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북성 무당산 무당파의 시조는 태극권의 창시자 장삼풍(張三豊) '북에는 소림이 숭상(崇尙) 받고 남에는 무당이 존중(尊重)받는다(北崇少林, 南尊武當)'는 말이 전해진다. 소림사(少林寺)는 중국 허난성(河南省)의 정저우(鄭州) 숭산(嵩山)에 있는 사찰이다. “위서(魏書)” 제114 권 ‘석노지(釋老志)’를 보면 태화 20년인 496년에 북위 효문제(孝文帝)가 464년에 중국으로 와서 인도 불교(佛敎)를 전파하기 시작한 인도 승려 발타(跋陀)를 주지로 하여 소실산음에 소림사(少林寺)를 창건하였다. 그리고 북주시대(北周時代)에 파괴되었으나 수 시대(隋時代)에 문제(文帝)에 의해 재건되었다. 태화 20년인 496년에 북위 효문제의 명으로 인도 승려 발타(跋陀)를 주지로 하여 창건되었을 당시 소림사(少林寺)의 구..
살인 방화 및 강도를 서슴지 않는 이규는 어떻게 세 번이나 살아남았는가? 어떤 조직(組織)이든 조직이기만하면 크든 작든 모두 규율(規律), 규정(規定)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모래알이 되고 성장할 수가 없다. 조직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成長)하고 나면 반드시 법률(法律), 법규(法規)가 필요하다. 심지어 조직이 성장하는 특수한 시기에는 규율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조직지도자는 심지어 사건을 만들어 법규를 수립(樹立)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읽어본 사람이면 모두 알 것이다. 조조(曹操)는 군대가 농민의 논밭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이 탄 말을 농지(農地)로 뛰어들게 한 후에 자신이 아끼는 수염을 잘라버리는 징벌(懲罰)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삼국연의에서 제갈량..
청나라 중화민국 무술가인 황비홍의 무공은 얼마나 뛰어났을까? 황비홍(黃飛鴻)은 청나라와 중화민국의 무술가(武术家)이고 한의사(韓醫師)이며 항일 독립 운동가(抗日獨立運動家)이다. 출생 이름은 황석상(黃錫祥)이나 황비홍(黃飛鴻)으로 개명하였으며 자(字)는 달운(達雲)이다. 광동성 난하이 현 출신으로 소림 계통 남권의 일종인 홍가권(洪家拳)의 일대종사(一代宗師)이자 명의(名醫)로 활동하면서 힘없는 민중들을 구하고 흑기군(黑旗軍)의 유영복(劉永福)과 함께 항일(抗日) 독립운동을 펼쳐 중국인들의 영원한 민족 영웅이 되었다. 황비홍(黃飛鴻)의 마지막 여제자(女弟子)였다가 1915년 그의 4번째 부인이 된 막계란(莫桂蘭)은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고 황비홍(黃飛鴻)이 죽은 훗날에는 곽원갑(霍元甲)의 친척 조카인 곽..
수호전과 금병매로 유명해진 만고의 악녀인 반금련은 실존인물일까? 반금련(潘金蓮)은 수호지와 금병매의 등장인물로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성문 밖 가난한 바느질집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전족을 했는데 맨발이 작고 예뻐서 금련(金蓮)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워지자 그의 아버지는 남의 집에 어린 그녀를 팔았고 그 곳에서 화장하는 법, 악기(樂器) 다루는 법, 교태(嬌態)부리는 법을 배웠다. 그 후 장대인(張大人)이라는 어느 부잣집에 종으로 팔려가 하녀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어 그 부잣집의 영감 장대인(張大人)이 예쁘게 성장한 반금련(潘金蓮)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어느 날은 급기야 장대인(張大人)한테 강제로 검열삭제를 당하려했다가 그만 주인아주머니 여씨(余氏..
만다라 진화 및 황니강 생신선물 탈취한 수호전에 나오는 몽한약 수수께끼 몽한약(蒙汗藥)의 사전적 의미로는 신경계통(神經系統)에 작용하여 일시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의식(意識)을 잃게 하거나 몸의 일부분의 감각(感覺)을 잃게 하는 약을 일컫는다. 중추신경(中樞神經) 기능을 마취하거나 통각중추(痛覺中樞)의 감수성을 감퇴시키는 전신 마취제(痲醉劑)와, 국소의 지각 신경 말초를 마비시키는 국소 마취제가 있다. 만다라(曼陀羅)는 상서로운 꽃이다. '만다라'라는 이름은 종교전설(宗敎傳說), 신화이야기 및 대량의 의학문헌(醫學文獻)에서 빈번하게 출현한다. 그래서 동서방의 문화 속에 만다라(曼陀羅)는 이미 간단한 꽃 이름이 아니다. 자신의 독특한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다. '수호전'의 몽한약(蒙汗藥)은 주요성분이 만다..
황제가 하사한 천리마 척설오추의 실제 이름은 적토마라는 일부 견해에 대하여 오추마(烏騅馬)의 실제 이름은 "추(騅)"로, 관련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항우가 해하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을 당시에 최후를 직감하고 부른 ‘해하가(垓下歌)에서 그 애첩이었던 미녀 우희(虞姬)와 함께 언급될 뿐이다. 이 대목에서 사마천(司馬遷)이 덧붙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후 항우는 마지막에 자신에게 강동으로 피신 할 것을 권한 오강의 정장에게 천리마를 주었는데 이 '추(騅)' 라는 언급은 없지만 항우가 타고 다니던 명마였다고 하니 아마 정장에게 준 말이 바로 오추마(烏騅馬)였을 것이다. "추(騅)"에 대한 기록은 고작 이것 뿐 인지라 이 말이 나름 준수..
수호전에서 양산박 영웅호걸의 동고동락한 생사형제 간 개인친분에 의한 파벌분석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宋江)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호한들 대부분이 처자식 없는 홀아비들로 묘사한 배경 중국인들은 일상의 관용어로 ‘핍상양산(逼上梁山)’이라는 말을 쓴다.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에 개입(介入)할 때 쓰는 말이다. 관리의 핍박(逼迫)에 못 이겨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처자식을 버리고 정든 고향을 떠나 양산박에 모일 수밖에 없었던 ‘수호지(水滸志)’의 주인공들, 1백8인의 크고 작은 두령들이 겪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이 중국인의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만큼 ‘수호지’는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한자어 권에 속한 동양인(東洋人) 모두가 즐겨 읽는 민초의 삶과 애환(哀歡)이 담겨있는 민중의 소설인 것이다. 소설연구가들의 논증에 따른다면 송대의 선화유사(宣和遺事)라는 기록에 나타나는 36인의 도둑이야기를 ..
천고의 주도이며 만고의 주당인 무송과 노지심은 누가 주량이 더 셀까 수호전(水滸傳)은 바로 술을 마시는 역사이야기이다. 무송(武松)은 경양강(景阳冈)에서 연이어 18사발의 술을 마셨는데 이것은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일 뿐이다. 노지심(鲁智深)은 구운 고기를 가지고 이삼십 사발을 마셨다. 정말 탄복(歎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도대체 누구의 주량(酒量)이 더 세다고 할 수 있을까? 수호전(水滸傳)에서 술은 노주(老酒)와 촌주(村酒)로 나뉜다. 술의 품질로 봐서는 고급술과 하급술이다. 실제로는 사람을 귀족과 평민의 두 등급으로 분류(分類)하는 것이나 같다. 자연스럽게 노주(老酒)와 촌주(村酒)의 칭호가 나타났다. 촌주(村酒)는 일종의 증류를 하지 않은 소주(小酒)이다. 품질이 낮다. 일반..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박 108호한의 서열을 정한 잠규칙 정확성 입증 중국 원대 시내암(施耐庵) 또는 명대 나관중(羅貫中)의 저작으로 알려진 ‘수호전(水滸傳)’은 상이한 판본이 많이 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중 ‘100회본’은 북송 말기 송강(宋江)을 수령으로 하는 도적의 무리가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양산박(梁山泊)이라는 호수 한가운데에 수상요새를 거점으로 삼기까지의 경과와 이후 조정에 귀순해 절강(浙江)에서 일어난 방랍(方臘)의 반란을 평정해 공을 세우는 내용으로 구성(構成)돼 있다. 그러나 청조 초반 김성탄(金聖嘆)이 ‘100회본’ 중 송강 등 108호걸이 모두 양산박 요새에 결집해 서열(序列)에 따라 각기 부서를 정하고 임무를 분담(分擔)하는 대목까지 서술한 70회만 택하고 나머지는 위작(僞作)..
실력과 지반이 약소세력인 양산집단 괴수 산동 송강이 북송사대적구로 불린 이유 ‘수호전(水滸傳)’에서 하북전호(河北田虎), 회서왕경(淮西王慶), 강남방랍(江南方臘), 산동송강(山東宋江)은 북송말기의 '사대적구(四大賊寇)'라고 불린다. 전호, 왕경, 방랍의 세 명 대왕은 모두 영역이 양산(梁山)보다 컸다. 인력, 재력, 물력, 영향력으로 볼 때 양산은 이들에 한참 못 미친다. 송강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들 삼대 대왕(三大大王)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을까? "사대적구(四大賊寇)"를 쓰는 순서에 대하여도 이런 견해(見解)가 있다. 송강(宋江)이 그중 가장 강했기 때문에 첫머리에 이름이 놓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송강은 초안(招安) 후에 조정을 위하여 나머지 세 적구를 소탕(掃蕩)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실..
수호전 무공이 양산오호 수준인 인물은 양산에는 4명 양산밖에는 15명 존재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중국 4대 미인이며 삼국지 작품세계 중 최고의 미녀인 초선의 신세내력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초선(貂蟬)은 그 미모와 함께 혼란(混亂)한 세상에서 계략의 희생양(犧牲羊)으로 살게 된 비극적(悲劇的)인 운명으로 인해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유명(有名)한 인물이다. 미모를 이용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켜 동탁(董卓) 세력을 몰락시킨 일화(逸話)는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쯤 들어는 봤을 이야기일 것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초선이 등장하는 부분은 조정의 실권을 잡고 폭정(暴政)을 휘두르던 동탁(董卓)이 반동탁연합전선(反董卓聯合戰線)과의 전투로 인해 낙양(洛陽)에서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을 ..
나관중과 일부 작가들 호기심과 허구로 만들어낸 초선의 최후에 대한 7가지 판본 초선(貂蟬)에 대하여 많은 페이지를 할애(割愛)했던 나관중(羅貫中)은 장안병변(長安兵變)후의 초선의 행방(行方)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가치(存在價値)가 없어졌으므로 다시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은 여전히 그녀의 최후에 대하여 호기심(好奇心)을 놓치지 않았고 허구(虛構)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결말(結末)에 있어서는 "참사(慘死)"와 "선종(善終)"의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참사계열(慘死系列)을 보자. 여기는 최소한 4개의 버전이 있다. 첫째 버전: 곤극(昆劇) '참초(斬貂)'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여포(呂布)가 백문루(白門樓)에서 조조(曹操)에게 참수된 후 그의 ..
정사 삼국지와 역사상 초선(貂蟬)은 실재하지 않고 소설가들이 꾸며낸 이름 초선(貂蟬)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여포가 동탁의 이름 없는 시녀와 염문(艷聞)을 가졌다는 정사의 기록과 왕윤(王允)이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연의에서 각색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선(貂蟬)이라고 하면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고전소설 '삼국연의(三國志演義)'에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녀는 삼국시대의 미녀로서, 사도(司徒) 왕윤(王允)의 집안에 있는 가기(歌妓)였는데 왕윤을 도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하여 ‘연환계(連環計)..
삼국연의 촉나라 최고급 모사인 방통의 양모(陽謀)와 제갈량의 음모(陰謀)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서기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부터 서기 280년까지 중국 대륙(大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 연의(고전역사소설)로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쓴 책이다.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집필한 ‘삼국지(三國志)’와 배송지(裴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註)’에 수록된 야사(野史)와 잡기(雜記)를 근거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취하여 쓴 작품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 하여 모두 24권 240칙(則)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제갈량과 방통은 모두 ‘삼국연의’의 최고급 모사(謀士)이다. 나란히 일룡일봉(一龍一鳳)으로 불린다. 대은사(大..
홍루몽 200여 년 전 세계로 진출할 것 상해세계박람회 백 년 전 예견한 사람들 중국 국내에서 ‘홍루몽(紅樓夢)’ 최초의 운명은 매우 굴곡적(屈曲的)이었는바 일부 사람들은 "유행 바이러스"라고도 여겼다. 1793년 11월 23일, "인이호"로 불리는 화물선(貨物船)이 절강의 한 항만에서 출발해 20여 일간의 항해를 거쳐 12월9일 일본 나가사끼항에 도착했다. 당일 화물을 검사할 때 67종의 중국도서(中國圖書)를 발견했는데 그중 이름이 ‘신수전부수상 홍루몽’이고 총 9부 18조로 되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향후 전 세계를 풍미(風味)한 오늘날의 ‘홍루몽(紅樓夢)’이였으며 그때의 항로가 ‘홍루몽(紅樓夢)’이 해외로 진출한 최초 기록으로 남게 되였다. 19세기 일본, 조선을 풍미 : 문화적 연원(淵源)으로 말..
의기투합이란 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아 의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고 동고동락 '수호지(水滸志)'에는 탄압(彈壓)받는 민중의 절망적인 한숨과 좌절(挫折)이 있고 부패(腐敗)와 부정에 항거하는 열화 같은 분노와 반항(反抗)이 있다. 썩어 빠진 조정에 분연히 반기를 들고 탐관오리(貪官汚吏)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의 활약은 민중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하고 그들의 울분을 달래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영웅담 형식(英雄譚形式)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흐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힘없고 가련한 민중의 애환(哀歡)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情報化時代)의 물결을 타고 지나친 기계화(機械化)와 함께 인간성의 상실을 개탄(慨嘆)하는 목소리가 높은 오늘날에 의기(意氣)를 목..
만리장성과도 안 바꾼다는 4대 명작 아이들 열독하기에 적합한가 둘러싼 100년간 논쟁 중국 고전소설 '홍루몽(紅樓夢)은 1740년 무렵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작품이다. 아녀자들이 사는 붉은 누각(홍루)이 규방을 가리키므로 '홍루몽(紅樓夢)'은 규방의 꿈을 뜻한다. 중국어(中國語)로 약 100만 자에 달하는 대하소설(大河小說)이다. 등장인물(登場人物)만도 400명이 넘고 신분과 계층 또한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중국에서는 '홍루몽(紅樓夢)은 만리장성(萬里長城)과도 바꿀 수 없다'는 말까지 있다. '삼국지(三國志)'와는 달리 '홍루몽(紅樓夢)'은 영웅호걸(英雄豪傑)을 내세우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의 인간 군상(人間群像)을 등장시켜 근대 이후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이 됐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문학 연..
삼국연의에서 천하무장들 무술고하와 전후 모순되는 무술묘사의 허점에 대하여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영향력은 사대명저 중 가장 높다고 말하더라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삼국연의'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를 연의의 형식으로 통속화(通俗化)한 것이다. 그것은 '홍루몽(紅樓夢)'처럼 심오엄근(深奧嚴謹)하지도 않고 '서유기(西遊記)'처럼 기환초탈(奇幻超脫)하지도 않다. 그러나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역사를 생동감 있고 재미있으면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연의에 나오는 인물을 역사인물로 인식한다. 일본에서조차도 '삼국연의'를 경전(經典)으로 읽는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삼국연의(三國演義)'는 비록 완전히 역사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야기식의 연의는 일반사람들이 역사를 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삼국연의는 정치계몽서인가 권모술수인가 삼국연의(三國演義) 드라마가 다시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이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가정 연간에 간행된 가정본(嘉靖本) 계통, 가정 연간 이후에 간행된 지전본(志傳本) 계통, 문인 모종강(毛宗崗)이 만든 모종강본(毛宗崗本) 계통이 있다. 세 계통은 장회(章回), 판의 형식, 자구(字句), 주(註), 삽입 시가, 관우(關羽)의 셋째 아들인 관색(關索)의 등장 여부에서 차이가 있을 뿐 내용상의 차이는 별로 없다. 세 판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것은 모종강본(毛宗崗本)이다. 그 이유는 난삽(難澁)한 장회를 120회로 정비하고, 권두사(卷頭辭), 협비(夾批), 총평 등을 대폭 가다듬었으며 ..
삼국지 대인물 대부분은 군국대사를 먼저 선택하고 후에 가족 친척을 선택 '삼국연의'는 '대인물'에 관한 책이다. 그 안의 주요인물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군국대사(軍國大事)이다. 다만 "대인물(大人物)"도 사람이므로 가정과 친척이 있다. 능력이 우수한 것을 제외하고 그들은 사업과 가정 간에 모순(矛盾)이 생기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전자(前者)를 선택한다. 중국인들은 역대이래로 친자(親子)간의 정을 중시했다. 부자자효(父慈子孝)를 강조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인물들 중에서 "효(孝)"로 유명한 사람도 적지 않다. 다만 구체적인 상황과 방식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유비(劉備), 제갈량(諸葛亮), 강유(姜維) 및 서서(徐庶)는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그중 유비와 강유(姜維)는 소설에 나올 때 "모친을 ..
삼국연의 연구자들이 평가한 관우와 방덕의 유사성격 충돌 및 실제수준 관우(關羽)의 장점과 약점에 대하여는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연구자들이 이미 많이 얘기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관우성격(關羽性格)의 최대특징은 바로 "지나친 자신감"이다. 이 특징은 그가 몇 가지 기적을 만들어내게 했다. 예를 들어 순식간에 화웅(華雄)의 목을 벤 것이나 안량(顔良), 문추(文醜)를 벤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적을 창조한 것은 또 다시 그의 자신감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의 실제수준보다 훨씬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실패를 불러온 핵심요소중 하나이다. 만일 무사로서의 관우(關羽)의 평생을 본다면 가장 화려했던 때는 백마(白馬)에서 안량(顔良), 문추(文醜)를 벤 때일 것이다. 그..
삼국연의의 삼국시대 촉한의 장군 위연의 인간관계 및 성격과 운명 '삼국연의(三國演義)' 제65회를 보면 유비(劉備)가 익주목(益州牧)이 된 후 그를 따라 사천에 들어온 여러 장수들에게 봉상(封賞)을 내린다.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황충(黃忠), 위연(魏延), 마초(馬超)의 6장수는 각각 탕구장군(盪寇將軍), 정로장군(征虜將軍), 진원장군(鎭遠將軍), 정서장군(征西將軍), 양무장군(揚武將軍), 평서장군(平西將軍)에 봉해진다. 제73회에서 유비가 한중왕(漢中王)에 오른 후 다시 한 번 여러 장수들에게 봉상을 내린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을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으로 하고 위연을 한중태수(漢中太守)로 한다. 두 번의 중요한 봉상에서 서열(序列)이 약간 변화..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장들이 사용한 천하에 이름난 괴력적인 무기들 어린 시절 삼국지(三國志)를 참 재미있게 봤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장수(將帥)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武器)를 상상하고 더욱 몰입(沒入)하며 읽었던 것 같다. 남자라면 대부분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관우(關羽)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이 어떤 무기를 사용(使用)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글을 쓰면서 백벽도(百辟刀)나 청강검(靑釭劍), 고정도 등 자료가 지나치게 부족해서 첨부(添附)하지 못한 무기들이 많아서 아쉽다. 관우 - 청룡언월도 : 관우(關羽)를 상징하는 무기로 관우(關羽)가 죽은 이후에는 오나라의 장수인 반장(潘璋)이 사용하지만 관우의 차남 관..
조운은 손견의 딸이며 손책 손권의 이복 여동생이자 유비의 부인 손상향을 짝사랑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조운(趙雲)은 무예가 고강할 뿐 아니라 미남이다. 이런 사람을 어느 여인인들 보고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조운(趙雲)이 명을 받아 계양(桂陽)을 공격할 때 이런 난감(難堪)한 일이 벌어졌다. 각설하고 조운(趙雲)이 계양을 공격할 때 계양태수 조범(趙範)은 스스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와 투항(投降)한다. 그리고 주인의 예를 다하기 위하여 조범은 조운을 집안으로 모셔서 대접한다. 두 사람은 모두 성이 조씨이므로 조범(趙範)은 두 사람이 결의형제(結義兄弟)를 맺자고 제안한다. 조운은 호쾌한 사람이어서 즉시 시원스럽게 응락(應诺)한다. 다만 술을 어느 정도 마셨을 때 ..
삼국지 중심내용 읽다보면 허구와 진실이 뒤섞인 존유폄조(尊劉貶曹) 경향성 짙다 우리가 읽는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를 흔히 ‘칠실삼허(七實三虛)’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곧 역사적 사실이 7할이고 소설로 꾸며낸 이야기가 3할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소설 삼국지’의 구체적(具體的)인 사건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3할 보다는 훨씬 많은 허구(虛構)들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삼국지’와 역사학자 진수(陳壽)가 쓴 ‘정사 삼국지’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 책의 기본적인 내용은 두 가지 삼국지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사실 나관중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던 소위 ‘이야기꾼’들의 삼국지를 나관중이 집대성한 것이다. 그리고 오..
'삼국연의'에 기재된 무장들의 '일대일대결' 장면은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는가 '삼국연의'의 문학적 묘사에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무장 일대일대결(武將一對一對決)"이라는 장면은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었다. 청나라 때의 고증대가는 사적, 필기에 기재된 무장의 일대일대결(一對一對決)에 관하여 정리한 바 있다. 왕완정(王阮亭)이 '지북우담(池北偶談)'에서의 내용을 인용하여 이렇게 결론 내렸다. "예로부터 정말 장수(將帥)들이 싸우는 일이 있었다. 모조리 패관(稗官)들의 헛소리만은 아니다." 비록 그가 찾은 사례가 많지는 않았고 모두 합쳐서 20여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간적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었다. 최초에 발생한 것은 기원전7세기 춘추시대(春秋時代)이고 가장 늦은 것은 숭정연간이었으며 명나라장수가 농..
작자는 촉한 편을 들어 ‘삼국연의’에서 석정전투(石亭戰鬪)를 언급하지 않았다 석정 전투(石亭戰鬪) 혹 협석 전투(夾石戰鬪)는 228년 삼국시대 때 위나라와 오나라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당시 제갈량(諸葛亮)의 제1차 북벌을 막은 데 성공한 위나라의 사마의(司馬懿)는 양주 도독 조휴(曹休)로부터 오나라 양주 파양 태수 주방(周魴)이 위나라를 돕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사마의(司馬懿)는 위나라 황제 명제에게 소식을 알리고 군사를 일으키고자 했다. 명제는 일단 조휴(曹休)에게 명해 오나라를 치게 하고 사마의를 시켜 조휴를 돕게 하고 가규(賈逵)에게는 만총(滿寵), 호질(胡質) 등 4군을 지휘하여 동관으로 진격하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나라의 함정이었는데 조휴(曹休)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심양을 향해 ..
삼국지 전형적인 인물 탈피에서 본색을 드러낸 삼국연의 인물들의 실제 나이 무대 뒤에 있는 진짜 ‘삼국지(三國志)’를 만난다. 삼국 이야기의 주역들과 전형적(典型的)인 인물에서 탈피해 본색(本色)을 드러내다. 삼국지에서 가장 대중적(大衆的)인 사랑을 받는 인물은 단연 조조(曹操), 관우(關羽), 제갈량(諸葛亮)일 것이다. 조조는 간교(奸巧)함과 악인의 상징으로 관우는 충절(忠節)을 목숨보다 중요시한 맹장으로 제갈량은 뛰어난 예지 능력(叡智能力)을 발휘하여 항상 적의 허를 찌르는 초인적(超人的)인 인물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刻印)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固定觀念)이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이해를 방해(妨害)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삼국 시..