홍루몽(紅樓夢)에 대해 연구해 "홍학(紅學; 홍루몽학)"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홍루몽은 문학적 가치(價値),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국 고전소설(古典小說)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홍루몽(金甁梅)을 제외시킨 '사대명저(四大名著)'의 하나로 친다.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은 '홍루몽(紅樓夢)'의 영문명칭 홍루몽(紅樓夢)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우리의 홍루몽(紅樓夢)에 대한 감정은 민족감정(民族感情)이고 문화에 대한 그리움이다. 홍루몽(紅樓夢)의 번역은 아주 복잡(複雜)하고 문화전파측면의 주제이다. 단순한 기술적인 번역기법(翻譯技法)의 문제는 아니다. '홍루몽(紅樓夢)'은 중국에서 번역(飜譯)하기 가장 어려운 책의 하나이다. 우선 책이름만 하더라도 현재 3가지 영문명칭(英文名稱)이 존재한다. 1. The Story of the Stone 이것은 1973년 David Hawkes가 '홍루몽(紅樓夢)'을 번역할 때의 주명칭(主名稱)이다. 호크스가 번역해서 팽귄출판사가 출판했다. The Story of the Stone은 '석두기(石頭記)'를 정확하게..
조설근은 일개 이야기꾼이지 '홍루몽'의 작자가 아니라는 견해에 대하여 '홍루몽(紅樓夢)'의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가? 이제 고증(考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홍루몽'의 제1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설근(曹雪芹)이 일찌기 도홍헌(悼紅軒)에서 십년동안 피열(披閱)하면서 5번 덧붙이고 빼며(增刪) 목록을 편찬하고 장회(章回)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 '조설근(曹雪芹)'은 그저 '홍루몽'의 제1회에 나오는 허구(虛構)의 인명이다. 즉 소설가(小說家)가 하는 말일 뿐이다. 이 말이 은유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도대체 '홍루몽(紅樓夢)'의 창작에 어떤 공헌(貢獻)을 했는지? 이제는 알아볼 방법이 없다. 정위원(程偉元)이 '홍루몽'을 출판하면서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서문..
젊은이들이 읽으면 쉽게 타락할 수 있다고 보는 ‘홍루몽’은 정말 청춘문학인가 대만작가 장훈(蔣勛)은 '홍루몽'이 청춘문학이라고 했다. 신판 '홍루몽(紅樓夢)' 드라마의 제작자(製作者)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판 '홍루몽(紅樓夢)' 드라마에서 주요연기자는 대부분 미성년자로 청춘우상극(靑春偶像劇)의 노선을 가고 있다. 그들의 부모(父母)는 완전히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다. 아마도 이들 조연(助演)을 통하여 주요배역의 '청춘(靑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親舊)들 중에서도 이러한 견해(見解)를 여러 번 얘기한 사람이 있다. '홍루몽(紅樓夢)'은 청춘문학(靑春文學)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과거의 '홍루몽(紅樓夢)'에 대한 평가와 약간은 다른 것 같다. 과거에는 ..
홍학가들이 연구할 과제인 임대옥이 가부에 들어갈 때 몇 가지 이상한 점들 문예계(文藝界)에는 이런 말이 유행(流行)한다. "멋진 장면은 보통 뒤에 나온다고". 그렇다면 문예작품인 ‘홍루몽(紅樓夢)’의 "멋진 장면"은 가장 뒤에 나오는가? 필자는 하루 종일 생각을 해보았지만 제3회 임대옥(林黛玉)이 가부에 들어갈 때가 "멋진 장면"이라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몇몇 주인공이 멋있게 등장(登場)하며 각각의 성격특징을 잘 드러내주고 그들의 이후 각자운명에 대하여 최종판결(最終判決)을 내려준다. 둘째, 임대옥(林黛玉)의 시각과 마음속 생각을 통하여 곧 몰락(沒落)할 호족의 마지막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연히 이는 홍학가(紅學家)들이 연구할 과제이다. 조설근(曹雪芹)이 그렇게 쓴 것은 역사적 원인이 ..
논쟁이 끊이지 않은 조설근이 홍루몽을 썼다는 것을 의심 받는 6가지 이유 왜 '홍루몽(紅樓夢)'과 같은 위대한 작품의 작가(作家)가 누구인지를 문제(問題)로 삼을까? 첫째, 후세의 독자(讀者)들의 "믿기 어렵다"는 심리이다. 하루살이는 계절을 모른다. 범인은 천재(天才)의 재능과 학식을 이해할 수 없다. 특별히 위대한 작품의 앞에서 후세의 독자들은 쉽게 이런 의문(疑問)을 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말 그(그녀)가 쓴 작품이란 말인가? 그(그녀)가 어찌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써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유(類)의 의문은 중국의 특유한 것이 아니다. 외국에도 있다. 예를 들어 세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수많은 유명한 희극작품(喜劇作品)이 있다. 이것도 의심을 받는다. 그들은 말한다. 강호의 연극단 주인이 어찌 ..
홍루몽 저술한 조설근 마지막 거처는 어디이며 마지막 거주지에 대한 6가지 학설 지금까지 조설근(曹雪芹)의 마지막 거주지(居住地)에 대하여는 최소한 아래의 6가지 학설(學說)이 있다. 1. 육랑장 바깥의 소관제묘; 2. 서교 건예영; 3. 홍산구에서 온천진으로 가는 길의 상황기영 부근; 4. 남신장 행석구, 열무루와 보승사의 사이; 5. 온천진 백가동촌, 소석교 부근; 6. 정백기촌 38호, 북경식물원내, 지금의 "조설근기념관" 소재지 6가지 학설의 근거는 기본적으로 추측에 민간전설(民間傳說)을 더한 것이다. 추측은 각각 일정한 근거가 있다. 다만 이들 근거는 명확하게 구체적(具體的)인 마을이름, 지명 혹은 방위거리를 묘사한 것이 없다. 돈성(敦誠), 돈민(敦敏), 장의천 등 생전의 가까운 친구들은 조설근..
방대한 독자층 형성한 최고성취 대표한 홍루몽 중국 제일명저로 통칭된 계기 "사대명저(四大名著)"는 오늘날 중국인들에게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다.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홍루몽(紅樓夢; 책이 만들어진 순서)’의 이 4권의 거작은 중국백성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소설이며 방대(尨大)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고전소설의 최고성취를 대표한다. 단 이 4부의 위대한 작품은 언제부터 "사대명저"로 통칭(統稱)되었는가? 아마도 이것은 모두 아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근원을 따져보면 명나라 때 소설가 풍몽룡(馮夢龍)이 "사대기서(四大奇書)"라는 말을 한 것이 "사대명저(四大名著)"의 남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에 의하여 명나라 ..
중국 4대 명저 통행본인 홍루몽과 수호전의 첫 부분에 대한 10가지 대조비교 홍루몽(紅樓夢)과 수호전(水滸傳)은 첫 부분이 10가지 점에서 놀랍도록 닮았다. 홍루몽과 수호전은 모두 중국의 4대 명저에 들어가고 세상에 전해지는 판본이 비교적 많다. 연구자는 이번에 이런저런 판본(板本)은 모두 놔두고 그저 통행본(通行本)인 (124회본) 홍루몽과 통행본 (100회본) 수호전의 첫 부분에 대한 대조비교를 해보기로 한다. 정확히 말하면 홍루몽은 임대옥(林黛玉)이 가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두 첫 부분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고 수호전에서는 사진이 노달(나중의 魯智深)을 만나기 전까지를 첫 부분의 범주로 보았다. 연구자가 자세히 읽어본 결과 ‘홍루몽’과 ‘수호전’은 첫 부분에서 10가지나 놀랍게도 닮은 점이 ..
일명 석두기라 불리는 홍루몽 작자는 누구이며 홍루몽은 왜 겨우 80회뿐인가? 홍루몽(紅樓夢)의 작자는 누구인가? 2,3백 년 동안 여러 가지 설이 많이 나와서 하나로 모여지지 못했다. 청나라 때의 유서(裕瑞)는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이렇게 말했다. 듣기로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는 책은 ‘석두기(石頭記)’라고도 하는데 "누가 썼는지 모른다." 조설근이 그것을 삭제하고 고치고 윤색(潤色)했으며 그의 숙부인 지연재(脂硯齋)가 비주(批注)를 달았으며 이름을 ‘홍루몽’으로 고쳤다. 그는 초본(抄本)을 본 바 있다. 정위원(程偉元)은 소주 사람으로 출판상(出版商)이다. 일찌기 세 번 ‘홍루몽’을 인쇄 출판한다. 그가 출판한 ‘홍루몽’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각본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홍루몽 소저들 중 임대옥이 가장 아름답고 아환들 중에서는 청문이 가장 아름답다 홍루몽의 여자들 중에서 누가 가장 예쁠까? 홍루몽에는 많은 여자들이 나오고 재모(才貌)가 출중하다. 다만 작자는 미모를 묘사하면서 공필(工筆)과 사의(寫意)를 서로 결합시켜서 자주 구상을 추상화(抽象化)하고 형체를 영동화(靈動化)히며 환경을 의상화(意象化)하여 독자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충분히 남겨주었다. 임대옥(林黛玉)의 용모는 당연히 아주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책을 다 뒤져보아도 대옥의 용모가 어떤지 구체적(具體的)인 묘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얼굴이 긴 편인지 둥근 편인지 눈이 큰 편인지 작은 편인지 키가 큰 편인지 작은 편인지 피부가 흰 편인지 검은 편인지도 언급(言及)이 없다. 그저 제3회에서 가부(賈府)로 들..
홍루몽에 나오는 EQ가 높은 여인들 모두 말 예쁘게 하는 특징 갖췄다고 평가 홍루몽(紅樓夢)의 EQ가 높은 여인은 모두 이런 특징(特徵)이 있다. 홍루몽에 이런 유명한 대련(對聯)이 있다. "세사동명개학문(世事洞明皆學問), 인정연달즉문장(人情練達卽文章)" 뛰어난 홍루몽의 여자들 중에는 생활의 지혜(智慧)가 뛰어난 여자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설보채(薛寶釵)의 팔면영롱(八面玲瓏)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봉저(鳳姐, 王熙鳳)의 풍풍화화(風風火火)를 좋아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평아(平兒)를 책에서의 "EQ 제일인"으로 꼽는다. 확실히 평아(平兒)에게는 EQ가 높은 여인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있다. 우리가 그 중 한두 개를 배운다면 평생(平生)을 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예쁘게 잘 하..
번역자나 필사 연대 등은 책 속에 밝혀져 있지 않은 홍루몽 고전산문작품 구성 및 형식 : 120권 117책(권24, 54, 71 유실)의 필사본이다. 중국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의 소설 ‘홍루몽(紅樓夢)’ 120회(前 80회는 曹雪芹 작, 後 40회는 高鶚의 續作이라고 전함)를 완역한 것이다. 현재는 그 중 3권이 없어지고 117책이 남아 있다. 책의 크기는 28.3㎝×18.2cm이다. 표지(表紙)에 ‘홍루몽’이란 제목과 회목(回目)을 쓴 별지를 붙이고 본문 상단에 주필(主筆)로 원문을 싣고 옆에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表記)했으며 하단에는 우리말 번역을 수록(蒐錄)했다. 1면은 8행이며 1행은 18자 내외로 가지런하다. 회목과 시사(詩詞)의 경우에는 두 칸을 내려썼다. 원문(原文)도 8행이지만..
치열한 논쟁 속에서 '홍루몽'의 작자가 누구인지를 고증한 중국의 문학자 호적 모든 책에는 작자(作者)가 있다. 그러나 어떤 작자는 실명(實名)을 드러내기 실어서 가명(假名)을 쓴다. 그리하여 어떤 책은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論爭)이 끊이지 않는다. '금병매(金甁梅)'의 작자는 '난릉소소생(蘭陵笑笑生)'이다. 이 이름은 보기에도 가명인 것을 알 수 있다. 작자가 도대체 누구일까에 대하여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홍루몽(紅樓夢)’에서는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사람이 증산자(增刪者)로 되어 있다. 이 '조설근'은 우리가 평상시에 짓는 이름과 방식(方式)이 같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조설근'을 실명이라고 본다. 신홍학(新紅學)의 기초를 닦은 인물인 호적(胡適)은 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조설근은 조인의 손자라는 홍루몽작가에 대한 수수께끼 의문설의 문제점 '홍루몽(紅樓夢)'의 원작자가 누구일까? 현재 갈수록 많은 연구자들은 호적(胡適)이 고증한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曹雪芹)이다"라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호적의 ‘홍루몽고증’에서는 홍루몽의 작자가 조인(曹寅)의 손자인 조설근(曹雪芹)이라고 본다. 현재의 홍학가(紅學家)들은 보편적으로 조설근이 조옹(曹顒)의 유복자로 약 1715년경에 태어났다고 본다. 그런 조씨 족보(族譜)에는 조옹의 아들을 조천우(曹天佑)라고 적었고 조설근이라고 적지 않았다. 그는 관직이 주동(州同)에 이르러 '모연봉유(茅椽蓬牖), 와조승상(瓦竈繩床)", "거가식죽주상사(擧家食粥酒常賒)"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았다. 비록 이 '조설근(曹雪芹)'은 일부 청나라사람들의 ..
매사가 고증하기를 홍루몽 전반은 효렴공 썼고 후반은 조설근 완성했다고 주장 호문빈(胡文彬) 선생의 '부상담홍류유고(扶桑談紅榴遺稿) - 황준헌(黃遵憲)과 일본우인의 홍루몽필담(紅樓夢筆談)'이라는 글에서 청나라 광서4년 무인년(1878년) 중국근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대시인이며 당시 일본대사관 참찬으로 있던 황준헌(黃遵憲)이 대사관직원인 매사(梅史), 칠원(漆園), 추선(樞仙) 등을 데리고 일본우인과 홍루몽(紅樓夢) 및 그 작자에 관하여 필담(筆談)을 나누었다. 일본의 '대하내문서'에 기록(記錄)되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문: '홍루몽(紅樓夢)'이라는 책의 작자(作者)는 누구인가? 그가 쓴 것은 어느 시대(時代)를 가리키는가? 매사(梅史)가 답하다: 전반은 효렴공(孝廉公)이 썼고 후반은 조설근(曹..
중국 고전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홍루몽’의 새로운 비밀이 중국 대륙을 발칵 홍루몽(紅樓夢)고전산문작품 구성 및 형식 : 120권 117책(권24, 54, 71 유실). 필사본(筆寫本). 중국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의 소설 ‘홍루몽(紅樓夢)’ 120회(前 80회는 조설근(曹雪芹) 작, 後 40회는 高鶚의 續作이라고 전함)를 완역(完譯)한 것이다. 현재는 그 중 3권이 없어지고 117책이 남아 있다. 책의 크기는 28.3㎝×18.2cm이다. 표지에 ‘홍루몽(紅樓夢)’이란 제목과 회목(回目)을 쓴 별지를 붙이고 본문 상단(本文上段)에 주필로 원문을 싣고 옆에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表記)했으며 하단에는 우리말 번역을수록(蒐錄)했다. 1면은 8행이며, 1행은 18자 내외로 가지런하다. 회목(回目)과 시..
홍루몽 작가 조설근에 대한 홍학 고증연구와 홍루몽연구의 변천 조설근(曹雪芹)은 중국의 4대 명저 중의 하나로 불리우는 "홍루몽(紅樓夢)"의 위대한 작가이다. 이는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홍학(紅學) 고증파(考證派)의 시조격인 후스(胡適)의 이 결론에 대하여 학술계에는 이견(異見)이 계속하여 존재하여왔다. 고증파인 홍학가(紅學家)들이 계속하여 이러한 전제하에 고증을 계속하는 외에 많은 독자와 학자들은 홍루몽의 작가가 조설근인지에 대하여 회의적(懷疑的)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유평백(兪平伯) 선생은 홍루몽의 작가가 조설근이라는 설의 지지자(支持者)에서 회의자로 변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홍루몽(紅樓夢)"의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와 조설근(曹雪芹)이라는 이름 및 고증파들이 고증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